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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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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이트가 새 연구요 자양강장제의 양산으로 골머리를 싸매고 있을 무렵, 레갈리아는 제 앞에 놓인 물약 샘플을 바라보며 가볍게 침음성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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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흐음- 이게 갈름이 그토록 칭찬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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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겉보기엔 그냥 평범한 자양강장제, 피로회복제랑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슬쩍- 혀를 내밀어 맛을 본 결과 맛도 그닥 다르지 않은 듯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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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물약 대체 어디에 특별한 비밀이 숨어 있기에 갈름을 전성기로 되돌려놓았단 말인가? 레갈리아는 그 비밀을 몸소 파헤치기 위해 제 앞에 놓인 물약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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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이 얼마 되지 않았기에 그녀의 작은 입으로도 이를 전부 다 삼키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약을 전부 들이켠 레갈리아는 상큼한 레몬 맛에 입맛을 다시다가, 그닥 특별한 효과를 느낄 수 없음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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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 일도 없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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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름을 전성기로 되돌린 약이라고 한다면, 자신이 먹었을 때에도 똑같이 무언가 특별한 일이 생기리라 생각했다. 갈름만큼은 아니지만 자신도 히어로마냥 강한 힘을 뿜어낸다든가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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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의아하게도 그녀에겐 그 어떤 효과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래서야 그냥 평범한 에너지 드링크 하나 마신 것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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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름과 에이트에게 속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레갈리아는 혹시 몰라 기업의 연구자들에게 포션의 감정을 의뢰했다. 성분적으로 무언가 다른 게 있지 않을까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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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장님? 여기 사인해주셔야 할 서류입니다.”

    “음- 가져오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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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뒤로, 레갈리아는 포션 따위를 생각할 겨를 없이 업무에 집중했다. 오늘따라 몸이 개운하고 피로를 느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이 정도는 그냥 평범한 에너지 드링크를 마셔도 생기는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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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닥 특별함을 느끼지 못 하고 시간을 보내던 레갈리아가 이상함을 느낀 건 그날 밤이 되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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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녁을 먹고, 씻고, 가벼운 운동까지 끝마친 그녀는 정확히 10시가 되자마자 침대에 몸을 뉘었다. 어린아이는 일찍 자고 일어나야 키가 빨리, 그리고 많이 크는 법인지라 그녀는 이 루틴을 절대 벗어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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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므로 오늘도 평소처럼 침대에 눕자마자 잠에 들었어야 하거늘, 몸은 피로를 일절 느끼지 못 하겠다는 듯 멀뚱멀뚱 그녀의 정신을 일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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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일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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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대론 잠이 오지 않으리란 걸 직감한 레갈리아는 그저 눈을 감고 침대 위에서 양을 세며 시간을 녹였다. 그녀가 양을 대략 2만 8천마리쯤 세었을 때. 그녀는 해가 떠올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잠을 자지 못 했다.

    레갈리아는 말똥말똥한 정신으로 출근했다.

    그날 밤도 양을 셌다.

    ​

    잠에 빠질 때까지, 레갈리아는 백만 마리의 양을 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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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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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오오오오-!”

    “피로가, 피로가 물러간다아아앗!”

    “삼일 밤낮을 새도 괜찮을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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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이트가 만든 자양강장제는 조직원 모두에게 배부되었다. 조직원들은 피로할 때나 혹은 전투에 나서기 직전에 약을 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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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효과는 대단했다. 아무리 어린아이라지만 레갈리아가 사흘 밤낮을 지새워도 아무렇지 않았던 것처럼, 평소 피로에 찌든 몸이 활력으로 가득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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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투원들의 경우에는 아예 어지간한 히어로보다 강한 힘을 낼 수 있었다. 평소 그들이 휘두르던 방망이가 기껏해야 운동 좀 한 일반인에 불과했다는 걸 생각해본다면 이는 엄청난 쾌거였다.

