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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

   북부의 지배자 하덴하르츠 가문의 막내 여식.

     

   비앙카 하덴하르츠.

   북부에서 가장 차가운 얼굴을 지닌 그녀는 설녀라는 별명을 지닐 정도로 표정 없는 여자로 유명했다.

     

   그래도 외모만큼은 뛰어나 후에 엄청난 미녀가 될 거란 소문이 파다했다.

     

   그런 그녀가 왜 자신의 약혼자인가.

   그 이유는 실로 간단했다.

     

   ‘정략결혼으로 보내기 딱 맞으니까.’

     

   하덴하르츠는 발하임과 연이 쌓여 좋고, 발하임은 쓸모없는 반푼이를 써먹을 때가 있어서 좋다.

   이러나저러나 그녀와 자신 둘 다 정략결혼으로 써 먹히는 몸이었다.

     

   ‘뭐, 어차피 말 그대로 그냥 정략결혼이고.’

     

   애초에 비앙카는 자신을 싫어했다.

   이번에도 그리 다르지는 않으리라.

     

   그보다 그녀의 진짜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세계 침식에서 나타난 이들.

   세계 침식자와 함께 손을 잡고, 세상을 멸망시키려 했던 장본인이니까.

     

   백귀(白鬼)

     

   그녀가 과거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천하십강 중 한 명을 죽이고 얻은 별칭이었다.

     

   “들어 오라 해.”

     

   북부에서 약혼자 만나러 먼 길 오셨다는데 그냥 보낼 수도 없고.

   무엇보다 크라슈에게는 지금 그녀가 때마침 필요한 상황이기도 했다.

     

   “예, 알겠습니다.”

     

   크라슈의 명을 듣고, 알리오드는 바로 자리를 떴다.

   크라슈는 서재에 구비된 거울에 비춘 자신을 보았다.

     

   꽤 형편없군.

   아무래도 옷 정도는 갈아입어야겠다.

     

   그렇게 생각한 크라슈는 손님을 맞이하고자 걸음을 옮겼다.

     

     

   * * *

     

     

   비앙카 하덴하르츠.

     

   북부의 지배자 하덴하르츠 가문의 막내 여식이자 설녀라는 별명을 지닌 그녀는 무척이나 새하얀 단발 머리카락을 지니고 있었다.

     

   설녀라는 별명답게 피부마저 백옥에 가까운 그녀는 푸른 달빛과도 같은 눈으로 자신의 손끝을 보았다.

   그녀의 손톱 끝에는 기이하게도 눈의 결정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저주의 상징이었다.

     

   그녀가 태어나기 전, 그녀의 어머니는 세계 침식에 휘말렸다.

   그 과정에서 저주당했고, 결국 뱃속의 그녀에게까지 저주가 이어졌다.

     

   그것은 어떠한 감정도 느낄 수 없는 눈인형이라는 저주였다.

     

   태어날 때부터 지닌 저주라 영혼까지 묶여 버린 탓인지.

   이 저주는 해주사 조차 풀 수 없었고.

   그녀는 12살이 되는 해까지 웃음은커녕 울음조차 없이 살아왔다.

     

   피부색과 머리 탓에 더더욱 차디차 보이는 그녀의 얼굴은 그 무표정만 제한다면 참으로 장래가 기대되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외모도 큰 의미가 없었다.

   왜냐하면 세계 침식의 저주가 걸려 오염된 몸은 신들이 계약하러 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늘 하덴하르츠에서 홀대받는 삶을 살았다.

     

   감정이 없기에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그녀의 친형제들은 어머니를 죽이고 태어난 저주받은 자식인 그녀를 달갑지 않아 했다.

     

   거기에 신과의 계약조차 못 하는 아이니.

   가문에서도 가치가 없었다.

     

   그러니 그녀는 손쉽게 정략결혼으로 보내졌다.

   오늘도 그녀가 청송관에 방문한 이유는 약혼자로 내정된 크라슈 발하임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스타론 왕국에서 무위로 가장 유명한 발하임.

   가문의 존재 하나만으로 제국조차 스타론 왕국을 건드리지 못할 만큼 괴물을 쏟아내는 가문이다.

