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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

   

    “…죽여버릴 거야.”

   

    춘봉이의 날카로운 시선이 아프다. 

   

    “…미친 변태 색마 새끼.”

   

    난 떳떳하다. 아무리 그래도 현실 농에 손을 대는 미친짓은 하지 않았다. 그냥 물 묻은 천으로 씻기기만 했을 뿐이다.

   

    그리고 애초에 이 새끼 내가 칼빵 맞았을 때 내 몸은 다 봤으면서.

   

    하지만 춘봉이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저걸 잘라버리든가 해야지.”

    “예? 뭘 자른다고요?”

   

    시선에 물리력이 있었다면 이미 자신의 아랫도리에는 커다란 구멍이 하나 뚫렸으리라.

   

    솔직히 좀 무서워서 손으로 가리고 물러서자 춘봉이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씨발거, 시집은 다 갔네.”

    “의료행위는 괜찮다니까. 나만 입 다물면 아무도 몰라.”

    “제발 뒤져 그냥!”

   

    물건들이 날아온다. 이게 아닌가?

   

    카더라에 의하면 여자들은 칭찬을 좋아한다는 모양이다. 그리고 서준은 칭찬 하면 또 일가견이 있었다.

   

    “야야 괜찮아. 그대로 크면 남자 여럿 울릴 몸이던…, 이 씹…! 집에 돌덩이가 왜 있어!”

    “너…, 내가 여기서 일어나기만 해봐. 진짜 각오해라.”

    “하하.”

   

    서준이 비열하게 웃으며 춘봉에게 다가갔다.

   

    “이봐, 춘봉 선생. 그러면 내가 지금 이 기회를 놓칠 수가 없잖아.”

    “드디어 본색을 드러냈구나…! 이 강간마!”

    “예?”

   

    아픈 몸으로 어찌 벌떡 일어선 춘봉이 사납게 달려들었다.

   

    “죽어!”

   

    냥냥펀치가 매서운 기세로 날아든다. 하지만 기껏해야 병들고 어린 여자 아이. 힘겨운 사투 끝에 춘봉을 제압한 서준이 대소했다.

   

    “흐하하! 순순히 내 시중을 받아라!”

   

    몸이 나아지면 복수하겠다? 그러면 복수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편안함으로 길들여버리면 그만이다.

   

    “큿…! 죽여라!”

    

    근데 방금 그 난리를 피우면서 기껏 씻겨놨던 몸이 다시 땀에 폭싹 젖었다. 이건 가만히 두고 볼 수 없다.

   

    “또, 또…!”

   

    한 번 더 씻김당한 춘봉이가 그제야 얌전해졌다. 또 땀에 젖으면 씻김당할 운명이라는 걸 깨달아서일까? 아니면 두 번쯤 당하니 슬슬 포기하기 시작한 걸까.

   

    기운 없이 축 늘어진 꼴이 조금 불쌍해보여서 말을 붙였다.

   

    “어이, 김춘봉. 왜 그렇게 기운이 없어.”

    “…너 때문에 개새끼야. 그리고 난 김 씨가 아니라 금 씨야.”

    “뭣.”

   

    금춘봉? 어떻게 사람 이름이 금춘봉?

   

    농담이 아니라 조금 충격받아서 눈만 굴리고 있으니 사나운 시선이 날아들었다.

   

    “이 모자란 놈아. 진짜 내 이름이 춘봉이겠냐? 애가 생각이 없어.”

    “가명이었어? 난 또 진짜 춘봉인 줄 알았지.”

    “…희.”

    “왜 갑자기 쪼개.”

   

    뻐억-! 날아든 잡동사니에 머리를 정통으로 얻어맞았다.

   

    “악…!”

    “병신아. 이름이 희라고. 금희.”

    “쓰읍…. 금희. 예쁘장한 이름이구만.”

   

    곰곰이 생각하던 서준이 물었다.

   

    “설마 공주 희姬 자 쓰냐?”

    “그런 뜻도 있긴 하지.”

    “그래도 돼? 뭐라 하는 사람 없냐?”

   

    대부분의 무협지에서는 무림과 관을 구별한다. 그 왜 관무불가침이라는 말도 있잖은가. 관과 무림은 서로 간섭하지 않는다는 말.

   

    근데 그건 그거고, 황실을 도발할 게 아니라면 보통 이름에 왕王, 제帝, 희姬, 그런 건 잘 안 쓰는 걸로 알고 있는데. 아닌가?

   

    “누가 뭐라 해. 우리 집은 그래도 됐어.”

    “오…. 혹시 아빠가 황제니?”