    ​

    물론 그 중에서 가장 많은 수혜를 본 건 갈름이었다. 애시당초 이 물약은 갈름을 위해 맞춤제작된 물건이었으니 그가 남들보다 더한 혜택을 받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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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하하하하-! 오거라! 애송이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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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름은 제 무기를 휘두르며 히어로들과 대적했다. 그가 얼마전까지만 하더라도 신입 히어로조차 상대할 수 있는 닳아빠진 수인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이들은 갈름이 휘두르는 말도 안 되는 위력의 무기를 보며 기함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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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망할 짐승 새끼 왜 저렇게 쎄졌어-!?”

    “몰라! 그보다 레드! 짐승 새끼란 말은 종족 차별이야!”

    “아, 그런 거 신경 쓸 때냐고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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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유가 넘치나 보구나! 그럼 기어를 올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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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아아아아악-! 미친 개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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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름은 자신이 호랑이 수인이요, 그리하여 개보단 고양이에 가깝단 것을 말로 설명하지 않았다. 대신 개새끼란 말이 쏙 들어가도록 무기를 마구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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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많은 전장을 돌파한 전쟁 영웅답게, 갈름의 무기술은 달인의 영역에 들어가 있었다. 누군가를 죽인다는 결과 하나만 놓고 본다면 어지간한 달인보다 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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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검 휘두르며 히어로들을 괴롭히기를 잠시, 무기 휘두르던 갈름의 품속에서 알람이 마구 울렸다. 그 소리를 들은 갈름은 무기 휘두르다 말고 멈춰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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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 퇴근 시간이군. 이만 가보겠다.”

    “저, 저저 미친 새끼…! 아직 3시야 이 빌런 새끼야!”

    “히어로들의 근무 시간은 내 알 바가 아니군. 이만 가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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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름은 그리 말하며 쓰러진 전투원들을 데리고 후퇴했다. 히어로들은 그 뒤를 쫓고 싶었지만 차마 그러지 못 했다. 방금 정정당당히 정면에서 싸울 때에도 갈름을 제압하지 못 했을 뿐더러 약간씩 봐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분명 이쪽을 죽일 수 있을 텐데도 불구하고 무기를 휘두르지 않았다는 점을 떠올려보면 더더욱.

    ​

    그런 상대를 추격하다가는 더 큰일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단 뜻이었다. 히어로는 빌런을 제압하는 사람이지 목숨을 내다 버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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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망치는 빌런 조직들을 멍하니 바라보던 히어로들은 뒤늦게 복귀했다. 그리고 협회로 돌아가 불만을 토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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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우-! 소장님! 저 짐승 새끼 그냥 체포하면 안 됩니까!?”

    “안 된다.”

    “아니, 왜 안 된다는 건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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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름의 정체요 그가 어느 빌런 조직에 속해 있는지, 심지어는 그 빌런 조직이 어디에 있는 지 조차 알고 있는 상황이거늘 그를 체포해선 안 된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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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냥 그가 쉬고 있는 틈을 타서 조직의 기지로 히어로가 떼로 몰려가 체포하면 되는 거 아닌가? 히어로인 레드가 생각하기엔 그러했다.

    ​

    그러나 실제로 그러지 못 하는 이유가 있었다.

    ​

    “거긴 대통령도 함부로 못 들어가.”

    “예? 대통령도 못 들어간다뇨?”

    “그 도시는 전부 이블스 기업의 사유지다. 널린 건물부터 길거리 돌아다니는 차량까지 전부 마찬가지고. 도시에 사는 시민들은 이블스의 물건을 빌려서 사용하고 있는 입장이다.”

    “……아니, 빌런이잖아요. 시민을 다치게 할 지 모르는데.”

    “며칠 몇 시 몇 분에 습격할 거라고 예고까지 하는 애들이? 심지어 그 시민들 대부분이 이블스 기업의 직원이거나 하청 업체의 직원이라는 건 아냐? 거기 시민들이 대피령 내리면 업무 시간에 일 안 해도 된다고 좋아한다는 사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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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말을 들은 레드는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말문이 턱 막히는 걸 느꼈다. 그게 대체 무슨 꼴인가. 그래서야 마치…….

    ​

    “그게 무슨, 완전 애들 소꿉장난이잖아요…….”

    “그거 어디 가서 말하면 욕 먹는다. 배가 불렀다고.”

    “왜요……?”

