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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96

        

       그렇게 이제순은 감당하기 힘든 빚더미에 앉게 될 처지에 놓였다.

       물론 목숨을 건지게 된 것을 생각해본다면…많은 돈을 쓰게 된다는 것은 어쩌면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제순은 성격에 하자가 있어서 그렇지, 능력은 뛰어난 기자였으니까.

       주물을 사용한 지금은 악명에 가까운 명성과 함께 이름값도 높아져 가고 있었고.

         

       그러니 별일이 없다면 금전적인 문제 정도는 금방 해결할 수 있었으리라.

         

       별일이 없다면 말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별일’이 찾아왔다.

         

       “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후우…. 강력계에서 나왔습니다.”

         

       병원에 형사들이 우르르 찾아온 것이다.

       그것도 단순히 의심이 가는 사람을 조사하러 온 수준이 아니라, 범인이라 확정된 사람을 잡으러 온 것처럼 흉흉한 기세로 말이다.

         

       병원에 찾아온 경찰이 말하길, 이제순이 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었다고 했다.

       자백에 가까운 말까지 녹음본으로 가지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는 범죄 현장을 아이돌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으며, 재판에서 증언하겠다고 답까지 받았단다.

       이 정도면 말이 용의자지 그냥 범인으로 확정된 것이나 다름이 없다.

         

       게다가 그것도 그냥 범죄도 아니다.

       사기나 절도, 강도 같은 범죄를 아득히 넘어선….

       얼마 전 있었던 엽기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의심되는 사람을 잡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 범인이란 사람은 바로 깨어나지도 못하고 있는 사람이었으니….

         

       병원으로선 난감해질 수밖에 없었다.

         

       아니, 이미 난감해졌다.

         

       “안녕하세요. 취재하러 왔습니다만.”

         

       경찰서에서 정보가 새기라도 한 것인지, 경찰을 뒤따라 기자들이 우르르 몰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안녕하세요. 이제순 씨에 대해서 인터뷰하고 싶습니다. 아니, 이제순 씨와 인터뷰하고 싶습니다.”

         

       “이제순 씨가 머무르는 병실로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아니, 면회하고 싶습니다.”

         

       “긴 시간도 필요 없습니다. 10분, 아니 5분이면 됩니다. 이제순 씨와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그렇게 몰려든 기자는 눈이 돌아간 좀비처럼 직원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곤 이제순을 보게 해달라고, 이제순의 사진을 찍게 해달라고, 이제순에 대해서 취재해달라고 떼를 쓰기 시작했다. 그뿐만 아니라 의사나 간호사에게까지 접근해서 이제순에 대한 정보를 뜯어내기 위해 온갖 난리를 쳐대기까지 했다.

         

       “보안요원! 보안요원!”

         

       당연히 이러한 기자들의 행패에 병원은 격노했다.

       그냥 열의가 넘친다, 과열되었다 수준을 넘어서 진료를 방해할 정도로 기자들이 난리를 쳐대니 화를 낼 수밖에.

       병원은 보안요원을 동원해 강제로 기자들을 밖으로 끌어내었고, 그 과정에서 기자는 알 권리니 횡포니 하면서 소리를 질렀지만 병원 측은 개의치 않고 그대로 기자들을 밖으로 밀어버렸다.

         

       이는 기자들의 행동이 ‘행패’라고 불릴 정도로 과열된 것도 있었지만…기자들이 취재하러 온 목적 때문인 것도 있었다.

       좋은 사건을 취재하러 왔거나, 인기 있는 연예인의 가십거리 같은 가벼운 주제를 취재하기 위해 온 것이라면 병원이 이렇게까지 단호하게 그들을 쫓아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차피 초점은 그들에게 맞춰질 것이고, 병원은 그냥 잠시간의 소란만 견디면 되는 것이니까.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살인사건.

       그것도 엽기 살인사건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의 강력 범죄와 얽혀 있다.

       심지어 유력한 용의자가 지금 생사를 헤매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병원은…그 용의자를 살려야만 했다.

         

       왜냐고?

       병원이니까.

       사람을 살리는 곳이었으니까.

         

       문제는, 병원 측에서 당연한 행동을 하는 것임에도 이것을 못마땅하게 볼 사람들이 수두룩하다는 게 문제다.

         

       범죄자를 치료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동안 다른 환자들에게 집중하는 게 좋다느니, 범죄자는 치료받지 않고 죽는 게 싸다느니, 괜히 살려놓으면 감옥에 가서 세금이나 축낼 게 뻔한데 왜 살려야 하는지 모르겠다느니….

         

       범죄자에 대한 적의, 강렬한 적대감을 가진 사람은 세상이 넘쳐난다.

       그리고 그 적의는 단순히 범죄자에게만 향하지 않는다.

       범죄자를 돕는 사람, 범죄자를 살리는 사람들에게도 향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은 병원 측이 억울하게 욕을 처먹는 상황이 되었다는 뜻이기도 했고.

