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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98

       눈을 감고 집중한다고 하여 세상과 단절되는 것이 아니다.

         

       열린 귀와 코가.

         

       “으윽…!”

         

       민감한 피부가.

         

       털썩!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눈으로 본 것처럼 생생하게 머릿속에 그려준다.

         

       동료들이 쓰러지고 있다.

         

       처음에는 혈수마녀가, 그다음에는 신예화가.

         

       빠득!

         

       이를 악물고서 참는다.

         

       분노하되 기의 흐름은 일정하게 유지한다.

         

       괜찮다.

         

       제법 큰 상처를 입었지만, 당장 죽을 부상은 아니다.

         

       위기를 해결한 뒤 그녀들을 치료할 수만 있다면 어떤 문제도 생기지 않을 거다.

         

       ‘지금 눈을 뜨면 모든 게 물거품이 된다.’

         

       그녀들이 무리해서 시간을 벌어주고, 칼에 찔려 쓰러지기까지 한 이유가 무엇인가.

         

       오직 준비 중인 이 하나의 초식을 위해서다.

         

       그런데 지금 눈을 뜨면 그녀들의 헌신이 의미 없는 몸짓으로 변하고 만다.

         

       이를 막기 위해서라도 자신은 더욱 집중해야만 한다.

         

       한층 더 깊게 침잠하는 감각.

         

       그사이에 유화연과 송희연이 차례로 쓰러진다.

         

       ‘조금만, 조금만 더….’

         

       그래도 집중력은 끊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깊게 가라앉는다.

         

       그녀들 또한 괜찮다.

         

       ‘어떻게든 이 위기를 벗어나기만 하면…!’

         

       이를 악문 채 이어 나가는 집중.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또한 한계에 봉착하고 말았다.

         

       말소리가 들려온다.

         

       “대체 어째서 이런 짓을…!”

       “그대에게 이해를 바라지는 않는다. 어차피 그대가 있을 자리 따위는 없으니.”

         

       살기가 느껴진다.

         

       설수연을 향한 천마의 진득한 살기가.

         

       이는 경고였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녀만큼은 숨통을 끊어놓고 말겠다는.

         

       눈을 뜨고 막아서지 않으면 그녀는 죽는다.

         

       그리고 그녀가 죽으면 다른 여인들 또한 죽는다.

         

       그녀들의 생환은 어디까지나 설수연의 성력에 기반한 것.

         

       그러니 그녀만큼은 반드시 살려야만 했다.

         

       천마 또한 이를 알기에 그녀를 죽이고자 하는 것일 터.

         

       ‘빌어먹을.’

         

       안다.

         

       지금 포기하면 그녀들의 헌신과 희생이 물거품이 된다는 것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그녀들을 잃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

         

       간신히 그러모으던 기를 흐트린 백우진이 검을 들어 올린 천마를 향해 나직이 읊조린다.

         

       “거기까지만 해.”

         

       그러자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지던 그녀의 움직임이 우뚝 멈춰 선다.

         

       동시에 짙게 미소 짓는다.

         

       “제법 버티기는 했다만…, 아무래도 여기까진 무리였나 보군.”

         

       그 짓궂은 말에 짜증 섞인 말투로 대꾸하는 백우진.

         

       “내가 동료를 무엇보다 아낀다는 걸 알면서 뭘 물어.”

       “후후, 그랬지. 그것이 무결한 네게 존재하는 유일한 약점이었어.”

       “무결하기는 무슨….”

         

       오히려 그는 흠결투성이였다.

         

       용사로서 이를 내비치지 않기 위해 속으로 꼭꼭 숨겨 두었을 뿐.

         

       그렇기에 더욱 괘씸했다.

         

       그 모든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 굳이 무결이라는 단어를 꺼내며 자신을 도발하는 그녀가 몹시도 얄밉게 보인다.

         

       “설 소저.”

       “…네, 용사님.”

       “치료 부탁할게.”

         

       설수연의 시선이 백우진과 땅에 쓰러진 여인들을 바삐 오간다.

         

       그를 도와야 한다.

         

       그러나 쓰러진 여인들의 치료 또한 시급하기는 마찬가지.

         

       고민하던 그녀는 이내 결단을 내렸다.

         

       “알겠어요.”

         

       그의 뜻에 따르기로.

         

       천마로부터 등을 돌려 쓰러진 여인들에게 다가가 성력을 발하는 설수연.

