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5

       서아의 손을 잡고 미로를 돌아다니기 벌써 몇 시간째, 계속해서 같은 미로의 구조만 반복될 뿐이었다.

         

        분명 괴물들이 나오던 곳과 반대쪽으로 쭉 가고 있는 게 분명한데도 계속 뱅글 뱅글 도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괴물 같은 건 나오지 않았다는 것일까.

         

        하지만 아무것도 없다 보니 점점 힘들었다.

         

        괴물 빼고 뭐라도 나와줬으면 좋겠다.

         

        “서, 서아야… 안, 힘들어요 아니, 힘들어 …?”

         

        “응… 괜찮아…”

         

        “어, 응…”

         

        계속해서 이런 말의 반복이었다.

         

        애초에 남과 대화도 제대로 해보지 못했던 나였다.

         

        누군가와 말을 이어 나간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래서 그럴까.

         

        서아는 답답했나 보다.

         

        “언… 오빠는 오빠가 맞아요?”

         

        “어, 어? 무슨 말을 하는, 하는 걸까..?”

         

        순간적으로 들어온 서아의 질문에 나는 잠시 당황했다.

         

        얘가 설마 나를 의심하는 걸까?

         

        의심 안 받으려고 나이를 속인 건데 설마 들킨 건가?

         

        얘가 날 미워하면 어떻게 하지?

         

        어어.

         

        안 되는데.

         

        “성별이요… 오빠인지 언니인지 헷갈려서요.”

         

        “아, 아…! 나, 나는 남자야…”

         

        “아아… 그렇구나…”

         

        내가 성별이 헷갈리게 생겼던가?

         

        잘 모르겠다.

         

        거울도 잘 안 보고 살아서 말이다.

         

        뭐, 서아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근데… 아까 전에는 왜 사람들이랑 싸운 거야…?”

         

        “어, 으응?”

         

        “아까 전에, 다른 사람이 오빠를 때렸잖아. 막 오빠 이름도 부르고 그랬던 거 같은데… 이 설인가?”

         

        솔직하게 이야기 해야 하나?

         

        아니.

         

        아니야.

         

        지금 솔직하게 말해서 서아를 무섭게 할 필요는 없겠지.

         

        할 수 있으면 끝까지 숨겨보는 거야.

         

        “그, 그건… 어… 자, 잘 모르겠어…”

         

        “으음… 알겠어. 그럼 오빠는 뭐 하다가 여기에 왔어? 나는 학원 끝나고 집 오는 길이었는데…”

         

        “어, 음. 나는…”

         

        서아는 이제 떨림이 어느 정도 진정이 되었는지, 나에게 궁금한 것 만을 잔뜩 물어봤다.

         

        그 나이대에 호기심 많은 모습.

         

        그래.

         

        아이는 이런 순수함이 있었다.

         

        그런 나이의 순수함을 지켜주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힘들었지만 계속해서 그 아이의 질문에 대답을 해주었다.

         

        물론, 어린아이가 듣기에 나에 대한 정보는 너무 부적절한 것이 많아서 전부 꾸며낼 수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꽈악.

         

        그렇게 서아와 이야기를 할수록, 아이가 붙잡은 손의 세기가 점점 강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아직.

         

        그래도 여기가 많이 무서운 것 같았다.

         

        지금은 의지할 사람이 나밖에 없고 말이다.

         

        그때였다.

         

        “오, 오빠…! 저기…!”

         

        서아가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빛.

         

        노란 빛.

         

        멀지 않은 벽의 코너에서.

         

        노란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처음으로.

         

        무언가를 발견했다.

         

        다행이다.

         

        착각이 아니었구나.

         

        계속 빙빙 돈다고만 생각했는데.

         

        그래도 제대로 가고 있었구나.

         

        나는 그리 생각하며 서아와 그 빛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물론, 저기에 뭐가 있을지는 몰랐다.

