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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99

   에르기누스의 마법진 앞에 선 조이는 계속해서 스스로를 다잡으며 침착하게 그 마법진을 분석해나갔다.

   

   이건 마법진과 관련된 거고. 이 쪽은 아카데미의 유지와 관련된 마법이고.

   

   그리고 이건.

   

   아.

   

   찾아냈다.

   

   마법진의 근원.

   

   가장 아래에 존재하는 대마법.

   

   일단 마법진의 상태 자체는 꽤 괜찮아.

   

   에르기누스라는 대마법사가 심혈을 기울여서 만든 마법진 수백년이 지난 지금에도 제 형상을 유지하고 있어.

   

   몇몇 군데에 균열이 생기긴 했지만 보수가 아예 불가능한 수준은 아냐.

   

   이 정도면 결계를 보수하는 데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거야.

   

   공허의 권능에 대항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데에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아냐! 아니야! 조이! 절대 확신을 가지지마.

   

   성공했다고 생각하지마.

   

   안심하지마.

   

   모든 일이 끝날 때까지 나 자신을 의심해!

   

   얼빵이 너는 언제 실수할지 모르는 위험인물이라고!

   

   루시나 아서는 물론이고 페이비마저도 인정하는 자신의 얼빵함을 조이는 너무나도 잘 알았다.

   

   그래서 몇 번이고 자신에게 안심하지 말라 되뇌어 가면서 마법진의 보수를 진행해 나갔다.

   

   조이가 식은땀을 흘리며 마법진의 보수를 진행하는 동안 다른 한 쪽에서는 공허의 추종자들과 검성이 치열한 대치를 이루고 있었다.

   

   신성의 영역에 걸쳐 조금이라도 접근할 기미를 보이는 자들을 베어 넘기는 검성과 온갖 수를 부려가며 신성의 영역 안에 발을 걸쳐 따스함을 오염시키려는 공허의 추종자들.

   

   이 둘 사이에서 유리한 쪽은 단언컨대 검성 유덴이었다.

   

   그녀의 검은 초속이라는 말에 그 어떤 검보다 잘 어울리는 날카로움을 지니고 있다.

   

   그녀의 검에 대처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강자라 인정받을 만큼.

   

   그런 검이 자신들을 향해 쉴 새 없이 날아드는데 공허의 추종자들이 무얼 할 수 있겠는가.

   

   그나마 공허의 사도가 자신의 형상을 온갖 것으로 바꾸어 가며 유덴의 검에 대처하고 있지만 그런 사도 또한 신성 영역에 유의미한 영향을 끼치진 못했다.

   

   결국 공허의 추종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뒤편에서 싱글거리고 있는 페이비의 미소가 허세이길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이런 상황이 좋지 못함을 아는 공허의 사도는 얼굴을 잔뜩 구겼지만 그렇다하여 지금의 불리를 바꿀 수 있는 무언가가 있진 않았다.

   

   어찌 해야 하는가. 어찌 해야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가.

   

   위대하신 공허의 신이시여. 세상을 순백으로 되돌려 놓을 순수여.

   

   이 부족한 신도에게 가르침을 주소서. 당신의 뜻을 이룰 수 있도록 지혜를 나누어 주십시오.

   

   이 어린 양이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부디 이 부족한 어린 양에게 당신의 뜻을 펼칠 힘을 주소서!

   

   “공허의 신이시여!”

   

   변화는 일순이었다.

   

   세상이 한 치 앞을 알아볼 수 없는 검은 색으로 물든다.

   

   주변에 자리하던 공허의 권능 위에 또 다른 기운이 덧씌워진다.

   

   고통에 찬 누군가의 신음. 분노에 찬 누군가의 고함. 슬픔에 흐느끼는 누군가의 울음. 광증에 빠진 누군가의 실없는 웃음.

   

   소리가.

   

   소리가.

   

   더할 나위 없이 불길한 누군가의 소리가.

   

   세상의 모든 것을 압도하며 짓누른다.

   

   페이비는 이것이 누구의 수작인지 눈치 챘다.

   

   조이 또한 주변의 풍경에서 기시감을 느꼈다.