     

   그런 가문의 막내와 약혼했다는 사실은 하덴하르츠에도 엄청난 기회였다.

   북부의 지배자라 한들 중앙에서는 결국 밀려나는 처지인 게 현실이니 말이다.

     

   오늘은 약혼자와의 두 번째 만남.

   그럼에도 그녀는 아무런 흥미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녀의 기억 속 크라슈는 모든 것을 포기한 패배자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꺼져. 하덴하르츠고 뭐고, 결국 발하임의 권력밖에 관심 없는 년이 약혼자 행세 하지 마.」

     

   굳이 말한다면 크라슈는 그녀가 싫어하는 축에 속했다.

   그는 말버릇이 험하고, 모든 걸 비관적으로 보고 있었으니까.

     

   감정은 없어도 좋고 싫음 정도는 있는 비앙카였다.

     

   그러니 이번 자리도 비앙카는 썩 달갑지 않았다.

   크라슈는 또 자신을 비난할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뚜벅뚜벅-

     

   그러는 순간 밖에서 발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 발소리의 주인이 크라슈임을 눈치챈 비앙카는 옷매무새를 고쳤다.

     

   감정이 없기 때문인지 12살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빨리 철이 들고 만 그녀는 현실 수긍조차 빨랐다.

   결국 그녀는 이곳에서 낮춰야 할 처지였기 때문이었다.

     

   끼익-

   

   문열리는 소리와 함께 비앙카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그러자 문을 연 크라슈가 보였다.

   푸른색과 검은색이 뒤섞인 머리카락에 자신과 비슷한 푸른색 눈동자.

   13살 답게 앳된 얼굴을 지닌 그는 꽤나 사나운 눈매를 제외하면 그럭저럭 생긴 편이었다.

     

   “비앙카.”

   “오셨네요.”

     

   비앙카가 바로 존댓말로 응수하자 잠시 비앙카를 바라보던 크라슈는 그녀의 앞자리로 와 앉았다.

   그러곤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은 찻잔을 보더니 말했다.

     

   “우리 하녀가 센스 없었네. 고양이 혀에게 뜨거운 홍차라니.”

     

   쓰게 웃는 크라슈를 보고, 비앙카가 멈칫하였다.

   자신이 뜨거운 걸 잘 못 먹는다는 사실을 어디서 주워들은 걸까.

     

   하지만 그것 말고도 비앙카는 크라슈에게 예전과 다른 느낌을 받았다.

   뭐랄까, 사람 자체가 정돈된 느낌이었다.

     

   “하녀에게 이쪽은 일러둘게.”

     

   크라슈는 그리 말하곤 쿠키가 담긴 통을 열었다.

   그러곤 당연하다는 듯 비앙카의 접시에 마카다미아 쿠키를 올려 두었다.

     

   마카다미아 쿠키는 비앙카가 가장 좋아하는 맛의 쿠키였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크라슈의 행동을 조금 멍하니 보고 있던 순간.

   크라슈가 자신의 앞에 초콜릿이 박힌 쿠키를 하나 두곤 입을 열었다.

     

   “먼 길 오느라 수고했어.”

   “약혼자니까요. 얼굴은 미리미리 익혀 두어야 해요.”

   “그래? 그런 것 치곤 약혼자가 아니라 상관을 대하는 말투지 않냐?”

     

   크라슈는 옅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덕에 사나웠던 그의 눈매가 조금은 누그러진 분위기가 되었다.

     

   그 모습의 비앙카는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크라슈 님, 한 가지만 여쭤봐도 괜찮을까요.”

     

   12살 어린애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투를 쓰는 비앙카를 보고, 크라슈는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무언가 일이 있으셨나요?”

     

   불과 5개월 전.

   자기 얼굴 조차 꼴 보기 싫다는 듯 굴던 크라슈는 그때와는 너무나 달라져 있었다.

     

   그는 이토록 친절하고 자상한 인물이 아니었다.

   혹시 그 5개월간 심경의 변화라도 있었던 걸까.

     

   어찌 보면 크라슈가 화를 낼 수도 있는 물음이었다.

   크라슈는 찻잔을 들어 올렸다.

     

   “이전에 나랑 많이 다르냐.”

