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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

       

       

       

       “자격이라니, 그게 무슨….”

       

       좀 더 자세히 물어보려고 했지만, 나는 곧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뀨우우….”

       

       마지막까지 힘껏 모은 마나를 방금의 외침에 다 쓴 듯, 해츨링의 어깨가 추욱 늘어졌다. 

       동시에 아까까지만 해도 똘망하게 뜨고 있던 눈이 사르르 감겼다.

       

       “뀨….”

       “어엇.”

       

       나름 알 안쪽에 잘 앉아 있던 녀석의 몸이 뒤로 넘어가려 하기에, 나는 급히 녀석의 몸을 손으로 받쳤다.

       

       “…잠든 건가?”

       

       해츨링을 처음으로 알에서 꺼내 안은 나는 혹시나 해서 녀석의 코와 입 쪽에 귀를 가져다 댔다.

       

       새액, 새액.

       

       “큐우….”

       

       새액, 새액, 큐우.

       

       규칙적인 숨소리, 그리고 간간이 들려 오는 콧소리.

       

       ‘잠들었네.’

       

       아무래도 내 말에 인간의 말로 대답을 하느라 많이 피곤했던 모양이었다.

       

       나는 작은 해츨링을 얼떨결에 품에 안은 채, 조용해진 동굴 바닥에 앉았다. 

       

       ‘이를 어쩐다.’

       

       일단 깨어날 때까지는 기다려야 하나.

       

       나는 앉은 채로 녀석이 마지막에 했던 말을 다시 떠올렸다. 

       

       ‘자격이라….’

       

       짐작 가는 바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처음에 여기 들어올 때에도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었으니까.’

       

       분명히 하무트교 놈들이 왔던 길을 꼼꼼히 추적하며 가고 있었는데, 어느샌가부터 거짓말처럼 발자국이 사라지고 주변 풍경은 구분할 수 없게 되어버렸었다. 

       

       ‘조금전부터 똑같은 곳을 걷고 있다는 어렴풋한 감각이 느껴졌던 것도 그렇고, 생각해 보니 언제부턴가 바람 한 점 불지 않았다는 것도 그렇고, 수상한 점이 한두 개가 아니었지.’

       

       그 상황에서 눈앞에 떡하니 동굴 입구가 나타났으니….

       

       ‘당시에야 상황이 급하니 깊이 생각할 것도 없이 들어갔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내가 그렇게 멜른 산 깊숙이 들어온 것도 아닌데 발견할 수 있었을 정도의 동굴이라면 누군가 먼저 발견을 했어야 정상이다. 

       

       게다가 그런 동굴이 이 게임을 십 년 동안 한 내가 모르는 동굴이라는 것도 말이 안 되고.

       

       즉.

       

       ‘결계 마법 같은 게 쳐져 있었다고 봐야겠지.’

       

       다른 곳도 아니고, 10서클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드래곤의 거처다. 

       

       지나가던 산적이 우연히 발견하고 들어가 볼 수 있을 정도로 허술하게 만들어져 있을 리가 없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뭐 공간 왜곡이라든지, 환각 마법이라든지, 그런 종류의 마법이 아무나 레어에 들어올 수 없도록 막아 주고 있었을 것이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나 역시 그 ‘아무나’에 속하는 평범한 사람인데. 대체 어떻게 들어온 거지?’

       

       까놓고 말하면 나보다는 오히려 지나가던 산적 쪽이 레벨도 높고 능력치도, 잠재력도 뛰어날 거다.

       

       그만큼 내 능력치는 모난 곳 없이 아주 작은 육각형이니까.

       …아닌가? 마력이 3이니까 한쪽이 찌그러진 육각형인가.

       뭐, 어느 쪽이든 안타까운 스탯인 건 마찬가지다.

       

       ‘가능성이라면…. 역시 결계 마법이 너무 오래돼서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됐다든가?’

       

       내가 찾아올 때까지, 그리고 해츨링이 혼자 부화할 때까지 다른 드래곤이 여기에 다녀가지 않은 걸로 봐서는 이 레어가 방치된 지도 꽤 오랜 시간이 흘렀을 것이다. 

       

       어쩌면 몇 년 단위가 아니라 몇십 년, 아니 몇백 년이 지났는지도 모르는 일. 

       

       아무리 드래곤이 쳐 놓은 결계라지만 한 번 만들어 놓고 그대로 자리를 비웠다면 시간이 지나 일종의 노후화가 발생했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렇게 틈이 발생했을 때 내가 우연히 가장 먼저 동굴을 발견하게 된 거고.

       

       ‘그게 아니면 뭐 9와 3/4 승강장 같은 느낌으로 우연히 공간을 비집고 들어왔든지.’

       

       해츨링은 목소리가 ‘여기에 왔다면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지만….

       

       아마 진짜 자격이 있는 자라면 이렇게 늦기 전에 진작 여기로 찾아왔겠지.

       

       ‘지이이이인짜 만에 하나. 내가 진짜로 어떤 조건을 만족해서 자격이 있는 자로서 들어왔다고 해도 딱히 달라지는 게 있는 것도 아니고.’

