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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95

    컨디션이 좋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굳이 병원에 갈 필요는 없다는 예르나를 다이튼이 억지로 이끌어서 데려온 병원.

    그러나 별 것 아니라는 예르나의 이야기와는 달리, 의사의 반응은 꽤 심각해 보였다.

    몇분째 안경을 고쳐쓰고 수정구를 문지르며 모니터를 유심히 살피는 의사의 반응을 보면, 누구든 긴장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더이상 그 압박감을 참을 수 없었던 다이튼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결과가 어떤가요, 선생님? 혹시 심각한 겁니까?”

    그러자 의사는 가만히 바라보던 모니터에서 눈을 떼고 다이튼과 예르나를 향해 시선을 맞추며 천천히 입을 떼었다.

    “글쎄요, 조금 더 경과를 지켜보고 검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의사의 조심스럽다는 듯이 말을 고르는 모습.

    그에 다이튼과 예르나는 침을 삼키며 그의 입에서 튀어나올 말에 극도로 집중하기 시작했다.

    -꿀꺽.

    마침내, 그의 입이 열렸다.

    얼굴에 안심하라는 듯한 미소를 띈 채로.

    “일단은 임신초기인 것 같네요. 축하합니다. 엘프와 인간 사이의 임신은 꽤 힘든 일인데 말이죠.”

    잠시 후, 다이튼과 예르나는 놀라 목소리를 높였다.

    “네? 임신이요?”

    이건 정말로 뜻밖의 소식이었다.

    다이튼은 멍하니 중얼거렸다.

    “임신이라니…….”

    시기를 계산해보면, 아마도 전에 가족끼리 온천여행을 갔을 때가 아닌가 싶다.

    피임을 하지 않았던 날이기도 했고, 가장 많은 횟수를 했던 날이기도 했으니까.

    “…….”

    그런데 그 기억들을 되새기니 지금은 어쩐지 흥분감보다는 공허함과 후회만이 앞선다.

    아이라는 거, 정말로 이렇게 만들어지는 거구나.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막상 눈앞에 현실로 다가오니 느껴지는 게 너무나 다르다.

    이래서 다들 겪어보지 않은 일은 모른다고 하는건가.

    “다이튼?”

    그렇게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있던 다이튼의 정신을 현실로 끌어낸 것은 예르나의 목소리였다.

    예르나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눈동자에는 자신을 향한 짙은 신뢰가 담겨 있었다.

    “지금 무슨 생각해?”

    여러모로 마음속이 복잡한 자신과는 달리, 그녀는 망설임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평소와 같은 모습이었다.

    사실 지금 제일 걱정스러울 것은 뱃속에 새 생명이 들어선 그녀임이 분명한데도, 마치 모든 것에 달관한듯 초연한 모습에는 신성함마저 느껴질 지경이다.

    어쩌면, 그녀는 정말 천사가 아닐까.

    다이튼은 그녀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다행이네, 종양은 아니라서.”

    처음 검사를 받았을 때, 태아가 너무 작아서 의사가 종양으로 착각하는 바람에 걱정을 많이 했지.

    이제 막 가족을 이룬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예르나를 잃게 되는 건 아닌가 해서.

    그러자 예르나는 픽, 하고 웃어버리며 말했다.

    “의사도 무조건 종양인 건 아닐거라고 했잖아. 진짜, 넌 호들갑이 너무 심하다니까.”

    간단한 검사로 뱃속에서 종양으로 의심되는 무언가를 발견하기는 했지만, 크기가 큰 것도 아닌데다 위치상 생명에 치명적인 곳도 아니라 200만길이 넘는 정밀검사비용을 지불할 정도로 심각한 건 절대 아니라는 이야기를 듣고도 ‘무조건 지금 검사해야한다’라고 우겨서 이 사단을 낸 거니까.

    하지만 다이튼은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아깝지 않다는 듯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래도 덕분에 일찍 알았잖아. 걱정하느니 바로 결과를 아는 게 낫지, 안그래?”

    “음, 그러게.”

    예르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덕분에 걱정 없이 몇 주동안 발 뻗고 푹 잘 수는 있겠다.

