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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

       양혜인은 사라가 어렸던 시절부터 그녀를 모셔 온 가정부는 아니었다. 유명한 대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그녀는 원래 유진 그룹 산하의 한 회사에 취업하는 것으로 결정되어있었다. 대한민국의 재계 전체를 좌지우지한다는 유진 그룹답게, 그녀가 들어갈 회사도 대기업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처음으로 출근한 날, 인사과 직원이라는 사람이 그녀에게 말을 걸면서 양혜인의 인생이 완전히 뒤집히게 되었다.

       

       회장님의 수양딸을 보필하는 가정부가 되어달라는 요청.

       

       거절하더라도 불이익은 없을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만약 수락하게 된다면 회사 내에서 경력을 쌓는 것은 불가능하다. 상대가 어찌 되었건 직장 자체는 ‘가정부’였기에, 언젠가 직장을 그만두고 다른 직장을 얻을 때 경력으로써 도움이 될 리도 없었다. 정서가 불안정한 ‘아가씨’를 24시간 보필하여야 하므로 휴가를 제때 쓸 수도 없었고, 자신보다 한참 어린 ‘아가씨’에게 시종일관 예의를 갖추고 존댓말을 써야 했다.

       

       좋은 대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이제 막 대기업에 들어온, 한창 자존감이 드높아진 그녀에게 그 제안은 별로 매력적인 제안은 아니었다. 아니, 굳이 자신에게 그런 제안을 하는 이유를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말도 안 되는 제안이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그 직후 인사과 직원이 내민 계약서 내용을 읽자마자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그곳에는, 적어도 그녀가 1년을 일해서는 절대로 벌 수 없는 금액이 적혀있었으니까.

       

       아니, 1년이 아니라, 어쩌면 5년, 혹은 10년을 일해도 벌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런 액수가, 아무렇지도 않게 ‘연봉’으로 제시되어 있었다.

       

       “누구에게나 하는 제안은 아닙니다.”

       

       직원은 계약서를 보고 손을 덜덜 떨고 있는 양혜인을 유심히 살피면서 말했다.

       

       “아가씨의 사생활을 직접 보는 사람으로서 당연히 기밀 유지서약을 하게 되겠죠. 또, 가정부로 투입되기 전에 적절한 수준의 예절교육도 있을 예정입니다. 무엇보다, 아가씨가 어디에 가더라도 누구든지 상대해낼 수 있도록 보좌해 줄 능력이 필요하기도 하죠.”

       

       그렇기에 우리는 당신을 선택한 겁니다.

       

       그게, 인사과 직원의 말이었다.

       

       “…….”

       

       결국, 양혜인은 그 제안을 수락하고 말았다.

       

       *

       

       잔뜩 긴장하고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는, 자신이 생각보다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맡게 된 ‘아가씨’는 예상보다 훨씬 조용하고 말 잘 듣는 타입이었으니까. 무언가 해야 할 일정이 있으면 절대로 거절하지 않는다. 어디로 가자고 하면 가고, 먹자고 하면 먹고, 쉬자고 하면 쉰다.

       

       막대한 돈을 준다고 하기에, 처음에는 어린 나이부터 갑질을 하는, 예의범절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아이를 떠올렸었다. 자신보다 나이가 한참 많은 운전기사나 가정부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욕을 하는 재벌가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가 종종 뉴스에 나오곤 했으니까. 하지만 그녀가 맡은 사라라는 아이는 그런 아이들과 비교하는 것부터가 실례였다.

       

       게다가 그렇게 얌전한 성격이다 보니, 사라 자신이 가지고 있는 귀여운 외모가 더욱 돋보였다. 처음 몇 주 동안은, 양혜인은 자신의 행운에 감사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몇 주, 몇 달이 지나며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채기 시작했다.

       

       사라라는 아이는, 원하는 것이 없다.

       

       그 나이대 아이들이라면 당연히 원하는 것, 그러니까 어딘가 놀러 가고 싶다거나, 뭔가 먹고 싶다거나, 가지고 싶다거나 하는 요구를 전혀 하지 않았다. 누군가 뭔가를 시키지 않으면 하지 않았다. 취미라고 해봐야 가끔 자신의 노트에 뭔가 적으며 앉아 있는 것이 다였고, 저택 밖으로 나가는 일도 없었다.

       

       유별나게 감정이 적은 아이인 걸까?