         

       이런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선택은 그리 많지 않다.

       병원에 실려 온 사람이 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이니 그냥 손 놓고 죽는 걸 지켜보겠다고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범죄자라서 살릴 수 없다고 내버려 두거나, 우리 병원에서는 범죄자를 치료할 수 없다며 퇴원시키거나 다른 병원으로 보낸다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할 수도 없고, 할 수 있다고 해도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그렇다면 그 욕을 최소화할 수 있는가?

       있기는 하다.

       협조적으로 나오거나, 기자들과 딜을 하거나, 권력으로 찍어눌러서 기자가 함부로 행동하지 못하도록 하거나….

       그런 방법을 쓴다면야 어려울 건 없었으니까.

         

       그런데 문제는, 이 용의자란 작자가 문제다.

         

       기자.

       그것도 최근에 두각을 드러낸 스타 기자가 용의자였다.

       그런데 이 미친 기자 놈이 뭔 짓을 하고 다녔는지, 취재하겠답시고 병원에 몰려온 기자들의 눈에 광기가 서려 있었다는 게 문제였다.

         

       원한?

       통쾌함?

       집착?

         

       뭔지는 모르겠다.

       정확히는 그들의 감정을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하나같이 이제순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하다못해 이제순의 소지품이라도 가지려고 발버둥을 치는 모습을 본다면….

       우정이나 친한 동료 관계라고 보기보다는, 좀 더 음습하고 음험한…이익이나 불법으로 얽혀 있는 관계가 있다고 보는 것이 옳으리라.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이런 광기를 잠재우기 위해서는 평범한 방법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저렇게 눈이 돌아간 사람에게 신문사와의 관계니, 협조니 하는 단순한 것이 먹힐 것 같은가?

         

       그러니 병원이 택할 방법은 하나.

       그냥 쫓아내는 것이다.

         

       병원 측에서는 협조고 나발이고, 머리가 식고 돌아버린 눈깔이 원래대로 돌아오기 전까지는 기자들에게 그 어떠한 대응도 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씨발,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다고 못 찾을 것 같아?”

         

       “내가 이럴 줄 알고 망원렌즈를 가져왔지….”

         

       강제로 병원 밖으로 내쫓는 것만으로는 기자들의 광기를 잠재울 수 없었다.

       어떤 기자는 망원렌즈로 이제순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병실을 찍었고, 어떤 기자는 드론을 날려서 병원 안을 촬영하려 했다. 심지어 어떤 기자는 병원 외벽을 타고 올라가 이제순이 있는 병실에 침입하려고 시도하기까지 했다.

         

       “…대체 이 미친 기자들이 왜 이러는 건지 아십니까?”

         

       “모르죠….”

         

       단순히 취재라고 보기에는 절박해 보이기까지 한 그들의 태도에 병원 측에서는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살인사건의 용의자라는 것이 특이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이 정도까지 열의를 불태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되었으니까.

         

       게다가 그 용의자라는 사람이 아직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더더욱 그랬다. 의식을 찾지 못한 사람을 찾아가 봐야 사진 몇 장 찍는 것밖에 더 하겠는가?

       뭐 그것도 나름 특종이라면 특종일 수는 있겠지만…. 이렇게까지 절박하게 찍을만한 것은 확실히 아니었다.

       막말로 그냥 기사 적고, 증명사진이나 일상 사진 같은 거 한 장 구해서 올리면 그만 아니겠는가? 그것도 아니면 그냥 멀찍이서 병원 건물을 찍거나, 병원 내부에서 의사나 간호사가 바쁘게 뛰어다니는 모습 찍어도 비슷한 효과가 나올 텐데.

         

       그러니 기자들의 태도에 이상함을 느낄 수밖에.

         

       하지만 이런 기자들의 광기에 가까운 행동은 이유가 있었다.

         

       이 수많은 기자의 눈을 돌아버리게 만든 것.

       충청도에 있는 기자들만 움직이게 한 것이 아닌, 전국에서 기자들을 자발적으로 모이게 만든 이유.

       그들이 불법적인 행동까지 하게 만들며 이제순에게 집착하게 만든 그 이유.

         

       그 이유는 바로, 이제순이 가지고 있는 물건을 빼돌리기 위함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 물건에 있는 자신의 ‘약점’을 어떻게든 없애기 위해서였다.

         

       ‘씨발, 씨발, 씨발! 저 새끼가 가지고 있는 사진을 어떻게든 빼돌려야 하는데…!’

         

       ‘메모리 카드, 메모리 카드! 분명히 메모리 카드를 가지고 다니고 있었어. 거기 내 약점이 들어있다.’

         

       ‘상도덕도 없는 개새끼. 사람을 종처럼 부리고 말이야.’

         

       ‘지금밖에 기회가 없다. 지금이 아니면 저 새끼 소지품을 훔칠 기회가 없어…!’