   

   루시의 옆에서 그녀가 펼치는 기적을 마주했던 두 사람은 이 현상이 익숙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현 세상에 존재하는 누구보다도 주신을 미워하며.

   

   지금의 세상에 머무르는 누구보다도 주신이 아끼는 자를 해하고 싶어 하는 자의 기운이.

   

   바로 이 곳에 자리한 기운이었으니까.

   

   “…조이! 마법진의 보수는 아직인가요!?”

   “조금만 더 시간을 주세요!”

   

   조금이라는 단어에 페이비의 이마를 타고서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주변의 환경이 바뀜과 동시에 영역에 가해지는 압박이 훨씬 더 강해졌습니다.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수준이에요.

   

   이것이 악신 아그라.

   

   이 대지를 멸망으로 이끌려 한 존재이며 주신의 대적자이며 언젠가 제가 영애님의 옆에서 마주해야 할 존재.

   

   페이비가 만들어낸 신성의 영역에 금이 간다.

   

   악신의 기운이 주는 부담이 큰 듯 페이비의 입가에 주르륵 피가 흘러내린다.

   

   고통을 견디느라 손을 부들부들 떨리고 있으며 생기가 넘치던 얼굴 또한 창백하게 물든다.

   

   그렇지만 페이비의 입가에는 여전히 부드러운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어차피 훗날에 마주해야 할 존재입니다.

   

   주신의 사도이신 영애님의 곁을 지키기 위해서는 여기에서 물러서선 안 됩니다.

   

   성녀라는 직함을 지닌 사람이 겁을 먹고 도망친다면 누가 저 앞에 나서겠습니까.

   

   조금이라. 좋습니다. 어디 한 번 해보도록 하죠.

   

   영애님께서 저희에게, 저에게 이 일을 믿고 맡기셨는데 그 기대에 보답하지 못해서야 되겠습니까.

   

   이를 꽉 깨물고서 페이비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려던 그 때. 검성 유덴이 먼저 신성으로 이루어진 영역의 바깥으로 나섰다.

   

   “검성님!?”

   “그 안에 버티고 계세요. 성녀님. 아무래도 줄을 타야 할 것 같아서.”

   “예? 그게… 아.”

   

   얼마 지나지 않아 유덴의 시선을 페이비의 시선이 뒤따른다.

   

   대지에 내려앉은 어둠 속에서 강대한 무언가가 이 곳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

   

   리나는 주변에 자신의 연기를 퍼트리면서 내달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본체의 힘을 어느 정도 가져왔다고는 하나 그래도 지금의 육신은 어디까지나 분신.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에도 한계가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리나는 연기를 움직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아카데미 내부에 펼쳐 놓은 그녀의 연기가 흩어지는 순간 무고한 희생자가 생길지도 몰랐으니까.

   

   “허! 젠장! 기사 놈아! 좀 더 안정적으로 뛰어라!”

   

   자신의 연기를 다루는 데 온 신경을 집중한 리나는 자신을 메고 달리는 칼을 다그쳤다.

   

   “죄송합니다! 그렇지만 이해해주십시오! 지금 주변이. 제기랄! 에린 양!”

   “오른 쪽입니다!”

   

   상황이 이토록 다급해진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 전까지만 하더라도 모든 것이 잘 풀리고 있었다.

   

   칼은 자신이 어떻게 알른의 기사가 되었는지를 증명하듯 홀로 골렘들을 박살냈고 리나와 에린은 그 뒤에서 여유롭게 구경을 하고 있었지.

   

   이러한 상황이 뒤바뀐 것은 갑작스레 어둠이 내려앉으면서부터였다.

   

   공허의 권능 위에 또 다른 기운이 뒤덮임에 따라 골렘들이 이전과 비할 수 없이 강해졌으며 공허의 추종자들 또한 이성을 대가로 막대한 힘을 얻은 것이다.

