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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98

    과거, 한 인형점이 있었다.

    메를린 인형점.

    특유의 느낌이 있는 고풍스러운 인테리어로 오랜 노하우를 과시하는 듯한 이 낡고 안락한 인형점은, 언제나 만족스러운 품질의 제품을 판매하여 한때 잘 사는 집의 부모들이 종종 자녀에게 인형을 선물하기 위해 들르기도 할 정도로 명성이 알려져있던 인형점이었다.

    하지만 그 이면엔, 아는 사람만 아는 전혀 다른 명성도 함께 존재했다.

    사실 ‘인형점’이라는 것은 미끼. 

    실제로는 ‘그’의 사주를 받아 거슬리는 인물들을 제거하고 사건을 은밀히 덮어버리는 비밀스러운 조직이었다.

    ‘메를린의 인형극이 시작되었다’라는 소문이 거리에 퍼지기 시작할 때, 그 뜻을 아는 이들은 모두 자신의 역할이 인형극의 희생자가 되지 않기를 기도하며 낮으로 도망친다.

    밤의 그림자 속, 실과 바늘로 이뤄진 함정을 드리운 채 먹잇감을 노리는 거미를 피해서.

    그러나 ‘메를린 인형점’이 폐점한 지금은, 그 이야기도 거리의 그저그런 괴담중 하나가 되었을 뿐이다.

    장난감 거리 이면, 간판조차 달지 않은 초라한 인형점.

    루크는 그 인형점의 문고리를 잡아돌렸다.

    -철컥.

    인형점에 모습을 드러낸 루크의 모습을 보며 그들은 각자 하던 일을 멈추고 한마디씩 건넸다.

    “…왔군.”

    “드디어 왔구나.”

    “오셨습니까. 스승님.”

    인형점 안에는 총 세명의 인물이 있었다.

    메를린의 인형점의 주인이자, 수많은 살수들을 양성해낸 베테랑 암살자, 메를린.

    그리고 그 인형점에서 훈련받은 살수이자, 한때 거리괴담의 일부였던 서드.

    루체스트의 수석 연구원이자 차세대 줄기세포, 도플갱어 프로젝트의 총 책임자 사이먼.

    그렇게 한때 엄청난 명성을 떨치던 이들은 현재…….

    인형의 눈을 붙이고, 송장을 작성하고, 인형을 택배상자에 담아 포장하는 지극히 평범한 일을 하고 있었다.

    “음.”

    사실, 그들이 이런 단순한 노동을 아무 이유없이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들도 다 이유가 있어서 이러고 있는 것이니까.

    루크는 전시회장에서 사이먼이 사업 설명회를 할 당시, ‘참가자명부’를 발견했었다.

    분명 어딘가에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에 루크는 그곳에 쓰여진 이름을 모두 기억했고, 이후 레니에가 그 명부를 기반으로 분석하여 루체스트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많은 이들을 알아냈다.

    명부에 쓰여진 이름이 가명이거나 실제 이름이더라도 신원이 불분명한 이들도 분명 많았지만, 레니에 특유의 정보처리능력으로 몇차례 필터링을 거치고 휴대전화의 통화내용과 통신주파수, 자동차의 위치기록, 그들 명의로 작성된 토지정보와 일치하지 않는 정보등을 토대로 숨겨진 루체스트 연구시설의 위치를 대략 알아낼 수 있었다.

    이제 이 장소에 쓰여진 곳을 조사하면, 분명 루체스트와 ‘그’에 관한 많은 정보를 얻어낼 수 있으리라.

    그러나 문제는, 탐색해야 할 장소의 수가 너무 많았다는 것.

    국가기관의 방어벽도 손쉽게 뚫을 수 있는 레니에라고해도 해킹만으로는 획득할 수 없는 정보도 있는 법이다.

    가령,종이 위에 글로 쓰여진 정보는 레니에가 컴퓨터의 능력으로 아무리 날고 기어도 들춰볼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니까.

    결국 부족한 정보의 조각을 회수하기 위해서는, 장소에 직접 가서 확인을 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가능성을 근거로 최소한으로 추려내도 20곳. 

    정보를 더욱 확실하게 알아보기 위해서는 최대 60곳의 다른 장소에 직접 가서 탐색을 해야한다.

    그러나 현재 예르나가 임신까지 해버린 지금, 루크가 직접 가용할 수 있는 인원은 그리 많지 않다.

    자신과 서드, 추가로 메를린에 다이튼까지 끌어들여도 고작 4명.

    텔레포트를 써서 탐색을 가속화한다고 해도 텔레포트는 1일에 1회가 최대니 하루에 1곳의 위치를 더 탐색할 수 있게되는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자신의 ‘운’에 맡기고 20곳 중 아무곳이나 골라서 그곳에 결정적인 단서가 있기를 바라는 것도 문제가 있다.

    자신은 그동안 ‘운명’에 의해 묘하게 형편좋게 흘러가는 일이 많았지만, 어느날을 기점으로는 그런 운명적인 보호가 작동하지 않게 되어버린 듯했다.

    예전이라면 있을 수 없는 불행이 연달아 닥치는 경우도 있었고, 시험삼아 다이튼과 주사위놀이를 해 보아도 종종 패배하곤 했으니까.

    만에하나 상대가 자신의 ‘운명’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수단이 있는 거라면, ‘운’에 맡기는 것은 너무나도 불안하다. 

    이제야 어떻게든 겨우 루체스트를 파고들 실마리를 잡았건만, 운이 나빠서 놓치게 된다면 그건 뼈아픈 실수가 아닌가?

