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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

       먼저 반응한 것은 아가르타였다.

       

       

       “…역시 정신병자군요! 저희가 생각하지 못하는 일을 태연하게 하고 있어요! 그 점이 짜릿해! 동경하게 돼!”

       

       “뭣.”

       

       

       진지하게 분위기 잡고 말한 거였는데, 이 망할 여자가 나를 그냥 정신병자로 몰고 있다.

       

       …일단 내가 인정하기는 했는데.

       

       그렇긴 한데!

       

       

       사냥꾼은 다르리라 생각하며 그에게 시선을 옮기자, 진지하게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 손가락으로 턱을 괴고 있었다.

       

       그래, 내가 너는 믿고 있었다, 이거야!

       

       

       무슨 답변을 할지 기대를 잔뜩하며 사냥꾼을 보고 있자, 사냥꾼이 고개를 끄덕였다.

       

       

       “음, 역시 정신병자군.”

       

       “야이 씨!”

       

       

       믿었는데, 사냥꾼 만큼은 믿었는데!

       

       갑자기 이렇게 뒤통수를 때리는 게 어딨어!

       

       

       내 절망한 표정에, 사냥꾼은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영양가 없는 말이면 듣고 무시하면 되겠지.”

       

       

       그러면서 다시 나한테 시선을 옮겼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질 못해 물음표를 띄우며 마주보자, 사냥꾼이 턱으로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방법이 있다면서?”

       

       “…아아, 아!”

       

       

       아아, 역시 사냥꾼 님! 제가 떡상하는 코인에 제가 무슨 무례를 저지른 것입니까!

       

       

       나도 모르게 신이 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아마 이 근처에 저 외신을 쓰러뜨릴 만한 무언가가 있을 거예요.”

       

       “그걸 네가 어떻게 아는 거지?”

       

       “그… 감이랄까요?”

       

       “정신병자의 감이라. 그래서?”

       

       

       아, 진짜.

       

       묘하게 자꾸 끌고 오네, 저 정신병자 밈.

       

       

       그만큼 미덥지 않다는 뜻인 건가, 싶기도 하고.

       

       

       “아, 그래. 아까 벽면에 적힌 글을 제가 읽을 수 있다고 했잖아요? 그 글 보고 감 잡은 거예요! 내 정신 좀 봐라, 하하.”

       

       “…정신병자는 글을 보고도 미치지 않는다는 제 말을 믿은 거에요? 놀릴려고 말한 건데.”

       

       

       아가르타가 갑자기 옆에서 입을 털었다.

       

       

       야이 썅년아!

       

       넌 조용히 하고 있어!

       

       너 여기서 입 잘못 놀리면 그냥 다 죽는 거야, 어?!

       

       

       아가르타가 내 눈빛을 보더니 살짝 놀래더니 눈을 피하며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다.

       

       열 받아서 딱밤이라도 한 대 때릴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사냥꾼이 뭔가 생각하는 듯 ‘흠’이라는 소리를 흘렸다.

       

       

       “…의외로 쓸모가 있군.”

       

       “에?! 이걸 믿어요?”

       

       

       아가르타가 당황하며 목소리를 크게 냈다.

       

       이제는 숨길 생각도 없구나.

       

       

       “제가 털털한 성격이긴 해도 목숨이 달린 일이라고요? 좀 더 고심해 봐야 할 거 아닌가요?”

       

       “그러면 여기서 가만히 있다가 다같이 아사라도 할 텐가?”

       

       “그건… 아닌데, 헤헤.”

       

       

       사냥꾼의 말에 도적이 쭈글쭈글해지며 기세를 꺾었다.

       

       

       그래, 고분고분하게 말 들으니까 얼마나 귀여워.

       

       앞으로도 제발 저러고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 무언가가 어디에 있는 거지?”

       

       

       그 말에 나는 난처한 미소를 지었다.

       

       사냥꾼이 미간을 찌푸리길래 애먼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그건 지금부터 찾아봐야죠.”

       

       

       사냥꾼한테서 순간 살기가 느껴진 건 기분탓이었을까.

