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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

       ―자, 5억! 거대한 상단을 가지지 않았다면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의 거액이 나왔습니다! 더 경매에 참여하실 분은 안 계십니까?!

         

       정적. 원래 가격의 다섯 배를 부른 프란체 데카르트의 말은 그만큼 파격적이었다.

         

       그냥 조금만 올려서 부르면 될 것을, 굳이 다섯 배를 부른 이유. ‘나 돈 존나게 많으니 덤빌 테면 덤벼봐라.’라는 의미의 경고.

         

       저 뻣뻣하게 들은 고개와 당돌하게 서 있는 모습이 그걸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아마 저 싸구려 토끼 가면 안에는 의기양양한 표정도 같이 있겠지.

         

       ―5억! 더이상 없습니까?!

         

       혹시라도 가격을 더 올릴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에 한 번 더 묻는 경매사. 나를 사려고 했던 아줌마가 손을 들려곤 하지만 벌벌 떠는 게 보였다.

         

       아무리 귀족이라도 엄청난 대귀족이나 상단 수십 개를 가진 귀족이 아니라면 5억은 큰돈이다. 노예 경매에 투자할 금액이 아니긴 하지.

         

       ―5억! 5… 4… 3… 2… 1… 자! 낙찰을 축하드립니다!

         

       그렇게 나는 프란체 데카르트에게 낙찰 되었다.

         

       5억이라는 압도적인 금액으로.

         

         

       * * *

         

         

       손목을 구속하고 있던 수갑과 입을 막고 있던 재갈이 풀리고, 노예 신분을 증명하는 초커가 내 목에 달렸다. 경매사는 프란체 데카르트에게 노예 각인 주문서를 양도했다.

         

       나는 정식으로 그녀의 노예가 되었다.

         

       “자, 새로운 주인님한테 누가 되는 일 없이 잘 해라.”

         

       거지 같은 경매사의 말은 무시해주고. 나는 프란체 데카르트를 힐끔 바라봤다.

         

       싸구려 가면 사이로 보이는 에메랄드빛 눈동자. 뒤로 길게 늘어진 붉은 웨이브의 머리카락. 프란체 데카르트가 확실했다.

         

       ‘다행히 예정대로 진행되네.’

         

       그렇다면 내가 할 일은 정해져 있다. 일단 최대한 순종적으로 나오면서 천천히 기회를 살피고.

         

       ‘어떻게든 살아남는다.’

         

       힐끔. 프란체가 무릎 꿇은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따라오렴.”

         

       손에 든 부채로 어깨를 두드리며 그대로 뒤돌아 갈 길 가는 프란체. 그녀의 긴 머리카락에서 좋은 향이 피어나와 머릿속이 꽃향기로 자욱했다.

         

       나는 어정쩡한 걸음으로 그녀의 뒷모습을 쫓았다. 그렇게 경매장을 나오고. 프란체 데카르트는 싸구려 토끼 가면을 벗으며 말했다.

         

       “우선 공작저로 돌아가야 해. 그런데 지금 늦은 밤이지? 네가 해야 할 건 뭐겠니?”

       “…호위입니다.”

       “그래, 잘 알고 있구나. 내가 5억을 태운 의미가 없지 않았으면 좋겠어.”

         

       말투에서 드러나는 그녀의 도도함. 아름다운 장미꽃의 줄기에 가시가 달린 것처럼, 그녀에게도 가시가 달려있었다.

         

       ‘처음부터 저런 태도였던 건가?’

         

       진 바렌베르크. 즉 내가 이제 막 프란체 데카르트에게 낙찰 당한 시점은 아직 메인 무대가 시작하기 전이다.

         

       그럼 원작의 주인공, 소미레와 만나기도 전이고 사건이 시작하기도 전일 텐데.

         

       ‘그냥 천성이 그런 건가.’

         

       아니면 소미레를 만나기 전에 다른 모종의 사건이 있었다던가, 그런 이유겠지.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니?”

       “…아닙니다.”

       “시선을 조심하거라. 내 등이 따가울 정도로 바라보고 있으니 신경이 쓰이겠니, 안 쓰이겠니?”

       “죄송합니다…….”

         

       내가 지금 시점에서 말할 수 있는 건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그렇습니다.’뿐. 전쟁 노예에게 큰 걸 바라는 것도 이상하지.

         

       좀 열받긴 한데, 어쩔 수가 없다. 지금 최우선 목표는 살아남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튼. 나는 그녀를 계속 따라 걸었다. 이곳은 확실히 제국의 암 덩어리 같은 암흑가인 만큼 위험한 곳이었다. 그녀를 노리는 도적들이 기척으로 감지되었으니 말이다.

         

       ‘귀족을, 그것도 대귀족을 납치할 생각을 하다니.’

         

       그런데 프란체 데카르트는 마차나 호위기사도 없이 여기에 혼자 온 건가? 내 머릿속에 왜? 라는 물음표가 붙었다. 대귀족의 영애가 아무런 방비도 없이 이런 암흑가에 혼자 오다니? 말이 안 되는데.

         

       ‘거 참, 무모하네.’