    하지만, 여기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었다.

    바로, 자신의 ‘인형’을 택배로 보내는 것이다.

    ‘택배’는 게이트를 이용한 텔레포트보다 훨씬 저렴한 데다, 많은 수를 ‘동시에’ 옮길 수 있는 효율적인 수단이니까.

    물론 ‘비밀연구소’에 뜬금없이 택배로 인형이 도착한다면 굉장히 의심스럽겠지만, 딱히 연구소에 직접 인형을 보낼 필요는 없다.

    어차피 자신의 인형들은 스스로 움직일 수 있으니까 적당한 거리의 민가에 선물상자인 것처럼 포장해 보내두기만 하면, 그 뒤에는 인형들이 각자 움직여서 임무지역에 도착하면 끝.

    그러면 민가에서도 ‘인형점’에서 ‘인형’을 택배로 보내는 건 이상한 것도 아니니 굳이 이상하게 보지 않을것이고, 혹시나 이상하게 여겨 연락을 해오더라도 그때는 오배송을 사유로 들며 정보를 취득한 인형이 이후 스스로를 재포장해 귀환하면 될 일이다.

    다만, 어떤 물건을 택배로 부치기 위해선 안전상으로 ‘규정된 일정 수치 이하의 마나’밖에 물건에 포함시킬 수 없기 때문에 ‘인형’ 역시 평범한 마도기기 수준의 마력밖에는 포함시키지 못하겠지만…. 

    그 부분은 이후 장소에 도착하여 현지에서 조달하는 방식으로 하면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나저나, 어제 다이튼에게 ‘가족’에 대해 한소리를 들었기 때문일까? 

    다들 이러고 있는 모습을 보니 왠지 가업으로 온가족이 함께 인형을 제작하는 인형점같은 느낌이 든다.

    사실 따지고 보면 아주 틀린 말도 아니기는 했지만.

    그렇게 루크는 코트를 벗던 손길도 멈춘 채 잠시 생각에 잠겼다.

    가족이라.

    돌연 루크의 움직임이 멈추자 이상함을 느낀 이들이 묻는다.

    “저, 스승님? 작업에 뭔가 문제라도?”

    그렇게 잠깐 다른 생각을 하던 루크는 뒤늦게 정신을 차리곤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 아닐세. 잠깐 다른 생각을 좀. 진척은 얼마나 됐나?”

    서드가 곧장 대답했다.

    “여기서 할 수 있는 작업은 거의 다 끝난 상태입니다. 이제 검수만 끝내면 되겠지요.”

    “음, 좋아. 훌륭하다.”

    그렇게 포장된 상자들을 바라보던 루크는 잠시 후, 서드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흠칫 놀라며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나저나 서드, 눈이 퀭하구나. 이걸 어쩐다. 혹시 나 때문에 잠도 안 자고 이걸 한 건 아니겠지?”

    “아뇨. 스승님. 이런 말씀 드리긴 뭐하지만, 제 눈은 원래 좀 퀭합니다…… 딱히 잠을 자지 않아서 퀭해진 것은 아닐겁니다.”

    “아, 그래…? 그래도 눈은 잘 관리해야돼. 알겠지?”

    “…네, 명심하겠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메를린은 서드의 마치 부모에게 잔소리라도 듣는 것 같은 반응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아무튼, 아마 오늘 점심 중에 택배기사가 오기 전까진 완료가 될 테니, 걱정할 것 없다.”

    “…흠. 그런가. 빠르군. 부족한 인형을 만들 시간도 부족했을 텐데.”

     

    아린세이아에 인형이 60개쯤 되기는 하지만, 항상 어느 정도 인력으로 관리가 필요한 ‘레니에’를 두고 아린세이아의 인형을 전부 꺼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따라서 부족한 개수는 메를린이 그때그때 만들어 내야했는데, 그런 문제를 안고도 예상보다 반나절은 더 빨리 완성했다는 것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다들 도와주었으니까.”

    하지만, 전과 달리 혼자가 아니니 그다지 어려운 작업도 아니었다.

    메를린은 사이먼이 앉아있는 방향을 턱 끝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사이먼이 의외로 손재주가 좋더군.”

    그에 루크의 시선이 자연스레 사이먼을 향했다.

    “그래? 역시 책상물림이라 그런 쪽으로는 재능이 있는 걸까?”

    루크의 관통하는 듯한 시선을 받은 사이먼은 흠칫 몸을 떨더니, 이내 루크와 눈을 마주하며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보기도 했고, 전해 듣기도 했지만…. 역시 확신하기 어렵군, 정말로 너같은 작은 소녀가 ‘그’와 대적할 수단을 가졌다는 사실이.”

    그에 루크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뭐, 그건 그대 맘대로 생각하게. 난 그대의 인정을 받기 위해 노력할 생각은 없으니까. 하지만 좋으나 싫으나, 우리는 이제 한 배를 탄 사이라는 사실을 잊지는 말게나.”

    그런 루크의 반응에 사이먼은 콧수염을 매만지며 그동안 루크를 봐온 모든 이들이 머릿속으로 한번쯤을 떠올리는 생각, ‘이 애, 정말로 몇 살이지?’하는 고민을 새삼 다시하게 됐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번화를 쓰면서 저도 언젠간 예약판매로 루크의 아크릴스탠드를 만들어서 보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본편을 끝내고 외전 슬슬 연재할 때 하고싶은거라 언제가 될 진 모르겠지만요…….
    다음화 보기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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