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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

        

         “풉……. 깡통은 무슨.”

         

         겨우 케어봇의 연산 장치와 메모리로. 용케 저 많은 기계들을 제어하는 묘기를 부리고 있으면서, 내가 욕하는 대로 자신을 깡통이라 지칭하는 모습에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삑! 삐빅…!!

         

         통제실 패널을 조작해, 연구소 레이더의 탐지반경을 확대했다.

         모니터에 표시되던 적 호버크래프트의 숫자가 차츰 늘어난다. 그 수는… 하나… 둘… 셋…?

         

         씨발. 연구소에 무슨 꿀단지라도 숨겨 놨냐?! 아니면, 그게 혹시 나인가?

         

         “……깡통아, 이거 보고 있어?”

         

         – 죄송합니다. 저는 지금 연구소 네트워크 접속에 할애할 메모리가 남아있지 않습니다. –

         

         “뭐야. 그럼 통신 채널만 열어놓은 거야?”

         

         – 그렇습니다. –

         

         참나. 무슨 맹인 검객이 따로 없으시다.

        해킹 차단 및 방어 시스템 조종을 맡긴 걸로도 모자라, 자신의 눈과 귀 역할까지 거침없이 떠넘겨버리다니. 나를 완전히 후방 오퍼레이터로 부려먹겠다는 심보가 괘씸해 죽겠지만, 한편으론 이제야 좀 관계가 동등해진 것 같아서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래. 세상에 단 하나뿐인 네오 헤이븐 정복자님을, 무슨 공주 취급하려 들면 안 되지…!

       

       

         “접근중인 호버크래프트는 총 3대. 주변에 다른 건축물은 없고, 모래 투성이인 걸 보면… 여긴 설마 황무지 구역…? …호버크래프트 한 대는 절대 파괴하지 마. 우리가 써야할 테니까.”

         

         – 확인했습니다. –

         

         대답을 듣자마자, 볼일이 끝난 레이더 화면은 옆으로 치워버리고 지금 당장 필요한 시스템에 접속했다. 우물쭈물할 시간이 없다.

         

         [ 연구소 방어 시스템 손실률 계산 중……. 손실률 19% ]

         [ 전 자동화 포탑 재부팅 개시 ]

         [ 통로 제어용 격벽 및 플라즈마 배리어 작동 가능 ]

         

         “!!”

         

         나도 모르게 기쁨의 비명을 내질렀다.

         기업의 연구소는 크게 두 종류로 볼 수 있다. 하나가 안에 갇힌 것들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는 감옥이라면, 나머지 하나는 안에 들은 걸 지키기 위한 요새. 설령 전자였더라도 손실률이 이렇게까지 낮다면 거의 폭격을 퍼부어줄 수 있는데, 모니터에 표시되는 포탑 숫자를 보면 이 연구소는 단연코 후자였다.

         

         놈들이 사거리 내로 들어오면 말그대로 지옥문을 열어주리라…!

         

         삑!

         

         손짓한번에, 깡통 근처의 연구소 외부 타일들이 차례대로 뒤집히며 숨어있던 포탑의 아름다운 자태를 공개했다.

         

         위이잉 하는. 적에게는 불길하지만, 우리에겐 더없이 든든한 포신 돌아가는 소음과 함께. 두 자릿수는 족히 넘는 포탑들이 접근하는 호버크래프트들을 겨냥했다.

         

         “깡통아…! 대체 뭘 그리 걱정한거야? 이 압도적인 화력을 가지고!”

         

         – …미스 아나스타샤, 잔여 전력량에 주의해주십시오. 닥터 마카로비치께서 발전기를 과부하 시켜 지하 층을 초토화했기에, 자원이 그다지 여유롭지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

         

         “?! 야이씨…!!”

         

         진짜다. 모니터 구석에 떠있는 경고등은 적의 접근을 알리는 게 아니라, 이대로 내버려두면 연구소 시스템이 자기는 자살하겠다고 시위하는 거였다.

         

         다급한 손놀림으로, 시설 여기저기로 줄줄 새고 있는 비상전력을 전부 끊어버렸다. 아니, 사실상 방어와 통신 시스템을 제외하고는 전부 절전모드로 돌려버렸다.

         

         [ 잔여 전력량 23% ]

         

         “하… 할 만해…!”

         

         간신히 준비가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 호버크래프트들이 연구소 부지내로 진입했다.

