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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97

    레니에가 웃음을 터트렸다.

    -아하하! 설마요, 그런 일이 있으셨다고요?

    그에 부끄러움을 참기 어렵다는 듯 얼굴을 붉히며 찌푸리고 있던 루크는 원망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크윽, 생각해보면 이게 다 그대 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니냐!”

    레니에와 함께 아린세이아에서 있었던 사건이 아니었다면, 자신은 이렇게 곤란함을 겪을 이유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루크는 오늘 아침, 집에서 나오기 전의 상황을 떠올리며 눈을 감았다.

    루크는 흉터는 이제 흔적도 남지 않은 목을 거울을 통해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흐음, 역시 멍은 다 나았군.”

    스웨터의 목 부분을 잡아늘려 확인한 결과, 이제 자신의 목은 얼핏 여드름과 비슷한 느낌으로 붉은 빛을 띠는 역린을 제외하면 어떠한 변색도 없이 말끔한 상아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손목의 멍은 어쩌다보니 다이튼이 누명을 써버려서 어찌어찌 넘어갔다고 하지만, 목에 있던 멍은 여전히 들키지 않은 상태였으니까.

    루크는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하아, 만약에 목 부분이 들켰으면 대체 뭐라고 해야 했을지…….”

    생각만 해도 머릿속이 아찔해지는 상황이었다.

    목의 흉터를 예르나가 봤다면 아마 자신이 혼자서 몰래 목이라도 매달아버리려고 했다고 오해를 했을 지도 모르지.

    아무리 그래도 다이튼이 자신의 목을 졸랐을 리는 없으니 말이다.

    만약 그 때가 왔다면, 한동안 마법의 연산력을 포기하고 신성력을 동원하는 한이 있더라도 목의 상처만은 회복을 시켰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무조건 그리했겠지.”

    그것이 아린세이아에서 사랑하는 이의 우려에 의해 목줄에 묶여 이리저리 끌려다니느라 생긴 상처라고 고백을 하느니, 차라리 한동안 떨어진 연산력과 조금 성장한 몸이 불편해지는 편이 덜 부끄러우니까.

    그나저나, 자신의 흉터에 누명을 쓴 다이튼에게는 미안하게 되었다.

    나중에 뭔가 보답이라도 해야 하려나….

    아무튼, 이러면 더이상 다이튼의 커다란 스웨터에 신세를 질 필요는 없다.

    루크는 곧바로 어제부터 하루종일 입고 있었던 스웨터를 벗어던져 버렸다.

    목과 손목을 가리는 옷 중에서 입을만한 게 없어서 입고 있었던 거지, 딱히 다이튼이 입던 옷을 계속 입고 싶은 건 절대로 아니었으니 말이다.

    또, 나가서 가야 할 곳도 있었고 말이다.

    루크는 간단하게 외출준비를 마친 뒤, 조심스레 자신의 방에서 나왔다.

    -……찰칵.

    극도로 절제된 문 열기 동작으로 인해, 집중하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정도로 미세한 소음만이 짧은 복도에 퍼졌다.

    루크가 왜 그렇게 조심스레 나왔는가 하면, 당연히 어제 있었던 그 촌극 때문이다.

    바로, 한밤의 가출 소동.

    루크는 과거의 자신을 책망하며 속으로 외쳤다.

    ‘바보같긴, 애초에 그런 짓을 할 거였으면 들키질 말았어야지!’

    생각해보면 그렇다.

    정말 가족들 몰래 집을 나갈 생각이었다면, 문은 대체 왜 잠그지 않고 열어두었을까?

    백번 양보해서 문을 열어둘 거였다면, 정리한 짐은 바로 보이지 않는 곳에 두었어야했다.

    하지만 자신은그러지 않았고, 오직 테이블에 앉아 누가봐도 수상한 분위기로 ‘마법진 유지보수 매뉴얼’을 작성하는 작업에나 집중하고 있었지.

     

    이래서야 마치 나를 잡아달라고 애원하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마법사인 루크’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모순적인 행동이다.

    자신이 정말 몰래 가출을 하려고 했다면, 그렇게 ‘티나게’ 했을 리가 없으니까.