         

       빠르게 상처를 회복해 나가는 그녀들을 바라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 뒤, 천마를 향해 걸음을 옮긴다.

         

       서로의 얼굴이 선명하게 들여다보이는 거리.

         

       그곳에 서서 백우진은 쥐고 있던 검을 내던지고 두 팔을 들어 올렸다.

         

       “네가 이겼어.”

         

       더 이상의 싸움은 무의미하다.

         

       “말해 봐.”

       “음?”

       “모두가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제 집중해야 할 부분은 어떻게 모두가 살아남을 수 있는가.

         

       죽이려고 하면 얼마든 죽일 수 있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빨리 치료하면 살 수 있는 선에서 그쳤다.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것 아닌가?”

         

       그녀의 말대로 모두가 사는 건 백우진의 지극히 과한 욕심이었다.

         

       강자의 앞에서 쓰러진 주제에 모두를 살리고 싶다니.

         

       이보다 더 우스운 말은 또 없을 터.

         

       그러나 백우진은 이를 단 한 번도 쉽게 생각한 적이 없다.

         

       모두를 살리겠다는 궁리 속에서 그는 늘 발전해 왔다.

         

       한 사람이라도 더 살렸고,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가능케 만들었다.

         

       물론 손에 아무것도 쥐지 않고서 배짱만 부리는 건 또 아니다.

         

       “필요하면 내 목이나 가져가.”

         

       늘 그러한 상황에서 백우진은 제 목숨을 담보 삼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

         

       “네가 죽으면 모든 게 끝일 텐데.”

       “여기 있는 사람 중 누구 하나 죽어도 끝인 건 마찬가지야.”

         

       모두를 위해 싸우지 않는다.

         

       애초에 그것은 백우진에게 불가능한 일이었다.

         

       생면부지인 남을 위해 목숨을 걸고 가시밭길을 걷다니.

         

       자신은 그럴 만한 깜냥도 아니고, 그리 될 수 있다고 해도 되고 싶지 않다.

         

       그가 싸우는 이유는 언제나 제 작은 울타리 안의 사람들 때문이었다.

         

       그들을 지키기 위해 싸운다.

         

       하필 그 상대가 세계 전체를 노리는 것일 뿐.

         

       소중한 동료들의 목숨을 담보 삼아 세계를 구하느냐.

         

       아니면 그녀들의 목숨을 구하고 세계의 멸망을 지켜보느냐.

         

       둘 중 하나를 택하라면 백우진은 과감하게 후자를 택할 것이다.

         

       “알잖아.”

         

       결국 죽는 건 마찬가지겠지만, 적어도 살아 있는 동료를 품에 안은 채 죽을 수 있으니.

         

       “나 이기적인 사람인 거.”

         

       애초에 그는 용사에 어울리지 않는 지극히 이기적인 소인배였다.

         

       운이 좋아서 세계를 구한 용사로 둔갑한 것일 뿐.

         

       아니, 그게 아니었다.

         

       ‘운이 나빠서 용사가 된 거겠지.’

         

       그 빌어먹을 삼류 소설에 눈길만 안 줬어도 이런 삶은 살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제 목을 내놓으면서도 무덤덤한 그를 바라보며 천마는 고심했다.

         

       그리고 이내 손가락 두 개를 펼쳐 보였다.

         

       “두 가지만 들어준다면 이 자리에선 누구도 죽이지 않겠다.”

       “말해 봐.”

       “첫 번째로는 길을 터라. 내가 제단으로 향하는 동안 누구도 방해하지 않아야 해.”

       “좋아.”

         

       제단이 파괴되는 걸 막고 싶지만, 어쩔 수 없다.

         

       패배자 주제에 승자에게 살려달라는 말 외에 다른 걸 더 요구할 수는 없지 않나.

         

       “두 번째는?”

         

       백우진의 물음에 천마가 커다란 보폭으로 성큼 다가온다.

         

       서로의 숨결이 얼굴을 간질이는 아찔한 거리.

         

       그녀가 입을 연다.

         

       “진심 어린 키스.”

       “엑.”

         

       전혀 예상치 못한 요구에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백우진.

         

       조금 전까지만 해도 죽이겠다고 공언했으면서 갑자기 입맞춤은 왜 바란단 말인가.

         

       “난 정말 너를 이해할 수가 없어.”

