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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

       아이린은 엄격 선생이었다. 약간의 결백증이 있는 그녀답게, 늘 검은 흰 장갑을 끼고 다니며 이곳저곳을 지적했다.

         

       “후배님. 정원이 더럽습니다.”

       “아까전에 치웠는데요?”

       “감점. 말대답하는 건 좋지 않습니다.”

       “…혹시 감점된 점수는 어디까지 있나요?”

       “후배님은 현재 -37점입니다.”

         

       아이린이 나를 쓱 돌아보았다.

         

       “벌레보다 약간 나은 수준입니다.”

       “와. 벌레보다 낫다니. 쩌네요.“

       ”감점. 제대로 된 말을 쓰십시오. 이제 벌레랑 똑같습니다.“

       ”망했네.

         

       나는 쓱 정원을 둘러보았다. 치울만한 건 없었다.

         

       “다 쓸려있는데요?”

       “낙엽이 하나 떨어져 있지 않습니까?”

       “고작?”

       “고작이 아닙니다. 흐트러진 하나가 전체의 분위기를 결정 짓습니다. 이런 낙엽 하나로 ‘더러운’ 교회라 불릴 수도 있습니다.”

       “너무 멀리 나간 거 아니에요?”

       “……”

         

       미소녀가 차갑게 째려보면 포상, 포상이라며 기뻐하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난 아니다. 저런 눈빛을 받으면 솔직히 좀 거슬린다.

         

       나는 쓱 낙엽을 들었다. 담벼락 너머로 쓱 던졌다.

         

       “됐죠?”

       “감점.”

       “또 왜요?!”

       “말투가 건방집니다.”

       “그냥 내가 마음에 안 들지?!”

       “감점. 존댓말을 쓰시길 바랍니다. 후배님.”

         

       그녀와 주로 있는 시간대는 낮. 그녀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주옥처럼 내게 박혔다.

       진짜 말 그대로 ‘주옥’같이.

         

       “후배님은 눈이 얼굴에 안 달려 있습니까?”

       “이 두 눈 시퍼렇게 뜬 게 뭐라고 생각하세요?”

       “장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장식이 아니라면, 새로 하나 다는 게 좋을 거 같군요. 이런 것도 금방 못 외우다니. 이른 시일 내에 교단에서 나가는 걸 추천합니다.”

       “잘났네! 진짜!”

         

       유일하게 보람찬 시간은 성법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그녀는 딱딱한 교사답게, 정리해놓은 이론을 나에게 가르쳤다.

         

       “‘잿불’을 펼쳐보세요. 미어칸트 사제님에게 직접 배웠으니 그 정도는 할 수 있겠죠?”

         

       날 보는 시선이 영 곱지 않았다. 비웃음이 살짝 섞여 있는 거 같기도 했다.

       이제 막 견습 사제가 된 사람한테 성법을 펼치라니. 그야말로 놀부 심보다. 안 되는 걸 알면서도 놀리기 위해서 하는 말이겠지.

         

       하지만 어쩌랴!

         

       나는 멋있게 자세를 잡았다. 손가락을 딱 튕겼다.

       닿으면 따끔한 붉은 불꽃이 손끝에 자리 잡았다.

         

       “이 정도야 뭐. 간단하죠.”

       “…….”

         

       그녀가 처음으로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나와 불꽃을 연달아보더니 이내 놀람은 의심으로 바뀌었다.

         

       “…어디서 배우신 적 있으신가요?”

       “없어요. 그냥 해보니까 되던데요?”

       “…불가능해요.”

       “글쎄요. 불가능이라.”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예습 복습만 철저히 하면, 누구나 할 수 있지 않을까요?”

       “…….”

         

       날 보는 눈빛이 더 날카로워졌다. 그녀가 책을 쾅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배울 수 있는 하위 성법부터 배우겠습니다. 후배님이 그만한 천재라면, 하루에 하나씩은 무리가 없겠군요.”

       “물론이죠.”

         

       나는 생긋 웃었다. 오히려 바라던바.

       하위 성법 네 개라니. 그야말로 대환영이다!

         

       “얼른 진도 빼죠. 선배님.”

         

         

         

       . . .

         

         

         

       미어칸트는 밤늦게 일에 집중했다. 지부에 남은 정식 사제는 자신뿐. 교단 본부의 드문드문한 감찰 또한 이제는 거의 오지 않았다.

         

       버려졌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미어칸트는 손에서 일을 놓지 못했다.

         

       자신이 속했던 지부가 벌인 잘못.

         

       그 죄를 떠안는 것 또한 자신의 사명일 터.

         

       미어칸트는 부지런히 손을 움직였다. 아이린이 순례를 통해 벌어들인 재물을 적재적소에 나눴으며, 겨울을 나기 위해 난방에도 아낌없이 투자했다.

         

       구멍은 많았다. 어쩔 수 없었다. 재화는 한정되어 있었고, 늘 부족했다. 한정된 것을 쥐어짜, 어떻게든 살길을 만들어내는 것.

         

       “…하지만.”

         

       터무니없이 부족할 때는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미어칸트는 손을 내려놓았다. 주변의 상인들에게 빚을 지는 것도 이제는 한계에 달해 있었다.

