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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99

    “니드호그는 단순한 개체명이 아니야. 하나의 거대한 프로젝트의 이름이지.”

    사이먼의 말은 택배를 보낼 주소를 운송장에 적어내리며 이어졌다.

    “네가 그런 ‘니드호그’를 혼자서 처리했다는 사실은 굉장히 놀랍지만, 그 사실이 ‘그’에게 명확한 타격이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그가 실제로 니드호그를 운용하기 시작했다면, 이미 그와 비슷한 완성도의 ‘니드호그’가 몇 개는 더 만들어진 상태이겠지. 그에겐 그런 연구를 벌이고 있던 장소가 한둘이 아니니까.”

    “그런가.”

    자신이 어렴풋이 예상했던 대로, 칸타시스 하나 잡아냈다고 ‘니드호그’의 위협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전 대륙을 연결하는 네트워크를 통한 대규모 연구 협력망은 주로 한명의 뛰어난 천재가 이끄는 개인의 연구가 전부였던 5000년 전의 과거와는 그 규모부터가 단순히 차원이 달랐던 것이다.

    그토록이나 완벽한 ‘프로토타입’이 이미 완성된 이상, 양산화단계는 절차를 밟아 초읽기에 들어간 상태.

    어쩌면, 이미 칸타시스와 동일한 급의 ‘니드호그’가 몇 개나 완성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과연, 이게 현대식 연구 프로세스의 힘인가?’

    ‘규모의 경제’가 지배하는 현대사회, 개인으로서는 뛰어넘기 어려운 벽이 있다는 걸 알았지만 그것이 이토록 체감된 것은 처음이었다.

    자신이 혼자인 이상, 이는 ‘그’를 결코 뛰어넘을 수 없는 격차가 되리라.

    영혼을 부리는 사령술 이외의 방식으로 되살려낸 드래곤의 육신은 ‘언데드’가 아니었고, 육신만큼은 이미 하나의 훌륭한 성체 드래곤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런데 그런 드래곤이 하나가 아니었다?

    이것은 단순히 그의 드래곤 하나를 쓰러트렸다고 끝날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여전히 이상한 점 또한 분명히 존재했다.

    드래곤의 육신은 물론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훌륭한 무기임은 틀림없으나, 단순히 무력을 얻기 위해 드래곤을 되살리는 것은 너무나 멀리 돌아가는 길이니까.

    실제로 이 시대는 돈만 있다면 일반적으로 개인이 구하거나 운용할 수 없는 ADF로 불리우는 국가전략병기를 제외하더라도 영혼 없는 드래곤 따위보다 더 강력한 현대식 마법무기를 별다른 기술투자 없이 구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러니까, ‘본 드래곤’이 아니더라도 개인이 운용할 수 있는 수준의 마법병기의 종류는 이미 수두룩하다는 이야기.

    그런데 굳이 ‘그’가 그만한 자본과 수고, 그리고 기간을 들여 영혼 없는 육체뿐인 드래곤의 양산을 하는 목적은?

    루크가 생각하기에, 그것은 매우 명확했다.

    왜냐하면, 루체스트에는 이미 너무나 확실하게 들어맞는 퍼즐조각이 있지 않은가?

    바로 영혼 없는 드래곤의 몸과 대비되는, 현신할 몸이 없는 악룡.

    니드호그 프로젝트는 아마도 육신을 잃어 현세할 수 없는 ‘시가르마타’에게 부여할 새로운 육신을 만들어내려는 목적으로 시작한 것이겠지.

    그게 아니라면, 그가 ‘드래곤의 육신’을 만드는 것에 집착할 이유가 전혀 없으니까. 

    하지만, 그가 그렇게 함으로 예상되는 그가 얻을 수 있는 결과는 뭐지?

    과연 시가르마타가 여신으로부터 강탈한 권한의 일부를 쥐고 현세하는 것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죽은 넋을 지배하는 그 신성의 파편조각이 그에게 어떤 의미가 있기에?

    그런 생각을 떠올리던 루크는 사이먼에게 문득 물었다.

    “그렇다면 연구소에 대한 정보는?”

    “역시 모른다. 나의 연구는 언제나 같은 장소에서 진행했고, 실제 실험은  자료만 넘겨주고 다른 장소에서 했으니까.” 

    원하던 대답은 아니었지만, 이미 예상하고 있던 반응이었기에 루크는 딱히 실망까지 하지는 않았다.

    그가 그런 걸 알았으면 애초에 이런 짓을 하고 있을 이유도 없었을테니.

