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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98

    <498 – 도적길드 vs 혁명군(2)>

     

    길드본부에 별난 손님이 찾아왔다는 소문을 들은 건 얼마 전의 일이었다.

     

    “대륙십대도적의 필두인 디스트로이어가 어린애를 도적본부에 데려왔다고?”

    “그렇습니다. 틀림없이 아카데미에서 제자를…”

    “겁간하려고 데려오다니, 정말 엄청나게 도적스러운 녀석이군!”

    “…당신도 일단은 도적이시거든요?”

     

    슈 츄러스가 어이없다는 얼굴로 핀잔을 날렸다.

     

    “농담 좀 해봤다. 삼대거악의 후계자를 데려왔다는 말에 긴장이 안 되겠냐고.”

    “<잠금도둑>처럼 거창한 이름으로 불리시는 분이 이 정도로 좀스럽게 굴면 어떡해요?”

     

    자물쇠 해제에 가장 특화된 도둑만이 얻을 수 있는 잠금도둑의 칭호이지만 이번 대의 잠금도둑은 다른 때와 달리 전투력마저 출중했다.

    차원의 경계를 <비행>하며 물리적 잠금장치는 기본으로 무시하고 물체를 차원 저편으로 가져와 안전하게 꺼낼 수 있으니.

    심지어 생명도 예외가 아니다.

    원한다면 손쉽게 구출하고 손쉽게 죽일 수 있다.

    그런데도 그는 기억하고 있다.

     

    “웃기지 마라. 삼대거악 녀석들에 비하면 이딴 건 아무것도 아니야.”

     

    재단의 이사장 본인도 아니었다.

    고작 장학생이었다.

     

    “꼬마야. 잠깐 시간 좀 괜찮니?”

    “물론이죠! 실은 스킬북 지금 까도 멀쩡할 것 같은데 교수님이 하도 극성이라 농땡이 치고 있었는걸요. 기다리면 신규 이벤트가 넝쿨 채 등장할 예감이더라니 예감이 적중해서 너무 신나요!”

    “잠깐 이야기 좀 들려주마.”

     

    그런 인물이 펼친 금속 조작 하나에 건물이 통째로 붕괴하고 한순간에 일가족이 죽었다.

    아버지의 친구이자 전대 <잠금도둑>이었던 스승님은 건물을 뚫고 뛰쳐나와 달려들었다.

     

    “그의 잠금해제는 <자기수양>마저 해제할 수 있었지. 열쇠형태의 영역을 상대의 영역에 꽂기만 해도 일시적으로 일정시간 동안의 수련치를 무효화시켰다.”

    “헉. 플레이어의 천적이다!!”

    “플레이어…?”

    “흡. 아무것도 아니에요!”

    “대단한 기술이었지. 살상을 싫어하던 스승님다운 평화로운 운용법이었고. 그래서 스승님은 죽었다. 그 남자는 1년의 시간을 빼앗기고도 스승님을 가볍게 죽일 정도로 강했으니까.”

    “휴. 다행이다! 너무 무서웠어요.”

    “흐흐. 재단의 후계자답게 곧바로 재단의 인물에게 감정이입을 한 건가? 아무튼 그때의 결전을 두 눈으로 목도했던 제자는 디스트로이어의 손에 거두어졌고, 그의 조언을 통해 힘을 길러 <잠금도둑>의 칭호를 되찾았다. 그리고 네 눈앞에 지금 서 있지.”

    “사인은 안 해주셔도 되는데! 반대로 제가 해드릴까요? 종이가 없어도 티셔츠에 해드릴 수 있는데.”

     

    친절함의 감정을 빌린 능욕.

    어린 것의 당돌한 도발을 그는 피하지 않았다.

     

    “재단에 원한을 품은 고수의 앞에서 보이는 여유로움. 그 여유에 걸맞은 실력이 있는지 잠시 시험해주지. 참고로 교수들이 동시에 자리를 비운 이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칠 생각은 없다. 죽을 각오로 저항해보아라.”

     

    정면에서부터 차원의 경계를 비행하며 한 걸음 또 한 걸음 나아가는 잠금도둑.

    목숨을 거둘 생각까지는 없었다.

    그는 오크노디가 모든 공격이 통하지 않아 절망하는 모습이 보고 싶었다.

     

    ‘이건 디스트로이어가 내게 양보해준 기회. 죽일 순 없어도 분풀이 정도는 가능하지.’

