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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98

       *** ***

       

       포달랍궁의 궁주. 라노사라는 어린 시절 기억을 떠올렸다.

         

       이젠 중년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은 나이가 된 라노사라에게 그때의 기억은 정말로 찰나에 불과했으나 결코 잊을 수 없는 아름답고 빛나는 추억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추억의 주역이 포달랍궁을 찾아왔다.

         

       사라는 호천안을 찬찬히 살폈다. 흑립 아래로 길게 뻗은 흰 수염과 호천안을 둘러싼 절대적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기도는 사라의 기억과 달랐지만 그 머리 위에 씌워진 흑립만큼은 그 추억과 똑같았다.

         

       “어서 오십시오. 호천안 마술사님.”

         

       “….마술사라.”

         

       호천안의 얼굴에 쓴웃음이 걸렸다. 라사에서의 추억이 떠오르는 그 칭호에 가슴 한켠이 뭉클해짐과 동시에 찌르듯 아파왔기 때문이었다.

         

       사라는 말 한 마디로는 형용할 수 없는 깊은 감정이 묻어나오는 호천안의 얼굴을 바라보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뇌검낭인과 정철의 대결은 중원과 먼 서장에서도 알고자 하면 충분히 알 수 있을 유명한 사건이었으니까.

         

       사라는 자신 때문에 새하얗게 물든 백발을 신경쓰지 않고 함께 안아주고 놀아주었던 흑묘의 얼굴이 떠올랐지만 잠시 그 추억은 가슴 한켠으로 묻어두었다.

         

       그녀도 이제는 어린아이가 아니었으니까.

         

       수많은 이별을 경험했고 이별을 경험한 횟수와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성장했다.

         

       그렇기에 사라는 능숙하게 다른 화제를 꺼내들었다.

         

       호천안의 뒤에 숨어 낯을 가리는 작은 아이.

         

       호천안이 라노사라의 시선에 나빈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입을 열었다.

         

       “이 아이는 나빈이라 하오.”

         

       “아, 안녕하세요…나빈입니다.”

         

       머뭇거리는 나빈을 귀엽다는 듯이 웃으며 바라보던 사라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이 기운은…?

         

       “혹시…이 아이는.”

         

       호천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벌써 눈치채셨는가. 그렇소. 이 아이 역시 절맥증을 앓고 있소.”

         

       역시 그런가. 사라는 어쩐지 호천안의 방문 목적을 알 것만 같았다.

         

       “의술에는 조예가 적지 않다고 생각하나 일반적인 의술과 아이에게 펼치는 의술은 다르다고 생각하오. 그렇기에 지식이나 조언을 구하고자 하오.”

         

       “그렇다면 잘 찾아오셨습니다. 절맥증에 대한 자료는 절맥을 앓는 이들을 위한 것. 얼마든지 제공해 드리겠습니다.”

         

       “배려 고맙소.”

         

       그렇게 호천안과 나빈의 포달랍궁 생활이 시작되었다.

         

       *** ***

         

       “이얍!”

         

       슈욱!

         

       매서운 기합성과 그렇지 못한 파공음이 울려퍼졌다. 육합검법의 수련을 시작한 나빈의 목소리와 목검이 낸 소리였다.

         

       이미 무공을 배우겠다는 나빈을 달래며 이곳 서장까지 온 판이다.

         

       그런데 서장의 목적지에 도착해서도 계속해서 기다려 달라고 하기에는 호천안도 면이 서지 않았기에 일단 검술을 가르치기 시작한 것이다.

         

       기초가 조금도 닦이지 않은 엉성하기 그지없는 휘두름이었지만 호천안은 나빈의 검술을 지적하지 않고 지켜보았다.

         

       보통 기초를 닦을 때는 한치의 흐트러짐도 용납하지 않으며 무공을 완고하게 몸에 때려박는 것이 정석이나 호천안은 달리 생각했다.

         

       무공에 지름길은 없다.

         

       이는 무공의 입문부터 적용되는 말이었다.

         

       주입식 교육이 당장에는 훨씬 빠르게 강해질지 모르나 고찰 없이 쌓아올린 무공은 훗날 무학의 이치를 이해할 때가 되었을 때 더욱더 고되게 그 벽을 넘어서야만 했다.

         

       절정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이들에게는 효과가 빠른 주입식 교육이 정답이겠지만 이치를 깨달아 스스로의 기를 다스려야 할 나빈은 천천히 차근차근 쌓아 올리는 것이 답이었다.

         

       호천안은 짜리몽땅한 목검을 열심히 휘두르는 나빈을 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사라가 공개해준 사라의 치료기록을 떠올린 호천안.

