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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

       “자, 이걸로 종례는 마칠 테니까 야자 신청한 애들은 하러 가고 나머지는 얼른 집가자. 고3이라 힘들겠지만 모두 힘내고!”

         

       새로운 담임 선생님의 응원과 함께 종례가 끝나고 나는 가방을 멘 채 교실을 나섰다.

         

       형제기획 전속 계약서에 싸인을 한지는 며칠이 흘렀다.

         

       그동안 나는 그냥 너튜브를 통해 보컬과 춤을 대충이나마 연습하는데 그쳤다.

         

       ‘그러고 보니 사장님이 오늘 만나자고 했었지. 먼저 전화 걸면 되나?’

         

       참고로 교실을 나서는 내 주위에 다른 친구는 없었다.

         

       그도 그럴게…, 내 차가운 인상 때문인지 내게 다가오는 친구가 없기 때문이었다.

         

       나도 알바하느라 워낙 바빠서 친구 만날 시간이 없었고…, 무엇보다 전생에 남자였어서 그런지 여고에서 적응이 쉽지 않았다.

         

       내 외모만 보고 접근하던 애들도 있긴 하지만 그런 애들은 내가 알아서 걸렀다.

         

       그렇게 나는 홀로 건물 밖으로 나와 운동장을 걸으며 사장님한테 전화를 걸었다.

         

       뚜루루-.

         

       “여보세요.”

         

       [어, 그래.]

         

       “네, 사장님. 오늘 만나자고 하셨잖아요. 제가 어디로 가면 될까요?”

         

       [네가 딱히 올 필요 없다.]

         

       “…예?”

         

       [내가 이미 왔거든.]

         

       “……?”

         

       이게 뭔소린가 싶은 동시에 정문에서 술렁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뭐, 뭐야. 저 아저씨들…?”

         

       “무서워….”

         

       무서워하는 듯한 여고생의 목소리가 향한 곳을 내가 설마 하는 눈으로 보니….

         

       “어, 형님. 저기 나옵니다.”

         

       “예린아, 여기다.”

         

       검은 정장에 선글라스를 낀 강형만과 부하가 검은 세단을 정문 앞에 세우고 나에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강형만이 내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자 곧이어 주위 여고생들의 눈길이 내게로 향했다.

         

       “저 언니 데리러 왔나 봐…!”

         

       “헐, 개이뻐…. 저 언니 누구야?”

         

       “3학년에 예린 선배 아니야? 저 언니 유명하잖아! 옆 남고에서도 저 언니 보러 떼거리로 찾아오고.”

         

       “와, 대박.”

         

       수군수군.

         

       주변의 시선이 너무 과도하게 향하자 나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개중에는 이런 목소리도 있었다.

         

       “근데 쟤 부르는 사람들 깡패 아니야?”

         

       “조폭 딸이라는 말이 있더니 진짜였나.”

         

       “어쩐지 뭔가 무섭더라. 애가 항상 무표정에다 차갑잖아.”

         

       더 있다가 무슨 소리가 들릴지 몰랐기에 나는 서둘러 강형만에게 뛰어갔다.

         

       “…사장님, 이렇게 학교까지 오실 건 없는데….”

         

       “그러냐, 미안하다. 시간이 없어서.”

         

       “아니에요, 그래도 와주셔서 감사해요.”

         

       “그래, 시간 없으니 일단 타라.”

         

       내가 뒷자리 오른쪽 좌석에 타고 사장님은 뒷자리 왼쪽. 그리고 같이 온 부하는 운전석에 앉았다.

         

       “형님, 그러면 출발하겠습니다.”

         

       “그래.”

         

       학교와는 조금 어울리지 않는 고급 세단이 정문을 나서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강형만이 내게 말했다.

         

       “알바는 모두 정리했냐.”

         

       “아…, 예. 다 잘 이야기 됐어요.”

         

       갑자기 알바를 그만둔다는 이야기에 사장님들이 난색을 표하긴 했지만 그래도 사장님들은 마찰 없이 나를 보내 주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왜 만나자고 했는지 말을 안 했구나. 지금 우리는 방송국으로 가는 중이란다.”

         

       “…예?”

         

       강형만 사장님의 그 말을 듣고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벌써 방송국을 가다니…? 분명 첫 녹화일까지는 한 달 조금 넘게 남았다고 들었는데?

         

       이런 내 표정을 알아 봤는지 강형만 사장님이 말을 이어 설명했다.

         

       “듣기로는 뭐 사전 촬영인가 뭔가라던데. 그냥 간단한 인터뷰니 긴장할 필요 없다고 하더구나.”

         

       “아….”

         

       강형만은 긴장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촬영이라는 말에 몸이 굳는 것이 느껴졌다.

         

       “…….”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고는 강형만이 내게 툭 하고 무언가를 건넸다. 따뜻한 아메리카노였다.

