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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

       요르드 데커는 아카데미 검술학부를 수석으로 졸업한 인재였다.

       한미한 기사 가문의 적자로 마땅한 작위는 없지만, 검술 실력만큼은 여느 귀족가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자부했다.

       그 증거로 내로라 하는 인재들이 수두룩한 검술학부에서 어찌 수석이 되었을까.

       그렇기에 그는 검술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고, 왕국 최고의 기사단인 백은(白銀)사자 기사단에서도 충분히 최고가 될 수 있으리란 믿음이 있었다.

         

       ‘만만치 않은 선배도 많지만, 넘을 수 없는 수준까진 아니야. 5년, 아니 2년 안에 다 넘어주마.’

         

       출세 지향적 성향이 강한 요르드의 목표는 일단 세 개의 대대로 나뉘는 백은사자 기사단 제3기사단의 부단장이 되는 것이었다.

       물론 현 3기사단 단장이 왕국의 셋밖에 없는 오러 유저인 걸 생각하면 그를 넘기란 아직 요원한 일이다.

       그러니 당장의 목표는 부기사단장이 되는 것이고. 부기사단장이 되려면 기사단장의 눈에 들어야할 기회를 노려야만 했으니.

         

       ‘리한 선배….’

         

       그런 요르드의 눈에 마침 들어온 것이 리한인지 이한인지 하는 선배 기사였다.

       듣기론 병사 출신이면서 기사단장에 눈에 들어 기사가 된 인물이라 하였으며, 기사단 내부에서도 이질적인 이라고 들었다.

       하긴 처음 그에 대한 얘기를 들었을 때 요르드 또한 의아하긴 했다.

       듣자 하니 기본적인 ‘투기법’조차 익히지 못했다고 하니까.

       투기법을 익힌 자와 익히지 못한 자 사이에 벽은 고양이와 사자만큼의 차이가 있는 법.

         

       ‘물론 한 가닥이 있으니 여전히 기사단에 있을 거야. 방심은 없다.’

         

       그에게 유감은 없다.

       기사 가문 출신이나 마땅한 작위와 토지도 없는 한미한 출신인 그다.

       누굴 차별할 위치도 아니었고, 요르드는 도리어 리한을 동정했다.

       그러나 동정은 동정일 뿐.

       요르드는 그를 자신의 출세를 위한 신호탄으로 사용할 셈이었다.

       그러니.

         

       ‘내가 무정하다 하지 마시오, 선배.’

         

       요르드는 그를 만만하다 여기지 않지만, 그래도 지지 않으리란 자신감이 있었다.

         

       ──그게 오만이란 걸 깨달은 건 5분이 채 걸리지 않았지만.

       

     

       “허어억! 허어어억…!”

       “좀만 더 힘내 봐. 아직 몸도 안 풀었으니까.”

       “허어어억, 커허억!”

       “…체력이 너무 약한데.”

         

       상대는, 요르드를 갖고 놀고 있었다.

         

       * * *

         

       제이크를 비롯한 기사단원들은 모두 신입과 이한의 시합을 집중하여 보는 중이었고, 지켜보는 이들은 누구 하나 먼저랄 것 없이 혀를 내둘렀다.

         

       ‘지독한 놈.’

       ‘완전히 사람을 갖고 노는군.’

       ‘…여전하군.’

         

       탁, 타다닥!

         

       처음 시작과 마찬가지로 먼저 달려드는 건 요르드였다.

       쾌검을 기반으로 환검을 사용하는지, 그의 검은 빠르면서도 무수한 변화를 보였다.

       보고 있노라면 눈을 현혹시킬 만한 놀라운 기술이었고, 몇몇 기사들은 저 검을 막아낼 길이 막막해 눈살을 찌푸릴 따름이었다.

       역시 검술학부 수석다운 실력.

       만약 한미한 가문 출신만 아니었더라면 3기사단이 아니라, 1,2기사단에 가도 충분히 먹힐 실력이었다.

       그러나 상대가 나빴다.

       차라리 다른 이들과 싸웠다면 좋은 결과를 보이거나, 제법 인상적인 모습을 보였을 테니까.

         

       ‘저걸 일일이 다 쳐내는군.’

         

       이한은 현란하기 그지없는 요르드의 검을 모조리 다 막아내거나 흘려내는 방어적인 모습만을 보였다.

       반격은 하지 않고, 마냥 막기만 하는 모습은 그가 밀리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게 하지만, 단 한 번의 유효타 없이 5분 동안 막아낸다면.

       그것도 공격하는 이는 땀이 철철 흘러넘치는데, 막아내는 이는 땀은커녕 아무런 피로감도 보이지 않으며 처절한 공세 속에서도 물러섬조차 없으니.

       이건 이미 상대를 농락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호오, 검술 한 번 대단하네. 그건 뭐라고 하는 검술이냐?”

       “허억! 허어억!”

       “으음, 그래, 지금은 대답하지 마라. 숨넘어가겠다.”

       “끄으으윽!”

         

       다른 이가 들었을 때 농락하는 것 같은 말투지만, 단원들은 안다.