    “개소리야. 자세히 알려 들지는 마. 어디 가서 내 이름 말하고 다니지도 말고.”

    “세상에.”

   

    호다닥 춘봉이에게 다가간 서준이 그녀의 볼을 찰싹 붙잡았다.

   

    “우리 춘봉이, 그런 얘기를 다 해주고. 오빠를 너무 좋아하는 착한 동…, 억…!”

   

    개새끼. 그래도 급소를 노리진 않아서 참았다.

   

   

    *

   

   

    몸도 아픈 주제에 힘을 너무 써서 그런가, 춘봉이는 금세 새근새근 잠들었다.

   

    서준은 집밖으로 나와 오늘의 성과를 확인…,

   

    “하나도 안 보이네.”

   

    가로등 하나 없으니 뭐가 보일 턱이 있나. 그냥 죄다 집구석에 박아놓고 칼 하나 덜렁 들고 나왔다.

   

    ‘이게 진짜 칼.’

   

    아마 이런 걸 박도라 부를 거다. 나름 열심히 손질했는지 날이 예리하다.

   

    박도는 생각보다 무거웠고, 의외로 가벼웠다. 물론 어려져버린 몸으로 마구 휘두를 만한 물건은 절대 아니었다.

   

    “예아.”

   

    하지만 내가 누구? MUGONG 고수 이서준. 박도를 양손으로 쥐고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불빛 하나 없어 유난히 밝은 밤하늘. 별빛인지 달빛인지 모를 아른한 빛이 박도의 거친 표면에서 산란한다.

   

    그 모습에 오늘 낮의 일을 겹쳤다. 하늘을 끌고 내려오던 그 감각. 삼재검법의 태산압정. 이름의 뜻 그대로.

   

    쐐액-!

   

    짜릿한 손맛에 전율이 돋는다. 홀린 듯 검을 휘두르던 서준은 점차 정신이 몽롱해지는 것을 느꼈다.

   

    몸은 검을 휘두르지만, 나는 검을 휘두르지 않는 듯하다. 오히려 검에 대한 생각 대신 다른 생각들이 머릿속을 돌아다녔다.

   

    ‘춘봉이 걔는….’

   

    왜 갑자기 자신의 이름을 밝혔을까. 

   

    여자라는 게 들켜서? 그런데 아무 짓도 안 해서 신뢰가 생겼나?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어쩌면 일종의 애원일 수도 있다. 이런 중요한 걸 알려줬으니 떠나가지 말라고.

   

    아니면 그냥 어린애라 별 생각이 없었을 수도 있다. 

   

    ‘알 게 뭐야.’

   

    중요한 건 달밤이 아름답다는 것이고, 내가 검을 휘두른다는 것이고, 춘봉이는 까칠한 동생이라는 것이다.

   

    달이 밝은 밤하늘 아래 한 아이가 칼춤을 추었다.

   

   

    *

   

   

    “기상.”

   

    희미한 햇살이 무너진 천장 사이로 스민 순간 서준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이게 무공?’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났는데 몸이 개운하다. 춘봉이는 숙면 중. 조용히 박도를 챙겨들고 밖으로 나갔다.

   

    시원하게 땀을 흘리니 뱃속이 난동을 피우며 밥 달라고 지랄을 한다.

   

    집으로 들어온 서준이 물 묻힌 천으로 몸을 닦고 있자 궁시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미친 새끼. 이제 여자라는 거 알았으면 좀 안 보이는 데서 하지?”

    “꼬맹이가 무슨 여자 이 지랄.”

    “…개새끼.”

   

    춘봉이가 골골거리며 일어난다. 서준은 그대로 태클을 걸어 춘봉을 바닥에 다시 눕혔다.

   

    “아악…! 뭐 하는데!”

    “쉬고 있어. 밥 사올 테니까.”

    “사온다고?”

   

    춘봉이의 눈앞에 돈주머니를 흔들었다. 말해 뭐하랴. 범죄자 친구들의 주머니에서 챙긴 돈이었다.

   

    “우리 이제 돈 좀 있어.”

   

    물론 사치를 부릴 정도는 아니라 빙탕호로는 뽀릴 생각이다.

   

    “너 그대로 나갈 생각은 아니지?”

    “뭐가? 이대로 나갈 건데?”

    “칼은 놓고 나가 미친놈아.”

   

    춘봉이가 허리춤에 어떻게든 천으로 잘 묶어놓은 박도를 가리켰다.

   

    “왜? 호신용 무기 하나 있으면 좋잖아.”

    “병신이야? 걔네 방파 놈들이 그거 보면 참 좋아하겠다.”

