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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99

        

         

       빙의술사는 진성에게 감사를 표한 뒤 병원을 바라보았다.

       야산에서 바라보는 병원은 뭔가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마치 이쪽과 저쪽의 경계가 나누어진 듯한, 그런 묘한 분위기 말이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는 빙의술사가 가장 좋아하는 분위기이기도 했다.

         

       죽은 자와 산 자의 경계.

       그 경계에서 오는 기묘한 감각.

         

       그 감각이야말로 자신이 살아있음을, 이 세상을 산 자의 몸으로 활보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었으니까.

         

       “이제 수확해도 괜찮겠습니까?”

         

       “그러하다….”

         

       거기에 수확할 것이 있다면 더욱 금상첨화겠지.

         

       “좋군요.”

         

       빙의술사는 수확해도 된다고 말하는 음산한 목소리를 듣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아주 느릿느릿한 걸음.

       거인이 발걸음을 옮기는 듯, 혹은 어마어마한 압력과 무게의 물속에서 힘겹게 발걸음을 떼기라도 하는 듯 말이다.

       어찌나 느릿한지 그 모습을 보고 있자면, 착시현상으로 잔상까지 생겨날 지경이었다.

         

       잔상.

       빠른 속도가 아닌, 느린 속도로 인해 일어나는 잔상.

       그리고 그 잔상은 몸과 겹치고, 분리되면서 기묘한 형체를 그린다.

       이상한 형상의 그림자가 꿈틀대며 음영을 그리고, 잔상이 움직이며 본래 두 개였던 다리가 네 개라도 되는 듯 착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다리는 점점 거리가 벌어지게 되고, 마치 본래 다리를 네 개 가지고 있는 생물인 것처럼 형상을 취한다.

       그림자가 꿈틀대고, 잔상에 색을 입히고, 잔상에 입체감을 입히고, 잔상에 현실감을 부여한다.

       그리고 그 현실감이란 손으로 만지작거리면 금방이라도 흩어져버릴 환상이건만, 귀기 어린 소리가 그 환상에 실체를 입히고-

         

       다그닥.

       다그닥.

         

       그림자와 귀신으로 만들어진 말 한 마리를 불러온다.

         

       “흐, 팬텀 스티드(Phantom steed)…인가…?”

         

       “비슷합니다.”

         

       “말 대신에 사람의 영혼을 재료로 썼군….”

         

       “예.”

         

       빙의술사는 진성에게 대답하며 눈웃음을 지었다.

       귀화(鬼火)가 타오르는 듯한 눈동자가 호선을 그리고, 빙의술사가 올라탄 말이 그림자와 엑토플라즘으로 만들어진 발로 바닥을 두들겼다. 그리고 이내 출발할 때가 되었다는 듯 말머리를 돌렸고, 어둠을 박차며 힘껏 나아갔다.

         

       어둠 속으로.

       CCTV에도 찍히지 않고, 사람에게도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만을 찾아서.

         

       그렇게 지상 위에 지어진 어둠으로 만들어진 굴을 미친 듯이 돌파하며 빙의술사는 병원까지 도달했고, 허공을 유영하며 손쉽게 이제순이 머무르는 병실까지 접근할 수 있었다.

         

       히힝-

         

       이제 남은 것은 얇은 벽 하나.

       창문이 나 있는 벽 하나만이 남았다.

         

       푸르르르.

         

       빙의술사는 벽 쪽으로 몸을 바짝 붙였다.

       마치 벽이라도 한 몸이라도 되려는 듯, 벽에 녹아들어서 그 일부가 되려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곤 턱이 빠질 듯 크게 입을 벌렸다.

         

       아아-

       아아아아-

         

       크게 벌어진 입.

       그 사람이 저렇게까지 크게 벌릴 수 있나 눈을 의심할 정도로 쫙 벌어진 입에서는 동굴 속에서나 들려올 법한 모골이 송연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 모골을 송연하게 만드는 소리를 뒤따라 무언가가 꿈틀대며 밖으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반투명한 무언가.

       끈적한 액체 같기도, 무게감 있는 기체 같기도 한 그것.

         

       엑토플라즘이었다.