         

       “너무 걱정 마라. 이번 촬영은 우리도 네 옆에 따라가는 거니까.”

         

       “아…, 예. 감사합니다.”

         

       그의 말과 함께 아메리카노를 만나 한 모금하니 정말로 긴장이 풀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런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나는 그렇게 이유 모를 편안함과 함께 방송국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고 사전 촬영을 위해 안으로 향하니 사람들의 이목이 조금씩 끌리는 게 느껴졌다.

         

       깡패 둘과 미소녀 한 명이라니 생소한 조합이니 확실히 그럴 만도.

         

       사람들이 보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니 아까 잠재워졌다 생각 들던 불안감도 다시 피어올랐다.

         

       그것은 방송국 안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심해졌다.

         

       “저기다. 저기서 제작진들이 기다리고 있을….”

         

       “…저, 사장님. 저 화장실 좀 들렸다 가도 될까요?”

         

       긴장감 때문인지 아니면 차에서 먹은 커피 때문인지 볼일을 보고 싶어진 내가 화장실을 가리키니 강형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면 나는 미리 들어가 있을 테니 너도 천천히 들어가라.”

         

       “네, 그럴게요.”

         

       강형만이 미리 들어가는걸 보고 나도 화장실로 향했다.

         

       여기서 긴장했던 마음을 좀 풀고 들어갈 생각이었다.

         

       “아, 세수라도 좀 할까.”

         

       긴장 푸는데 세수만큼 좋은 건 없지.

         

       나는 세면대로 다가가 물을 틀었다.

         

         

         

         

       **

         

         

         

         

       “아…, 죽겠다.”

         

       ‘나의 아이돌 아카데미아’ 속칭 ‘나아아’의 메인 PD 신기현이 등받이 의자에 몸을 추욱 늘어뜨리며 옆에 있던 후배 작가에게 물었다.

         

       “며칠 잠 못 잤더니 너무 힘드네…. 오늘 미팅은 어디지?”

         

       “이제 굵직한 기획사랑은 다 끝냈구요. 오늘은…, 거기 있잖아요, 거기.”

         

       “…거기? 아…, 거기.”

         

       나아아 제작진이 거기라 부르는 기획사는 한 곳이었다.

         

       후원사의 입김으로 어쩔 수 없이 한 자리 할당해 줘야 했던 신생 기획사.

         

       그걸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신PD의 뇌리에 불쾌감이 떠올랐다.

         

       나아아를 성공적으로 론칭하기 위해 그동안 제작진들이 얼마나 애썼던가?

         

       특히 제작진들이 공을 들인 것은 출연진 목록이었다.

         

       프로그램에서 활약할 에이스들부터 성장 잠재력이 뛰어난 인재들. 그리고 빌런용으로 사용할 수도 있는 장수 연습생들을 일일이 세심하게 골랐건만….

         

       시대가 어느 시댄데 낙하산으로 별 정보도 없는 애를 꽂아 넣어야 하다니.

         

       괜히 신경질이 난 신PD가 혀를 한 번 차고 후배 작가에게마저 물었다.

         

       “거기 기획사 이름이 뭐라 했지? 엄청 촌스러운 이름이었던 것 같은데.”

         

       “거기요? 음…, 아. 형제기획. 형제기획이란 이름이었어요.”

         

       “…형제기획? 아니, 이름이 왜 이래? 순 90년대 깡패들이 지은 이름같네.”

         

       “확실히 네이밍 센스부터 구린 게 느껴지기는 하죠? 인터뷰 질문은 상, 중, 하 중에 뭘로 할까요?”

         

       “뭘 물어, 하로 해, 하로. 혹시 최하는 만들어 놓은 거 없지?”

         

       철저한 제작진들은 사전 촬영에서 할 인터뷰 질문도 등급에 따라 상, 중, 하로 나눠놨다.

         

       낙하산에 대한 불만 그리고 신생 기획사를 향한 기대감 저조로 나아아 제작진들은 미리 하급 질문지를 꺼내 놓았다.

         

       그리고 약속 시간이 되자….

         

       똑똑.

         

       “형제기획에서 왔습니다.”

         

       “예에, 들어오세요.”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대형 기획사도 아니고 신생 기획사다. 눈치 볼 것 없다 생각한 신PD는 의자에 앉은 채 시큰둥하게 그들을 맞이하려 했다.

         

       그런데….

         

       “반갑습니다.”

         

       “……어? 아, 예…! 어, 어서 오세요….”

         

       문을 연 이들의 면면을 보고 자동으로 기립했다.

         

       거대한 체구에 검은 정장. 한 명은 대머리에다 얼굴에 흉터까지.

         

       ‘뭐야, …X발. 진짜 깡패였냐.’