         한데… 이상하다. 나야 급하게 전력 배선을 조절하느라 공격 시기를 놓쳤다지만, 애들은 왜 총알 한발, 미사일 한발 안 쏘고 당당하게 진입하는 걸까?

         

         – 어썰트 라이플 사거리 내 적 접근. 섬멸을 개시하겠…. –

         

         “잠깐! 잠깐만 기다려봐…!”

         

         다짜고짜 전투에 돌입하려는 그를 일단 말렸다.

         그리고… 차량안에 탑승하고 있던 놈들이 일사불란하게 하차하기 시작하자, 내 의문이 풀렸다.

         

        모습을 드러낸 적들은 추적자 부대가 아니었다. 추적자가 셋 포함된 부대였지…!

         

         “흠! 델타 섹터 연구소는 못 보던 드로이드 모델을 쓰는군. 선행한 회수팀의 신호는?”

         “전부 지하에서 멈춰 있습니다!”

         “적어도 방어 시스템 오작동은 아닌 모양이군. 좋아, 전원. 진입! 통제실부터 확보한다!”

         

         풀페이스 헬멧에 울퉁불퉁한 컴뱃 아머를 입은 추적자 하나가, 대표로 다른 직원들에게 명령을 내린다. 방탄복에 바이저만 걸친 경무장을 보면, 명령받는 이들은 아마 보안팀이나 예비 회수팀이겠지.

         

         그런데, 이 새끼들….

         핏자국 하나 없는 연구소 정문, 철통같이 버티고 선 드로이드, 침묵하는 포탑을 보더니 안심하고는 그냥 마구잡이로 다가온다. 해킹된 흔적도 없으니 안심한 모양인데, 우리는… 원래부터 니들의 적이었단다!

         

         “…충분히 가까이 다가오면, 바로 시작해. 내가 알아서 호응할께.”

         

         – 확인했습니다. –

         

         철컹! 철컹…!

         

         멈춰 있던 드로이드들이 움직이고, 라이플이 겨눠지자마자, 추적자들도 번개같이 반응해 깡통에게 총구를 겨눴다.

         

         “…뭐냐.”

         

         – 경고. 이곳은 에나마 코퍼레이션의 사유지입니다. 허가 받지 않은 인원은 즉시 사살될 수 있습니다. –

         

         “…별 거지 같은 성능의 드로이드가 다 있군. 경비 로봇이 자동 스캐닝도 안 하다니.”

         

         – 경고. 홀로그래픽 스캐너, 고장. 신원확인에 불응할 경우, 즉시 사살될 수 있습니다. –

         

         “후우우…….”

         

         대표로 나선 추적자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이내 헬멧을 벗고 신원조회하기 쉽도록 말본새 만큼이나 못생긴 얼굴을 들이댔다.

         

         “에나마 코퍼레이션 소속, 추적자 반즈다. 사원번호 ECS-6549422. 이제 됐나? 빨랑 꺼지….”

         

         – 협조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미스터 반즈. –

         

         탕—!!

         퍼석!

         

         초근거리에서. 대구경 어썰트 라이플에 직격당한 반즈의 머리가 잘 익은 수박처럼 터져 나갔다.

         자아를 발현한 AI는 이렇게나 위험하니, 꼭 지옥에선 기억하도록.

         

         “!! 컨택!! 컨태에에엑—!!”

         “이런 씨팔!!”

         

         드르르르르르륵!!!

         쾅!!

         퍼벙—!!

         

         양측의 총구가 미친듯이 서로에게 불을 뿜었다.

         에나마 사의 현장요원들답게 신체 개조도 수준급인 놈들은 재빨리 산개하며 엄폐물을 찾았다. 하지만 내 목표는 오직 남은 추적자 두 놈 뿐. 다른 잔챙이들은 골리앗을 뚫지 못하니, 체급으로 찍어 누를 수 있다.

         

         위이잉!

         

         추적자 하나가 숨은, 엄폐물의 뒤쪽에 있는 포탑을 작동시켰다. 아무리 괴물 같은 힘과 속도를 지닌 놈이라 해도, 옆으로 드로이드들의 총알이 빗발치는 와중에 다른 곳으로 피하진 못하리라 생각했는데….

         

         “흡…!!”

         

         끼이이익!!

         콰앙—!!

         

         “!! 저게 무슨…!”

         

         놈은 망설임없이 한 손으로 포신을 붙잡고는, 그대로 우그러뜨려버렸다. 덕분에 탄이 막힌 포탑은 터져 나갔고, 내 속도 같이 터졌다. 이 귀중한 기회와 전력을 이렇게 날리다니…!!