    안심하는 듯한 다이튼의 표정에 예르나는 작은 장난이 하나 떠올라 속삭였다.

    “사실은 그 돈이면 결혼반지를 맞추는 게 더 나았을 것 같기는 해.”

    “……윽, 확실히 그렇게 말하니 조금 아까운 것 같기도 하네.”

    200만길이면 충분히 그러했으리라.

    하지만 이미 지난 일인데 어쩌랴.

    당시에는 그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또 어처구니없이 가족을 잃을 수는 없으니까.

    “이제 몸 조심해야겠어.”

    예르나가 자신의 아랫배를 쓰다듬으며 중얼거리는 모습을 본 다이튼이 나지막이 대답했다.

    “그러게, 이제 당분간 현장은 가면 안되겠지.”

    약간 미련이 남은 듯한 목소리에 예르나는 그를 조용히 올려다보며 웃었다.

    “아쉽겠네, 내가 없으면.”

    확실히, 예르나가 없으면 일터가 재미가 없어지기는 하겠지.

    그래도, 임산부를 전장에 내보낼 수는 없는 법이다.

    다이튼은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아쉬워도 내가 참아야지 뭘. 지금은 아기이름이나 천천히 생각해보자.”

    “응. 그래.”

    안타깝게도 아직은 태아가 너무 작아서 아들인지 딸인지는 알 수 없다고 했으니, 남자이름과 여자이름을 모두 지어야했다.

    이왕이면 아들이었으면 좋겠는데.

    같이 목욕탕에 가면 때라도 밀 수 있게.

    물론, 그러기위해서는 엄청나게 기다려야 하겠지만 말이다.

    “아이라…….”

    그나저나, 이제와 돌이켜보면 애가 셋이나 있는 가족인데도 그런 쪽으로는 루크 덕분에 걱정을 하지 않아서 좋았다.

    애초에 예르나와 이렇게나 가까워질 수 있었던 계기도 루크였지.

    어쩌면 루크는 자신의 사랑을 이어주기위해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나 정령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리라.

    루크가 없었으면, 예르나가 이렇게 쉽게 마음을 허락해주지도 않았을테니까.

    그랬으면 아마, 더 오랜 시간동안 노력해야하지 않았을까?

    그때의 예르나에게는 누군가를 사랑할 계획조차 없었으니.

    다이튼은 홀로 조용히 생각했다.

    ‘돌아가면 루크한테 고맙다는 말이라도 해야되려나.’

    돌아갈 때에 꼬치라도 좀 사서 들어가야겠다.

    —-

    그시각, 루크는 침대에 누워 마법서적을 읽고 있는 중이었다.

    딱히 공부를 하려는 목적은 아니었고, 그냥 아린세이아에서 힘들었던만큼 휴식을 취하려는 의도였기 때문에 자세는 편안한 자세를 취했다.

    루크는 아직 벗지 않은 다이튼의 스웨터의 감촉을 느끼며 중얼거렸다.

    “흐음, 입고 있다보니 나름대로 편할지도…….”

    처음에는 그냥 간단히 목과 손목을 가릴 수 있으면 된다는 생각에 꺼내서 입은 거지만, 입다보니 마치 ‘입을 수 있는 담요’같은 느낌이라서 의외로 안정감이 있다.

    흉터가 다 낫더라도 굳이 벗고 싶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이런 큰 옷을 몇개 사둘까…….”

    나중에 클 것을 생각하면 미리 사두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

    미래의 자신이 10서클까지 도달하면, 아마 20살 정도로는 성장할테니까.

    그러고보니, 1서클당 신체나이 1살이라는 가설을 따른다면 10서클 이후는 이론상으로도 존재하지 않으니 역시 20살 이상으로는 성장하지 않으려나?

    뭐, 어디까지나 그 정도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면의 얘기겠지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루크! 내려와서 이것 좀 먹어봐!”

    “그래! 우리가 너 좋아하는 꼬치 사왔다!”

    다이튼과 예르나의 목소리였다.

    꼬치라, 마침 출출했는데 잘 되었다.