         

       생각이 끝나기 무섭게 기척을 통해 도적들이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아마 곧 들이닥치겠지.

         

       “주인님.”

       “왜?”

       “도적들의 기척이 감지되었습니다.”

         

       멈칫. 내 말을 들은 프란체가 고개를 돌려 곁눈질로 나를 바라봤다.

         

       “그래서?”

       “주인님을 노리고 있는 듯합니다.”

       “네가 있는데 무슨 상관이겠니?”

       “…무기가 없습니다.”

         

       이건 프란체 데카르트도 예상하지 못했는지, 오른손에 든 부채로 왼손을 두드렸다. 탁. 탁.

         

       “맨손으로 제압하는 건 안 되니?”

       “가능은 합니다만, 주인님에게 피해가 갈지도 모릅니다.”

       “쯧. 어떻게든 내게 피해가 오지 않도록 하렴.”

       “최대한 노력해보겠습니다.”

       “그때는 노력이 아니라 하겠습니다, 야. 나의 노예가 된 이상 실패는 용납할 수 없단다.”

       “…죄송합니다.”

         

       내 성격상 이렇게 순종적으로 나오는 건 열 받는데.

         

       ‘에휴.’

         

       어쩌겠나. 현재 이게 내 위치인 것을. 초월의 노예 각인이 새겨지고 나의 목숨줄을 가지고 있는 그녀에게 대들 수도 없다.

         

       ‘그래도 그 뚱뚱한 아줌마보단 낫긴 하지.’

         

       프란체 데카르트 정도면 매우 훌륭한 여성이다. 외모와 몸매도 아름답고 기품있는 여성이니까. 지위 또한 대귀족의 딸인지라 굉장히 높고.

         

       그때.

         

       “귀족 아가씨가 이런 오밤중에 나돌아다녀도 되는 거야?”

         

       도적들이 등장했다. 숫자는 총 넷. 각자 도끼와 검을 들고 있었으며 활을 가지고 있는 놈도 있었다. 이러면 프란체 데카르트를 완벽하게 지키기엔 어려울 거 같은데.

         

       ‘흠.’

         

       그래도 해보는 수밖에 없나. 진은 소드 마스터에 도달한 완성형 먼치킨이니까.

         

       ‘아직 게임의 시작 전인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다만.’

         

       나는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요즘 도적놈들은 생각도 없나? 귀족 여성이 이런 오밤중에 무방비하게 혼자 돌아다닐 리 없잖나.”

         

       물론, 이 멍청한 여자는 지금까지 혼자 나돌아다녔다. 여태껏 납치를 당하지 않은 게 놀라울 정도로.

         

       ‘온실 속의 화초인 건지, 아니면 그냥 멍청한 건지.’

         

       맨 앞에 서 있던 도적이 말했다.

         

       “형씨. 혼자서 우릴 막을 셈이야? 우리가 단순한 도적으로 보여도 나름 이 암흑가에서 좀 치는 놈들이거든.”

       “내가 알 바인가?”

       “뭐?”

       “네가 얼마나 대단한지 내가 알 필요가 있냐는 거다.”

       “이 자식이….”

         

       도적이 오만상을 구겼다. 안 그래도 더럽게 생겨서 보기 힘들었는데 얼굴을 구기니 더욱 보기 힘들었다.

         

       “얘들아, 족쳐라. 저 여자는 조심히 다뤄. 상품의 가치가 떨어지니까.”

         

       결국 이렇게 되는구나. 일단 격투기에서 봤던 자세를 잡았다. 정확히 어떻게 싸우는지는 모르겠다만, 저번처럼 진의 감각과 전투 센스 하나만 믿고 싸워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도적 둘이 내게 천천히 다가온다. 나무를 자를 때 쓰는 도끼를 들고 있었다. 저거에 맞으면 더럽게 아프다 못해 뒤지겠지?

         

       다른 놈이 들고 있는 무기는 숏소드였다. 길이를 봤을 때 주먹으로 충분히 제압 가능할 것 같았다.

         

       “이 새끼, 진짜 싸울 셈인가 본데?”

         

       도적들이 키득거렸다.

       

       “그럼 어디 솜씨 좀 보자고. 귀족 영애를 지킬 정도면 우리가 재미 볼만한 실력은 있겠지?”

         

       그럼, 그렇고말고. 내 정체를 들으면 너희들도 놀랄 거다. 뭐, 말할 생각도 없지만.

         

       타앗! 도끼를 든 놈과 숏소드를 든 놈이 동시에 달려들었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찍는 도끼를 옆으로 슬쩍 피해 주고, 숏소드를 들고 달려드는 멸치에게 잽을 날렸다. 빠악! 난데없이 턱을 강타당한 도적이 휘청거렸다.

         

       “이 새끼가!”

         

       나는 바로 몸을 틀어 뒤돌려 차기로 도끼를 든 놈의 복부를 걷어찼다. 퍼억! 놈이 도끼를 놓치고 복부를 부여잡았다.

         

       “커헉, 컥. 우웨에에엑.”

