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5

샤샥-

묵언수행 같은 대치가 10초쯤 이어졌을까. 마리아는 다시 나무 뒤로 숨어버렸다.

그렇다고 다른 데로 가버리는 것도 아니고. 어깨와 머리카락만 살짝 드러난 채 제자리를 유지했다.

···이거, 내가 와줬으면 하는 거겠지?

“저, 마리아?”

빼꼼-

호명 당하자 고개를 내밀어 재차 상황을 살피는 마리아.

내 선택은 정답이었는지, 다가오는 걸 확인한 그녀는 나무 뒤에서 나와 완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서 뭐 하고 있었어?”

“오빠 관찰.”

“···그렇구나.”

너무 솔직해서 오히려 당황스럽다. 이런 게 어린아이의 패기이자 특권인가.

그리고 당연하다면 당연하게, 시선은 내 얼굴. 로브 안쪽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돌아가지 않아도 괜찮아? 부모님이 걱정하실 텐데.”

“응. 괜찮아. 마리아 부모님 없어.”

“···미안. 오빠도 없으니까 용서해 주라.”

이게 당최 무슨 막장 대화인지를 모르겠다. 미안해요 아빠. 근데 여기선 없는 거 맞잖아요.

로브를 가다듬던 손길은 갈 곳을 잃고 어색하게 주변을 방황했다.

“그보다 오빠는, 밥 안 먹어?”

“어, 으응···?”

“오빠가 뭐 먹는 거 한 번도 못 본 거 같아.”

마리아가 이 틈을 기가 막히게 파고들어 압박 면접에 돌입했다. 음식을 일절 먹지 않는 거에 더해. 자지도, 쉬지도 않고 사냥하는 것에 대한 의문.

‘이게 정상인 거겠지···.’

올 것이 왔다는 한탄. 그래, 시자쿠마우르 사람들이 특이한 거였다.

게임판타지 세계라는 배경과 시골 특유의 애매한 정보량이 조화를 이룬 결과로. 내가 말하기도 전에 수호신이라며 알아서들 설득당한 것.

그 양반들은 머리에 뿔 달린 말도 있다고 믿지 않을까. 현역으로 활동하는 A급 모험가한테 이를 기대하기란 과한 욕심이렸다.

“그게, 말이지.”

일단 우연이니, 안 보이는 곳에서 혼자 먹었느니 얼버무리는 건 우책이다. 마리아가 본인 눈으로 직접 본 기간은 그리 길지 않지만, 이미 마을 단위의 증언을 들은 바 있으니.

“이 마을 외곽에 저주받은 밀밭이라는 게 있어.”

마리아가 내 정체를 의심하는 이유는 아마도 ‘생물 같지 않은 행적’, ‘이를 가능케 할 마나의 부재’일 터.

고로 여기선 그 부분을 긁어주면서 다르게 납득시킬 무언가를 쥐여주도록 한다.

“저주받은, 밀밭?”

“맞아. 지면에 가공할 양의 마나를 품고 있어서, 밀을 아무리 베어내도 끊임없이 자라나는 기이한 장소지.”

전혀 예상치 못한 이야기가 튀어나오자 마리아가 무표정으로 당혹감을 표출했다.

내가 말해놓고도 이게 뭔 모순인가 싶지만, 알아보는 나로서도 신기할 따름이다.

“나는 모종의 이유로 그 밀을 섭취하게 됐어.”

자세한 내막은 숨기면서, 사정을 이해하기에는 충분한 정보를 뿌린다.

이러면 자체적으로 예측을 내리게끔 유도하는 동시에. 타인에게는 밝히지 못할 사연이라는 낌새 탓에 쉽사리 캐묻기에도 애매해진다.

“그래서 다른 음식을 섭취할 수가 없어. 위에서 밀이 끝없이 소화되고, 또 자라나고 있거든. 무한히 솟아나는 기운을 감당하기 위해선 쉬거나 잘 수도 없어.”

“저런···.”

어느덧 공감하고 안타까워해 주는 마리아를 보고 있자면 마음이 옥죄여 오지만, 어쩌겠는가.

그녀를 등쳐먹겠다는 것도 아니다. 이건 그저 살기 위한 몸부림이다.

“멀쩡한 참새들을 마수로 만든 것도 사실 그 밀밭이야.”

“근데 왜 빨리 안 없앴어?”