       

       아니, 그런 이유가 아니었다.

       

       사라와 같이 있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양혜인의 눈에는 그 아이가 처한 환경이 하나하나 세세하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 커다란 저택에서 살고 있는데, 고용인 외에 다른 사람이 일절 방문하지 않는다.

       

       사라의 친척은 둘째치고, 심지어 그녀의 양어머니마저 한 번도 그녀를 찾아오지 않았다.

       

       양혜인을 제외한 고용인들은 사라와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사라는 그것이 당연하다는 듯, 다른 이들에게 말을 걸지도 않았다. 저택 안은 거의 항상 침묵에 잠겨있었다.

       

       유진 그룹의 회장은 무엇이 그리도 바쁜지, 사라에게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녀의 얼굴을 보러 오지 않았다.

       

       학교에서 참관 수업이 있어도. 그녀가 갑자기 고열에 시달려도. 심지어 사라의 생일에도 전화 한 통 하는 일이 없었다. 일 년에 몇 번, 마치 정기 검사하듯 찾아오는 경우 아니면 일부러 연락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아, 전화라고 하면, 가끔 하긴 했다.

       

       한 번, 사라가 너무 아파서 학교를 빠진 적이 있었다. 그날 오후, 회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실망했다.]

       

       전화의 내용은 그게 다였다.

       

       “……죄송합니다, 어머님.”

       

       사라는 그렇게만 대답했다.

       

       전화가 끊어지고, 스마트폰을 받아든 양혜인이 물러나고 나서, 한동안 문밖으로 서럽게 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제야, 양혜인은 사라의 얌전함이 그저 성격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라는 세상으로부터 격리되어있었다.

       

       그것도 아주 세심하고 섬세하게, 그녀를 세상과 이을 수 있는 대부분을 차단하고 있었다.

       

       그 거대한 저택에는 흔한 TV 하나 없었다. 컴퓨터가 있었지만, 필요한 순간이 아니면 사용할 수 없게 막혀 있었다. 사라의 스마트폰은 언제나 양혜인이 가지고 다니는 것이 원칙이었다.

       

       사라는 저택 밖으로 나가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녀가 혹시라도 나가고 싶어 할 때의 직원 지침이 이미 마련되어있는 것을 보고 양혜인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사라가 먹는 음식은 언제나 최고급 재료를 이용해서 만들었지만, 사라가 원하는 것을 고려하지는 않았다. 사라가 먹고 싶은 것을 말하지 않는 것은, 그런 것을 말해도 자신의 요구를 들어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고 그냥 포기해버린 탓이었다. 원하는 것, 입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 모두 마찬가지였다.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그저 극도로 무기력한 상태.

       

       그게 양혜인의 눈으로 본 예사라의 본모습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라와 바깥세상을 연결해주는 유일한 고리는 그녀의 유일한 가족인 유진 그룹 회장, 최나경 하나뿐이었다.

       

       마치 자신의 인형이 망가지지 않았나 살피기라도 하는 듯 분기별로 한 번씩 짧게 저택을 방문할 때마다, 그녀는 자신의 양녀에게 최소한의 애정을 보여주었다.

       

       “사라, 이리 오렴.”

       

       그녀가 손바닥을 위로 하여 내밀며 그렇게 말하면, 사라는 마치 주인을 기다리던 강아지처럼 기쁜 듯 뛰어나와 그 손에 얼굴을 부비는 것이다. 어머님, 이라는 호칭을 쓰면서.

       

       ……소름 끼치는 광경이었다.

       

       양혜인은 그 광경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그때가 되어서야, 양혜인은 사라를 둘러싸고 있는 이해할 수 없는 환경이 어떤 이유로 조성된 것인지 알 것 같았다.

       

       *

       

       그런 광경을 보아온 양혜인이었기에, 요즘 들어 사라가 하는 행동이 몹시 낯설었다.

       

       어느 날 갑자기 비명을 지르고 정신을 잃어 병원에 갔더니, 한 번도 본 적 없는 멍이 그 소녀의 등을 뒤덮고 있었다. 그녀를 매일 바라보는 양혜인은 그런 상처가 대체 언제 생겼는지 알 수가 없었다.