     

   그 순간 크라슈의 말을 들은 비앙카가 아차 했다.

   기껏 그가 친절을 베풀었는데 구태여 거기에 의문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죄송해요. 실언이었어요.”

     

   바로 정정하는 그녀를 보고, 크라슈는 찻물을 입에 한 모금 머금었다.

   솔직하게 말해 크라슈는 예전에 자신이 어떻게 비앙카를 대하였는지 기억이 없었다.

     

   십 대 중후반의 기억도 가물가물한데 하물며 십 대 초반이라니.

   알리오드같이 특수한 사건이 아니고서야 이맘때가 기억날 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건 비앙카와의 첫 만남도 마찬가지였다.

   어렴풋이 알겠다는 건 자신이 치기 어린 시절 여기저기 막말하고 다녔다는 거다.

     

   세상의 절망하고, 좌절하던 것이 가장 극도로 심해진 시기였으니까.

   어찌 보면 아직은 포기 못한 시기기도 했다.

     

   포기해 버리면 절망도 좌절조차도 없거든.

     

   “……넌 참 변함없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비앙카는 예나 지금이나 같았다는 것이다.

     

   불타오르는 북해빙관 앞에서 마지막을 맞이하던 그 날 조차 그녀는 오늘과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장면은 크라슈의 기억 속에서도 여전히 남은 장면이었다.

     

   “네?”

     

   크라슈의 혼잣말을 들은 비앙카가 반문하자 크라슈는 별거 아니라는 듯한 손을 휘저었다.

   그러곤 찻잔을 내려 둔 뒤 양손에 깍지를 끼고 다리 위에 올렸다.

     

   “비앙카, 난 오늘 너에게 한 가지 제안하려고 한다.”

   “제안 말인가요?”

     

   비앙카의 커다랗고 푸른 눈이 깜빡여졌다.

   왕국 제일의 발하임에서 태어난 크라슈가 자신에게 제안할 것이 있나 싶어서였다.

     

   “혹시 파혼인가요.”

     

   비앙카가 가장 먼저 생각난 건 파혼이었다.

   하지만 막상 크라슈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가문끼리 정한 걸 우리가 파혼이 가능할 거라 생각하냐?”

     

   그건 그랬다.

   가문 끼리 정한 일을 막내 둘이서 없던 일로 하는 게 가능할 리가 없었으니까.

     

   “나중이라면 모를까.”

     

   하지만 이어진 말을 보면 크라슈는 먼 미래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하긴, 너도 나 같은 녀석에게 묶여 있는 것 보다야 하루빨리 파혼하는 게 더 좋긴 하겠지.”

     

   크라슈는 자학적인 말을 내뱉었다.

   비앙카는 그런 크라슈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의 사정은 비앙카 또한 잘 알고 있다.

   약혼자인 그의 심기를 거스르기 싫어 크라슈에 관해서 공부했으니까.

     

   그래서 그가 발하임의 수치라 불리는 것 또한 그녀는 잘 알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발하임인데.’

     

   남들이 보기에는 평생 부러워질 자리에 태어났음에도 그는 자존감이 낮았다.

     

   “저는 크라슈 님의 약혼자예요.”

     

   그리고 그런 그는 자신의 약혼자였다.

   앞으로 쭉 변함없을.

     

   “그것은 앞으로도 변치 않아요.”

     

   가문이 사라지지 않는 한 그것은 변치 않는다.

   그렇기에 그녀가 그리 말하자 크라슈는 헛웃음을 흘렸다.

     

   가문을 중시한 그녀이기에 방금전 말에는 그녀 개인의 감정이 조금도 들어가 있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감정이란 만들어질 수 없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최소한 입에 발린 말 보다는 마음에 들었다.

     

   “어쨌든 파혼은 아니고, 너한테는 다른 걸 하나 제안하고 싶다.”

     

   그렇게 말한 크라슈는 옅게 미소를 지었다.

     

   “나는 최근에 신 한 명과 계약했어.”

     

   비앙카가 잠시 놀랐다.

     

   보통 평균적으로 신과 계약하게 되는 나이는 15살이다.

   하지만 그는 발하임이다.