    루크는 읽던 책을 그대로 덮어버리고 벌떡 일어나 계단을 걸어내려갔다.

    계단을 내려갈 때마다 달짝지근한 닭꼬치의 향이 점차 강해지며 루크의 코를 즐겁게 하고 있었다.

    “다녀오셨어요!”

    매우 활기찬 인사.

    거기에 귀도 쫑긋거리고, 꼬리도 기분좋다는 듯 꼬물거리는 게 영락없이 엄청 신난 모습이다.

    그 모습을 보니 예르나는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았다.

    몸은 컸지만, 이런 걸 보면 여전히 어린애라니까.

    고작 꼬치 하나에 이렇게 좋아하다니.

    “얼른 와서 먹어라. 여기가 꼬치 맛집이래. 파이리스랑 애들 오기 전에 너부터 얼른 먹어라.”

    “음! 좋지!”

    아이들이 오기 전에 먹어야 한다는 말에는 루크 또한 깊이 공감하는 바였다.

    디아나는 몰라도 파이리스가 이 음식을 보면 자신의 몫은 결국 한없이 줄어들고 마니까.

    그렇게 루크가 봉투를 받아들어 식탁으로 향하자, 다이튼이 방 안의 온기를 느끼며 입을 열었다.

    “난방은 잘 고친 모양이네?”

    “응, 그 정도야 금방이지. 내가 만들었으니까.”

    “…….”

    조금 우쭐하는 듯한 루크의 모습에 다이튼은 ‘네가 고장낸 것이기도 하지만.’이라는 말을 하려다가 참았다.

    지금은 감사하려고 이렇게 꼬치까지 사온거니까.

    다이튼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루크는 예르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나저나, 병원은 어땠나요? 혹시 심각한 문제라고 하던가요? 뭐, 제가 있으니 만일 심각한거래도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냥 신성력을 쓴다면야 당장에 죽을 병이라도 살려낼 수 있을 테니까.

    미처 손쓸새도 없이 영혼채로 소멸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사실 예르나와 다이튼이 자신의 ‘그 힘’을 쓰면 정말 큰일이 나는 줄 알고 억제해서 그렇지, 원래는 병원에 갈 필요도 없었다.

    “아니 뭐, 말은 고맙지만 그런 건 아니고……. 임신이라고 하더라고.”

    “음, 그렇구……. 뭐?”

    꼬치의 향에 정신이 팔려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던 루크는 다이튼의 말에 꼬치를 향해 손을 내밀던 몸을 그대로 굳히며 천천히 그를 향해 되물었다.

    “임신했다고? 누가? 예르나가?”

    “으, 응. 왜 그래?”

    “아니, 너무 그, 놀라서…….” 

    다이튼의 말이 사실이라고 생각하면, 예르나가 병원에 가지 않았더라도 자신은 예르나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게 없었을 것이다.

    신성력은 ‘온전한 생명’에는 듣지 않으니까.

    임신으로 인한 컨디션 저하는 회복시킬 수 없는 것이다.

    그게 일반적인 현상이기 때문에.

    하지만, 이렇게나 갑자기?

    이건 타이밍이 나쁘다.

    ‘이렇게되면 나는….’

    원래는 ‘계획’에서 도움을 받는 것도 고려하고 있었는데, 이렇게되면 예르나에게 절대 자신의 계획을 들키면 안된다.

    상냥한 그녀라면 분명히 자신을 도와주려고 할 테니.

    루크는 금세 자연스러운 웃음을 지어내며 입을 열었다.

    “임신 축하해요.”

    그러자 예르나는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으응. 그런데 루도 일단은 딸인데 딸한테 축하를 받으니까 뭔가 기분이 묘하네.”

    “…그런가요?”

    하긴, 생각해보면 ‘어머니’에게 자식이 생긴 것을 딸이 축하하는 건 조금 이상한 그림이기는 하다.

    따지자면 자신의 동생이 생긴 건데, 어머니에게 ‘임신 축하해요’는 왠지 조금 묘한 거리감이 느껴지는 말이 아닌가.

    그럼 어머니의 임신은 대체 뭐라고 축하를 해야하지?