       

       자격이 있어서 들어왔든, 우연히 들어왔든 간에 지금 나한테 중요한 건 여기서 나간 뒤에 어떻게 살아남을 것이냐, 이것 하나뿐이다. 

       

       그것도 이 쪼그만 생명체를 데리고 말이다. 

       

       ‘일단 나랑 같이 가겠다고 한 이상, 당분간은 같이 다녀야겠지.’

       

       같이 가겠다는 굳건한 의지를 표명한 건 물론이고, 내가 멀어지려 하면 울음까지 터뜨리는 녀석이다.

       

       ‘갑자기 먹여 살려야 할 식구가 딸린 가장이 된 기분인데….’

       

       나는 품 안에서 얌전히 자고 있는 해츨링을 내려다보았다.

       

       “큐우우….”

       

       새근, 새근.

       

       숨을 쉴 때마다 비늘이 덮이지 않은 맨들맨들한 가슴이 부풀어올랐다가 천천히 원래대로 돌아왔다. 

       

       ‘아직 해츨링이라 그런가, 몸이 전체적으로 말랑말랑하네. 비늘도 전신에 덮여있지 않고.’

       

       비늘이 덮여 있는 건 머리 일부, 그리고 대체적으로는 등이나 팔다리의 바깥쪽, 그리고 꼬리 정도.

       

       나머지 부분은 아직 덜 여물어 말랑한 맨살에 가까웠다. 

       

       나는 비늘이 덮여 있는 부분을 손가락으로 살며시 눌러 보았다.

       

       ‘덮여 있는 비늘도 드래곤의 것이라기엔 아직 물렁해.’

       

       비늘의 감촉을 표현하자면…. 그래. 덜 구워진 쥐포 같은 느낌?

       

       겉은 맨들맨들하고, 언뜻 딱딱해 보이지만 막상 만져 보면 조금은 질기면서도 물렁한 느낌이다.

       

       ‘이래서야 혼자 다니면 마물은커녕 굶주린 늑대 한 마리만 만나도 목숨이 위험하겠어.’

       

       …그래도 명색이 드래곤인데 그 정돈 아니려나?

       

       -뿌에에에엥!!

       

       아니, 아까 울던 모습을 보면 맞을지도….

       

       ‘애가 겁이 워낙 많기도 하고, 마음도 꽤 여린 것 같으니까.’

       

       이 자는 얼굴만 봐도, 늑대는 고사하고 사나운 개 한 마리만 짖어도 무서워할 것 같은 순수한 얼굴이지 않은가.

       

       “뀨우우….”

       

       뒤척.

       

       그때 해츨링이 내 품 안에서 살짝 자세를 바꾸었다. 

       

       처음에는 내 품 쪽으로 파고들며 웅크리고 자고 있었는데, 자세가 좀 편해졌는지 이제는 하늘을 보고 눕는 모양새로 바뀌었다. 

       

       몸과 함께 웅크렸던 짧은 팔과 다리도 긴장이 사르르 풀림과 함께 자연스럽게 대 자로 벌어져 갔다. 

       

       ‘편해 보이니 다행이네.’

       

       이제 좀 본격적으로 푹 잠에 든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맨들맨들하고 따뜻한 배가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모습을 보니 문득 만져 보고 싶은 욕구가 올라왔지만, 애써 참고 녀석을 안은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녀석이 깨어났던 깨진 알 껍데기 쪽으로 다시 걸어갔다. 

       

       나는 커다란 알 껍데기 안쪽을 슥 훑어보았다. 

       

       ‘음, 확실히 푹신해 보이네.’

       

       역시 해츨링을 오랫동안 품고 있기에 최적화된 내부 구조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안고 있던 해츨링을 그 알 껍데기 안에 내려놓았다. 

       

       ‘깨지 않게 조심조심.’

       

       부드러운 알 안에 사뿐히 안착한 해츨링은 작게 뀨우, 소리를 낼 뿐 다행히 깨지 않았다. 

       

       ‘휴우.’

       

       거듭 녀석이 잘 자는 걸 확인한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럼 시작해 볼까.’

       

       나는 팔을 걷어붙였다.

       내가 하려는 일은 간단했다. 

       

       ‘발광석 뽑기.’

       

       아까는 드래곤의 레어에 있는 물건을 마음대로 건드렸다는 것 때문에 찔려서 하나만 가져가려고 했지만.

       

       ‘이곳에 더 이상 올 드래곤이 없다는 걸 알았으면 얘기가 달라지지.’

       

       나는 씩 웃었다. 

       

       이곳의 발광석은 아까도 확인했듯 하나 하나가 최상급이다.

       그 말은 곧 크기에 비해서 값을 비싸게 받을 수 있다는 것. 

       

       ‘어차피 여기 있는 걸 다 챙겨 가는 건 무리겠지만, 휴대할 수 있는 만큼만 적당히 챙겨 나가도 당분간 돈 걱정은 안 해도 될 거야.’