     

   태어날 때 부터 신들이 눈독 들이는 발하임의 직계들은 대부분 10살 전에 신과의 계약을 마친다.

   그런 만큼 사실 크라슈는 많이 늦은 상태였다.

     

   하지만 축하할 일은 축하할 일.

     

   “축하드립니다.”

     

   비앙카가 그에게 축하하자 크라슈가 감흥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는 신을 통해 각성한 능력으로 네 저주를 받고 싶어.”

   “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것은 전혀 뜻밖의 것이었다.

   무심코 반문한 비앙카의 두 눈이 한차례 깜빡여졌다.

     

   저주를 달라니.

   너무나 생뚱맞은 소리였다.

     

   “좀 쓸 곳이 있거든.”

   “저주를 말인가요?”

   “그래, 그 저주만 준다면 네가 원하는 걸 나도 하나 들어 줄게. 물론 네가 원한다면 파혼이어도 좋고.”

     

   비앙카는 잠시동안 침묵하였다.

   당최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저주를 달라니.’

     

   자신의 저주는 감정을 잃는 저주다.

   그런 저주를 왜 가지고 싶어 하는 걸까.

     

   “혹시 저주를 직접 몸에 새기시려는 건가요?”

     

   비앙카 처지에서는 이제는 감정이 없는 것은 익숙한 것이었지만.

   이미 감정을 아는 이가 그런 짓을 했다간 분명 큰 혼란이 올 것이다.

     

   그렇기에 비앙카가 되묻자 크라슈는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해주사들도 못 푼 저주였는데.’

     

   크라슈의 반응을 보면 마치 당연하게 저주를 가져갈 수 있다는 반응이었다.

     

   ‘크라슈 님은 그런 신과 계약한 걸까.’

     

   저주를 가져갈 수 있다고 치자.

   크라슈는 그 저주를 훔쳐 감정을 없애 무엇을 하려는 걸까.

     

   비앙카는 곰곰이 크라슈의 정보를 되짚어 보았다.

   발하임의 반푼이이자 정략결혼의 도구 취급당하고 있는 그.

     

   분명 다른 직계들과도 사이가 무척이나 안 좋았으며, 스스로 자신을 포기했다.

     

   그런 그가 감정을 지우려 한다.

     

   ‘지쳤구나.’

     

   모든 정보를 나열한 순간 비앙카는 깨달았다.

     

   크라슈는 지쳐 버린 것이다.

   너무 많은 감정을 쏟아야 했기에 더 이상 감정을 쏟기 싫어 결국에는 저주에 매달릴 정도로.

     

   그리고 비앙카는 그렇게 감정이 내몰린 사람의 최후를 알았다.

     

   ‘우울증이라고 했지.’

     

   정신 쪽을 공부하던 북부 정신계 마법사인 삼촌이 해준 말이 떠올랐다.

   그는 종종 비앙카에게 정신과 관련된 여러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지금의 크라슈가 딱 그 느낌이었다.

     

   ‘사람은 갑자기 바뀌고, 주변 사람에게 친절해지면 그건 주변 사람에게 끝을 고하는 과정이라 했어.’

     

   고개를 든 비앙카가 크라슈를 바라보았다.

   자세히 보지 않아 몰랐지만, 그의 몸에는 여기저기 상처 자국과 짓무른 피부가 보였다.

     

   ‘자해.’

     

   그것을 보고, 비앙카는 크라슈가 자기 스스로 상처 내고 있음을 깨달았다.

   감정이 없던 그녀조차 약간의 측은함을 느낄 정도로 크라슈는 내몰려 있었던 것이다.

     

   실상은 그저 비술서의 훈련을 열심히 하다 보니 생긴 상처에 불과한데 말이다.

     

   ‘나는 약혼자니까.’

     

   크라슈를 완벽히 오해하고 만 비앙카는 그의 손 위에 자기 손을 포개었다.

     

   “크라슈 님, 괜찮아요. 이겨 낼 수 있어요.”

   “어, 응?”

     

   이번에는 크라슈가 의문을 가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삽화 및 일러스트를 총정리해서 인스타에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인스타에 ‘무화꽃란’ 입력하시면 업로드를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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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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