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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97

   공허의 권능으로 가득 차 있던 방 안에 주신의 기운으로 이루어진 영역이 생겨남에 따라 공허의 추종자들이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선다.

   

   저들이 당당하게 서있을 수 있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공허의 권능에 의해 죽음을 극복할 수 있기 때문.

   

   공허가 존재치 않는다면 바닥에 떨어진 그들의 목은 다시금 살갗에 붙을 수 없다.

   

   “…어떻게.”

   

   사도의 눈동자에 당혹이 서린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어찌 저 거짓된 성녀가 주신의 신성을 다룬단 말인가.

   

   인간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가. 주신과 제일 가까운 것처럼 보이나 실상은 제일 먼 존재가. 주신 교회의 타락을 상징하는 이가. 어떻게 주신의 신성을 다룰 수 있단 말이냐.

   

   자신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에 사도의 눈동자가 쉴 새 없이 떨리지만 그렇다 하여 현실의 정경이 바뀌진 않는다.

   

   공허의 악신이 지닌 기운은. 지난 전쟁에서 패배하여 봉인된 자의 기운은. 반역을 시도했으나 이루지 못한 자의 기운은.

   

   주신의 신성 앞에서 무력할 따름이었다.

   

   “어떻게!”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당신이 모시는 자와 제가 믿는 분은 전혀 다른 존재라고.”

   

   페이비가 히죽 웃으며 답을 하는 것과 동시에 그녀의 옆에 도사리던 유덴이 검을 휘두른다.

   

   눈에 담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초속의 검이 추종자들을 위협함에 따라 그들의 발이 더 뒤로 물러선다.

   

   그렇게 마법진으로 향하는 길목이 열리자 조이가 다급히 발을 움직여 색을 되찾아가는 마법진에 손을 가져다 댔다.

   

   페이비가 신성으로 이루어진 영역을 펼친 덕분에 여기를 잠식하고 있던 악신의 기운은 물러났어.

   

   아직 그 영향이 남아있지만 이 정도면 내가 개입하는 데엔 문제가 없을 거야.

   

   조이는 길게 숨을 내쉬면서 대마법사 에르기누스에게 배웠던 내용을 되새겼다.

   

   이 마법진에는 수많은 마법들이 뒤섞여있지만 결국 그 근간이 되는 건 아카데미 부지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을 결집하여 변환시키는 거야.

   

   그러니까 이 마법진의 근원을 찾기 위해서는 그 기능을 하는 것부터 찾아야 해.

   

   결계와의 연결이나 악신의 추종자들에게 흘러들어가고 있는 기운 같은 건 근원에 도달하기만 하면 얼마든 해결할 수 있어.

   

   “크하하!”

   

   한 쪽으로 밀려난 공허의 사도는 무언갈 알아차린 듯 거센 웃음을 흘렸다.

   

   “성녀님! 당신이 모시는 위선자는 자비롭지만 그렇다 하여 유능하진 않은 듯 하군요!”

   “네? 왜 갑자기 짖으시는 거죠?”

   “허세를 부려도 무의미합니다! 지금 이 신성의 영역을 유지하는 것은 신의 권능이 아니라 당신의 능력! 당신의 제한적인 힘에 불과하잖습니까!”

   

   사도가 실핏줄이 벌겋게 선 눈으로 노려보며 소리치자 페이비가 애써 당혹을 감췄다.

   

   눈치가 좋군요.

   

   저 자의 말이 옳습니다.

   

   주신께서는 저에게 자신의 축복으로 이루어진 공간을 만들 능력을 주셨지만 그렇다 하여 그 공간을 이룰 힘까지 내어주시진 않았죠.

   

   이 공간은 어디까지나 저의 신성으로만 이루어진 영역. 지금이야 밝은 빛을 내고 있지만 언젠가는 빛이 흐려질 겁니다.

   

   “부정하셔도 상관없습니다! 거짓을 내뱉는다 하여 당신의 한계가 사라지는 건 아니니!”

   “그래서요?”

   “또 허세를 부리시는 겁니까?”

   “그래서 뭐가 달라지죠? 결국 제 힘이 사라질 때까지 여러분들이 아무것도 못 한다는 사실은 그대로잖습니까. 추악한 패배자 여러분들.”

   

   허나 그렇다 하여 지금의 상황이 달라지는 건 아닙니다. 악신을 추종하는 자들은 기다리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죠.