     

    마음을 꺾어주마.

    무슨 수를 써서도 이길 수 없다는 절망을 새겨주마.

    길드본부가 습격당해 길드를 위기로부터 구하기 전까지 본부를 떠나지 않겠다는 맹약.

    그 맹약을 지켜야 할 이유가 재단의 후계자라는 사실에 느낀 수치와 분노는 얼마나 컸던가.

     

    ‘그 수치와 분노의 몫까지 능욕해주…’

     

    그런데 충격이 전해졌다.

    1분. 아니 10초도 지나지 않아서.

     

    “영체화 타입이시구나! 영체화는 중첩위상좌표를 전부 타격하는 신성계열 주문이나 하나로 압축시키는 차원계열 주문에 약해요.”

    “너, 뭐냐… 설마 디스트로이어가 알려준 거냐? 내 능력을?”

    “아니요? 그냥 기본상식인데.”

     

    기본… 상식?

    같은 대륙십대도적이 아니면 누구 하나 그에게 변변찮은 반격 한번 성공시키지 못했다.

    마계 극오지를 무대로 활약하던 도적길드 내에서도 그랬는데.

     

    “재단의 상식이냐. 아카데미의 상식이냐.”

     

    그에게는 중대한 문제였다.

    복수를 시작하기도 전부터 재단은 자신의 능력에 유효한 반격 수단을 갖추고 있다면, 목표에게 닿기도 전에 꺾일지도 모른다.

     

    “제 상식이죠!”

    “뭐…?”

    “이런 고등지식을 뉴비들한테 누가 알려주겠어요? 다 몸으로 배우고 그러지.”

     

    재단의 후계자라 소문 난 아이에게 재단에게 당한 참사의 앙갚음을 해주겠다고.

    마음속에 절망을 심어주리라고 다짐했던 자신이 추하게 느껴질 정도로 명랑한 대답이었다.

     

    “고작 11살인 주제에… 몸으로 겪었다고? 차원을 넘나드는 유체화 계열의 능력에의 대항법을?”

    “당연하죠. 모르면 죽잖아요?”

    “…!”

     

    와이히엠하이 재단.

    위험한 녀석들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고작 11살 어린아이에게도 이 정도로 가혹한 조직이었는가!

    적의에 좁아진 시야가 비로소 넓어졌다.

    그의 눈앞에 있는 존재는 복수해야 마땅한 재단의 후계자가 아니었다.

    재단의 학대에 가까운 훈련에 목숨의 위협을 받으며 꾸역꾸역 살아남은 가엾은 아이에 불과했다.

     

    “잠깐. 너 방금 뉴비‘들’이라고 하지 않았냐? 뉴비가 뭔진 몰라도 맥락상 너 같은 아이들을 말하는 용어일 텐데.”

    “맞아요! 이해력이 좋으시구나~”

    “재단에는 너같은 아이가 많은 건가?”

    “음~ 글쎄요? 허접자쿠 생각하면 많지는 않을 것 같기도 한데… 아, 이쪽으로 보면 안 되는구나.”

    “이쪽?”

    “다른 의미의 뉴비들, ‘저쪽’의 뉴비들은요. 여기까지 오기도 전에 폐사해요. 운이 없었다고. 그래서 막 죽어나가요.”

    “!!!”

    “저랑 같은 시기에 입문한 뉴비는 다 죽었을걸요?”

     

    확정이다.

    이 아이는 평범하게 불쌍한 아이도 아니었다.

    말도 안 되게 엄청나게 불쌍한 아이였다!

     

    “힘들게 살아남은 아이를 멋대로 시험해서 진심으로 미안했다아아아!!”

     

    능욕이고 나발이고 다 때려치우고 넙죽 엎드려서 사과의 절부터 했다.

     

    “아앗?! 갑자기 절을 당하면 그렌절로 받아치는 수밖에 없잖아요!!”

     

    그러자 엎드리다 못해 물구나무를 서면서 사과하기 시작하는 오크노디!

    급한 동작에 질 수 없다고 마주 물구나무서기를 하며 영문 모를 사과배틀을 하고 있자니, 뒤늦게 접촉을 눈치챈 슈 츄러스가 허겁지겁 달려왔다.

     

    “지금 애 상대로 무슨 짓을 하시는 거죠?!”