         

       ‘뭐, 보자마자 단번에 가닥을 잡으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사라의 치료기록은 어느 정도 각오를 다진 호천안을 당황케 할 정도의 압도적인 분량을 자랑했다.

         

       그 모든 기록을 전부 파악하고 정보를 추출해 낸 뒤 나빈에게 알맞게 가공하기 위해서는 하루이틀 걸릴 일이 아니었다.

         

       ‘한동안은 포달랍궁에서 신세를 져야겠군.’

         

       “나빈아-!”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고 했던가.

         

       두 여인이 다가왔다. 현 궁주인 라노사라와 사라의 딸인 라노라모였다. 올해 약관이라는 라모는 그대로 달려가 나빈을 껴안았다.

         

       “하루동안 잘 지냈니? 언니는 눈을 감아도 우리 예쁜 나빈이 어른거려서 힘들었단다~”

         

       나빈은 라모의 말에 난감하게 웃어 보일 뿐이었다. 고작해야 하루 본 사이일 뿐인데 이렇게 호들갑스러울 필요가 있을까.

         

       특히 예쁘다는 말이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호천안은 곤란한 기색이 가득한 나빈의 얼굴을 보며 허허 웃었다.

         

       여행을 떠난 이래 자신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자각하지 못한 나빈에게 예쁘다는 말은 아무래도 영 낯선 모양이었다.

         

       “대협. 지난밤 강녕하셨습니까.”

         

       “어서 오시게. 궁주.”

         

       “성과는 좀 있으셨습니까?”

         

       “한동안 살펴 보아야 할 듯 하네.”

         

       “원하는 만큼 기거하시지요.”

         

        사라는 그리 말하며 나빈과 거의 한몸이 되어 있는 라모 주변을 맴도는 서공과 미호를 바라보았다.

         

       “다만 영물들이 조금 걱정이군요. 영물들에게는 좁은 공간일 텐데 말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이렇게 인간들과 가까이 생활하는 것은 처음이나…내 각별하게 주의해서 사고가 나지 않도록 하겠소.”

         

       “예. 궁의 수도승들에게 일러 영물들을 자극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두 사람이 포달랍궁에서 생활하기 위한 이런저런 사안을 합의했다. 둘의 기거보다는 주로 영물에 대한 사항이었다.

         

       호천안은 영물들을 바라보며 살짝 근심을 품었다. 인간과 이리 가까이 지내 본 적이 없으니 영물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알 수가 없었으니까.

         

       ‘정 안 되면 포달랍궁을 나와서 라사의 외곽에 자리잡고 출퇴근을 해야 할지 모르겠군.’

         

       최악의 경우 그러한 경우의 수까지 고려한 호천안이었으나.

         

       영물들의 포달랍궁 생활은 호천안의 우려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 ***

       

       누르부치는 차 한잔의 여유를 즐기며 집무실에서 시원하게 발을 뻗었다.

         

       “하이고~ 마술사님 만만세다.”

         

       누르부치는 호천안을 향해 감사 인사를 올렸다.

       

       호천안은 모르겠지만 호천안이 포달랍궁에 들어온 이후 라사의 치안을 관리하는 일은 엄청나게 쉬워졌기 때문이었다.

         

       고원을 누비는 유목민들은 억세기 그지없다. 그런 유목민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분쟁을 조율하며 치안을 유지하는 일은 보통이 아니었다.

         

       그러나 사람을 상대로 그리 억센 유목민들은 괴력난신(怪力亂神)을 몹시도 두려워했다.

         

       사실 이는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시커먼 밤에 천막을 제하면 아무것도 의존할 수 없는 벌판에서 세상을 할퀴며 울부짖는 바람의 괴성. 정체불명의 불빛.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그림자. 그리고 야성과 살의를 느낄 수 있는 눈동자 등을 조우하다보면 마음 속에 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에 대한 근원적인 공포를 지닐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 유목민들에게 라사의 외곽을 둘러 포달랍궁으로 입장한 거대한 영물들은 그야말로 괴력난신의 현현 그 자체였다.

         

       그런 괴력난신들이 질서정연하게 줄지어 포달랍궁으로 입장하는 것을 목도한 유목민들은 포달랍궁의 승려들에게는 신이 따른다 믿게 되었다.

         

       불법에 따라 수행을 하는 수행자들의 집단인 포달랍궁의 승려 입장에야 어떨까 싶었지만 동시에 유목민들을 관리해야 하는 누르부치와 수도승들 입장에서는 하루아침에 유목민들을 제어하는 일이 쉬워졌다.

         

       뿐일까.

         

       뇌명존자가 포달랍궁에 합류했다는 소식에 인근 비적떼들 역시 몸을 사리기 시작했으니 이중으로 일이 줄었다.