         

        괴물이 있을 수도 있고.

         

        하지만, 그래도 피해서는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박.

         

        사박.

         

        나는 숨을 죽이며 그 회색 벽의 코너에 다다랐다.

         

        서아도 똑똑해서 그런지, 내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는 조용히 나를 따라왔다.

         

        “후으…”

         

        긴장됐다.

         

        단순히 코너 안쪽을 빠르게 바라보는 것일 뿐인데도 긴장됐다.

         

        정말 괴물이 있으면 어떻게 하지?

         

        지금 아무 소리도 들리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걱정이 됐다.

         

        ‘내 능력이 괴물한테도 통할까?’

         

        그리 긴장하고 있자니 문득 떠오른 아이디어.

         

        독심.

         

        남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나의 능력.

         

        사용했을 때, 머리가 찢어질 것 같았던 그 능력.

         

        어떻게 하지?

         

        사용해야 하나?

         

        머리 엄청 아팠는데.

         

        또 아프면 어떻게 하지.

         

        괴물한테 통한다는 확신도 없는데.

         

        걱정이 물 밀듯이 올라오는 그 순간.

         

        꽈악.

         

        내 손을 잡은 그 작은 손의 온기가 거세졌다.

         

        서아였다.

         

        서아는 긴장한 나를 달래고 있었다.

         

        그래.

         

        일단 해보는 거야.

         

        나는 내 능력을 발동했다.

         

        [특성 ‘독심’을 발동합니다.]

         

        그리고.

         

        [오빠가 무서워 하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하지…? 내가 봐야 되나?]

         

        [그래도 무서운데 어떻게 하지…!]

         

        다행히도.

         

        머리가 아프지는 않았다.

         

        내 머릿속에 들어오는 서아의 생각.

         

        하지만, 그녀의 생각만 들어올 뿐,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들려오지 않았다.

         

        더.

         

        잘 모르겠다.

         

        괴물의 생각은 없었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지금이라도 그냥 다시 돌아갈까?

         

        바라봤는데 괴물이랑 눈 마주치면 어떻게 하지?

         

        또다시 불안이 찾아왔다.

         

        식은땀이 나고, 심장 박동이 계속 늘어났다.

         

        그 상황에서.

         

        [그냥 내가 봐야겠다.]

         

        “어, 어…!”

         

        서아가 내 손을 놓고 코너에 머리를 들이밀었다.

         

        순간 당황한 나 역시 서아를 따라 코너 안쪽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우리는 볼 수 있었다.

         

        [먹을 거…?]

         

        탁 트인 크지도 작지도 않은 공간.

         

        그 중앙에 놓여져 있는 노란 등불.

         

        그리고 그 옆에 놓여져 있는 여러 포대.

         

        마지막으로.

         

        상자 위에 놓여져 있는 빵.

         

        식량이었다.

         

        ***

         

        “시현 씨, 일단 다들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은 것 같네요. 여기서 계속 있을 계획인가요?”

         

        “일단은 그렇습니다. 우선 전투가 가능하신 분들을 위주로 팀을 꾸려 이곳 바깥을 조사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다른 곳에도 식량이 있을 수 있으니까요.”

         

        이시현은 그리 말하며 강아현의 반응을 살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녀는 유일하게 상태창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었으니까.

         

        [능력 ‘염탐’을 발동합니다.]

         

        [알 수 없는 힘으로 염탐의 발동이 실패합니다.]

         

        염탐.

         

        이번 회귀를 통해 새롭게 얻은 능력.

         

        이 능력은 다른 이들의 상태창을 염탐하기 굉장히 유용한 능력이었다.

         

        하지만.

         

        그 어떤 방법을 사용해도 살펴볼 수가 없었다.

         

        ‘도대체 정체가 뭐지?’

         

        그녀에 대한 의심이 절로 생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쁜 의심은 아니었다.

