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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

       5. 밥 먹자

       

       

       지상으로 나선 나를 맞이하는 건.

       곰팡이의 습기가 아닌, 새벽이슬의 습기였다.

       

       “스읍- 후-”

       

       적당히 물기가 섞인 시원한 공기.

       새벽 공기는 언제나 기분이 좋다.

       이런 소소한 행복을 느끼지 못했다면, 아마 오래전에 시체가 되었을 거다.

       나는 출근하기 전에 몸을 돌려, 내가 나온 건물을 한 번 둘러봤다.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겠어.”

       

       온갖 곳에 금이 가 있어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5층 높이의 구식 빌라.

       지상, 반지하, 지하까지 세를 받아먹는 상당히 악질적인 건물이다.

       건물이 무너지면 반지하에 있는 사람은 운이 좋으면 살고, 지하에 있는 사람은 무조건 깔려 죽는다.

       

       ‘원래라면 허가조차 나오지 않았을 텐데.’

       

       왜 이런 건물이 철거되지 않고, 아무런 문제 없이 존재하냐고 물으면.

       세상이 차원문의 등장으로 미쳐 돌아가고 있어, 이 정도는 사소한 문제로 여기기 때문이다.

       내가 살고 있는 구역이 20년째 미개발 상태로 있는 개발 구역이라 그렇기도 하고.

       

       ‘원래는 개발 구역으로 선정되었는데, 차원문의 등장으로 취소되었다나 뭐라나.’

       

       그 이후 집값이 낮아져 투자했던 사람도 망하고, 낮아진 월세로 인해 돈이 없는 사람들이 몰려와 슬럼화가 되었다.

       정확한 명칭으로는 이 구역을 서울-09라고 부른다.

       하지만, 서울-09에 살고 있다고 말하면 사람들의 시선이 그리 곱지 않기에, 대충 어디에 사냐고 물으면 다른 지역 번호를 말하곤 한다.

       예전에 강남이라 불렸던 서울-01의 번호를 대면서 말이다.

       

       “쯧, 이런 거지 같은 곳도 빨리 떠나야 하는데.”

       

       주위에 위험이 너무 많다.

       이런 위험한 장소에 계속 살 수 없다.

       터무니 없는 약속을 해버려서, 책임져야 하는 녀석들도 생겼으니 말이다.

       

       나는 건물에서 시선을 떼고, 일을 하기 위해 몸을 돌렸다.

       지금쯤 TV 화면을 보고 있을 녀석들이 걱정되긴 했지만.

       일단, 돈을 벌어 녀석들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사는 것이 우선이다.

       

       “자 그럼, 일이나 해볼까.”

       

       일일노동자의 하루.

       시작이다.

       

       

       ***

       

       

       인간이 존재하지 않는 원룸.

       그 비좁은 원룸을 채우는 건, TV 화면에서 흘러나오는 바깥세상에 대한 정보였다.

       

       -최근 들어 차원문이 열리는 빈도가 늘어나, 안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기업들의 영웅 독점을 해결할 의지가 보이지 않는 정부. 이대로 괜찮은지 의문입니다.

       

       -대한민국의 영토 1/3이 빼앗긴 시점. 이제는 영토를 괴물로부터 되찾아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시민들이 서울 광화문 광장에 시위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

       

       처음에는 바깥세상에 대해 흥미가 있었지만.

       뉴스의 내용을 들으면 들을수록 흥미가 떨어졌다.

       파란 드래곤이 느끼기에 뉴스 내용들은 전부 거기서 거기였다.

       

       “샤아-”

       

       재미없어.

       파란 드래곤은 TV에 고정하고 있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호기심이 이끌린 곳은 바닥에 널브러진 책이었다.

       

       “…”

       

       책의 표지에는 한 남자가 자신 있는 표정으로 검을 앞으로 뻗고 있었다.

       제목은 ‘너도 할 수 있어.’ 

       흔하디흔한 자기계발서였다.

       파란 드래곤은 얼굴을 살짝 찌푸리며, 짧은 앞발로 책을 넘겼다.

       

       “샤아-“

       

       인간의 글자는 이런 방식이구나.

       파란 드래곤은 글자 체계를 눈에 익혀가며, 짧은 앞발로 열심히 책을 넘겼다.