“밀밭 자체로는 마나가 너무 짙어서 되려 접근을 안 하니까, 비용도 비싸고 하니 그냥 방치했다나 봐.”

“그럼 어떤 나쁜 사람이 직접 캐서 먹인 거야?”

“어···으응. 범인은 못 잡았지만, 아마 그런 모양이야.”

크흠. 헛기침으로 탈선하려는 분위기를 전환했다.

밀을 누가 베서 참새한테 먹였는가,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다.

“아무튼. 나는 그 밀밭의 저주를 해결하기 위해서 매일 쉬지 않고 사냥을 하면서 능력치를 쌓았어. 지치지 않는 저주는 그런 면에선 불행 중 다행이려나.”

“그렇구나···.”

줄곧 로브 안을 쫓던 보랏빛 눈동자가 아래로 치우쳤다.

거의 넘어왔다. 이제, 마지막 한 번이다.

“마리아. 염치 불구하고···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

“응···? 부탁?”

“내가 열심히 한다고 해봤는데, 이것도 저주의 영향인지 성장이 여간 힘든 게 아니더라. 그래서 말인데···혹시 밀밭의 저주를 해결하는 걸, 도와줄 수 있을까?”

“알겠어. 마리아한테 맡겨.”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승낙해 주는 모습에. 못난 어른은 속으로 씁쓸한 감정을 삼켰다.

너무 괴로워하지는 말자. 밀밭이 가만 내버려둬서는 안 될 문제라는 건 분명한 진실이고, 공은 온전히 마리아에게 몰아줄 작정이니까.

제아무리 시골바닥이란들 마을 단위의 비호는 무시할 게 못 된다. 

무엇보다 스토리 중 단 한 줄도 풀리지 않은 설정, 그렇다고 사소해서 생략됐을 만한 것도 아닌 게. 예상외의 보상이 기다리고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적어도 서로에게 나쁜 이야기는 아니리라.

“고마워. 이 사례는 반드시 할게. 당장엔···변변찮은 거뿐이긴 하지만.”

“응. 뭐로 부탁할지 생각해 둘게.”

* * *

레벨이 오른 덕분인지, 아니면 단순히 진실을 알고 나서 그런지.

오랜만에 다시 방문한 밀밭은 유독 흉흉한 이미지로만 다가왔다. 괜시리 불길한 기운이 감도는 듯한 착각도 일고.

마리아도 그닥 유쾌한 기분은 아닌지 인형을 안은 팔에 힘이 들어간 게 보였다.

“이런 마나는 처음이야.”

나는 애초에 마나를 느끼는 경험 자체가 생소해서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런데도, 이게 예사 물건은 아니라는 것만큼은 확실하게 알겠다. 숙련도를 올릴 적에도 이 감각이 발현됐다면 좋았으련만.

“밀에 공급되는 마나를 억제하면서 뿌리까지 잘라내 줘. 바로 다시 자라나지 않으면 거기는 해결된 거야.”

“응.”

마리아가 꼭두각시 군단을 일제히 꺼내 곧장 작업에 돌입했다. 일반 인형들은 낫이나 호미로 밀을 베고, 특수 개체들이 이를 처분하는 방식.

겉보기엔 무슨 단체 추수 행사 같지만, 인형술사도 카테고리 최상단까지 올라가면 엄연한 마법사.

밀이 자라나지 않는 구역이 눈 깜짝할 새에 늘어갔다. 마탑 출장 서비스 못지않다.

‘···하나하나 진짜로 살아있는 거 같네.’

마나량이 딸려 거들지도 못하니, 근처 나무 밑동에 앉아 감상이나 늘어놓았다.

숙련도에 의해 각 조건에 맞는 효율적인 움직임을 선보여서 그런가. 사람 못지않은 생동감이 다 느껴진다.

우두커니 서서 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동시 운용하는 마리아가 오히려 기계로 보일 지경. 인형 같은 외모에 표정 변화도 적어서 더욱 그랬다.

짹-! 재잭-!

“아이 씨. 이젠 그냥 참새들까지 난리야.”

양손으로 턱을 받친 채 구경이나 좀 하면서 쉬려니. 마수도 아닌 것들마저 나를 무시하고 달려들었다.

[※︎유전자에 각인된 공포※︎]

[허수아비는 참새를 상대로 무력해집니다.]

얼탱이가 없어선. 게임에선 상호작용도 안 되던 중립 몹한테까지 칼같이 메커니즘을 적용하는 거냐고.