       저 칭찬이 진심임을.

       그래서 더 굴욕적임을.

         

       ‘내가 저것 때문에 치가 떨리지.’

         

       이한에게 당해본 사람은 안다.

       그는 상대방의 검법을 보고 단순히 파훼하는 천재도 아니며, 그렇다고 경험과 노련함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달인도 아니다.

       그는.

         

       ‘그냥 자세히 보고 막을 뿐이지.’

         

       아니면 그냥 반응해서 막던가.

         

       어처구니없게도 이한은 상대방의 무기를 끝까지 관찰하며 그걸 막아낼 뿐이다.

       방향이 어디로 오든, 어떠한 변화를 일으키든 그냥 끝까지 보고 ‘잘 막아내’는 것이다.

       검을 쓰는, 아니 무인이라면 누구나 황당해할 법한 말이다.

       검이든 창이든 화살이든 잘 막아내면 막을 수 있는 건 뻔한 얘기인 걸 모두가 알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걸 진짜 보면서 회피하고 막아내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모를 수가 없다.

       그걸 모르고 막는 게 뭐가 어렵냐며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한 번도 검을 잡아보지 않은 샌님이거나 입만 털 줄 아는 머저리일 것이다.

         

       그 정도로 이한이 하는 것은 곡예, 혹은 차력쇼와 같다.

       단순하지만 말도 안 되는 일을 해내고 있기에.

       저러한 것을 하려면 신체를 그야말로 제 생각대로 자유자재로 움직여야 한다는 소리니까.

       그렇기에 그는.

         

       “그러게 하필 왜 저놈한테 덤벼가지고 저런 굴욕을 당하는지, 원.”

         

       제이크는 신입이 불쌍하다며 고개를 저었다.

         

         

         

       -미치도록 숨을 헐떡이며, 정신이 몽롱해져만 간다.

         

       요르드는 흙바닥이든 뭐든 상관없으니 당장 눕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며, 갈수록 초조하고 정신이 나갈 것만 같았다.

         

       ‘이, 이 사람은 대체 뭐야?!’

         

       대단하다? 노련하다? 실력이 좋다?

       그런 부류가 아니다.

       검술학부를 다닐 때도 한 번도 보지 못한 부류다.

         

       그냥….

         

       ‘강해, 그냥 강해…!’

         

       그냥 강하다.

       기술이 대단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딘가 특별한 검술을 익혔다는 느낌도 없다.

       그런데도 강하다.

         

       “이이익!”

         

       휘이익!

         

       요르드는 발악하듯 몸을 날리며 환영팔검식을 펼쳤다.

       환영검류의 검식 중 하나로, 손목과 발의 움직임 등이 만들어내는 무수한 변화가 마치 검을 여러 개처럼 보이게 하는 검식이었고, 검식의 끝을 보면 검뿐만 아니라 몸조차 여러 개로 보이는 착시효과를 보이게 되는 것이 환영검류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러한 현란하고도 오묘한 변화가 전혀 통하지 않았다.

       지금도 봐라.

       몸을 날리며 누구도 반응하기 힘들 요르드의 움직임을 그는 끝까지 관찰하고 있지 않은가!

         

       ‘눈이, 계속 나를 향하고 있어.’

         

       한 번은 놓칠 만도 하건만, 그의 눈은 끝까지 요르드를 ‘담고’ 있었다.

       검을 보는 게 아니라, 그의 몸 전체를 끝까지 보면 다음 동작을 예측하고 검로를 막아내는 거다.

         

       콰앙!

         

       그렇다고 요르드의 검이 위력이 부족한 것도 아니다.

       투기법을 익힌 이상 그의 신체능력은 병사 열 명이 모인 것과 같다.

       한데 그런 힘조차 대놓고 막아내면서 한 치의 떨림이나 힘겨움도 보이지 않는다.

         

       그냥 묵묵히 막으며, 흥미롭단 시선만 던질 뿐.

       순간 요르드는 마음이 꺾일 것만 같았다.

       아버지에게서도 느낀 적 없는 절망감이 엄습하는 것이다.

         

       내가 20년 동안 익힌 검술이, 아니 노력이 모두 부정당하는 것 같은 무력감.

         

       그것이 요르드를 짓눌렀다.

         

       “-너무 대충하는 거 아니냐?”

       “……예에?”

       “대충하는 거 아니냐고. 너 이기고 싶어서 나한테 대련 신청한 거 아니었냐?”

       “무, 무슨…?!”

         

       일순 그를 통렬히 찌르는 가시.

       요르드는 표정을 수습할 겨를도 없이 그는 계속 가시에 찔려야 했다.

         

       “맞잖아? 아마 소문 들었겠지. 3기사단에는 투기법도 익히지 못한 병사 출신 기사가 있고. 그놈 정도라면 어떻게든 내가 먹을 수 있겠다 하는 기대감이 있었겠지.”

       “…그, 그건.”

       “아아, 뭐라고 하는 건 아니야. 그러니까 그렇게 찔리는 표정 짓지 마.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이거야. 아마 나랑 대련하고 1분 정도 지났을 때 느꼈을 거야. ‘어? 이 자식 만만치 않은데?’ 하고. -아니야?”