         

       불만 가득한 말투로 토로하자, 싱긋 웃으며 대답하는 천마.

         

       “이해 따윈 바라지 않아. 지금의 나는 그저 순간순간에 충실할 뿐이거든.”

       “…….”

         

       나쁜 제안은 아니었다.

         

       하여 백우진은 한 손으로는 그녀의 뒷목을, 다른 한 손으로는 볼을 감싸 쥔 채로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 그녀의 입술을 탐했다.

         

       그녀가 바라는 건 단순한 입맞춤이 아닌, 진심이 담긴 입맞춤.

         

       “춥…!”

         

       열렬하게 혀를 섞고, 서로의 입 속을 탐한다.

         

       그 과정에서 두 사람은 진한 감정의 대화를 나누었다.

         

       묘하게도 두 감정은 빼다 박은 것처럼 닮아 있었다.

         

       애증(愛憎).

         

       사랑한다.

         

       상대를 살리기 위해 제 목숨 바치는 일 또한 기꺼이 행할 만큼.

         

       동시에 증오한다.

         

       상대를 죽이기 위해 제 목숨을 불태우는 일 또한 기꺼이 감내할 만큼.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달콤하고도 쌉싸름한 감정의 교류가 이어지는 도중.

         

       푸욱-!

         

       어느덧 그녀의 손에 들린 날카로운 검 한 자루가 백우진의 복부를 깊숙이 파고들었다.

         

       형언할 수 없는 고통에 눈을 부릅뜬 채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나는 그.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서 있는 그녀의 입가에는 피가 묻어 있었다.

         

       백우진의 입에서 새어 나온 피.

         

       그녀는 그것을 혀로 핥아먹고서 배신감 어린 표정을 짓고 있는 그를 향해 말했다.

         

       “당분간 죽은 듯이 쉬고 있거라. 무대가 준비되려면 아직 시간이 필요하거든.”

         

       진심 어린 입맞춤은 그녀가 바라던 것이었다.

         

       그리고 이 또한 마찬가지였다.

         

       더 이상 그에게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를 찔렀다.

         

       온전히 자신과 그를 위한 무대가 완벽하게 마련될 때까지 시간을 벌기 위하여.

         

       비틀거리다 이내 힘을 잃고 쓰러지는 백우진.

         

       “요, 용사님!”

         

       설수연은 헐레벌떡 달려와 쓰러진 그의 상처를 살폈다.

         

       천마는 그런 그녀를 향해 속삭였다.

         

       “빨리 치료부터 하는 게 좋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 죽을 테니.”

       “…닥쳐요.”

         

       난생처음 험한 말을 입에 담은 그녀는 곧장 성력을 두른 손으로 백우진의 배를 압박했다.

         

       회복이 느리다.

         

       아무래도 상처에 마기가 조금 섞인 모양.

         

       그러나 화산파 장문인의 상처만큼 독하지는 않았다.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치료하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으리라.

         

       남아 있는 성력을 듬뿍 쏟아내며 고개를 돌려 천마를 노려보는 설수연.

         

       “당신…,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내가, 내가 반드시…!”

       “…….”

         

       서로의 등을 맡길 수 있을 정도로 친했던 동료에게 원망 받는 느낌은 어떠한가.

         

       모르겠다.

         

       이미 고장 날 대로 고장이 나버려서 이게 어떠한 감정인지 설명하기 어려웠다.

         

       그저 입과 혀에 강하게 남아 있는 그의 감촉을 떠올리며 그녀는 웃었다.

         

       “그래, 기대하지.”

         

       그 말만을 남긴 채 그녀는 하늘로 솟구쳤다.

         

       신이 지상에 남긴 두 번째 제단을 파괴하기 위하여.

         

       그녀가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높은 곳으로 올라간 뒤.

         

       콰르륵!

         

       무언가가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그들의 귀에 흐릿하게나마 들려왔다.

         

       “하하, 씨발….”

         

       오랜만에 걸쭉한 욕을 입에 담은 백우진은 한 차례 허탈한 웃음을 흘린 뒤,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그럼 저는 다음 편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읽어주셔서 매번 감사합니다.

    편안한 밤 되셔요. (_ _)

    다음화 보기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sent a 5,700-character message and ended up transported into a novel world once. Then after returning, I got reincarnated into a second martial arts novel by the same damn author. Only this time, I really didn’t writ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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