       종이가 자꾸 귀찮게 뒤로 넘어가면, 고정하기 위해 침을 묻히기도 했다.

       

       “샤아-“

       

       파란 드래곤은 인간의 언어를 보며 재미를 느꼈다.

       이내, 언어 체계를 다 이해하고 나서는 책의 내용이 재미없어 흥미를 잃었지만.

       따분한 시간을 넘기기에는 충분한 역할을 했다.

       그런데.

       

       “…”

       

       이제 뭐 하지.

       워낙 원룸에 가구가 없기도 하고, 어린 드래곤이 호기심을 충족할 수 있는 놀거리가 없었다.

       유일한 놀거리인 TV에서는 따분한 소리만 흘러나올 뿐이었다.

       

       “샤아-“

       

       파란 드래곤은 이 지루한 시간을 어떻게 때울까 생각하며 뒤를 돌아봤다.

       뒤에서는 빨간, 초록 드래곤이 바닥에 드러누워 쿨쿨- 잠을 자고 있었다.

       같은 동족끼리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때울 수도 있겠지만, 파란 드래곤은 굳이 그들을 깨우지 않았다.

       가만히 TV 앞에 앉아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샤아-“

       

       다른 드래곤과 대화를 나눌 바에는 혼자 TV를 보는 편이 더 나았다.

       

       그러나 잠시 후.

       시간이 지나면서 잠에 빠져있던 드래곤들이 눈을 뜨기 시작했다.

       빨간 드래곤이 먼저 눈을 뜨고, 이불에서 몸을 서서히 일으켰다.

       

       “샤아악…”

       

       빨간 드래곤은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주변을 둘러봤다.

       경계 대상 1순위인 이하준이 보이지 않았다.

       

       “샤아악-?”

       

       빨간 드래곤은 고개를 갸웃하며, 옆에 누워있던 초록 드래곤을 바라봤다.

       얘는 그 나쁜 남자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으려나.

       녀석은 앞발을 들어 대자로 드러누워 있던 초록 드래곤의 배를 눌렀다.

       

       꾹꾹-

       

       “샤아아…”

       “샤아악-! 샤아악-!”

       “샤아아아…”

       

       초록 드래곤은 깨우지 말라며 짧은 앞발을 피하기 위해 몸을 뒤척였다.

       하지만, 지속되는 빨간 드래곤의 꾹꾹이에 어쩔 수 없이 몸을 일으켰다.

       

       “…샤아아?”

       

       왜 깨웠냐는 듯한 눈빛에 빨간 드래곤이 짧은 팔을 마구 휘저었다.

       이하준이 어디에 있냐는 의미였다.

       초록 드래곤은 그에 어깨를 들썩였다.

       

       “샤아아?”

       

       모른다는 뜻이었다.

       그에 빨간 드래곤이 TV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는 파란 드래곤을 향해 다가가 똑같은 질문했다.

       파란 드래곤은 곧바로 대답했다.

       파충류의 울음소리가 아닌, 드래곤의 언어를 사용해서.

       

       -나갔어. 일하고 온다고 했어.

       

       머리에 울리는 목소리에 빨간 드래곤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샤, 샤아악?!”

       

       -왜 놀라는 거야. 지식을 전수 받았잖아. 기억 속에 있을 텐데.

       

       “샤아악?”

       

       빨간 드래곤은 열심히 머릿속을 헤집으며 드래곤의 언어에 대한 지식을 탐색했다.

       파란 드래곤과 달리 시간이 좀 오래 걸렸다.

       

       -아, 찾았다! 까먹고 있었어!

       

       그건 그렇고.

       빨간 드래곤은 알에서 태어나기 전의 기억을 토대로 다시 물었다.

       이하준은 모르고 있지만, 드래곤은 이하준이 둥지를 떠난 후부터 바깥의 소리를 듣고 있었다.

       

       -약속을 어기려고 했던 그 나쁜 인간이 집을 나갔다구? 왜?

       -일을 하러 나간다고 했어.

       -일이 뭔데?

       -나도 몰라. 근데, 일종의 역할처럼 보이기는 해.

       -역할이 뭔데?

       -…이래서 레드 드래곤이 멍청하다는 지식이 존재하는 건가.