       

       가정폭력을 의심하는 의사에 의해, 그리고 그 의사가 부른 병원 보안팀에 의해 응급실에서 쫓겨나 한동안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사라와 최나경이 전날에 만났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최나경은 절대로 사라에게 손찌검하지는 않았다. 그저 마치 사라를 사랑해줄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자신뿐이라는 양, 약 15분 정도 되는 시간 동안 마치 강아지와 놀아주듯 놀아주고 간 것이 다였다. 그 과정을 양혜인은 바로 옆에서 지켜봤기에 사라에게 절대로 그런 상처가 생길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저택의 누군가가……?

       

       아니. 양혜인은 다시 한번 고개를 저었다.

       

       사라의 방에 들어갈 권한을 가진 것은 저택 안에서도 양혜인밖에 없다. 방문은 닫으면 자동으로 잠기고, 안이라면 몰라도 밖에서 열기 위해선 도어락 비밀번호를 입력하거나, 등록된 지문을 입력해야 했다. 사실 그건 사라의 안전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누가 함부로 사라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하려는 조치였지만, 아무튼 덕분에 사라가 저택 내의 인물들로부터 안전한 것도 사실이었다.

       

       비밀번호를 입력하거나 지문을 입력할 때 소리가 나지 않도록 만들어진 정숙한 도어락이었지만, 비밀번호를 아는 것은 양혜인 혼자뿐이었다. 누구에게 알려준 적도 없다. 당연히 방을 몰래 들어가 사라에게 몹쓸 짓을 할 수 있는 인간도 없었다.

       

       무엇보다, 그런 짓을 했다면 CCTV 기록을 찾아보는 것으로 바로 범인을 색출할 수 있을 테니까. 이 저택의 폐쇄회로 카메라의 영상은 누군가 함부로 삭제할 수 없도록 데이터가 여러 PC에 분산되어 저장된다. 함부로 지울 수도 없다는 뜻이다.

       

       애초에 아이를 감시한다는 떳떳하지 못한 이유로 설치된 카메라였으니, 만약 데이터를 지운다면 오히려 경찰에게 조사받아야 할 순간이다. 그 전에 누군가가 데이터를 지운다면, 그건 그저 자신이 아이를 감시하는 것보다 더 떳떳하지 못한 짓을 했다는 근거가 되었다.

       

       그리고 아마도, 회장은 그런 이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그건 이 저택에서 일하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법보다 가까운 것이 주먹이고, 그 주먹보다 더 급한 것이 돈이다. 회장에게는 그런 돈이 매우 많았다.

       

       이 저택에서 근무하는 이들 모두, 아무 곳에서나 데리고 온 이들이 아니었다. 양혜인처럼 자신의 출신에 자부심을 가질만 한 이들을 많은 돈을 주고 사 와서 모아둔 곳이다. 이곳에서 일한다는 선택지를 함부로 포기할, 더 나아가서 자신의 앞으로의 삶을 포기할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양혜인은 사라의 몸에 난 상처를 ‘자해’로 결론 내렸다.

       

       결론을 내린 그녀의 행동은 빨랐다. 그녀는 곧장 자신의 전화를 들어 경호팀을 불렀다.

       

       *

       

       ……이러한 여러 가지 요인이 겹쳐서, 처음에는 결국 사라가 완전히 망가져 버린 것이 아닌가, 하고 고민했다.

       

       “상태창!”같은 이상한 말을 한다던가, 갑자기 양혜인에게 말을 건다던가.

       

       평소라면 양혜인이 먼저 말을 걸고, 사라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거나 단답형으로 짧게 대답했었는데.

       

       방법은 몰라도 등이 새파랗게 변할 정도로 자해하고, 밤에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발작하는 것을 보면 그렇게 생각해도 전혀 이상한 것이 없었다.

       

       하지만 지난 두 달간, 사라는 생기가 넘쳤다.

       

       “식사 끝났는데, 돌아가도 되겠죠?”

       

       지난번 만남 때는 윤다호가 무슨 소리를 해도 그저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 말도 못 하던 그녀가, 혼자 식사하더니 양혜인에게 그렇게 ‘요구’했다.

       

       “예, 회장님.”

       

       여태까지 ‘어머님’이라고 부르던 회장에게, 처음으로 그런 단어를 썼다.

       

       “오늘 사진 한 장 못 찍는 줄 알았는데, 덕분에 찍었네. 고마워.”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약 3년간 사라의 옆에 붙어있던 양혜인이었지만, 대체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 변화하게 만들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전혀 알 수는 없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면, 그 변화를 결코 부정적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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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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