    그렇다면 가능성은 오직 하나, 자신은 당시 아린세이아의 신성력의 영향을 받아서 일종의 ‘심신미약’상태였다는 것이다.

    자신은 아린세이아에서 레니에와의 오랜 ‘산책’의 영향으로 상당히 감정적인 상태였으며, 이는 감정에 이끌려 무계획적으로 머릿속에 떠오른 행동을 해버리기에 충분한 수준이었다.

    어쩌면 레니에의 무례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감정에 공감하여 납득하게 되어버린 것도 그 신성력의 영향인지도 모르지.

    그만큼 신성력은 자신에게 위험한 힘이었다.

    자신이 조금 더 오래 아린세이아에 머물렀다면, 아마 더 심각한 상태가 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제와서 원인을 찾아봐야 이미 늦었다.

    이미 자신은 되도않는 가출을 하겠다며 괜히 다이튼과 예르나의 시선을 끌었고, 다이튼은 그런 자신에게 공감하기 위해 자신의 오랜 상처를 들춰냈으며, 예르나는 그런 자신을 감싸주며 자신 또한 가족임을 증명해주었다.

    루크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눈물을 흘린 뒤 어쩐지 약간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아무생각 없이 잠자리에 들었던 어제의 자신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덕분에 지금은 잠깐 반나절정도 외출하는 것조차 눈치가 보이는 곤란한 상황이 되어버렸지.’

    그도 그럴게, 어제 가출한다고 짐을 쌌던 아이가 바로 다음날 나갔다가 오겠다고 한다면, 아무래도 믿음이 가겠는가?

    자신같아도 믿지 못한다.

    그렇게되면 아마 외출의 허가가 나지 않을 가능성이 가장 높고, 그 다음으로는 예르나가 자신도 함께 가자며 몸을 일으키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느니 차라리, 먼저 몰래 빠져나간 뒤에 연락을 넣는 게 낫겠지.

    누군가 그랬듯, 단기적인 관점에선 허락보다는 용서가 더 쉬우니까.

    ‘자, 그럼 예르나는…….’

    루크는 방 앞의 계단을 내려가기 전, 난간을 통해 아래쪽을 내려다보며 예르나의 모습이 보이는지 확인했다.

    ‘휴우, 없군. 아마 안방에 있는 모양이야.’

    사실 루크의 방 앞에서 난간으로 살필 수 있는 각도는 저택의 구조상 그리 넓은 정도는 아니나, 부엌과 거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을 확인할 정도는 되었다.

    거실에 없다면 아마도, 안방에서 잠을 자고 있으리라.

    그렇게 거실에 그림자 하나 없는 것을 확인한 루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걸음을 내딛었다.

    -…….

    슬리퍼도 벗고 스타킹만을 신은 루크의 발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 수준으로 작았다.

    걸음에 동반되는 움직임으로 옷감이 마찰하여 나는 소리도, 코트를 입지 않고 개어서 겨드랑이에 끼워두는 것으로 최소화시켰다.

    하지만 그럼에도 어쩔 수 없는 건 역시 있었다.

    바로, 계단 그 자체에서 나는 소음이었다.

    -끼익, 긱.

    평소에는 전혀 귀에 거슬리지 않을 미세한 잡음조차도 지금은 너무나도 큼직하게 들려온다.

    이는 분명 안방에서는 들릴 리 없는 작은 소음이라는 걸 알면서도, 발걸음 하나를 내딛을 때마다 그 소음이 루크에게는 마치 천둥소리와도 같이 느껴졌다.

    그래서 루크는 더더욱 조심스럽게, 마치 암살자라도 되는 것처럼 살금살금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루크는 마침내 현관의 신발장 앞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좋아, 이제 거의 다 왔군….’

    하지만, 루크는 신발을 신지 않고 그냥 신발을 손에 든 채로 현관문을 향해 손을 뻗었다.

    아무래도 신발을 현관에서 신으면 시끄러울 테니까.

    그렇게 루크가 현관문을 열려고 하던 바로 그 순간-

    “루, 너니?”

    “히익!?”

    루크는 예상치 못한 호명에 화들짝 놀라 들고있던 신발조차 떨구고 말았다.