       

       절대 내가 탐욕에 젖어서 드래곤의 재물에 욕심을 내는 건 아니다.

       

       여기서 해츨링과 같이 빈손으로 나갔다가 돈이 없어 함께 굶어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여기에 발광석을 가져다 박아 놓은 어미 드래곤도 그걸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 그 뭣이냐. 양육비? 그거라고 생각하소, 드래곤 씨.’

       

       당신의 아이를 위해 쓰는 돈이니 아깝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제발.

       

       ‘그리고 어차피 해츨링이 여길 떠난 뒤에는 누가 다시 찾아올 일도 없을 테니.’

       

       솔직히 지금까지 아무도 안 온 걸 보면 앞으로도 안 온다고 봐야 한다. 

       

       아까운 발광석은 이 레온맨이 처리할 테니 안심하라구.

       

       “읏차.”

       

       투둑.

       

       “오케이, 하나.”

       

       나는 신속하게 작업에 돌입했다. 

       

       내 손이 닿는 범위 내에서, 주머니에 휴대하기 편한 모양과 크기의 발광석을 골라 뽑았다. 

       

       내 빙의 인생 처음으로 운이 좋게도, 나는 주머니가 많은 바지를 입고 있었다. 

       

       시골이라 일할 때 이런 바지가 유용했던 모양.

       

       나는 그 사실에 감사하며 바지 주머니에 차곡차곡 발광석을 넣었다. 

       

       그리고 얼마 후.

       

       “휴우. 이제 챙길 수 있는 만큼은 거의 다 챙긴 거 같은데.”

       

       이곳에서 기어 올라갈 때나 이동할 때 무거워서 움직이기 불편할 정도가 되면 안 되었기에, 나는 딱 알맞은 만큼만 발광석을 챙긴 후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이 정도면…. 진짜 한 달은 돈을 쓰기만 해도 남겠는데.”

       

       물론 어디까지나 발광석을 성공적으로 팔았을 때 얘기지만.

       

       ‘이제 나가서 하무트교의 눈에 띄지 않고 무사히 산을 탈출하기만 하면 된다.’

       

       나는 손을 탁탁 털고 의지를 다지기 위해 주먹을 쥐었다.

       

       그리고 그때.

       

       “뀨…우?”

       

       저 뒤쪽에서 작은 소리가 들렸다. 

       

       “쀼우…!”

       

       아차.

       

       돌아보니 알 껍데기 안에서 막 잠이 깬 해츨링이 고개를 들고 반쯤 감긴 눈으로 뭔가를 찾는 것처럼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쀼우우…. 쀼!”

       

       그리고 자기가 찾는 사람이 보이지 않자 허둥거리면서 알에서 나왔다. 

       

       콩.

       

       “뀩.”

       

       그러다가 알 껍데기에 발을 걸려 엉덩방아를 찧은 해츨링의 귀가 축 처졌다. 

       

       ‘맙소사.’

       

       너무 귀엽…. 아니, 이게 아니고.

       

       울음 경보를 감지한 나는 황급히 녀석에게 달려가며 말했다. 

       

       “얘야. 나 여기 있어, 여기!”

       “쀼우? 쀼!”

       

       내 목소리를 들은 해츨링의 귀가 쫑긋 섰다. 

       가까이 가 보니 그새 녀석의 눈가는 촉촉해져 있었다.

       

       “미안, 미안. 너랑 여기서 나가기 전에 돈이 될 만한 걸 좀 캐느라. 이게 있어야 우리가 나중에 이걸 돈으로 바꿔서 밥도 먹고 할 수 있거든.”

       

       내가 자그마한 발광석을 보여주자, 해츨링은 잠깐 흠칫했으나 이내 경계를 풀었다.

       

       ‘다행이다.’

       

       태어나자마자 본의 아니게 위협으로 느꼈던 물건인데도 금방 사정을 이해하고 경계를 풀다니, 역시 똑똑한 아이였다.

       

       나는 해츨링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설명했다.

       

       “이제부터 여기서 나갈 건데, 아무래도 내가 굴러 떨어진 저 위쪽으로 다시 기어 올라가야 될 거 같거든? 혹시 따라올 수 있겠니? 아님 내가 업고 갈까?”

       

       그래도 드래곤이라 날개가 있으니 만약 날 수만 있다면 훨씬 일이 수월할 터.

       

       날지 못한다고 해도 아직 아이라 가벼운 편이니 업거나 머리에 이고 갈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해츨링은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 업써!”

       “응? 그럴 필요 없다니? 나가려면 저쪽으로 올라가야….”

       

       그 순간, 어디선가 불어 온 바람에 나는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건….”

       “쀼!”

       

       나는 내 품속으로 뛰어든 해츨링을 안고, 홀린 듯이 바람이 불어 온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저벅, 저벅.

       

       ‘이런 길이 있었나?’

       

       돌아다니며 열심히 발광석을 뽑을 때도 발견하지 못했던 그 길의 끝에서.

       

       “와….”

       

       나는 눈앞에 펼쳐진 진풍경에 넋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여긴 또 어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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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I Picked Up a Hatchling

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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