   

   제 힘이 다하기 전에 조이가 결계에 끼어드는 데 성공하기만 하면 저희가 승리하는 겁니다.

   

   “패배자는 그 쪽이 될 텐데요?”

   “아하하. 재밌는 농담이네요.”

   

   페이비는 자신들이 이길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자신의 친구인 조이의 능력을 믿는 것도 믿는 것이지만.

   

   그 이전에 이 모든 계획을 구성한 것이 자신이 누구보다도 신용하는, 아니 신앙한다 해도 무방한 루시 알른이기에.

   

   “울타리 바깥에서 으르렁대며 부디 당신들의 꿈이 이루어지길 당신들의 추악한 신께 기도하세요.”

   

   페이비는 자신들의 승리를 확신했다.

   

   *

   

   아서는 터질 것 같은 폐의 통증을 참으며 필사적으로 다리를 움직이고 있었다.

   

   저 앞에 자리하고 있는 함정은 진짜인가 아니면 공허가 만들어낸 환각인가.

   

   판별에 실패해선 안 된다. 내가 착각하는 순간 저기에 힘이 부여되어 진실이 될 테니까.

   

   앞서 몇 번이나 판별에 실패했다가 곤욕을 겪은 아서는 달리는 와중에도 집요하게 함정의 모양새를 살폈다.

   

   이상한 부분. 내가 아는 것과 다른 부분. 기묘한 부분.

   

   아! 저기 칼날 부분이 다르군!

   

   가짜…겠지?

   

   에라. 모르겠다! 어차피 이미 돌이키기엔 늦었다! 진짜라면 몸에 구멍 몇 개 더 뚫리고 말지!

   

   눈을 뜬 채로 함정에 돌진한 아서는 다가 올 고통에 대비했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런 일은 없었다.

   

   함정은 아서를 가로막기는커녕 그의 몸에 닿지도 못한 채 흩어졌으니까.

   

   또 한 고비를 넘긴 아서는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빌어먹을. 루시 알른 이 녀석은 어떻게 그 숲의 모든 걸 파악해낸 거지? 비교적 덜 혼잡한 던전에서도 이 꼴인데 숲의 수많은 정보량을 어떻게 감당한 거냐!

   

   그 녀석은 진정 사람이 맞긴 한가?!

   

   아악! 젠장! 또다! 이상한 부분. 이상한 부분. 이상한 부분. 없다! 저건 진짜다! 대처해야 해!

   

   눈 앞에서 쏘아지는 기사의 검격을 막아낸 후 바람 마법으로 눈을 공격해 시야를 뺏고 그 목을 베어낸 아서는 숨을 다스리다가 뒤 편에서 다가오는 어둠을 확인하고는 괴음을 내지르며 다시 발을 움직였다.

   

   “아직 완벽히 밀려난 것은 아니라하지 않았나!”

   “그러니까 이 정도인 거다! 완벽하게 장악 당했다면 이미 죽었을 게야!”

   “돌아버리겠군! 제기랄! 그래서 얼마나 남았나!”

   “2할! 2할만 더 가면 된다!”

   

   꼬마아이의 외침을 들으면서 아서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여태까지 그리도 내달렸는데 아직도 2할이나 남았단 말인가!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군.

   

   폐는 오래 전부터 자신이 터져버릴 것이라는 협박을 하고 있다.

   

   심장이라 하여 다를 것은 없다. 전신으로 피를 보냈다가 빨아들이기를 반복하는 놈은 뼈를 부술 정도로 거세게 뛰고 있다.

   

   팔과 다리의 근육은 녹아버릴 것 같노라며 한계를 어필하고.

   

   머릿속에서는 이만 포기하자는 외침이 수도 없이 전해진다.

   

   그렇지만 괜찮다.

   

   버틸 만 하다.

   

   버틸 수 있다.

   

   사람은 이 정도로 죽지 않는다.

   

   내가 이런 고난에서 죽을 인간이었다면 알른 기사단에서 훈련을 받을 무렵에 뒈졌겠지!

   

   “더 빨리 달려라! 거의 다 따라잡혔다!”

   

   자기는 허공을 날아다닌답시고 편하게 이야기하기는!

   

   이것보다 어떻게 더 빨리 달리란 말이냐!

   

   지금도 마력의 운용과 여러 마법을 뒤섞어가며 속도를 높이고 있거늘!

   

   차라리 차원을 넘으라고 하지 그러나!

   

   아서는 입술을 꾹 깨물면서 허벅지에 힘을 더했다.