    하지만 그런 루크의 무표정에 조급해진 것인지, 사이먼은 바로 말을 이었다.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건 오직 내가 연구했던 범위에 대한 질문뿐이야. 그런 질문은 없나?”

    “음.”

    뭐라도 도움을 주고 싶어하는 듯한 사이먼의 반응에, 루크는 고개를 저으며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뭐, 그 이야기는 이미 함께 충분히 나눴네만.”

    “뭐? 언제? 나는 전혀 기억이 안나는데?”

    어리둥절한 사이먼의 반응에 서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럴 시간이 있었지요.”

    “…아.”

    그에 뒤늦게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공백의 시간을 떠올린 사이먼은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쉬었다.

    “그렇다면, 이미 내가 알만한 건 전부 네게 말했다는 얘기겠군. 더이상 내가 도움이 될 수는 없겠어.”

    그에 루크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됐어, 오늘은 그대의 의지를 확인한 것 만으로도 값진 이야기였네.”

    그렇게 이야기가 적당히 마무리되는 것 같자, 메를린이 물었다.

    “그래서, 당신이 이런 곳까지 직접 행차하신 이유는 이 이야기를 위한 것이었나?”

    메를린의 지적은 나름대로 타당했다.

    며칠 전의 테러사건은 상당한 이슈가 되었고, 아직 행정상으로 어린 나이라고 하더라도 그 사건의 중요 참고인인 루크는 꽤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중이었으니까.

    공식적으로는 조사관이 문제없다는 식으로 결론내리기는 했지만, 섣불리 움직이기엔 아직도 조심스러운 때.

    택배라는 수단을 사용하기로 한 이상 발신자와 주소가 드러나게 되니 이제는 이곳도 은신처로서의 수명을 다했다고 하지만, 계획이 시작되기도 전에 위험을 감수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루크도 그 사실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따라붙으려는 이들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고.

    메를린은 문 밖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렇게 꼬리를 잔뜩 붙인 채로 말이야.”

    이제는 슬슬 밖에 위치한 인기척이 무시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분위기를 보아, 그들은 아마도 경찰이리라.

    그런 메를린의 말에 사이먼이 깜짝 놀란 목소리로 되물었다. 

    “잠깐, 경찰이라고? 설마 미행이 있었단 말인가?”

    하지만 놀란 건 오직 사이먼 혼자뿐.

    서드와 메를린은 분명 그녀 나름대로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거니, 하고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여태까지 보아온 소녀의 성격에 미루어보면, 그것은 단순한 부주의는 절대 아니었을 테니까.

    그런 서드와 메를린의 표정에 사이먼의 표정도 점차 무안함으로 변해갔다.

    “…다들 이미 알고 있었던 모양이군?”

    그에 루크는 조금 난처한 듯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너무 걱정 말게, 그녀는 일단은 아군이니까. 그냥 미리 이야기한 시간에 맞춰서 나를 마중나온 걸세.”

    “아군이라? 그 말은, 저 자가 부패경찰이라도 된다는 건가?”

    사이먼의 질문에 루크는 고개를 내저으며 말을 이었다.

    “아니, 반대다. 굉장히 성실한 경찰이지.”

    지금 밖에 서 있는 사람은 아마도 ‘시에나 포르핀드’. 

    예르나의 오랜 친구이자, 일년 전 서에서의 만남 이후로도 종종 길에서 만나서 인사를 건네곤 했던 경찰관이었다.

    숲지기로서 출중한 능력만큼이나 일 자체에 자부심을 지니고 있는 예르나와 친구인만큼, 그녀 또한 ‘경찰’이라는 직책 내에서는 그만한 자부심을 갖고 일하는 정의로운 여성이었다.

    이런 뒷골목에 있기엔 여러모로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라고 할까.

    아마 시에나도 그런 예르나의 성격과 비슷하다면, 그녀 역시 바르지 않은 일이라면 자신이 말해도 눈을 감아주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가진 비밀이 사소한 것도 아니고 말이다.

    하지만, 지금의 루크에겐 이것이 최선이었다.

    “어쩔 수 없었네. 불필요한 의심을 피하기 위해서는.”

    사실, 요즘 루크의 저택의 근처 숲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는 ‘중요 증인 보호’라는 명목으로 경찰병력들이 상주하고 있었다.

    이유라면 당연히, ‘전시장 테러사건’이다.

    기적적으로 사망자는 없었다지만 꽤 화려한 스케일의 사건이어서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는 사건이기도 하고, 자신들의 ‘테러’를 막아낸 루크에게 ‘테러리스트’가 보복을 해오는 것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시나리오였으니까.