       

       

       

       

       #

       

       

       주변을 돌아다니다 보니 간수들이 사라지면서 놔두고 간 물품 같은 것들이 몇 개 보였다.

       

       그 중 가장 평이 좋았던 것은 랜턴이었다.

       

       

       나야 주변이 밝아 보이니 상관 없었지만, 이 둘한테는 어두워보인다고 했으니, 뭐.

       

       시야가 밝아지니 아가르타가 이제야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기 시작했다.

       

       역시 도적은 도적이라는 걸까?

       

       슈퍼 겁쟁이 모드 덕에 밝음을 패시브로 달고 있는 나도 발견하지 못한 무언가를 순식간에 찾아버렸다.

       

       

       “여기 뭔가 있어요!”

       

       

       찾은 것은 아가르타 왈, 가짜 벽이라고 한다는 모양이었다.

       

       

       “이게 환상 마법으로 만들어진 투명 벽인데, 이건 민간 마법이 아닌 황실 마법이라, 푸는 방법이 좀 쉽지 않거든요.”

       

       

       그래, 봐봐.

       

       내 말이 맞잖아.

       

       역시 뭔가 있을 줄 알았다니까?

       

       

       이게 바로 내 게임 짬밥이야!

       

       

       사냥꾼이 멍하니 도적을 보고 있다가 눈을 감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는 야바위를 하자는 건가.”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듯 말하는 모습에 머쓱해져서 뒤통수를 긁적였다.

       

       

       “하지만, 찾았죠?”

       

       

       사냥꾼의 마음은 모르고 아가르타가 신이 나서 쫑알댔다.

       

       

       “제가 이런 거 찾는 건 어릴 적부터 기깔나게 잘 했다니까요? 이걸 찾을 때 사용하는 기술이 있는데, 이게 도적 대대로 내려오는 기술이거든요. 그런데 이게 또 모든 도적들이 사용할 수 있는 건 아니고, 능력이 뛰어난 도적들만 얻을 수 있는 기술인데….”

       

       “알겠으니까 제발 닥쳐라.”

       

       

       사냥꾼이 질색하면서 말하자, 도적이 시무룩해졌다가, 아니 내가 왜 그래야 돼? 하는 생각이 들었는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이게 얼마나 중요한 얘기인데요? 아, 맞아. 그리고 이 벽을 해금하는 법이 중요한데, 이것도 학식 높은 도적 아니면 시도조차 못….”

       

       “물에 빠져도 그 잘난 주둥이 만큼은 둥둥 떠다닐 것 같군.”

       

       “아니! 제가! 벽을! 찾았! 잖아요! 이 정도는 들어줄 수 있는 거 아니에요?

       

       이걸 공감을 못해줘?”

       

       

       …이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느꼈다.

       

       저놈의 공감충은 시대, 세상 나눌 거 없이 어디든 존재하는 유형이었구나.

       

       

       …그냥 사냥꾼이 꺼지라 했을 때 꺼지게 놔두는 게 좋았지 않았을까, 라는 후회가 밀려오는 것 같았다.

       

       

       이제는 상종도 하기 싫었는지, 이제는 아가르타를 등지고 나만 보는 사냥꾼이었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하면 되는 거지?”

       

       “그, 일단은 이 안에 제가 말한 게 있을 거 같긴 한데….”

       

       

       나도 확신이 서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말을 조심히 내뱉고 있었는데, 갑자기 콧방귀 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요, 그렇게 나온다는 거죠? 진짜 쪼잔해가지고.”

       

       

       그러더니 아가르타가 가까이 다가가더니, 그 투명 벽에 손을 댔다.

       

       뭔가 반발이 일어나는 듯 스파크가 튀고 있었는데, 아가르타는 우습다는 듯이 반대쪽 손으로 바늘을 잡고는 정교한 모양새로 천을 찢듯 부욱, 그엇다.

       

       그러자 투명 벽이 한 순간 무지개 색처럼 일렁거리는 듯하더니, 그대로 사라지며 그 너머로 공간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가르타는 한 건 해냈다는 도취감에 빠진 듯했지만, 자신이 삐졌다는 것을 어필하고 싶었는지 토라진 표정을 유지하며 뒤돌았다.