         

       그아아아-

         

       엑토플라즘은 빙의술사의 목이 굴뚝이라도 된 것처럼, 자신이 연기라도 되는 것처럼 끊임없이 밖으로 흘러나왔다. 모락모락 피어올랐고, 뭉게뭉게 퍼져나가며 창문을 향해 나아갔다.

         

       그렇게 창문으로 나아간 엑토플라즘은 미세한 틈새 사이로 스며들며 이제순의 병실로 침입했고….

         

       그어어어-

         

       이러한 ‘침입’은 이제순의 방 안이 엑토플라즘으로 가득 찰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렇게 이제순의 방 안은 뿌연 연기 같은 엑토플라즘으로 가득 들어찼다.

       마치 화재라도 일어난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그렇게 이제순의 병실 안으로 들어간 엑토플라즘은 구름이라도 되는 것처럼 위로 떠 오르며 뭉쳤다. 그리고 모이고 모여서 속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은 색을 뽐냈고, 기체나 액체가 아닌 고체 같은 질감으로 변하자 이윽고 그 색상마저 바꾸기 시작했다.

         

       검은색.

       은색.

       하얀색.

         

       카멜레온이 피부색을 바꾸듯 색을 바꾸기 시작한 엑토플라즘은 뭉게구름 같은 자신의 몸체를 조정하고, 위치에 따라 색을 피워내었다.

         

       어느 부위에서는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꽃과 같은 하얀색을.

       어느 곳에서는 새까만 밤하늘을 옮겨놓은 듯한 검은색을.

       어느 곳에서는 수은을 연상케 하는 찬란한 은색을.

         

       그렇게 엑토플라즘은 하나의 형상이 되었다.

         

       닉스(Νύξ)의 것과 같은 새까만 색으로 물든 천을 펄럭이고.

       타나토스(Θάνατος)의 심장과 똑 닮은 강철로 만들어진 낫을 들고.

       어둠 속에서도 뚜렷하게 보일 정도의 새하얀 빛의 해골의 머리를 지닌.

       사신과 똑 닮은 형상.

         

       스아아아-

         

       엑토플라즘으로 만들어진 사신은 숨을 쉬었다.

       숨을 쉴 때마다 살이 에일듯한 냉기를 뿜어내었고, 존재하는 것만으로 주위의 기온을 낮췄다.

       사신이 움직인 곳에는 공기 중의 수분이 얼어붙어 바닥에 새하얀 알갱이가 길을 만들었고, 사신이 입은 옷자락이 스친 곳은 귀기(鬼氣)에 오염이 되었다.

         

       그렇게 이제순의 앞까지 도달한 사신은 뼈밖에 남지 않은 손을 들어 올리곤….

         

       딸깍.

         

       턱을 아래로 빼버리고, 입을 크게 벌렸다.

         

       마치 창밖에서 자신을 만든 창조주가 그러는 것처럼.

         

       흐아아아-

         

       그리곤 크게 벌어진 입에서 냉기를 한껏 뿜어내며, 사람의 키를 훌쩍 넘기는 거대한 낫을 들어 올리고-

         

       서걱!

         

       영혼을 수확하는 낫을 휘둘러, 이제순을 죽였다.

         

         

         

        * * *

         

         

         

       이제순은 무사히 수확되었다.

       그리고 그의 죽음을 양분 삼아 많은 것들이 자라났다.

         

       마치 동물이 죽으면 그것을 양분 삼아 튼튼한 나무가 자라고 아름다운 꽃이 피어나듯이.

         

       가장 먼저, 언론이 깨끗해졌다.

         

       독보적으로 더러웠던 기자들이 경찰서에 잡혀감으로써 언론의 수위가 이전보다 훨씬 깨끗해졌으며, 기자들이 일으킨 이 거대한 사건의 여파를 어떻게든 피해 가려는 모양인지 나름 과격한 성향을 가지고 있던 기자들도 숨을 죽였다.

       마치 태풍이 지나갈 때까지 숨을 죽이는 것처럼.

         

       그렇게 극단적인 성향의 기사와 허위 보도의 숫자가 크게 줄어들고, 말초적인 신경을 자극하는 기사들이 확 줄어들었다.

       물론, 이제순과 관련된 기사들이 워낙 강렬했기에 그쪽으로 쏠린 것도 있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언론의 분위기 속에서, 한국과 일본의 무인 역시 자중하는 분위기로 접어들었다.