       

       “샤아-“

       

       인간 세계에서는 파란 드래곤.

       드래곤의 세계에서는 블루 드래곤이 한숨을 내뱉었다.

       

       -아무튼 그 남자는 나갔어. 다시 돌아온다고 했어.

       -흥, 나는 그 나쁜 인간 마음에 안 들어. 아빠도 아니면서. 약속을 어기려고 했잖아.

       

       레드 드래곤이 뾰로통하게 입술을 삐쭉이며 말했다.

       블루 드래곤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 의견에 반만 동의했기 때문이다.

       

       -맞아, 아빠는 아니야. 약속은 그럴 수도 있다 생각하지만.

       

       그리고, 초록 드래곤.

       아니, 그린 드래곤이 그 말에 상냥한 말투와 함께 동의했다.

       전과 똑같이 반만.

       

       -맞아! 약속은 그럴 수 있어. 하지만, 돈이 뭔지 모르지만. 아빠는 그게 없어서 아파했어.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생각해. 그리고 아빠는 아빠야! 아빠가 아니라고 하면 안 돼! 

       -흥, 절대 인정못해. 그 나쁜 인간이 어떻게 내 아빠야? 

       

       그리고, 그 의견은 당연히 레드 드래곤이 화를 내며 반박했다.

       서로 가족이긴 해도 의견이 하나로 종합되지 않았다.

       

       -내가 가장 먼저 태어났어. 내 말이 맞아.

       -조금 일찍 태어났을 뿐이면서. 내 말이 옳아.

       -아빠가 그럴 수도 있지. 다들 마음이 참 못됐어.

       

       꼬리 물기.

       서로의 꼬리를 물고, 계속해서 늘어졌다.

       그쯤에서 드래곤들은 머리에 전수되었던 드래곤의 지식을 하나 떠올렸다.

       

       ‘드래곤이 드래곤을 설득하기란 긴 용생에 한 두 번있을 정도로 극히 드문 일이다.’

       

       그 지식이 무엇을 말하는지 이해하고 말았다.

       드래곤들은 현명하게 상황을 판단했다.

       이런 주제에 대해서는 아주 큰 일이 없고서는 꺼내지 않는 편이 좋겠다고.

       서로 시선을 교환하며 암묵적인 동의를 끝냈다.

       그 다음, 레드 드래곤이 대화 주제를 돌리기 위해 입을 열었다.

       

       -배고프다. 뭐라도 먹자.

       

       블루 드래곤이 짜리몽땅한 팔을 뻗어 식탁을 가리켰다.

       

       -남자가 식탁에 초코바라는 걸 두고 간다고 했어. 아마 식탁 위에 있을 거야.

       -그래?

       

       그에 레드 드래곤이 팔짝- 뛰어 식탁 위로 올라갔다.

       

       -하하! 자 먹어라! 이 바보들아!

        

       레드 드래곤은 머리로 초코바를 밀어 바닥에 떨어뜨렸다.

       

       와르르-

       

       그린 드래곤은 냉큼 다가가 초코바를 입에 넣어 씹었다.

       

       -이렇게 먹는 건가?

       

       아그작-

       

       -으음?

       

       퉤-

       

       -다들 조심해! 겉에 있는 이상한 거는 못 먹는 것 같아!

       

       지식 추가.

       드래곤들은 포장지는 먹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드래곤들은 앞발로 초코바를 고정한 채, 달콤한 초코바를 열심히 씹으며 단출하게 밥을 먹었다.

       TV 화면에 나오는 수많은 인간들의 생김새를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샤아악-”

       “샤아-”

       “샤아아-”

       

       그들은 모두 드래곤의 몸으로 인간 세상에서 살기에는 불편함이 크다 생각했다.

       

       

       ***

       

       

       일일 노동자.

       내가 하는 일은 아주 간단하다.

       학력도 필요 없고, 멀쩡한 몸만 있으면 가능한 일이다.

       

       “거기 물건 빨리 옮겨! 뒤에 밀리잖아!”

       “예예.”

       

       차원문에서 나오는 전리품을 정리하는 일.

       짧게 말하면 그냥 상하차.

       하지만, 일반 상하차와 다른 점이 있고, 대부분이 생각하기에 이 작업의 메리트는.

       

       “차원문에서 지원이 필요하다던데. 누구 갈 사람 있어?”