   

    방파? 그 범죄자 친구들한테 친구들이 더 있었다는 말인가?

   

    “딱 보면 모르냐? 흑도黑道 버러지 놈들이잖아. 무공도 조금 배운 것 같던데. 저급한 쓰레기 무공 같긴 하지만.”

    “그런 똘마니들이?”

    “위치가 조금 있겠지. 똘마니들은 그런 박도 구하기도 힘들어.”

    “아하.”

   

    얌전히 박도를 집구석에 박아놨다. 골골거리던 춘봉이는 잠시 뭔가 곰곰이 생각하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야, 거기 돈 얼마나 있냐?”

    “누워있으래도.”

    “아, 좀! 니가 내 엄마냐!?”

   

    돈주머니를 뺏어간 춘봉이 대충 액수를 살펴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대충 맞겠네. 가자.”

   

   

    *

   

   

    “좀 빨리 못 가? 이게 느려터져가지고.”

   

    당당하게 등에 업힌 춘봉이 발로 엉덩이를 차댄다.

   

    “던져버린다?”

    “해보든가 새끼야.”

    “확 그냥.”

   

    던지는 시늉을 하자 춘봉이가 목을 꽉 끌어안았다.

   

    “껙…! 야, 야! 목! 목 졸린다고!”

    “까불고 있어.”

   

    기세등등해진 춘봉이를 업고 그녀의 안내에 따라 도착한 곳은 누가 봐도 대장간이었다. 주로 낫이나 호미 같은 농기구들이 많았는데, 딱 보기에도 썩 품질이 좋아보이진 않았다.

   

    “여기서 니 검 하나 사자.”

    “검? 니가 나보고 기공 배우라며.”

    “이제 보니까 아니야. 그냥 오성이 뛰어난 거였어.”

   

    춘봉이가 툭툭 치는 손길에 따라 구석으로 향하니 그녀가 재잘재잘 설명을 시작했다.

   

    “애초에 기공은 절정쯤은 돼야 뭐라도 있는 무공이야. 그 전까지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그런가?”

    “당연하지. 애초에 체내의 기를 외부로 발출할 줄 아는 경지를 일류라 불러. 그렇게 체외로 발출한 기를 어느 정도 자유자재로 다룰 줄 알면 절정 고수라 부르고.”

   

    그런데 기공의 시작은 외부로 발출한 기를 다루는 것이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기공을 제대로 쓰려면 일단 절정의 경지에 다다라야 한다.

   

    “흠.”

   

    고민하던 서준이 한 팔로 춘봉이를 업고 다른 한 쪽 팔을 앞으로 뻗었다.

   

    “이런 건 기공 아니냐?”

   

    딱밤을 장전하듯 구부린 중지를 엄지로 잡았다. 

   

    ‘중지 끝에 기를 모은다는 느낌.’

   

    어젯밤 우연히 성공했던 감각을 떠올린다. 어려운 일도 아니다. 

   

    느낌이 왔을 때 그대로 딱밤을 때리듯 중지를 튕겼다.

   

    퓩-

   

    조준했던 나무의 표면에 살짝 흠집이 생겼다. 중지 끝에 모은 기가 총알처럼 날아간 것이다.

   

    “개쩔지. 이름은 대충 탄지공 정….”

    “뭐야 씨발! 어떻게 했어!”

    “잘이요.”

   

    발광하는 춘봉이를 달래 대장간에 들어선 건 시간이 꽤 흐른 뒤였다.

   

   

    *

   

   

    “…너 집에 가서 꼭 제대로 설명해라.”

    “알았다고.”

   

    대장간 문을 열고 들어가자 다 늙은 사내 하나가 느릿느릿 걸어왔다.

   

    “뭐냐 니네는. 거지들 줄 밥 없으니까 꺼져라.”

   

    하얗게 샌 머리와는 다르게 양팔에는 근육이 빵빵하다. 무공이고 뭐고 머리를 쥐어박히면 그대로 터질 것 같았다.

   

    서준이 할 말을 고르는 사이 춘봉이가 입을 열었다.

   

    “알아서 물건 고르고 계산할 테니까 꺼져.”

   

    이 새끼, 일단 노인 공경이 무슨 뜻인지 모르는 건 확실하다.

   

    “맞는 말이네. 저리 꺼지쇼 영감.”

   

    나도 잘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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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tial Arts Ain’t That Big of a Deal

Martial Arts Ain’t That Big of a Deal

무공 뭐 별거 없더라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fell into a phony martial world. But they say martial arts are so hard? Hmm… is that all there is to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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