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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

    들어선 방은 굉장히 특이한 곳이었다.

    창문 하나 없는 방.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비쩍 마른 괴인들.

    거기에 바닥에는 맛있어 보이는 과자나 음료수, 식품 등이 아무렇게나 널려 있었다.

    괴인들은 침을 질질 흘리며 흐릿한 눈으로 중얼거리기만 하고 있었다.

    유령화를 풀고 눈앞에서 손을 흔들어봐도 괴인들은 흐릿한 눈으로 그저 누워 있기만 하고 있었다. 아마 이미 제정신이 아닌 듯했다.

    쇠사슬과 자물쇠로 봉인된 문들이 잔뜩 있었는데, 그곳에는 어김없이 최소 한 명의 괴인이 있었다.

    ‘도대체 뭐 하는 집이야 여긴? 괴인은 또 왜 이렇게 많고, 왜 방마다 가둬둔 거지?’

    그르륵 그르륵

    집을 돌아다니다 보니, 어디선가 나무를 긁는 소리가 작게 들렸다. 작은 소리였지만 쉬지 않고 계속해서 울렸다. 

    귀를 기울이니 소리가 나는 곳은 2층. 2층으로 가는 층계는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는지 먼지가 뽀얗게 쌓여 있었고, 계단을 밟을 때마다 끼익 거리는 기분 나쁜 소리를 토해냈다. 

    뒤를 돌아보니 먼지투성이 층계에는 자그마한 발자국이 쭈욱 이어져 찍혀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유령화를 하고 올라왔을 텐데… 

    2층으로 올라오니 계속 들리던 나무 긁는 소리는 어느새 멈춰있었다.

    다행히 2층에는 다락방 하나뿐이라 소리의 근원지가 다락방이라는 건 명백해 보였다.

    유령화를 하고 들어선 다락방은 1층의 방들과는 조금 달랐다. 불빛 한 점 없는 어두운 방 안에 괴인 한 명이 문에 머리를 기댄 채 축 늘어져 있었다. 붉게 빛나는 괴인의 눈빛은 어두운 방 안에서 유일한 광원이었다. 흐릿했던 다른 괴인과는 확실히 달라 보였다.

    그르륵 그르륵

    눈을 빛내는 괴인은 문을 긁기 시작했다. 미약한 힘이었지만 쉬지 않고 손끝에 피가 터져서 문이 피로 물들어도 멈추지 않고 문을 긁었다. 감금된 걸로 보이는 괴인 중에서 유일하게 움직이는 괴인은 척 보기에도 탈출하기 위해서 무리한 행동을 하는 걸로 보였다.

    이번 괴인은 반응해줄까 싶어서 유령화를 풀자, 바닥과 발바닥이 부딪치는 소리가 작게 났다. 그르륵거리는 소리에 묻혀서 안 들릴 정도로 미세한 소리였다.

    끊임없이 들리던 그르륵 소리가 멈췄다.

    갑작스러운 적막.

    문을 바라보고 문을 긁던 괴인은 어느새 고개를 돌려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른 고목 같은 피부와 다르게 형형하게 빛나는 두 눈은 명백하게 지성의 빛을 품고 있었다.

    “너는 누구지?”

    고개만 180도 돌렸던 괴인은 몸을 일으키고는 천천히 내 앞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비쩍 마르고 잔뜩 웅크리고 있어서 몰랐지만 몸을 세운 괴인의 키는 2m는 넘어보였다.

    “숨을 안 쉬는군. 인간이 아닌가?”

    “그전에 어떻게 들어 온 거지?”

    “방안에 갑자기 나타난 것 같았는데, 물리적인 제한을 무시하는 능력을 갖춘 건가?”

    괴인은 말을 하다가 갑자기 멈춰서는 입을 크게 벌리고 양손으로 귀가 있는 부분을 마구 긁기 시작했다. 지성으로 붉게 빛나던 눈은 흐릿해져서 1층의 괴인들과 비슷한 인상으로 변했다.

    얼마나 자주 긁었는지 귀가 있던 부분에는 이미 귀 같은 기관은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고 처참하게 긁힌 상처뿐이었다.

    “그럼그럼그럼가져올수있겠어불을나에게불을가져올수있겠어불이필요해배고파배고파배고파음식이필요해배고파배고파배고파배고파배고파배고파배고파배고파배고파”

    의미를 알 수 없을 말을 빠르게 내뱉던 괴인은 이내 몸을 웅크리고는 바닥에 머리를 내려치기 시작했다. 고목처럼 말라비틀어진 괴인의 피부에서 피가 터져 나올 때까지 계속 이마를 내려치던 괴인은 이내 멈추고 다시 몸을 일으켰다.

    “아, 미안하군. 너무 배가 고파서 어쩔 수 없었어.”

    배고프다고? 이 방에도 통조림이나 과자 같은 것이 잔뜩 널려 있었다. 바닥에 떨어진 과자를 들어서 건네주자, 괴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내 허기는 그런 거로는 결코 채워지지 않아. 그렇군. 폐가 없으니까 말을 할 수 없는 건가. 신기하군, 말을 할 수 없는 오브젝트에게 말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주어질 필요가 있는 건가?”

    못 먹는 건가. 괴인이 거부한 과자를 한입 베어 물었다. 

    맛있기만 한데 말이야. 이런 음식으로는 배를 채울 수 없는 저주 같은 건가?

    발작할 정도로 배가 고프면 뭐든지 맛있게 먹을 수 있을 텐데. 오브젝트로 태어나 1년여, 허기와 갈증을 느끼지 못하게 되어서 공감하기가 힘들어진 걸까?