    잘 모르겠다.

    남동생이 있기는 했거도, 그 아이가 태어날 때 자신의 나이는 고작 2살이었으니까.

    그러던 와중, 다이튼이 끼어들며 말했다.

    “일단 식기전에 꼬치나 먹자.”

    “음, 좋지.”

    그렇게 루크가 꼬치를 하나 집으려고 한 순간이었다.

    “잠깐만, 루크. 소매에 묻을라. 엄마가 걷어줄게.”

    “앗!”

    찰나의 순간이었다.

    -탁! 

    “아얏!”

    -철퍽.

    소매를 잡힌 루크가 반사적으로 손을 잡아빼며 예르나의 손을 때렸고, 그 영향으로 루크의 손에 들려있던 꼬치는 그대로 그 자신과 바닥과 동시에 더럽히고 말았다.

    “아.”

    그 모습을 본 다이튼이 즉시 예르나의 손을 감싸쥐며 다가왔다.

    “예르나, 괜찮아? 손이 빨간데, 세게 맞은 거 아냐?”

    “아, 으응. 괜찮아. 그냥 좀 놀란거야.”

    저렇게 여려보이는 루크지만, 그 힘은 상당히 강했다.

    순수한 육체능력만으로도 샌드백을 터트려버릴 정도로 말이다.

    그런 힘으로 손등을 맞는다면, 아무리 예르나라고해도 부상을 입을 가능성이 충분했다.

    다이튼은 한동안 예르나의 손을 주물거리며 통증을 확인하더니, 이내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후, 다행히 금이 가거나 부러지진 않은 것 같네.”

    다행히 조금 비껴맞았는지 손등이 조금 빨개진 것 외엔 별 이상이 없었다.

    그 다음엔, 화를 낼 차례다.

    “루크, 지금 뭐하는 짓이야? 예르나한테 사과해!”

    자신이 한 일에 놀라 어쩔 줄 몰라하던 루크는 다이튼의 호통소리에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건넸다.

    “그, 죄송해요. 진짜 일부러 한 게 아니었어요.”

    그러자 다이튼이 곧바로 되물었다.

    “그럼 갑자기 왜 그런거야? 예르나 지금 임신해서 더욱 조심해야 하는데.”

    “그게…….”

    루크는 무어라고 이야기를 하려다가 문득 입을 다물었다.

    자신이 왜 그랬는가를 거짓없이 설명하라고 한다면 상당히 곤란한 이야기였으니까.

    특히 지금의 예르나에겐 더더욱.

    하지만 루크의 침묵이 다이튼에게는 상당히 답답했던 모양이다.

    “뭐야, 빨리 말 안해?”

    “…….”

    여전히 대답없이 가만히 서서 그저 고개를 떨군 채 시선을 피하는 루크의 모습.

    그에 이번엔 예르나가 다이튼에게 한소리를 했다.

    “다이튼. 말투가 너무 공격적이잖아.”

    확실히, 예르나가 다쳤다는 생각에 순간 머리에 피가 쏠려서 감정적으로 되었던 건 사실이다.

    너무 다그치는 건 아무래도 안좋겠지.

    다이튼은 변명하듯 대꾸했다.

    “아니, 쟤가 말을 안 하잖아.”

    “그냥 조금 기다리면 이야기할거야. 루크, 그렇지?”

    예르나의 부드러운 목소리.

    하지만, 예르나의 기대와 달리 루크는 대답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

    결국, 루크가 선택한 길은…….

    “죄송해요!”

    -타다닥!

    도망이었다.

    “어, 어어! 야, 루크! 어디가!”

    “루, 갑자기 왜 그러니?”

    다이튼은 그렇게 밖으로 도망치는 루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진짜 뭐지?”

     평소엔 항상 뭐든지 다 조목조목 짚고 넘어가더니.

    진짜 쟤 요즘 뭐 어디 잘못됐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무지성 오버핏 루크삽화 투하!

    생각해보면 레니에도 어릴 때 항상 도망치고 다녔다는 걸 생각하면 꽤 닮았네요.
    근데 지금은 더 닮게 되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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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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