         

       그 덕에 이렇게 한가한 시간을 즐길 여유까지 생겼다.

         

       “슬슬 시간이로군.”

         

       누르부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곳 포달랍궁은 유서 깊은 수행자들의 성지다. 현 시점에서야 불교의 영향력 아래 어느 정도 수행 종파가 통일되어 있었지만 포달랍궁이 지어지기 시작한 시점에서는 그야말로 만신전이 따로 없을 정도였다.

         

       포달랍궁에는 지금도 그러한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지금은 무슨 종파의 석탑이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커다란 횟대가 연상되는 석탑도 그 중 하나였다.

         

       그곳에는 이미 많은 수도승들이 모여 있었다.

         

       “오늘도 오셨군요. 라노징부님.”

         

       “마쿤가 자네도.”

         

       모여든 수도승들과 잡담을 나누던 라노징부는 커다란 그림자가 하늘을 가리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쉬이익.

         

       그림자의 정체는 여유롭게 하늘을 유영하는 천응이었다. 석탑을 중심으로 하늘을 한 바퀴 돈 천응은 날개를 펼치며 횃대에 착지했다.

         

       “캬.”

         

       라노징부는 그 모습을 보며 감탄사를 터트렸다. 언제 보아도 남자의 심금을 울리는 생명체요, 하늘의 제왕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풍채였다.

         

       용맹함 그리고 침착함이 깃든 부리부리한 두 눈과 멋들어지게 휘어진 부리. 그저 호리호리하기만 한 다른 새와는 전혀 다른 강건함이 깃든 탄탄한 신체까지.

         

       이 횃대 아닌 석탑에 모여든 수도승들은 모두 그런 천응의 자태를 감상하기 위해서 모여든 이들이었다.

         

       이제 횃대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이 익숙해진 천응은 늘상 그렇듯이 딱 좋은 횃대에 앉아 부리로 깃털을 고르며 휴식을 즐겼다.

         

       부리로 빠진 깃털을 감지한 천응은 깃털을 빼 입에 물었다.

         

       그 순간 모여드는 수도승의 시선들.

         

       일부러 시간을 내서 천응을 구경하러 올 정도로 천응에 푹 빠진 수도승들이다. 당연히 천응의 깃털은 탐나는 기념품이었다.

         

       그리고 천응은 그런 인간들을 살폈다.

         

       오랜 시간 포달랍궁의 상공을 날아다니며 포달랍궁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의 삶을 관찰한 천응은 자신의 깃털이 이 횃대에 모인 인간들에게 가치가 있음을 알았다.

         

       둥지를 짓지도 않은 인간이 대체 왜 큰 새의 깃털이 필요한 것인지까지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천응은 입에 깃털을 물고 인간들을 살폈다. 혈언으로 인해 강제로 조종되는 것이 아니라, 동족의 느낌을 풍기는 호천안을 따라 비교적 여행하고 있는 천응은 자의적으로 인간을 탐구하며 제법 인간을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천응의 시선이 라노징부에게 멈추었다. 꽤 자주 보이는 늙은 인간.

         

       깃털을 구하기 위해서 이곳에 오는 것일까.

         

       늙은 몸으로도 부지런히 사냥(?)을 한다 여긴 천응은 자신의 깃털을 라노징부 앞에 떨구었다.

         

       “오오….!”

         

       라노징부가 자신 앞에 놓인 깃털에 감격했다. 영물이 직접 깃털을 전해 주다니! 꾸준히 먹을 것을 주었던 야생의 고양이가 정수리를 비벼 올 때와 동급의 감동이 라노징부의 온몸을 휘감았다.

         

       “고, 고맙소…! 천응!”

         

       열심히 살아라 늙은 인간.

         

       천응은 그리 생각하며 휴식을 마치고 날아올랐다.

         

       자신이 동정표로 깃털을 얻은 것인지 알 리 없는 라노징부와 천응의 생각을 알았다면 절대 부러워하지 않았을 수도승들의 시선. 그리고 라노징부가 여유를 즐기기 위해 석탑을 찾았다는 사실을 알 리 없는 천응.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음에도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고 있는 어느 석탑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죄송합니다.

    변명의 여지도 없이 너무 오래 쉬어버린 바….!

    열심히 써서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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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n Outcast the Martial Arts Masters are Obsessed With

I Became an Outcast the Martial Arts Masters are Obsessed With

무협게임 속 고수들이 집착하는 낭인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Ho Cheon-an, a second-rate warrior in the martial arts game [Murim Cheonha].

To survive, I had no choice but to give enlightenment.

Martial arts masters began to obsess over me.

In Murim Cheonha, where fame means difficulty, getting attention meant death.

Please, just go away.

Please, let me 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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