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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96

    <496 – 충돌 임박>

     

    남부 신성도시국가연맹.

    카넬레 시 외교공관.

     

    “아카데미니 뭐니 유난 떠는 것들은 순 욕심에 눈이 먼 바보들이지. 인생은 날먹이 진리인데 뼈 빠지게 공부하고 좋은 날 다 보내면 언제 놀려고?”

     

    제국의 유서 깊은 마도명가 쿠키가문의 망나니 막내아들 콘라트 쿠키는 세상사 이치에 대해 일장연설을 늘어놓았다.

    함께 외교공관에서 여자를 끼고 젊음을 불태우던 제국의 유서 깊은 검술명가 치즈가문의 망나니 서자 로버트는 냅다 일침을 던졌다.

     

    “가문 물려받을 짬빠는 안 되고 아카데미 입학할 재능은 후달리는 놈이 꼴에 청산유수하고는.”

    “응 서자라서 쫓겨난 놈이 하는 말이라서 데미지 하나도 없죠?”

    “풋. 본국에 돌아가면 친형이 보낸 암살자에 칼 맞고 죽을까 무서운 놈이 적자 타령은. 너처럼 사느니 차라리 맘 편하게 서자로 살련다.”

     

    어제가 오늘과 다름없고 오늘이 내일과 다름없는 삶.

    누군가는 죽을 날만 기다리는 노인의 삶이라 폄하하겠지만 그들에겐 일생의 소원이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권력에 힘입어 소국의 여자들과 자유로이 관계를 맺고 향음을 누리며 일신에 부족함 없는 나날을 보낸다.

    자리에서 쫓겨날 때까지 축재만 원없이 한다면 남은 일생을 먹고 살 부도 갖출 수 있다.

     

    ‘5년, 아니 10년만 버텨도 여생은 날로 먹는다!’

     

    가문의 서자, 후계쟁탈전에서 탈락하거나 기권한 자들의 도피처.

    남부 신성도시국가연맹의 외교공관 고위공무원단은 이들의 일생을 책임질 꿀보직이었다.

     

    벌컥!

     

    “아이씨. 어떤 새끼가 허락도 없이 들이닥쳐? 우리가 일 보는 동안에는 쥐새끼 하나 얼씬거리지 말라고 했잖아!”

     

    제국귀족 하나 꼬셔서 출세하겠다는 생각에 웃음을 팔던 여인들이 다급히 헐벗은 옷가지로 몸을 가렸다.

    흥이 깬 콘라트 쿠키가 입구를 노려봤다.

    평소라면 그곳에 서 있는 것은 60% 확률로 서기관들 사이에서도 끗발이 딸리는 막내가 어벙한 얼굴로 업무 서류를 내밀 것이다.

    30% 확률로는 자국의 여성들이 외국의 남자에게 아첨 떠는 모습에 화가 난 얼굴을 한 2등 서기관이 애써 아무것도 못 본 체하며 업무를 재촉하겠지.

    남은 10% 확률로는 기껏해야 1등 서기관이 달려와서 사고가 터졌다고 급히 여자들을 빼돌리고 사건 수습에 나설 준비를 해야 한다.

     

    “지오 참사관?”

     

    그런데 오늘 10%인줄 알았던 확률이 9.9%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너희가 뭘 하는 놈들인지 뭘 하려는 놈들인지 전부 다 알고 있는데 나한테 방해만 하지 마라, 같은 얼굴이나 하던 참사관이 사색이 되어 들이닥쳤다.

     

    “당장 옷가지를 챙겨 입고 여자들을 돌려보내시오.”

    “대형사고라도 터졌어? 왜 그리 호들갑이야.”

    “닥쳐라, 서자놈아. 저 양반이 호들갑 떨면 진짜 대형사고 터졌다는 거야. 잘못 찍히면 우리 중에 한 놈은 본국송환 될지도 모를 대형사고.”

     

    두 사람은 급히 의복을 갖추고 여자들을 뒷문으로 돌려보냈다.

     

    “아비게일. 이번주 용돈은 두둑하게 챙겨줬으니 또 놀러 오라고!”

    “그럼요. 서방님들 꼭 다시 놀러 올게요!”

     

    홀복 차림에 보석을 목과 손, 팔목에 두른 여자가 낭랑하게 웃으며 뒷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위로 들어올렸다.

    위로, 위로, 그리고 또 위로… 끝도 없이 계속해서, 고개가 수직으로 올라가도록.

     

    “아가각…”

    “가관이군.”

     

    맹수의 으르렁거림처럼 낮은 목소리가 불편한 심기를 거침없이 드러냈다.

    여자를 손 하나 대지 않고 넘어뜨려 옆으로 치운 거구의 사내가 온몸으로 문과 벽을 부수고 걸어서 실내로 들어왔다.

     

    “어, 어디에서 온 누구신지…”

    “어중칠검.”

     

    콘라트 쿠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미친 듯이 심장이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그 이름의 의미를 알고 있나.”

    “황제폐하에게 충성을 바친 칠인의 검객이라고…”

    “부족하다.”