         

       그 모습이 정말로 영락없는 깡패였기 때문이었다.

         

       싸아아-.

         

       아무리 방송국에서 제작진들이 날고 긴다지만 인간이라면 가지고 있는 원초적 본능이 있다.

         

       형제기획 두 깡패의 존재감에 미팅실 온도는 싸늘하게 내려가는 듯했다.

         

       “저희는 이런 사람입니다. 명함 받으시죠.”

         

       “아…, 네넵.”

         

       명함도 투박하고 딱딱한 게 왠지 피라도 묻혀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떨리는 손으로 명함을 받고서 신PD가 자리에 앉으니 형제기획 사람들도 앉았다.

         

       차가운 분위기 속에서 신PD가 천천히 명함을 읽어내렸다.

         

       ‘한쪽은 사장 강형만…, 그 옆의 빡빡이는 실장 한상구…, 음?’

         

       그러다….

         

       “…근데 왜 두 분이서만 오셨죠? 분명 오늘은 연습생 동행일 텐데….”

         

       공포감에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던 걸 떠올리고 물었다.

         

       “아, 애는 잠시 화장실 갔습니다. 곧 올 겁니다.”

         

       “아…, 그런가요.”

         

       ‘확실히 나도 이 두 사람이랑 있으면 30분마다 오줌 마렵겠다.’

         

       아직 얼굴 모르는 연습생의 사정을 이해하며 신PD가 고개를 끄덕이니 강형만이 그와 눈동자를 마주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보다 우리 애가 들어오기 전에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

         

       “…아, 예. 말씀하시죠.”

         

       “우리 애가 이런 곳은 처음인지라 긴장을 많이 한 것 같아 말이죠…. 조금 부드럽고 편안하게 대해주셨으면 합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죠?”

         

       “…아…, 넵. 꼬,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강형만은 정중한 말투로 말했지만 왠지 모를 위압감에 신PD는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끄덕이지 않으면 곧바로 드럼통에 들어갈 것 같기 때문이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하군요.”

         

       “…예, 하하. 당연하죠…. 출연진들의 편의를 보장하는 게 저희 일인데….”

         

       그렇게 신PD가 얼굴에 억지로 웃음을 끌어올린 후….

         

       “…….”

         

       “…….”

         

       다시 차가운 정적이 미팅실을 가득 메웠다.

         

       ‘젠장…, 누구든 됐으니 이 깡패 아저씨들 좀 데리고 나가줬으면 좋겠네.’

         

       형제기획 연습생을 향한 기대는 진작에 날라간지 오래였다.

         

       신PD는 뭐가 되도 좋으니 빨리 이 숨 막히는 미팅이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그때였다.

         

       끼익-.

         

       “아, 늦어서 죄송합니다.”

         

       문이 또다시 열리고….

         

       “……!”

         

       “……!!”

         

       이번에는 형제기획 두 깡패가 들어왔을 때와는 정반대의 충격이 신PD와 다른 제작진을 휩쓸었다.

         

       “안녕하세요. 형제기획 하예린이라고 합니다….”

         

       “…….”

         

       도도하고 차가운 인상의 미소녀.

         

       단정한 교복 차림과 다소곳한 몸짓, 그리고 흡사 경호원처럼 양쪽에 있는 깡패들 때문인지 마치 귀하게 자란 재벌집 아가씨같은 느낌도 들었다.

         

       거기에 더해 턱에 흐르는 물 한 방울 때문에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청초함까지….

         

       너무나도 아름답…, 잠깐…, 물?

         

       신PD는 하예린의 얼굴을 보다가 이상한 점을 눈치채고 곧바로 물었다.

         

       “저…, 예린 양이라고 했죠? 혹시 여기 들어오기 전에 세수하고 왔나요?”

         

       “네? 아…, 넵, 긴장돼서 여기 앞 화장실에서 방금 하고 왔습니다.”

         

       그렇다는 건 지금 하예린의 얼굴이 쌩얼이라는 것 아닌가.

         

       ‘화장을 안 했는데도 저 얼굴이라고…?’

         

       그 순간 신PD의 머릿속에서는 경종이 울리고 있었다. 이것은 십 수년간 PD를 하며 쌓아 올린 그의 날카로운 직감이었다.

         

       신PD는 이를 느끼자마자 은근슬쩍 후배작가에게 고개를 돌려 속삭였다.

         

       “야, 인터뷰 상으로 바꿔라. 아니, 최상은 없냐?”

         

       그가 확신컨대 눈앞의 소녀는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나아아를 흥행시킬 재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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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n Idol to Pay Off My Debt

I Became an Idol to Pay Off My Debt

빚을 갚기 위해 아이돌이 되었습니다.
Status: Ongoing Author:
"What? How much is the debt?" To pay off the debt caused by my parents, I became an id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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