       “…….”

         

       정확하다.

       알 사람은 안다.

       대련을 1분, 아니 주먹이든 검이든 간을 보듯 처음 맞대자마자 느낌이 온다는 걸.

       이 사람이 강한지, 아니면 만만한지.

       그리고 요르드는 처음 그와 검을 맞대자마자 거암(巨巖)의 묵직함을 느꼈고. 자신이 잘못 생각하고 있음을 깨우쳤다.

       이 사람은 전혀 만만치 않고, 상당한 실력자임을.

         

       “그래, 아니까 다행이네. 근데 말이다. 아는 놈이 그러고 있냐?”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자식, 말귀를 못 알아먹네. 만만하지 않은 걸 알았으면 일격에 모든 걸 걸고 들어왔어야지. 네가 가장 자신 있는 검식으로, 무조건 이긴다는 ‘각오’로 들어왔어야지.”

       “…….”

       “근데, 넌 왜 자꾸 깡충깡충 뛰어다니기만 하고 혼자 서글퍼 하고 있냐?”

       “!!!”

         

       요르드는 뒤통수를 세게 후려맞은 사람처럼 얼얼한 표정을 지었다.

       그 정도로 지금 요르드는 커다란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

       조금의 반박도 못할 정도로 저 얘기는 정확했다.

         

       그래, 저 말대로 요르드는 상대가 현격히 강하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전력으로, 일격필살을 각오하지 않으며 그냥 뛰어다닐 뿐이었다.

       상대는 여전히 지치지도 않았으며, 그를 전혀 위협스럽게 여기지 않는데도.

         

       이를 깨닫자 덮쳐오는 건 다른 의미의 수치심이었다.

       상대가 강자임을 아는데도 여전히 오만해서, 아니 멍청한 나머지 바보머저리처럼 군 자신이 너무 한심하다.

         

       절망하기 전에 차라리 그냥 전력으로 부딪쳤어야만 했다.

       그러면 도리어 개운하기라도 했지.

         

       “……바보 같은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래도 설명해준 보람은 있네. 완전 바보는 아니라서 다행이다.”

       “예에.”

         

       요르드는 대답하며 검 끝을 정면으로 세웠다.

       그에게 감사한다.

       오만하고 바보 같던 놈을, 저 혼자 절망감을 느끼던 놈에게 큰 깨달음을 줬으니.

       그러니까!

         

       우우우웅!

         

       “제 전력을 다하겠습니다.”

       “오오.”

         

       그가 감탄했다.

       아니 구경 중이던 단원 모두가 감탄하며 눈을 휘둥그레 떴다.

       요르드의 몸과 검 모두가 공명 현상을 보이듯 떨림을 보인다.

       분명 날이 서지 않은 검인데, 지금만큼은 칼날이 바짝 선 듯했다.

         

       검명(劍鳴)

         

       검사와 검의 파장이 일치하였을 때 일어나는 공명현상으로, 재능 있는 검사 중에서도 극소수만이 발휘하는 검기였다.

         

       검명 현상이 발휘된 검은, 검 자체가 가진 파괴력이 극한까지 오르며 실력차가 있는 상대를 패배시키는 경우도 있다.

         

       검사에게 있어선 필살과 다름없는 일격.

         

       그리고 지금, 요르드는 극한까지 끌어올린 감각으로 검명을 일으키며 칼을 뻗었다.

       체력과 정신력, 이후 뒷일은 전혀 개의치 않고 오로지 그를 베고 말겠다는 ‘일념’만이 남은 거다.

         

       휘이익!

         

       요르드의 검은 오늘 보인 것 중 최고의 속도를 보이며, 눈 깜짝할 새 이한의 코앞까지 도달했다.

       극한의 쾌검술.

       환검을 버리고, 오로지 속도만으로 승부를 보려는 요르드의 변화구와 같은 일격이었다.

         

       그리고

         

       “그래, 괜찮네.”

         

       이한은 여전히 끝까지 요르드의 움직임을 보았고, 미소를 머금었다.

         

       *

         

       콰아아앙!

       

     

       *

         

       …후두두둑.

         

       “잔인한 놈.”

         

       사람들은 보았다.

         

       검명까지 발휘한 놀라운 신입이, 모처럼 멋진 모습으로 마무리를 하려 했던 것 같은데, 참으로….

         

       “…쿨럭.”

         

       무참히 깨지는 광경을.

         

       요르드는 물수제비를 튕기는 돌멩이가 된 것마냥 바닥에서 세 번을 튕기고 벽에 처박혔고, 그는 부르르 몸을 떨며 혼절했다.

         

       그리고 사람으로 물수제비를 한 장본인은.

         

       “후우, 시원하다.”

         

       상쾌한 표정과 함께 활짝 웃어보였다.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환생 30년, 알고 보니 장르가 로판이었다?
Status: Ongoing Author: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the genre was romance fantasy? ...Really, how? I lived as a magician's slave, experimented on, then as an assassin, mercenary, soldier, and even a knight. This is a story where I'm in a genre all by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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