         

         [ 잔여 전력량 21% ]

         

         “시끄러워…! 깡통아!! 고개 숙이고! 추적자 한 명이 골리앗을 노리니까 조심해!!”

         

         – 확인했습니다! –

         

         드르르르르르륵—!!

         

         드로이드를 하나씩 정리하던 잡병들을 향해 시원하게 제압사격을 한번 긁자, 어쭙잖게 총만 내밀고 응사하려던 놈들의 팔이 몸에서 싹 분리됐다. 그 틈에 깡통은 골리앗의 다리 사이로 파고들어, 경고받은 대로 추적자를 상대하려고 했지만….

         

         쾅!!

         

         “반즈 새끼…! 이런 거에 죽다니!!”

         

         – 섬멸합니다…! –

         

         콰직!

         

         대포알처럼 사출된 추적자의 주먹이 깡통의 라이플을 날려버렸다. 하지만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마찬가지로 자신을 향해 겨눠진 추적자의 기관단총 총구를 그의 등에서 나온 톱날이 갈아 끊어버렸으니. 원거리 무기를 잃어버린 추적자의 손이 쭉 뻗어졌다.

         

         “안 돼!”

         

         당장이라도 그의 머리가 끔찍하게 뭉개지는 광경이 눈에 선했다.

         어서 피해. 차라리 기계 팔을 하나 내주던가. 포신도 엿가락처럼 구부러트리는 팔에 잡히면 어쩌려고…!

         

        그러나 깡통은 현명하게도, 약한 케어봇의 몸이 아니라. 더 크고 강한 몸을 조종해서 위기를 벗어났다.

         

         투쾅!!

         

         “커헉—?!”

         

         푸화아아악—!!

         

         다른 추적자가 허튼 짓 하지 못하도록, 다연장 로켓을 쏟아내던 골리앗의 거대한 발이 추적자를 뻥하고 차 날린 뒤, 날아가는 궤도를 헬파이어 화염방사기로 지져버렸다. 그로 인해 빈 화망은 내가 재빠르게 포탑을 조종해 메꿨고.

         

         [ 잔여 전력량 16% ]

         

         “이익…! 골리앗의 탄약! 얼마나 남았어?!”

         

         – 85mm 로켓 20발, 화염방사기용 연소제 4L, 소총탄은 곧 떨어집니다. –

         

         “크아아아악—!! 이 좆같은 새끼가아아아—!!”

         

         방어구는 불을 버텼지만, 속살은 그렇지 못한 듯. 검은 연기가 풀풀나는 추적자가 악을 쓰며 포효했다.

         

         기습으로 하나를 제거하고 시작했음에도, 상황이 점점 악화된다.

         

         어중이떠중이들은 대부분 죽거나, 바닥에서 굴러다니는 끔찍한 오브제로 변했지만. 그건 드로이드 측도 마찬가지. 결국 이 미친 싸움의 승패는, 압도적 강자의 유무에 따라 결정되게 되었다. 문제라면 적들은 개조인간이 둘이고, 우리는 탄약 떨어져가는 골리앗 하나와 곧 숨 넘어갈 포탑 무더기뿐이라는 거다.

         

         ……승부수를 던져야 한다.

         

         이대로 지구전을 가봐야, 개조인간이 태울 열량이 떨어지기 전에 우리 쪽의 탄약과 전기가 떨어질 거고. 그게 아니라면 총격에 이미 너덜너덜해진 케어봇의 몸이 파괴당할 것이다. 두 경우를 운 좋게 다 피하더라도, 에나마 사의 지원군이 더 몰려들 게 뻔하고.

         

         “……야.”

         

         – 통신상태 아직 양호합니다. 말씀하십시오, 미스 아나스타샤. –

         

         …아직? 정문 쪽에 달린 감시카메라를 조작해 자세히 살펴보니, 어느새 깡통의 얼굴에 달린 스캐너 중 한 개가 깨져 있었다. 가슴팍에는 냉각수가 줄줄 흐르고 있었고.

       

         

         나도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혼자 안전한 통제실에 숨어, 게임하는 감각으로 장난치는 건, 절대 ‘동등한’ 관계가 아니다.

         

         “또 무식하게 몸으로 틀어막을라 하지 말고! 추적자 한 명, 연구소 안으로 통과시켜…!”

         

         ……내가. 변수를 만들어야 한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기계는 거짓말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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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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