   

   자신의 몸을 미는 바람을 더 거세게 했다.

   

   그러나 그보다 그의 뒤를 따라 붙는 어둠이 더 빨랐다.

   

   자신의 발치를 점차 침범하는 어둠을 본 아서는 호흡이 부족해 흐릿한 머리를 필사적으로 굴렸다.

   

   무슨 방법이 없나?! 이 위기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나!?

   

   조이였다면. 형님이었다면. 루시 알른이었다면 이 상황을 어떻게!

   

   “크악!?”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을 구른 아서는 잘 움직여지지 않는 몸을 억지로 일으키려 했다. 그러지 않으면 어찌 될지 알 수 없었기에 필사적으로 바닥을 짚었다.

   

   그리고서 깨달았다. 어둠의 침식이 순간 멈췄다는 것을.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왜 어둠이.

   

   아니다. 그런 걸 생각할 여유는 없어. 무슨 일이 생긴 건지는 모든 일이 끝나고 나서 알아봐도 돼.

   

   비틀거리면서 다시금 몸을 일으킨 아서는 앞으로 고꾸라질 것 같은 몸을 부여잡으며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

   

   루카는 지상에서 진행되는 여러 일들을 귀에 담았다.

   

   그들이 준비해두었던 골렘들이 부서졌다.

   

   검성이 낸 구멍 사이에서 벌어지는 전투는 소강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들의 목표로 하는 마법진의 침식은 성녀와 검성에 의해 잠시나마 가로막혔다.

   

   이 모든 일의 연장선이 무엇인지 추측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알른 영애.”

   “으응?♡ 왜애애애?♡ 추잡한 패배선언이라도 하게?♡”

   “당신. 유덴을 영웅으로 만들 속셈이군요.”

   

   지금 루시 알른은 유덴으로 하여금 현 아카데미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해결하게 만들 생각이다.

   

   루카가 루시를 위해 준비한 것들을 활용해 루카가 증오하던 별을 더 높은 곳으로 올릴 셈이란 말이다.

   

   “우와아♡ 변태 교수한테 그런 눈치가 있었어?♡ 신기하네♡ 내 속살을 보기 위해 집중하느라 아무 생각도 못 하는 줄 알았는데에~♡”

   

   루시의 굽어진 눈가는 루카의 생각이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아하하. 무슨 수를 쓴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알른 영애께서는 제 속내를 완벽하게 파악하고 계시는 군요.

   

   제가 어떤 꿈을 꾸고 있었는지. 제가 무엇 때문에 꿈을 포기했는지. 그리고 또 다른 길을 찾았는지. 지금에 이르러서는 무엇을 목표로 하고 있는지.

   

   이 모든 걸 훤히 바라보고 있으십니다.

   

   이 정도면 주신의 사도가 아니라 예언자라고 불러야 할 지경이군요.

   

   허나.

   

   “허나 아직 계획은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흐응?♡ 멍멍아♡ 또 무슨 개소리를 하려고 그러는 거야?♡”

   “아직 공허의 권능으로 물든 결계는 본래의 색을 되찾지 못했습니다. 파트란 영애께서 개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이는 이 공간이 아직 공허의 악신이 점거하고 있단 소리죠.”

   

   성녀가 기적에 가까운 일을 벌인 것 같긴 하지만 그래봐야 어디까지나 인간의 영역. 그녀의 기적이 신화에 닿을 가능성은 한없이 낫다.

   

   여전히 유리한 건 이 쪽이다.

   

   “그리고 말입니다. 알른 영애. 당신의 앞에 머무는 저희는 분명 당신의 시련이 될 수 있을 듯 합니다만?”

   

   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 한들 지금 이 상황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지금 루시는 그 어떤 때보다도 더한 위험에 처해 있다.

   

   “어찌 생각하십니까?”

   

   루카의 물음을 들은 루시는 거기에 대답하는 대신 자신의 방패로 얼굴을 반쯤 가리면서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무섭다고 해줄까?♡ 못난 어른들이 단체로 귀여운 여자애를 괴롭히려고 한다면서 엉엉 울어줄까?♡ 신발 밑창을 핥으면 우는 연기 정도는 해줄 수 있는데♡”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뒤늦게 집필을 끝마치고 사이트에 방문했더니 노벨피아가 터져있더군요.
굉장히 초조했습니다만 다시 살아나서 다행입니다.

—–

기갑님 70코인 후원 정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더 좋은 작품 보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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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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