       “나. 내가 갈래.”

       

       가끔.

       이런 일이 생겨서 일반인의 신분으로 차원문에 들어갈 수 있다.

       괜히 차원문으로 들어가서 개고생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내게는 상당한 이점이 존재한다.

       바로, 영웅들이 괴물들과 싸우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거다.

       

       “저기 있다.”

       

       나는 저 멀리서 웨어울프의 목을 따고 있는 영웅의 전투를 지켜봤다.

       그 영웅은 하늘 높이 뛰어 웨어울프의 목을 한 번에 그었다.

       내가 도망치기 바빴던 녀석을 아주 쉽게 죽였다.

       썩 달갑지 않은 기분이다.

       

       “거지 같네.”

       

       그래도, 영웅들이 어떻게 싸우는지 볼 수 있어서 나쁘지 않다.

       이런 경험이 쌓이고, 또 쌓여서 내게 좋게 작용할 수도 있으니까.

       나도 언젠가 영웅이 될 수도 있으니까.

       그때가 되면 돈도 벌고, 힘이 없어 괴물들을 보고 도망치지 않아도 되겠지.

       

       “…쯧, 또 너무 꿈을 크게 가지나. 일이나 해야지.”

       

       나는 혀를 차고는 바깥을 향해 전리품을 던졌다.

       그 이후로는 계속해서 고강도의 일을 진행했다.

       녀석들의 이름을 무엇으로 지을지에 대해 생각을 하면서.

       시간이 계속해서 지나고, 몸에 땀이 흐르고, 몸이 쉬고 싶다 호소하고, 몸이 슬슬 고통을 느끼기 시작하던 순간.

       

       “차원문 닫힙니다! 오늘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다행히도 일이 끝났다.

       더 했다가는 죽을 뻔했는데.

       아주 다행이었다.

       

       “돈도 받았으니. 고기나 좀 사러 가볼까.”

       

       나는 일을 끝내고 돌아가며 서울-03 구역의 정육점에 들렀다.

       내가 살던 구역의 정육점으로 가면 이상한 고기들을 섞어 놓은 합성육을 팔기에 다른 구역에서 사야만 했다.

       

       “돼지 앞다릿살 1kg만 주세요.”

       

       삼겹살은 너무 비싸다.

       나중에 돈을 더 벌고 나서 사줘야지.

       나는 돼지 앞다릿살을 1kg를 사고 재빠르게 집으로 향했다.

       시간은 6시.

       녀석들이 슬슬 배고파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아니, 내가 걔네들이 배고프든 말든 왜 걱정해? 아빠도 아닌데.”

       

       사실은 내가 배고파서 빨리 집으로 돌아가는 거다.

       절대 녀석들이 배고파 할까봐 걱정돼서 그런게 아니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철문에 열쇠를 꽂아 집으로 돌아왔다.

       

       끼이익-

       

       “애들아, 사고 안 치고 있었지?”

       

       녀석들은 TV 앞에 쪼르르- 앉아 열심히 TV를 시청하고 있었다.

       그중에서 초록 드래곤만이 시선을 돌려 나를 반겼다.

       

       “역시 내 딸이야.”

       

       초록 드래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주위를 둘러보니 딱히 크게 바뀐 점은 없었다.

       

       “똑똑한 드래곤이라 그런가. 사고는 안 쳤네. 다행이야.”

       

       초코바도 잘 먹었네.

       바닥에 초코바의 흔적이 묻어있고, 포장지가 돌아다닐 뿐.

       다행히 가만히 TV를 보고 있던 것 같다.

       나는 비닐봉지에 담긴 고기를 높이 들며 외쳤다.

       

       “일단 밥 먹자. 배고프다.”

       

       원래 일을 끝내고 돌아오면 바닥에 누워 천장을 바라볼 뿐이었는데.

       내가 이런 짓을 다 하네.

       

       ‘고기나 구워야지.’

       

       자연스레 웃음이 나오는.

       묘한 기분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느린 다르팽이입니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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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Dragon Egg

I Picked up a Dragon Egg

드래곤의 알을 주웠다
Score 7.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picked up an Egg from the Dragon’s Nest. “Shakk!!!!” “Should I just sell?” I should have picked some other treas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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