   

   강해진 적들 하나 둘 정도는 칼 혼자서도 능히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었지만 그 수가 수십에 달하는 이상 아무리 칼이라 하여도 한계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칼은 그 와중에도 자신의 목숨을 바쳐 아가씨의 계획을 실현시키겠노라 외쳤지만 당신이 죽으면 아가씨께서 어떻게 될 것 같냐는 에린의 말에 결국 도주를 택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리나는 자신의 힘을 펼쳐 아카데미 내에 잠들어 있는 이들을 안전한 장소로 끌어 모으고 있었다.

   

   이 중에 희생자가 나온다면 자신이 아끼는 루시가 어찌 될지 훤했으니까.

   

   겉으로 강한 체 해도 속은 연약한 그 꼬마아이가 자기 때문에 누군가 죽었다는 걸 알면.

   

   안 된다. 그 일 만큼은 막아야 해.

   

   “으아악! 정신이 나갈 것 같군! 이럴 거면 본체의 힘을 모두 다 들고 왔어야 했어!”

   

   분체의 한계 탓에 열이 받은 리나가 투덜거리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내달린 칼은 건물 바깥으로 나오는 데에 성공했다.

   

   그리고 보았다.

   

   “…리나님.”

   “무어냐! 지금 본녀는 미쳐버릴 것 같다! 중요한 일이 아니라면! …저건 뭐야.”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거대한 무언가를.

   

   *

   

   “젠장! 고용주님 일이 꼬인 것 같은데!?”

   “저도 동의합니다. 영애께서는 다른 이들의 희생을 기반으로 계획을 세울 분이 아니잖습니까.”

   

   갑작스레 공허의 추종자들이 지닌 힘이 강해진 탓에 주신 교회의 사제들을 지원하러 온 카리아와 프레테는 일이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음을 확신했다.

   

   루시는 분명 건방지고 얄미운 꼬맹이지만 그렇다 하여 악한 사람도 아니고 차가운 사람도 아니다.

   

   어찌 보면 그 누구보다 가녀릴지 모르는 그녀는 타인의 죽음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프레테! 좀 버티고 있어봐!”

   “영애를 부탁드립니다!”

   

   길게 이야기하지 않았음에도 카리아의 의도를 알아차린 프레테는 자신의 일권으로 카리아가 나아갈 길을 열어줬다.

   

   검게 물든 결계 안 쪽에 발을 들인 카리아는 그 안에 자리 잡은 불온한 기운에 미간을 찌푸리다가 저 멀리에서 움직이는 물체를 확인하고는 헛웃음을 흘렸다.

   

   “…아. 씹. 하필 나와도 저거야?”

   

   검게 물든 세상 속에서 움직이는 거대한 날개는 카리아의 안 좋은 기억을 건드렸다.

   

   *

   

   지하를 가득 채우는 불길하고 불온하며 끔찍하고 혐오스러운 기운.

   

   제어를 빼앗기고서 당혹스러워하는 아드리.

   

   눈이 돌아가서 자신의 동료였던 것들을 공격하는 공허의 추종자들.

   

   그리고 흰자를 검게 물들인 루카.

   

   이 상황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지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추측하기란 어렵지 아니했다.

   

   [아그라가 당신을 바라봅니다.]

   

   내 앞에 떡하니 떠오른 창속에는 이 상황을 만들어낸 장본인의 도발이 담겨 있었으니까.

   

   아그라! 이 씹새끼!

   

   또 너야?!

   

   나 억까 할 기회만 노리고 있다가 가능성이 보이니까 끼어들겠다 이거지!?

   

   이 치사하고 치졸한 새끼 같으니라고!

   

   신이라는 작자가 이렇게 치사하니까 변태 주신 따위한테 쳐발린 거 아냐!

   

   “알른 영애.”

   

   아그라를 향한 비난을 쏟아내던 나는 한층 더 낮아진 루카의 목소리를 듣고서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의 입가에 지어진 살벌한 웃음을.

   

   “아무래도 제가 당신의 시련이 되어버린 듯 하니.”

   

   그의 손 안에 생겨난 검은 색의 대검은 혐오스러운 색으로 번뜩이고 있었다.

   

   “최선을 다해야겠네요.”

   

   위기 감각이 내게 경고를 보낸다.

   

   저 대검을 순순히 받아내서는 안 된다고 말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 : 극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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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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