    -툭.

    그 모습에 예르나는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루크의 모습을 훑어본 후 물었다.

    “응? 왜 그렇게 놀라? 혹시, 너…….”

    그에 루크는 당황하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 그게요. 그, 이런 말 하면 믿어주실 지 모르겠지만, 그냥 잠깐 친구를 좀 만나러 나가는 거예요. 가출하는 게 아니고!”

    “친구 누구?”

    예르나의 갑작스럽게 치고들어온 질문. 

    루크는 살짝 당황했지만, 마지못해 천천히 대답했다.

    “…서드요.”

    “서드?”

    예르나는 잠시 생각하는 듯 보였다.

    하긴, 서드가 마냥 이미지가 좋은 친구는 아니다.

    실제로 전에는 서드 때문에 생긴 문제도 있었고.

    그러니 에르나의 안에서 서드의 인식이 바뀌었어도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리라.

    예르나가 물었다.

    “만나서 뭔가 나쁜 짓 하려는 건 아니지?”

    “네, 그냥 확인할 게 있어서 진짜 잠깐만 나갔다가 오는 거예요. 늦어도 저녁 먹기 전에는 돌아올 거고요.”

    이내 예르나는 얼굴에서 힘을 풀어내며 말했다.

    “그래, 나쁜 짓만 안하면 내가 무슨 권리로 널 막겠니? 즐겁게 놀다오렴.”

    너무나 순순히 허락해주는 모습에 루크가 물었다.

    “정말요? 절 따라오거나 하지 않으시고요?”

    “왜? 내가 따라가주길 바라는 거야? 그럼 사양하지 않을게.”

    “아, 아니에요! 엄마도 힘든데, 쉬셔야죠!”

    예르나의 허락에 루크는  떨어트린 신발에 발을 집어넣고는 인사했다.

    “다녀오겠습니다!”

    루크가 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던 예르나도 그에 맞춰 방긋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래, 사랑하는 우리 예쁜 딸. 놀다가도 자주 연락하고.”

    —-

    그렇게 다시 지금으로 돌아와서.

    루크는 못 참겠다는 듯이 마치 오열하는 것처럼 외쳤다.

    “사랑하는 우리 예쁜 딸이라니!?”

    아무리 예르나라 해도 기껏해야 ‘루’라고 하는 애칭으로 부르는 정도였는데, 이번 일 이후에 ‘루크도 역시 가족을 원하는 평범한 어린아이였던 거야’라고 생각하게 된 건지, 아니면 ‘루크가 자신이 가족에 속해있는 존재라는 게 잘 실감이 나지 않는 상태인가봐’라고 생각하게 된 건지, 이번에 예르나는 굳이 루크에게 ‘사랑하는 예쁜 딸’이라는 호칭을 붙여가며 인사를 건넨 것이다.

    문제는, 그걸 받아들이는 루크가 너무나도 괴로웠다는 것이지만.

    결국 외출을 허락해준 건 고맙지만, 이 나이에 사춘기가 온 소녀 취급을 받게 된 루크는 그야말로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아마 이 호칭은 자신이 부르지 말아달라고 부탁해도 그냥 처음 들어보는 ‘가족스러운’ 말에 부끄러워하는 거라고 생각해 당분간은 고쳐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지금 당장 어제로 돌아가서 전부 다시하고 싶어! 내가 무슨 사춘기 온 여자애냐고!”

    만약에 역천의 모래시계가 현실세계의 시간축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상태였다면, 반드시 시간을 그 모든 일이 있기 이전으로 돌렸으리라.

    그리고 그런 루크의 모습을 바라보던 레니에는 마찬가지로 생각했다.

    ‘당신, 미안하지만 지금은 어떻게봐도 사춘기 여자애가 맞아’라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연재가 늦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요 며칠 또 공황증세가 나타나서 글을 못 쓰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지금은 또 나아졌네요.
    그냥 종종 이러는건가봅니다.

    더 심해지면 이번엔 그냥 정신과가서 약을 타먹을까 생각중인데… 자신한테 잘 맞는 약 찾는 것도 힘들대서 걱정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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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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