    “빌런들이 게릴라 작전 펼치면서 히어로 가족들 머리에 총알부터 꽂아넣는 도시나, 아예 외계에서 찾아와서 대화도 안 통하는 괴물을 상대해야 하는 도시보다는 나으니까. 아니면 너 그런 도시로 전출 갈래?”

    “……아니요, 잘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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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곳으로 가면 네가 원하는 히어로 놀이를 실감나게 할 수 있다는 소장의 말에 레드는 사과의 말을 입에 담았다. 확실히. 납득은 할 수 없어도 이해는 할 수 있다. 빌런들이 마구잡이로 날뛰고 사람들을 마구 죽여대는 것보다야 낫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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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생각해보면 이런 형태의 빌런이 나쁜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이 도시에서 활동하면서 일종의 룰을 만들고 있었다. 이 도시에선 이렇게 활동해야 한다고. 그러지 않으면 다른 누구보다 자신들을 먼저 적으로 돌리게 될 거라고.

    ​

    실제로 이 도시의 빌런 범죄 사망률은 다른 도시에 비해 십분지 일도 안 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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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희들이 해야 할 일은 그런 이상한 생각을 품는 게 아니라 현장에서 제압해서 체포하는 거다. 다행히 그런 것까지 뭐라 하지는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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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거 말인데요. 그 짐승 새끼 이상하리만치 강해지지 않았어요? 원래 그렇게 강했나-.”

    “레드.”

    “아, 미안. 짐승이 아니라 빌런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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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드의 말에 소장은 그럴 수도 있다는 듯 고개를 주억이며 주머니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그 물건을 본 레드는 이게 뭐냐는 듯 소장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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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장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며 제가 꺼내든 물건의 정체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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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블스 기업에서 내놓은 신제품이다. 에너지 드링크지.”

    “이건 왜…….”

    “우리 과학자들이 분석한 결과, 이 제품은 대략 몇 만분의 일 정도로 희석된 거 같은데 그럼에도 현존하는 모든 에너지 드링크의 성능을 아득히 뛰어넘는다고 하더군. 가격 대비 성능이 말이 안 되는 수준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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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의 조직이 운영하는 기업에서 내놓은 성능 좋은 에너지 드링크.

    그리고 갑자기 강해진 악의 조직의 간부.

    이 둘의 관계를 의심하지 못 한다면 목 위에 있는 것이 모자걸이는 아닐까 의심해봐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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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이걸 만든 과학자를 찾는다.”

    “……찾으면요?”

    “어떻게든 우리 쪽으로 회유해봐야지.”

    ​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소장도 레드도 그것이 가능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걸 만든 게 누구인지는 몰라도 세계적인 공룡기업, 이블스보다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할 수는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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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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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취!”

    “괘, 괜찮으세요……?”

    “아, 네. 갑자기 오한이 끼쳐서.”

    ​

    나는 코를 훔치며 연구실까지 찾아온 아일레를 바라보았다. 짧은 시간동안 파악하기를 자기 의견 말하는 것도 어려워하는 이 음침한 소녀가 제 연구실까지 찾아온 건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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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생각이 맞아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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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보, 보스한테 들었어요. 에이트 씨가 제 도구를 만들어주실 거라고…….”

    “예. 그렇죠. 평소에 쓰던 건 있으세요?”

    “아, 아뇨. 전 그냥…… 마법소녀를 만날 수 있어서 빌런 조직에 들어온 거라서…….”

    “흠. 그럼 그냥 제가 알아서 만들면 되나요?”

    “……뭐든지 상관 없나요?”

    ​

    아일레가 눈빛을 반짝이며 물었다. 드물게 자기 의견을 표출하려나 보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아일레는 놀랍게도 말도 더듬지 않고 이야기했다.

    ​

    “─전 촉수가 되고 싶어요.”

    “……네?”

    “촉수요. 모르세요? 마법소녀 동인지를 보면 자주 나오는.”

    ​

    아니, 알긴 하는데.

    나는 어처구니 없다는 듯 아일레를 바라보았다.

    이 음침한 소녀는 진심이라는 듯 나를 마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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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써 머리가 아파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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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vil Scientist is Too Competent

The Evil Scientist is Too Competent

Status: Ongoing
I became a scientist for an evil organization. …But I’m too compe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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