       한국과 일본의 마찰로 생긴 악감정, 거기에 각국의 지도자가 무인들을 이용해서 상대 국가의 무인을 합법적으로 죽이려고 계획한 일들까지….

       무인들의 다툼은 언제든 격화될 수 있었고, 그 격화된 감정 속에서 한국과 일본의 무인은 서로를 죽여가며 살을 깎아 먹었어야 했지만….

         

       이번 충주에서 있었던 살인사건의 여파 때문에 그 기세가 꺾여버리고 말았다.

         

       한국의 검사와 일본의 격투가가 어떻게 죽었는지 보도되고, 그들을 추모하는 분위기가 형성이 된 것이다.

       사람이란 분위기에 휩쓸리기 쉬운 동물.

       이런 애도 기간에 서로에게 시비를 걸기는 매우 힘들었다.

       어지간히 철면피를 깐 것이 아니고서야 말이다.

         

       그리고 철면피를 깔고 시비를 건다고 해도, 이런 시기에 쌈박질하고 싶냐면서 주위 사람들이 눈총을 주거나 개입하기까지 하니…. 시비를 거는 사람이 손해를 입게 되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무인은 자중하게 되었다.

         

       물론 한국과 일본의 무인들이 꼭 이런 이유만으로 자중하는 것은 아니었다.

         

       또 다른 이유는….

         

       쪽팔려서였다.

         

       검을 무기로 쓰는 한국 무인 한 명, 맨손 격투를 익힌 일본 무인 한 명.

         

       한 명도 아니고 무려 두 명.

       무려 두 명이나 기자에게 죽음을 맞았다고 뉴스에 떴다.

         

       어디 도장에 다닌 적도 없고, 능력자도 아니고….

       초능력인지 주술인지 모를 능력 하나만을 익힌, 무공과는 인연이 없던 삶을 살아오던 기자한테 둘이나 죽었다? 그것도 기자라는 놈에게 제대로 된 상처도 입히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잔혹하게 살해가 되었다고?

       힘없는 사람이 살인마에게 당하는 것처럼 무력하게?

         

       머리를 들기 힘든 쪽팔림이 아닐 수가 없었다.

       체면이나 명예를 중요시하는 무인들의 사회에서는 더더욱.

         

       게다가 죽은 것이 실력이 부족한 이들도 아니다.

        나름 자신의 무공 실력에 자신이 있어 충주에까지 찾아온 무인들이 아니던가.

         

       그러니 더더욱 쪽팔릴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싸움을 일으킨다?

       그럼 다른 나라 무인들에게 비아냥을 들을 게 뻔했다.

         

       ‘일반인한테도 얻어터지는 놈들이 뭐 잘났다고 자기들끼리 싸움하는지 모르겠다.’, ‘무인이라 부르기도 힘들 정도로 경지 낮은 놈들이 발악하는 꼴 좀 봐라.’, ‘실력 부족해서 일반인에게도 얻어터져 죽을 정도면 폐관 수련이나 할 것이지 여기서 왜 난리를 치는지 모르겠다.’ 등등….

         

       듣는 순간 주화입마에 걸릴 것만 같은 비아냥들.

         

       이딴 말을 듣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않을까?

         

       『 정부의 부탁이고 뭐고 일단…자중하도록 하자. 』

         

       『 일단 침묵은 기본이고…. 분위기 봐서 축제에서 빠지는 것도 염두에 둬야 한다. 』

         

       『 하, 일반인이 아니라 이상한 능력을 쓰던 놈한테 당한 거 아닙니까? 』

         

       『 그래서 그렇게 말하게? 죽은 놈들이 상대한 놈은 일반인이 아니었다고? 그럼 뭐 달라질 것 같아? 처지 바꿔서, 다른 나라 놈이 팔 길쭉하게 늘릴 수 있는 이상한 놈한테 얻어맞아서 죽으면 넌 안 비웃을 것 같아? 』

         

       『 하아…그렇네요…. 』

         

       『 3개월? 6개월?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해서는 그 정도 시간이 필요할 것 같은데…. 이상한 놈 하나 때문에 이런 일이…. 』

         

       그렇게 한국과 일본의 무인 간의 마찰은 막 발화되려는 그 순간 꺼져버렸다.

       이제순이라는 기자 한 명을 제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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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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