         

        어쨌거나 그녀는 수백 회차 동안 자신을 배신한 적이 없으니까.

         

        오히려 여러 회차 동안 자신을 희생하여 여러 번 목숨을 구해줬다.

         

        그러기에 단지.

         

        그녀의 정체가 궁금한 것이었다.

         

        “흐음… 저희 말고 다른 생존자 그룹이 있을까요?”

         

        “도망친 사람들을 말하는 겁니까?”

         

        “아니요. 저희처럼 100명이 넘게 대규모로 소환된 사람들이요.”

         

        있다.

         

        우리 말고도 100명이 넘게 소환된 그룹은 여럿 있다.

         

        하지만, 이번 회차에서 우리는 그들을 마주친 적이 없었다.

         

        애초에 이 미로 자체가 워낙 큰 것도 있고, 무엇보다 우리만큼 많이 생존한 이들도 없었다.

         

        정말 찾겠다는 의도로 이 미로를 쑤시고 다니면 발견이야 할 수 있겠지만, 이시현은 그러지 않길 원했다.

         

        지금까지 전부 안 좋은 일만 발생했으니까.

         

        “왜 그런 생각을 하십니까?”

         

        “이 미로요.”

         

        “네?”

         

        “너무 크다는 생각 들지 않습니까?”

         

        “무슨 뜻이죠?”

         

        “겨우 100명을 넘어가는 인원을 위해서 이 정도 규모의 공간을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아서 말입니다.”

         

        “그렇… 군요…”

         

        역시.

         

        이 여자는 상당히 똑똑했다.

         

        단순히 그 정도의 유추 만을 가지고 다른 소환자들의 유무를 유추하다니, 차라리 그녀가 회귀자 같을 정도.

         

        이시현이 왜 매 회차마다 그녀를 영입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저는 그런 건 잘 모르겠습니다.”

         

        “뭐, 신경 쓰지 마세요. 그냥 제 생각을 이야기 할 뿐이니까요. 근데 어딜 그렇게 가시는지?”

         

        “생존자 찾으러 갑니다.”

         

        “네?”

         

        “도망친 생존자 분들이요. 일단 찾아야죠.”

         

        “아.”

         

        “일단 이곳의 운영은 아현 씨에게 부탁 드리겠습니다. 보시다시피 유능한 사람이 아현 씨 밖에 없어서요.”

         

        “그럼 혼자 가실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어차피 저 혼자 있어도 괜찮을 것 같아서요.”

         

        11레벨.

         

        그녀는 첫 몬스터 웨이브에서 사람들을 지켜내며 몬스터를 많이 죽여왔다.

         

        그 덕에 그녀의 레벨은 남들 보다 월등히 높아진 상태.

         

        홀로 이곳을 돌아다녀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만약 이곳에 문제가 발생하면, 아현 씨가 나서서 사태를 진정 시켜주실 수 있습니까? 제가 잠시 보니까 아현 씨도 레벨을 어느 정도 올리셨을 것 같아서요.”

         

        몬스터 웨이브에서 자신을 빼고 유일하게 제 한 몸을 지켜낸 여자였다.

         

        그만큼 레벨도 꽤 올렸을 터, 이곳에서 폭력 사태가 발생한다 한들, 강아현은 무난하게 진정시킬 수 있을 것이었다.

         

        “뭐… 알겠어요. 해보죠.”

         

        “감사합니다.”

         

        이시현은 그리 말하며 이 공간을 벗어났다.

         

        지금 이곳은 미로의 끝자락.

         

        더 이상 갈 곳 없는 아득한 회색 벽으로 막힌 공간이었다.

         

        ‘그럼 일단… 서아부터 찾아야 겠네.’

         

        [능력 ‘추적’을 발동합니다.]

         

        [대상의 위치가 표시됩니다.]

         

        추적.

         

        닿은 대상의 위치를 3초 간 표시해 주는 엄청나게 유용한 능력이었다.