       

       

       “저 먼저 들어갈 테니까, 따라오든가 알아서 하세요!” 

       

       

       그러더니 아가르타가 무턱대고 저 안으로 막 들어가려고 하는 게 아닌가.

       

       그 순간, 매사 무심하게 굴던 사냥꾼이 재빠르게 움직이더니, 안으로 들어가기 직전이었던 아가르타의 뒷덜미를 잡아 낚아챘다.

       

       

       “꺄악!”

       

       

       아가르타는 깜짝 놀라서 비명을 질렀지만, 사냥꾼은 전혀 개의치 않고 살벌한 표정을 지은 채 도적의 얼굴을 자신에게 가져다 댔다.

       

       

       “그렇게 다 안다는 듯이 잘난척은 다 하더니,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갑자기 무슨….”

       

       “가짜 벽이니, 이미 망해버린 황실 마법이니 떠든 것 치곤 제대로 아는 건 하나도 없었군.”

       

       

       사냥꾼이 도적을 거칠게 놔주면서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내려다보았다.

       

       

       “이 안에 ‘소외신’이 빼곡하게 들어 차 있다는 것도 몰랐나?”

       

       “…소외신?”

       

       

       나도 처음 들어보는 명칭에 사냥꾼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외신이 되지 못한 파편 같은 녀석들이지. 과연 네가 그것들을 감당할 수 있을까?”

       

       “히끅.”

       

       

       나와 다르게 아가르타는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는지 딸꾹질까지 할 정도로 식겁했다.

       

       얼굴이 사색이 되어 딸꾹질하는 모습이 웃겨서 나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우, 웃었어요?!”

       

       “네.”

       

       “심지어 당당해!”

       

       

       뭐, 나야 뭐가 뭔지 제대로 모르니까.

       

       

       게다가 지금까지 날 놀리던 아가르타가 저리 무서워하는 걸 보면 오히려 꼬시다고 해야하나?

       

       딜 넣을 수 있는 각이 나오면 내 행복 지수를 위해서 주기적으로  때려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눈치챘을까.

       

       아가르타가 표독한 눈매로 바늘을 꺼내길래 고개를 돌렸다.

       

       사냥꾼은 둘의 꽁트를 보며 한숨을 내쉰 뒤 다시 상황에 집중했다.

       

       

       “그래서 이제 어떡할 생각이지? 설마 이 안으로 들어가서 자살하자고 하는 것은 아니겠지?”

       

       

       사냥꾼의 말을 들으며 멍하니 뒤통수를 긁적였다.

       

       

       “그렇게 무서운 존재인가요?”

       

       

       소외신(小外神), 이름에 소자가 붙으니 외신보다는 약한 존재처럼 느껴졌다.

       

       나의 말에 사냥꾼이 한숨을 내쉬더니, 벽이었던 것 근처로 다가가서 랜턴을 갖다댔다.

       

       그러자 벽 너머 방 안이 환해지기 시작하더니, 내 눈에 보인 것은.

       

       

       “오.”

       

       “…히이익!”

       

       

       나와 아가르타의 반응이 갈렸다.

       

       사냥꾼은 안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런 게 한 마리만 있었다면 나도 조금의 위험은 감수하고 들어갔겠지.

       

       봐라, 저 빼곡하게 가득 찬 것들을 감당할 수 있겠나?

       

       저것들은 여러 마리가 모이면 그 미약한 힘이 증폭되어 가까이 다가오는 자의 정신을 헤집어 미치광이로 만드는 녀석들이다.”

       

       

       사냥꾼의 설명을 듣고 있으니 더 실감이 난 듯 아가르타가 서서히 통로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사냥꾼의 말을 들어도 물음표를 띄울 뿐이었다.

       

       

       왜냐하면 내 눈에는 동화에나 나올 법한 요정들이 벽에 붙어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으니까.

       

       

       “귀여운데?”

       

       “뭐?”

       

       

       사냥꾼이 내 말에 당황한 기색이 여실히 드러나는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내 감상이 이런데 어떡해.