         

       이제순은 자신의 명예를 드높이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주물에서 얻은 정보를 뒷받침해줄 증거를 얻기 위해서 도청기를 설치하거나 몰래카메라를 설치하는 것 정도는 서슴지 않고 행했고, 때로는 주변인을 매수해서 촬영하게 하기도 했다. 심지어는 증거를 조작하기도 했고, 당사자나 주변인을 협박하는 것도 서슴지 않고 행했다.

         

       그렇게까지 한 이유?

       별거 없다.

       기사를 써야 하니까.

       특종을 쓰고, 자신의 이름값을 높여야 했으니까.

         

       그리고 당연하겠지만 그 과정에서 수많은 원한 관계가 생겼다.

       당사자, 얽혀 있는 사람들, 그 가족들….

       이제순이 기사를 하나 쓸 때마다, 특종을 하나 터뜨릴 때마다 그 숫자는 계속해서 늘어갔다.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신변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하지만 이런 상황에도 이제순은 멈추지 않았다.

       도리어 자신에게 원한을 가진 사람에게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더더욱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했다.

         

       주물을 이용해 그들의 약점을 알아내고, 심부름센터를 고용해서 그들의 약점을 캐고, 필요하다면 깡패들을 동원해서 그들이 위협을 느끼게 만들기도 했다.

         

       그걸로도 안되면?

       직접 나섰다.

         

       요정에게 먹히기 전에도 목적을 위해서는 불법 정도는 얼마든지 저지를 수 있었던 것이 이제순이었다. 그런데 요정에게 반쯤 먹히면서 도덕과 윤리관이 박살이 나기까지 했으니, 사람 하나 다치게 하는 것 정도는 정말 손쉽게 할 수 있었으리라.

         

       그렇게 이제순은 점점 선을 넘었다.

       아득하게.

         

       그리고 그렇게 넘은 선은…동업자들이라고 예외가 될 수 없었다.

         

       ‘동업자 정신은 개나 줘버린 개새끼.’

         

       ‘좋은 마음으로 쓴소리 좀 했다고 동료의 연애 사정에 개입해? 씨발 내가 불륜을 저지르건 말건 뭔 상관인데? 개 같은 새끼…!’

         

       ‘성인이 돈 가지고 내기 좀 하는 거 가지고 말이야…. 정보 뜯어먹고, 개처럼 부리고…. 제기랄.’

         

       ‘어떻게든, 어떻게든 증거를 없애야 해. 찾아서 없애야 내가 저 개새끼한테 벗어날 수 있다.’

         

       ‘죽어라. 아니, 죽든 말든 상관이 없으니까 증거만…. 저 새끼가 가지고 있는 녹취록만…!’

         

       놀랍게도 이제순은 기자들 역시 똑같이 대했다.

       아니, 어찌 보면 더더욱 가혹하게 대했다.

         

       특종을 위해서 한 번 쓰고 버리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동업자들은 한 번 잡은 약점을 이용해서 노예처럼 계속 부려 먹었으니까.

       약점을 휘어잡고 그들을 꼭두각시처럼 부리기도 했고, 그들이 하기에 격이 맞지 않은…힘들고 귀찮으며 보상까지 적은 일을 강요하기도 했다. 어떤 때는 아예 기사를 대신 작성하게 한 뒤 자신의 이름으로 내기도 했고, 좋은 정보가 있으면 그걸 강탈하듯이 가져간 뒤 자신이 먼저 사용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들은 그런 이제순의 횡포에도 제대로 반항하지 못했다.

       왜?

       약점이 잡혀있었으니까.

       터지면 가정이 박살이 나거나, 기자 생활을 그만해야 하거나, 감옥에 가야 할 수도 있는 것들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이들은 이제순이 원하는 대로 휘둘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금.

       기회가 왔다.

         

       이제순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

       빌어먹을 노예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자신들이 찍소리도 못하고 노예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던 ‘물증’을 없앨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의식 불명에, 살인사건의 용의자….’

         

       ‘게다가 중요한 데이터가 담긴 물건은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고 있다고 했지?’

         

       그것을 위해 기자들은 이제순에 대한 소식을 듣자마자 눈이 뒤집혀서 충주로 향했다.

       과태료고 나발이고, 1분이라도 빠르게 이제순이 있는 병원으로 가야 한다는 일념으로 말이다.

         

       너무나 자세한 정보가 이제순에게 약점을 잡힌 기자들의 귀에만 들어갔다는 이상함도, 정보가 비정상적일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들에게 전달되었다는 의문도, 떠올리려고 하면 얼굴도 목소리도 제대로 떠올리지 못하는 의문의 사람에게 정보를 들었다는 사실도, 약을 먹은 것처럼 과열된 분위기인 것도, 조종당하기라도 하듯 집단 광기에 취해 있다는 자각도 하지 못한 채….

         

       그렇게 기자들은, 이제순에게 접근하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 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로운 해, 행복과 행운이 가득하기를!!!!!!!!
    다음화 보기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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