    “미안하지만 무례한 부탁을 좀 해도 되겠나. 자네가 할 수 있다면 부디 들어 주면 좋겠군.”

    “지하실로 가서 불을불을가져올수 있겠나 있겠나?”

     ‘으아아악, 아니야!’ 하고 큰 소리를 지르더니 괴인은 발광하면서 사방의 벽을 마구 헤집기 시작했다. 쇠로 보강된 벽과 문은 괴인의 몸을 쉽사리 상하게 했고 피투성이가 돼도 괴인의 발광은 멈추지 않았다.

    괴인의 멈추지 않을 것 같은 발광은 괴인이 바닥에 널브러질 때까지 계속되었다. 

    물론 위험해 보이니까 진작 유령화 상태로 대피했다.

    “아, 미안하군. 미안해. 그나저나 자네가 보이질 않는군.”

    “아 그런 식인가. 자네는 스펙터 같은 유령계열 오브젝트였는가?”

    유령화를 풀고 다시 다락방에 발을 디디자 괴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제정신일 때 부탁을 하고 싶군. 나의 목숨을 거둬줬으면 좋겠네. 왠지는 모르겠지만 자네라면 손쉽게 가능할 것 같아.”

    척 보기에도 괴인은 정신이 정상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정신에 영향을 미치는 오브젝트에 당한 건가? 

    오브젝트의 대처 방법은 알려진 것이 거의 없어서 이런 경우에는 결국 사살하는 게 답이라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걸 자신이 직접 제시한다는 점에서 절박함이 느껴졌다.

    괴인은 그 말을 끝으로 눈을 감고 있었다.

    ‘흐음, 곤란한데.’ 

    세간에는 회색사신이라고 불리고 있지만, 나에겐 직접 무언가를 죽이는 능력은 없었다. 

    그럼 왜 사신이라고 불렸냐고? 

    나에겐 대상을 손쉽게 죽이는 방법을 알게 되는 능력이 있었다. 그것도 대상이 오브젝트가 아닐 때나 쓸 만하지, 대상이 오브젝트면 힌트를 얻는 수준에 불과했다. 

    안타깝게도 죽음을 바라는 다락방의 괴인은 인간이었을지 몰라도 이미 오브젝트에 한없이 가까운 상태였다. 그래서 그의 죽음은 나에게 이렇게 보일 뿐이었다.

    [불로 만든 경단의 원천을 파괴]

    불로 만든 경단? 그게 뭔데? 

    사실 이 집 안에 있는 괴인들은 모두 같은 죽음의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밖에서 난리를 치고 있는 괴인도 마찬가지. 같은 오브젝트에서 파생된 녀석들이라는 뜻이겠지. 

    다락방 괴인의 소원을 들어 주고 싶어도 ‘경단의 원천’이 뭔지를 모르니 들어 줄 방법이 없네.

    다락방을 뒤로하고 이 수상한 저택을 샅샅이 뒤졌다. 그래서 알게 된 것은 별로 많지는 않았다.

    이 저택에 괴인은 총 8명.

    저택은 두 개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고 지하실은 없음.

    괴인이 감금된 방에는 언제나 음식물이 가득했다. 하지만 아무도 먹지 않음. 

    괴인들은 모두 피골이 상접해 있다. 그래도 죽을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분명히 이 집에 세희가 있을 것 같은데, 어디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괴인이 헛소리를 할 때, 불이니 뭐니 했던 것 같은데. 

    그거 지하실에 가서 가져오라고 했던가?

    그런데 이 집에는 지하실이 없단 말이지, 어딘가에 숨겨져 있는 건가? 

    ***

    냄새가 난다.

    아주 맛있는 냄새가.

    분명 끔찍하고 불안한 상황인데, 그 모든 것을 잊을 만큼 맛있는 냄새가 난다. 저 사람을 태우고 있는 돼지 상에서 나는 냄새.

    오브젝트가 매력적인 무언가를 가졌다면 절대로 그것에 현혹되어선 안 된다. 

    오브젝트 연구자라면 누구나 알법한 말이다.

    하지만 그걸 알고서 맡아도 정말 맛있는 냄새였다. 애써 눈을 감고 최대한 돼지상과 멀리 떨어져서 앉았다. 

    조금만 정신을 놓아도 쇠창살 밖으로 손을 내미는 자신을 볼 수 있었다. 조금만 생각해 봐도 절대로 손이 닿을 거리가 아닌 것을 알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그르르륵

    거칠게 돌이 긁히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또, 노인이 들어온 건가? 하고 생각했더니 전혀 다른 발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돌과 맨살이 부딪치는 소리. 찰박찰박하는 발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거 자주 들어 본 소리 같은데?’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들어 보던 소리에 익숙한 리듬감이었다.

    설마.

    설마설마설마.

    창살을 잡고 최대한 계단 쪽으로 고개를 뻗었다.

    계단에 달린 희미한 등불에 드리운 그림자가 익숙한 실루엣을 그려 낸다.

    “사신아!”

    반가움에 소리를 질렀다. 

    연구소에 있어야 하는 회색 사신이 왜 여기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저 반가웠다. 사신이가 여기에 있다면 연구소 격리를 빠져나온 셈인데, 큰 문제가 될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보다는 이제 살 수 있다는 기쁨이 훨씬 더 컸다.

    내 목소리를 들은 건지 사신의 발자국 소리가 더욱 빠르게 울리기 시작했다. 

    ‘사신이가 왔어!’

    기대감에 내 심장도 더욱 빨리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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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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