         

       방금까지 술과 안주라도 먹고 있었는지 토사물을 토해내는 도적. 서둘러 거리를 벌렸다. 더럽게 시리.

         

       “보통 놈이 아닌 건 확실하네. 자신감이 있을 만도 하구나!”

         

       아직 숏소드를 들고 있는 도적은 멀쩡하다. 잽이 약했나? 보통 턱을 강타하면 단번에 쓰러지던데…….

         

       ‘내가 어중간하게 따라 해서 그런 걸지도.’

         

       당연한 이유다. 아무리 진의 몸과 감각이 압도적이어도 그렇지, 방구석에서 게임 공략이나 하던 뮤튜버가 복싱을 어떻게 따라 하겠어. 게임이나 영상에서나 봤지.

         

       대장으로 보이는 놈이 거대한 도끼를 들고 다가온다. 저벅. 저벅. 숏소드를 들고 있는 놈도 옆으로 슬금슬금 다가왔다.

         

       나는 다시 격투기의 자세를 잡았다.

         

       “뒤져라!”

         

       거대한 도끼를 든 대장 도적이 거센 고함과 함께 달려든다. 도박수긴 하지만 한번 해보고 싶은 게 있다. 진의 몸이라면 충분히 가능하겠지.

         

       내 머리를 향해 쇄도하는 거대한 도끼. 나는 허리를 돌리며 주먹에 체중을 실었다. 그대로 훅을 날린다. 캉! 마치 강철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 도끼의 궤적이 빗겨나가며 바닥을 내려찍었다.

         

       주먹이 얼얼했다. 다시는 안 해야지.

         

       “무슨…!”

         

       눈을 동그랗게 뜨고 허리가 굽어진 도적의 턱에 킥을 날려주었다. 빠악! 발끝을 이용한 발차기를 정통으로 맞은 도적이 뒤로 넘어진다.

         

       “커억…….”

         

       이거로 두 놈 컷.

         

       이어서 화살도 날아왔다. 나는 눈을 부릅뜨고 감각에 집중했다. 마치 컨디션이 좋은 야구 선수처럼, 화살이 천천히 날아오는 것처럼 보였다. 순간적으로 낚아챘다. 화살이 눈앞에서 멈췄다.

         

       “미친! 화살을 잡는다고?!”

         

       숏소드를 들은 도적과 활을 들고 있는 도적이 주춤거린다. 나는 때를 놓치지 않고 다트 던지듯이 화살을 역으로 던졌다. 푸욱! 활을 들고 있던 도적의 미간에 화살이 꽂히며 피를 흘렸다.

         

       “허, 헉!”

         

       숏소드를 든 도적이 무기를 놓으며 무릎을 꿇었다.

         

       “죄, 죄송합니다! 저희가 귀인을 몰라보고 건방지게…!”

         

       도적은 도적이군. 멍청한 새끼. 귀족 영애를 노린 시점부터 너희는 안 될 짓을 한 거다.

         

       “마지막으로 할 말은 없나?”

         

       나는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도끼를 주웠다.

         

       “제발, 제발 한 번만 살려주십시오! 뭐든지 다 하겠습니다!”

         

       나는 뒤돌아 프란체에게 물었다.

         

       “주인님, 어쩔까요?”

       “어쩌긴 뭘 어쩌니? 죽이거라.”

         

       저벅. 앞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제발, 제발!”

         

       그렇게 바라보지 마. 일단 내 주인님이라는 사람의 선택인데 어쩌겠어.

         

       휙. 가볍게 도끼를 휘둘렀다. 피가 허공에 흩뿌려지며 내 뺨에 튀었다. 끈적한 피. 쇠의 냄새가 났다.

         

       “쯧.”

         

       나는 옷소매로 피를 닦았다.

         

       “이걸로 다 정리되었습니다.”

       “봤던 대로 실력은 제대로구나.”

       “감사합니다.”

       “딱히 칭찬은 아니야. 이제 공작가로 가자꾸나.”

         

       아직 살아있는 도적들을 마무리한 다음, 그녀의 뒤를 따라 걸었다. 노예는 주인의 앞을 막으면 안 된다고 했나. 이러니까 정말 개가 된 기분인데.

       

       ‘앞으로가 힘들겠군.’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내젓던 그때. 프란체 데카르트가 나를 힐끔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공작가로 가는 이유가 궁금하지 않니?”

       “주인님이 공녀님이신 건 알고 있었습니다.”

       “호오, 옆 나라의 왕자 출신이라 그런가?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구나.”

       “딱히 알고 있진 않았습니다. 그저 5억이라는 금액을 부를 정도니 대귀족이라는 걸 유추했을 뿐입니다.”

       “흐응. 나름대로 머리가 돌아가는구나.”

         

       이 정도는 당연히 생각할 수 있는 거 아니야? 나를 무시해도 너무 무시했네.

         

       “공작저로 돌아가면 네가 해줘야 할 일을 알려줄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되었든 이 험난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프란체는 그런 내가 마음에 들었는지 슬쩍 미소를 지었다. 사람을 홀릴 정도로 아름다운 미소였다.

         

       ‘가자, 공작저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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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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