    “황제의 뜻을 대리하여 순찰하는 감찰관의 직책을 부여받으셨다는…”

    “아직도 부족하다.”

    “가, 감히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무엇을 위해 카넬레 시 영사관에 방문하셨는지.”

    “해야 할 일이 두 가지가 있다.”

     

    거구의 남자가 방의 건너편, 정문을 쳐다봤다.

    혼란을 틈타 슬금슬금 바닥을 기다가 막 정문을 열고 뛰쳐나가려던 치즈가문의 서자 로버트가 꼴사납게 뒤로 나자빠졌다.

    정문 앞에 우뚝 선 푸른제복 차림의 사내가 석상처럼 자리를 지키다가 걸음을 내디뎠다.

     

    토옹.

     

    물결치듯 진동하는 영사관 바닥에 로버트는 한층 더 기겁하며 추하게 바닥을 짚으며 안으로 달아나다시피 되돌아왔다.

     

    “하나는 총책임자를 죽이는 것. 또 하나는 총책임자와 함께 매달릴 산제물을 구하는 거란다. 귀족가의 양아치들아. 너희 책임자가 누구니?”

    “10급 외무공무원 대사직은 현재 공석입니다. 차순위인 본부 국장 또한 공석이며 현재 카넬레 시는 8인의 심의관이 모든 권한을 나누어 가졌습니다.”

     

    심의관은 본래 고참 외교관의 상징으로 부국장에 상응하는 지위를 지닌다.

    당연히 그런 대단한 자리를 한 명도 아니고 여덟 명이나 사이좋게 나누어 먹는 일은 본국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원로회의 공신 녀석들. 황제폐하의 은덕을 이용해서 잘도 멋대로 보직을 가지고 놀았군.”

    “죽일까?”

    “멈춰라. 쓰레기는 쓰레기 나름대로 사용법이 있지. 여기는 내게 맡겨.”

     

    푸른제복의 사내가 귀족가의 쓰레기들이 모인 고위공직자들의 놀이터를 둘러보았다.

    규격에 맞지 않는 커다란 방.

    직원들의 업무공간을 일부 철거하고 1인용의 심의관실을 8인용으로 개조한 흔적이 보인다.

    당연히 안에는 빈자리가 여럿 있다.

    콘라트 쿠키와 로버트가 빈 의자를 네 개씩 모아 그 위에 누워서 자는 별난 취침습관이 없다면 이곳에는 여섯 명이 더 있어야 한다.

     

    “너희 여덟 명의 심의관 중에 작위가 가장 높은 녀석은 누구니?”

     

    콘라트와 로버트의 시선이 <블랑서 백작>의 자리로 향했다.

    둘의 눈에는 존경심도 두려움도 없었다.

    만만함.

    안도감.

    제복사내는 그 감정의 의미를 알고 있다.

     

    “질문을 바꿀게. 실세는 누구니?”

     

    뒤늦게 떠오르는 공포.

    두 사람의 고개가 반사적으로 고정됐다.

    팔인의 심의관이라는 기형적인 구조를 만들어낸 장본인이 이 안에 존재하는군.

    심지어 어중칠검이 둘이나 출두한 자리에서도 사실을 감추려 애쓰고 있다.

    상황파악이 안 되는 것과는 별개로 나름 실력 있는 모략가가 있었나보다.

     

    “시선은 의식해도 동공은 의식 못 하지. 방금 저쪽 힐끔 봤지?”

     

    로뮬루스 자작, 휴고 남작, 브렌디 준남작.

    세 개의 좌석을 가리키자 콘라트는 속으로 로버트를 욕하며 눈을 감았다.

    저 멍청한 서자새끼는 차라리 기절이나 할 것이지 끝까지 도움이 되질 않았다.

     

    “영리하네. 눈을 감으면 동공은 막을 수 있지.”

    “…”

    “근데 심장박동은 어떻게 속일 거니?”

     

    콘라트는 깨달았다.

    로버트가 멍청한 게 아니라 자신이 멍청했음을.

    저들 앞에서 진실을 감추는 행위 따위는 처음부터 불가능하고 멍청한 짓이었다.

     

    “휴고 남작. 우선 이 친구의 목을 매다는 것부터 시작하자고.”

     

    푸른제복의 남자가 소파에 등을 기대앉으며 작은 모래시계 하나를 뒤집어놓았다.

     

    “이 모래시계는 3분짜리란다. 그 안에 꼭 휴고와 연락이 닿으면 좋겠네.”

     

    눈을 데굴데굴 굴리는 콘라트와 로버트의 앞에서 제복남이 무표정한 얼굴로 감흥 없이 말했다.

     

    “애먼 외교관 하나의 목을 더 날리는 초과근무는 하고 싶지 않거든.”

    “…!”

    “3분은 짧아. 벌써 20초가 지났는데 그렇게 멍하니 있어도 괜찮나?”

     

    두 사람은 자리에 배치된 통신마도구를 향해 사력을 다해 뛰어들었다.

     

     

    * * *

     

     

    도적길드 본부.

    VIP 디스트로이어의 본부방문에 본부를 지키는 상황실에는 화산지부부터 함께 넘어온 슈 츄러스가 경비를 위해 대기인력으로 배치되었다.