    “오, 오해다. 난 그저 사과를…”

    “웃옷이 흘러내려서 여자아이의 배꼽이 다 드러나도록 파렴치한 자세를 취하게 만들다니!!”

     

    아닛, 단순한 사과표현인줄 알았던 동작에 그런 위험성이 존재했다니?!

    재빨리 사과를 받지 않으면 상대를 사회적으로 죽여버리는 재단의 무시무시한 사과 기술에 진심으로 두려움마저 느꼈다.

     

     

    * * *

     

     

    “바보네.”

     

    거울에 비친 잠금도둑의 현재와 과거의 모습을 엿보며 <거울도둑>은 일축했다.

    사회적 말살을 시도조차 할 수 없도록 신체의 통제권을 모두 빼앗거나 모습을 가려버리면 변태 의혹에 휩싸이거나 곤란한 일을 겪지도 않을 텐데.

     

    “그리고 영악해.”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꾸중 받는 잠금도둑을 바라보다가 먹을 걸 줘서 좋다고 활짝 웃는 밝은 얼굴로 더한 꼽을 주는 재단의 후계자, 오크노디.

    그녀는 필요 최저한의 실력만 보여주고 상대의 사회적 입지를 위협하는 방식으로 대결을 중단시켰다.

     

    “인간의 감정에 능숙하고 자신이 타인에게 어떻게 보일지를 완벽하게 이용하고 있어.”

     

    관찰, 이해, 연기.

    초일류의 도적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재주다.

    괜히 디스트로이어가 제자로 삼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알겠다.

    그럼 저 아이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

    제 살길은 알아서 찾을 아이니까.

    그러니 수문으로의 침입을 저지하는 역할을 맡은 자신은 이곳에만 집중하면 된다.

     

    “어서 수문을 개방하지 못할까! 여기 성주님의 직인이 보이지 않느냐?”

    “수문관리인 녀석들, 어디서 뒷돈을 받아먹은 거냐. 지하수로에 터를 잡고 성주 모르게 인육객잔을 운영하는 어둠의 조직이냐?”

    “오해입니다! 저흰 그런 끔찍한 조직과 아무런 연관도 없습니다!”

    “오해받기 싫으면 문을 열라고!”

     

    도적길드 출신 수문관리인은 버틸 만큼 버텼다.

    거울도둑은 수문관리인에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눈 감아. 거울을 연다.

    “!!”

     

    깜짝 놀란 수문관리인이 눈을 감기 무섭게 수면 위로 환한 빛이 반사되었다.

     

    “윽, 뭐야.”

    “물살에 햇빛이 비치는 건가?”

    “제기랄, 눈이 부셔서 앞을 볼 수도 없잖아.”

    “누가 어떻게 좀 해봐.”

    “잠깐만요! 수면에서 마력반응이 감지되고 있습니다. 그것도 점점 더 강하게, 엄청나게 빠르게…!”

     

    마법사의 말에 수문 앞에 모여든 혁명군 세력 모두의 얼굴에 공포심이 떠올랐다.

     

    섬광.

    그리고 폭음.

     

    주변의 소음이 잦아들자 눈을 뜬 수문관리인은 자신의 팔을 붙잡은 누군가의 손을 발견했다.

    손의 주인은 없었다.

    그의 앞에 몰려들었던 혁명군 세력은 한순간에 깨끗하게 증발했다.

     

    “사, 살았나…?”

    “아니요, 죽었어요.”

     

    따악━.

    손의 관절을 튕기는 소리와 함께 안도하던 수문관리인의 몸에 불이 붙었다.

     

    “미끼를 문 물고기는 낚아 올려야죠. 지금부터 혁명가님의 행차를 방해할 대륙십대도적 토벌전을 개시합니다.”

     

    재단의 이중스파이이자 혁명가의 스파이, 웨스커.

    그녀의 선언에 구경을 위해 모여든 인파 사이에서 적색마탑 작렬학파 마법사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돈을 위해 힘을 판 그들에게 망설임은 없었다.

     

    “무대는 카넬레 시. 인질은 시민 전원. 필요하다면 도시 하나를 초토화시켜서라도 도적길드 소속 대륙십대도적은 전부 사살합니다!”

     

    도시를 불태울 전쟁이 시작됐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같은기수 친구들이 모두 죽은 엄청나게 불쌍한 아이보다 더 불쌍한 일 열심히 하고 불타죽은 수문관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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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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