    그냥 ‘잠깐 친구에게 가는 것’이라고 말해도 도통 말을 듣지 않더라.

    물론 테러리스트의 정체가 루크 본인인 이상 그런 시나리오는 존재할 수 없는 경우이긴 했지만, 그런 사실을 설명할 수 있을 리 없다.

    그렇다고 자신이 손수 저택에 인챈트한 ADF방공호급의 각종 방어마법진과 자신의 능력, 동원할 수 있는 전력등을 일일히 열거하며 그들을 안심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다.

    거기서 더 거절했으면 이번에는 아예 대대적인 미행이라도 따라붙을 모양새였기 때문에, 결국 하는 수 없이 루크는 역으로 동행하는 사람을 최소화시키기로 생각했다.

    사실, 루크에게는 그런 미행을 따돌리는 것쯤 별것 아닌 일이긴 했지만 자신이 그런 행위를 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될 수 있었으니까.

    그런 점을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갑자기 가출이나 하려던 그때의 자신이 얼마나 앞뒤를 재지 않고 감정에 미쳐있었던건지 새삼 떠올리게 됐다.

    루크는 이제는 ‘신성력’이 다른 의미로 두려워질 지경이었다.

    뭐, 사실 그런 감시를 모조리 따돌리고 음지에 완전히 숨어드는 것 정도는 이제 별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은.

    “하여튼, 내가 아는 사람이니까 괜찮아. 이미 서드와도 구면이고. 또, 여긴 겉으로만 보면 평범한 인형점이니까. 별 문제는 되지 않겠지. 실제로 아까까지 하고 있던 일도 인형점과 그리 다르지 않고 말이야.”

    루크의 대답에 사이먼이 중얼거렸다.

    “하긴, 문은 열지 않았지만 일단은 인형점의 행세를 하고 있으니…. 단순한 손님이라고 둘러대면 그쪽에서도 뭐라고 할 말은 없겠어. 메를린의 얼굴이 경찰에게 알려진 것도 아니니까.”

    암살자로 생활하기는 했지만 실제로 ‘일’을 할 때에는 한번도 얼굴을 드러낸 적이 없었으므로, ‘인형사’의 얼굴은 경찰도 알 수 없는 정보였다.

    실제로 메를린은 사업자분류상 오랜기간 인형사이기도 했고.

    하지만…

    “잠깐, 그러고보니 내 얼굴은 조금 위험한 게 아닌가?”

    사이먼이 문득 알아차렸다는 듯이 자신의 얼굴을 가리키며 말했다.

    자신은 현재 ‘그 사건’에서 발생한 유일한 실종자이다.

    그래서 이렇게 숨어있는 신세 아닌가?

    게다가 ‘루체스트’의 인사이기도 했던 자신은 이미 경찰 내부에서 실종자로 수배되었을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이렇게 숨어있는 신세 아닌가?

    그게 아니더라도, ‘그’의 표적이 된 자신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조심스럽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 그래서 지금 내 직접 이렇게 찾아온 게 아닌가.”

    루크는 자리에서 일어나 걸어둔 코트를 들어올리며 말했다.

    “일단 그대는 여기서 더 안전하고 쓸모있는 곳으로 옮기도록 하지.”

    아무래도 유능한 인재를 계속 이런 인형점에서 단순노동이나 시키며 놀려둘 수는 없으니까.

    실은 처음부터 이곳에는 그러려고 온 것이다.

    그의 전향의지를 직접 확인하고, 확실히 자신의 편이라고 한다면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서.

    그냥 진행사항 확인과 이야기만 할 거였으면 통신만으로도 충분한 거였고.

    하지만 갑작스러운 상황에 사이먼은 그저 당황스러웠을 뿐이다.

    “뭐? 지금? 날? 어디로? 밖에는 이미 경찰이 잔뜩 와 있는 게 아닌가? 여긴 뒷문도 없는데?”

    “아, 그 방법을 쓰려는 거군.”

    대충 어떻게 그를 옮기려는 지 이해한 메를린이 고개를 끄덕이자, 사이먼은 도저히 모르겠다는 듯 아는 척을 하는 메를린에게 물었다.

    “그 방법? 그게 대체 뭔데?”

    “이제 곧 알게 돼.”

    아까부터 거의 단어 하나하나에 전부 물음표를 띄울 정도로 당황해하는 그를 향해, 루크는 천천히 다가가 손으로 눈을 덮었다.

    마법사가 아닌 사람이 ‘게이트’를 통과하려면, 일단 눈을 감아야하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젠 밖에 경찰들 세워두고 아주 대놓고 납치를 해버리는 루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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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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