     

    “수문 4문 이상 무.”

    “지하수로 13로 이상 무.”

    “지상위장거점 2개소 이상 무.”

    “07시 정각 정시보고 결과, 모든 통로 이상 없음을 보고드립니다.”

    “쉬어. 통상경계 계속하다가 15분 뒤에 야간조는 철수, 주간조와 교대하도록.”

     

    슈 츄러스는 재단의 후계자와 황녀가 자리한 시설에 별 이상이 생길까 싶었다.

    무슨 일이라도 벌어지거든 제국교수 두 명과 도적길드를 적으로 돌려야 한다.

    심지어 재단의 후계자와 제국의 2황녀의 적의마저도 살 텐데 겁도 없이 일을 저지를 바보가 대체 세상 어디에 있을까.

     

    “응? 잠깐만. 마나패널 지하수로 7로 대기장소 신호 확대해. 그래 거기.”

     

    지정된 순찰루트를 반복해서 돌아다녀야 할 길드원이 엉뚱한 곳에서 가만히 대기하고 있다.

    슈 츄러스는 등골이 싸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좋지 않다.

    디스트로이어의 용사행이 한참이던 시절, 도적길드를 성가시게 여기고 직접 노리던 적들이 창궐할 때에나 겪어본 오싹한 감각이 다시금 손등을 타고 흘렀다.

     

    “7로, 응답하라.”

    -수신완료.

    “어째서 현재 위치를 벗어났는지 보고하라.”

    -현재 경계근무지역 이상 없이 순찰 중입니다.

    “위치는?”

    -H7번 교차로에서 북동방면 출입로 순찰하고 있습니다.

    “위치가 다르잖아.”

    -예?

    “당장 대기조 투입해.”

     

    상황실의 분위기가 급변했다.

    대기조를 급파하고 마나패널에 표기된 장소로 사람을 보냈지만 이미 자리를 뜬 것인지 상대는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현장에 급파한 대기조들이 엉뚱한 보고를 해왔다.

     

    -여기는 대기조. H7번 교차로 북동방면 출입로에서 순찰 중이던 야간조 순찰길드원 확인.

    “신원은?”

    -이상 없습니다.

     

    그게 더 문제잖아.

    우리 패널에는 저 녀석이 거기가 아닌 다른 곳에 있다고 나와있는걸.

    사색이 된 슈 츄러스가 비상부저의 개폐장치를 열기 무섭게 차가운 날붙이가 경추, 목을 구성하는 7개의 뼈 중에 손상을 입으면 가장 치명적인 뼈에 닿았다.

     

    “아십니까? 일반인은 경추를 35mm만 찔려도 사지를 마비시킬 수 있고 목근육이 발달된 훈련 받은 사람도 40mm만 찌르면 그만이라는 걸.”

    “…누구냐.”

    “재단의 암살메이드 리프. 여러분에게 친절하게 경고를 전하고자 찾아온 조력자입니다.”

     

    자존심이 상하기보단 공포심이 앞섰다.

    재단의 정보력과 은밀성은 도적길드와 동등 내지 그 이상이라는 소문은 들었지만 설마 본부상황실까지의 침입을 이토록 간단히 허용하다니.

    순찰루트와 시간, 마나패널을 이용한 감지채널 및 마나패널 동력부를 모조리 간파당한 꼴이 아닌가.

     

    “정확히 15분 뒤, 혁명군이 본 시설의 급습을 개시할 예정입니다.”

    “…정보의 신뢰도는?”

    “황제의 어중칠검 두 자루가 카넬레 시에 도착했다고 하면 믿음이 가십니까.”

    “황실에서 도적길드보다도 먼저 정보를 얻었다고? 녀석들에게 그런 정보력이 있을 리 없어. 여긴 도적길드 본부라고!”

    “오크노디 아가씨와 매스각키 황녀를 거둔 시점에서는 논할 의미가 없는 이야기입니다. 재단도 제국도 이미 당신들을 눈치챘습니다.”

     

    슈 츄러스가 자신감을 잃은 목소리로 힘겹게 물었다.

     

    “우선 귀하의 정보제공에 감사 인사를 전하지. 그런 귀중한 첩보를 우리에게 전해준 이유는?”

    “당신들이 항쟁을 택하든 도주를 택하든 개의치 않습니다. 아가씨의 신변만 제게 맡기십시오.”

    “지금 이곳에는 도적길드 본부에 주둔하는 본부병력과 대륙십대도적 중 세 명, 심지어 아카데미의 교수 둘도 있다. 그런데도 우리를 믿지 못한단 말인가?”

     

    리프는 차갑게 단언했다.

    그 말을 들은 슈 츄러스는 손의 떨림을 멈출 수가 없게 되었다.

     

    “혁명군에서는 혁명가가 움직입니다.”

     

    한번 등장할 때마다 반드시 참사를 일으켰던 피의 혁명가.

    악명 높은 삼대거악 중 하나가 몸소 행차한다는 말을 들었으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응애들을 노리는 거대조직의 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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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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