이건 시스템이 변태적인 건지 내 몸땡이가 막장인 건지 심각하게 고민이 들었다.

(빠안~히)

“아 미안. 혹시 방해됐니?”

“으응, 그냥. 오빠가 귀여워서.”

고 녀석 취향 참 특이하구나. 엄마란 사람도 평생을 해준 적이 없는 말인데.

나름 기념비적일 처음을, 만난 지 이틀 된 꼬맹이가 가져갔다는 게 적잖게 씁쓸했다.

‘뭐, 이장 같은 대머리 아재한테 듣는 것보다야 훨씬···?!!’

슉-

사각-

인형 두 기의 공격이 돌연 팔과 몸통을 스쳤다.

밭에서부터 도약해 온 터라 처참해진 스탯으로도 어떻게든 피할 수가 있었다.

“마리아? 갑자기 이게 무슨···?”

“앗. 마리아의 실수.”

마리아의 ‘실수’는 그 뒤로도 이어졌다.

처음 두 기였던 인형은 점차 셋, 넷. 그러다 전체로 번지기까지는 순식간이었다.

‘특수 개체는 가만히 두는 것도 그렇고, 딱히 해코지하려는 걸로는 안 보여.’

파삭-!

‘노리는 건···로브?’

소매 일부분이 뜯겨나가자 마리아의 딱딱한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의심은 거둔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우리 꼬마 인형술사님께서는 나의 정체를 까발리지 않고선 도저히 만족하실 수가 없는 모양이다.

“마리아···오빠랑 놀고 싶었나 보구나?”

“응. 다치지 않게 조심할 테니까, 걱정은 금물.”

인형 100개로 포위하면서 걱정하지 말라고 해도 말이지.

다들 무기를 버렸다는 점에서 믿음이 가려다가도. 마치 범하려는 듯 꼼지락거리는 천여 개의 손가락에는 절로 가시게 된다.

‘저런 건 대체 어디서 배운 거야···.’

“아. 그 전에···”

“응?”

“이거.”

냉전의 긴장감 속, 마리아가 포션을 던져주었다.

HP와 MP는 물론이고, 상태 이상까지 전부 회복해 주는 퍼펙트 엘릭서.

A급 모험가라도 이걸 무더기로 가지고 다니진 않을 텐데. 갑자기 이건 왜?

“아까···공격해 버렸으니까. 혹시 다쳤으면 그거 먹어.”

“음···.”

뜬금없음에 엘릭서를 잠시 내려다보고, 다시 올려다본 마리아는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방금의 들뜬 기색이 무력하게.

저건, 그거다. 나중 일은 생각 못 하고 무심코 저질러 버린 아이가 뒤늦게 자기 잘못을 깨닫고서. 혼이 날까, 미움을 받을까 안절부절못하는 상태.

“안 다쳤으니까 걱정 마.”

“응···.”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저렇게까지 미안해하면 없던 화도 다 풀어지잖아.

어차피 마시지도 못하는 엘릭서는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포위를, 풀지는 않는구나.”

“···아프진 않을 거야. 약속.”

“정말이지···”

거의 울려고 그랬으면서, 집요하다. 내가 뭐라고 저렇게까지 하는지.

뭐, 그래도 잘 알겠다. 방향과 방식이 어떻든 간에 내게 관심을 가져준다는 건. 거기엔 적어도 호의가 담겼다는 건.

그렇기에 더, 정체는 드러낼 수 없다. 저 시선이 괴물을 향하는 혐오의 배척의 시선으로 바뀌는 꼴은. 볼 수 없다.

“마리아, 이건 네가 먼저 시작한 거다?”

낫과 망치를 거머쥐었다.

[공산주의]

[주변 모든 존재의 스탯이 동일해집니다.]

“인형 다 부서졌다고 울면 안 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약을 건네주며 아프지 않을 거라고, 수많은 인파로 둘러싸 노려오는 미소녀라니. 뭔가에 눈을 뜰 것만 같습니다.
다음화 보기


           


Became a Tutorial Scarecrow

Became a Tutorial Scarecrow

튜토리얼 허수아비가 되었다
Status: Ongoing Author:
Due to lack of content, I died to a tutorial scarecrow. [Your character has died.] [Hidden Achievement Unlocked! ‘Lost to the Weakest Monster~♡︎’] And then, I possessed that thing...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