       

       

       그때, 소외신 하나가 기지개를 피면서 벽에서 떨어져 나오더니 나와 눈이 마주쳤다.

       

       

       “인간?”

       

       

       딱히 말을 건 것으로 보이진 않고, 인간이라는 존재를 보고 신기해 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흠.

       

       

       “왜, 인간 처음 봐?”

       

       

       그래서 대답을 해주었더니 그 소외신이 주변을 둘러보고는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나한테 말한 거야?’같은 느낌으로.

       

       

       고개를 끄덕여주자, 소외신의 표정이 환한 미소로 점차 바뀌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자신의 주변에 자고 있는 소외신들은 전부 툭툭 쳐서 깨우기 시작했다.

       

       

       “…으음, 왜?”

       

       “우리 말을 알아 듣는 인간이 있어!”

       

       “그게 진짜야?!”

       

       

       그 소외신을 시작해서 빼곡하게 붙어 있던 요정들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안쪽을 막 날아다니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대체 뭘 한 거냐! 왜 소외신들이 갑자기 날뛰기 시작한 거냔 말이다…!”

       

       

       사냥꾼이 경악하면서 내게 말했지만, 소외신이 사냥꾼의 말을 끊는 바람에 반응할 수 없었다.

       

       

       “인간, 정말 우리 말을 알아 들어?”

       

       “어.”

       

       “어떡해! 신기해!”

       

       “얘들아! 지금 이럴 때가 아니야.”

       

       

       리더로 보이는 소외신이 흥분한 모두를 진정시키더니 나비 날개를 펄럭이면서 통로 앞까지 다가왔다.

       

       어딘가 굳은 결의가 보이는 것이 그다지 인간에 대해 우호적이진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인간한테 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부탁하고 싶은 게 하나 있어.”

       

       “뭔데?”

       

       “이 방으로 들어오면 설명해줄게.”

       

       

       어.

       

       이거 원래라면 죽는 각 아닌가?

       

       

       하지만 알 수 없는 근자감이라고 해야 하나?

       

       아까 글씨 읽었을 때도 멀쩡한 게 떠오르면서 어쩌면 나는 그 정신 간섭인지 뭔지에 안 당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저 소외신들 무섭게 생기지도 않았고.

       

       오히려 귀엽지 않은가.

       

       

       “…뭐가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이 작전은 폐기다. 안 그래도 위험한 녀석들이 저렇게 날뛰기 시작한 이상….”

       

       

       여기서 멈춘다면 사냥꾼이 나와 도적을 버림 패로 쓸 테니 정한다면 살아남을 확률이 더 높은 쪽을 고르기로 했다.

       

        사냥꾼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통로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고, 방 안으로 들어와 말했다.

       

       

       “별거 없네, 뭐.”

       

       “이런 미친…!”

       

       

       바깥에서 사냥꾼의 욕설이 들려오는 것 같았지만, 알 바 인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 그렇게 빼곡하게 차 있던 소외신들이 일제히 공중으로 날아오르더니, 나를 향해 달려드는 것이 보였다.

       

       

       “어, 어어?!”

       

       

       그 수많은 소외신들에게 덮쳐졌고, 나는….

       

       얼굴에 달라붙어 입 가를 늘리거나 배를 꾹꾹 누르는 등, 소외신들에게 성희롱을 당하기 시작했다.

       

       

       “우와, 우리가 만져도 멀쩡한 인간은 처음 봐!”

       

       “심지어 대화까지 돼! 이게 살아있는 인간의 몸이구나!”

       

       “글쎄, 다들 진정하라니까!”

       

       

       …그렇게 좋은 경험은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Dark Fantasy: Super Coward Mode

Dark Fantasy: Super Coward Mode

슈퍼 겁쟁이 모드 다크 판타지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The super cowardly me installed Super Coward Mode, and the terrifying extraterrestrials started to look cute. “Eating the flesh of an extraterrestrial deity? You’re not human! Ew!” “Even withstanding mental manipulation? What kind of monster are you!” “Enslaving an extraterrestrial deity? You must be out of your mind.” …And then, the reactions around me becam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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