         

        그녀는 이전에 모든 아이들에게 신체 접촉을 진행했고, 그건 서아도 마찬가지.

         

        수많은 회색 벽들 사이로 조금씩 움직이는 빛을 보며 이시현은 안도했다.

         

        ‘살아 있었구나.’

         

        그럼 일단, 저 방향을 향해 달려 나가기만 하면 됐다.

         

        제발.

         

        계속 그대로 살아있기를.

         

        이시현이 땅을 박찼다.

         

        ***

         

        “오, 오빠! 빵이에요! 빵!”

         

        “그, 그러게.”

         

        나는 아무것도 없이 오로지 빵만 있는 그 공간에서 겨우 안도할 수 있었다.

         

        다행히 괴물은 없었으니까.

         

        정말 다행이었다.

         

        [안 굶어도 된다!]

         

        서아는 빵을 발견한 것이 뭐가 그리 신이 나는지 눈을 반짝 빛내고 있었고.

         

        [아공간!]

         

        이내 눈앞에서 쌓여있는 빵 수백 개를 없애버렸다.

         

        “어.”

         

        어어.

         

        음식이 없어졌다.

         

        뭐지?

         

        굶으면 안 되는데…

         

        어디서 들었는데, 사람은 물 없이 3일을 살 수 있다고는 한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물도 없었다.

         

        우리가 먹을 수 있는 건 방금 발견한 빵이었는데,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방금 서아가 뭐라고 했더라…?

         

        아공… 간?

         

        그게 뭐지?

         

        능력인가?

         

        “서, 서아… 야…”

         

        “응?”

         

        “빠, 빵, 은 어디간 거야…?”

         

        “아아! 미안해 오빠!”

         

        그녀는 갑자기 허공에서 빵을 꺼내며 나에게 건넸다.

         

        내가 빵을 먹지 못해 당황한 거라 착각한 거 같았다.

         

        “고, 고마워… 그, 근데 다, 른 빵들은 다 어, 어디 간 거야…?”

         

        “아아! 그건 내 아공간에 있어.”

         

        “아공… 간…?”

         

        “응! 나만 가지고 있는 공간인데. 이렇게 물건을 넣었다 뺐다 할 수 있어.”

         

        우와.

         

        허공에서 검이 나왔다 들어갔다 한다.

         

        엄청 신기했다.

         

        “이게 내 특성이래. 오빠는 특성이 뭐야?”

         

        “나, 나?”

         

        “응!”

         

        [오빠는 특성이 뭐지? 나처럼 신기한 거 일려나? 그랬으면 좋겠다.]

         

        서아의 생각이 머릿속에 들어왔다.

         

        어.

         

        어떻게 하지.

         

        솔직하게 이야기 해야하나?

         

        아니 아니, 근데 분명히 생각을 읽는다고 하면 기분 나빠할 텐데.

         

        어떻게 하지.

         

        어, 음.

         

        다른 능력이라고 거짓말 해야 하나?

         

        그럼 무슨 능력이라고 해야 하지?

         

        그리 당황스러운 고민이 이어지고 있을 때였다.

         

        [배고프다. 인간. 고기. 먹는다.]

         

        이질적인.

         

        아주 이질적인.

         

        인간의 것과 확연히 다른 생각이 들려왔다.

         

        그리고.

         

        “크릉…”

         

        저 회색벽의 코너 바깥에서 미약한 짐승의 콧소리가 들려왔다.

         

        어.

         

        큰일났다.

         

        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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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gret of the Regressor Who Killed Me 523 Times

The Regret of the Regressor Who Killed Me 523 Times

나를 523번 죽인 회귀자가 후회한다
Status: Ongoing Author:
After being falsely accused of being a sex crime murderer and serving time, I was summoned to another world. There, I awakened the ability to read minds and found out there was a regressor. But that regressor was regretting something about me. Why is he acting this way towards me? I don't underst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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