         

       더는 돈을 빌릴 곳도, 신세를 질 곳도 없었다. 자신의 인망으로 어찌어찌해내고 있었지만, 그것도 이제는 끝이다.

         

       돈이 나올 구멍이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들을 먹일 빵마저 못 구할지 몰랐다.

         

       “…신이시여.”

         

       목에 찬 십자가를 끌어안은 그가 작게 속삭였다.

         

       “부디…아이들을 돌볼 수 있게끔…기적을…”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미어칸트는 곧바로 눈가에 묻은 눈물을 닦았다. 아무렇지 않은 듯 목소리를 냈다.

         

       “들어오거라.”

         

       삐걱거리며 문이 열렸다. 들어선 건 이제는 꽤나 정이 든 견습 사제 아이린이었다. 고귀하면서도 처연한 아이. 미어칸트는 그녀를 아꼈다. 그녀가 가진 사정을 알기에, 섣불리 다가가지 않은 채 아이린을 배려했다.

         

       상처가 많은 아이다. 기댈 곳을 찾아서 신을 찾아온 아이지. 미어칸트는 빈 잔에 물을 따랐다. 그녀에게 조용히 내밀었다.

         

       “편한 곳에 앉거라.”

       “네.”

         

       대답은 짧았고, 언제나처럼 그녀는 잔에 손을 대지 않았다. 의자에 앉은 그녀는 물끄러미 미어칸트를 쳐다보았다. 이끌려 들어갈 듯한 푸른 눈을 보고 있으면, 미어칸트는 기분이 이상해지고는 했다.

         

       “무슨 일로 왔느냐?”

       “후배의 일로 왔어요.”

       “자하드? 그 아이가 혹시 사고라도 쳤던?”

       “아니요. 다른 일로 때문에 들렸어요.”

         

       아이린이 한숨을 내쉬었다. 깊은 한숨은 살짝 열등감에 젖어있는 거 같기도 했다.

         

       “…그 아이는 천재예요. 미어칸트 사제님. 라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말해도 될 정도예요.”

       “그 정도라고?”

       “교리를 금세 배우고, 가르치는 성법을 곧바로 눈앞에서 펼쳐내요. 완성도는 미약하나…그 배움의 빠르기가 지나칠 정도예요.”

         

       미어칸트는 활짝 웃었다. 아이린은 거짓말을 할 만한 애가 아니다. 남자를 혐오하고, 싫어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모습만을 본다.

         

       그녀가 말한다면 자하드는 분명 라의 사랑을 받는 것이겠지. 경사다. 이 작은 지부에 그만한 인재가 올 줄을 누가 알았던가.

         

       “네가 잘 가르친 덕분이다.”

       “…사제님.”

         

       그녀가 우물쭈물 말을 꺼냈다. 아주 가끔 내비치는 그녀의 본모습은 미어칸트마저 아빠 미소를 하고 보게 되는 모습이었다.

         

       “저는…자하드를 잘 가르치지 않았어요. 오히려 혹독하게 몰아붙였어요.”

       “왜 그랬느냐?”

       “그 아이가 떠나가기를 원했어요. 이곳에 남아 있어봤자, 좋은 꼴을 볼 수 없을 테니까.”

         

       맞는 말이다.

       가라앉는 배에 탄 것이나 마찬가지겠지.

         

       “나도 그 아이에게 말을 했었단다. 하지만 그럼에도 입교하겠다고 말했던 건 그 아이였지.”

       “…자신의 천재성에 확신이 있었던 걸까요?”

       “나도 모르겠다. 아이린. 너는 그 아이에게 무엇을 원하느냐?”

       “원하는 건 없어요. 솔직히 말해서, 그렇게 엮이고 싶지도 않아요. 하지만…”

         

       그녀가 굳은 결심을 한 듯, 그에게 말했다.

         

       “교단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자하드를 교단 본부로 보내는 게 옳다고 생각해요. 더 좋은 환경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 말은…”

         

       미어칸트는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아쉬움이 잔뜩 담겼으나 결국에 내려놓은 시선.

         

       “…교단 본부로 갈 수 있는 견습 사제의 하나뿐인 기회를 스스로 놓겠다는 게냐?”

       “…할 수 있다면요.”

         

       한 템포 느리게 튀어나온 말은 진심이 가득 묻어 있었다.

         

       “…저보다 훨씬 똑똑한 아이니까요.”

         

       미어칸트는 알고 있었다. 그녀 또한 교단 본부로 가기를 원하는 것을. 교단 본부에서도 유명한 성기사단.

         

       ‘낮의 무녀’에 속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 스스로가 교단 본부로 갈 기회를 걷어차려 하고 있었다. 착한 아이다. 미래를 볼 줄 아는 아이지. 자신의 바람이 아니라, 교단 전체의 바람을 위해서 가진 것을 아끼려 하다니.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렇고말고.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런 결정은 심성이 바르고 착한 아이만이 결정할 수 있지.

         

       “…아이린.”

         

       미어칸트는 작게 웃었다. 아이린의 똑바른 마음가짐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 웃음이 그치질 않았다.

         

       “괜찮다. 조금 더 욕심을 부려도 되지 않겠느냐?”

       “하지만…”

       “교단 본부로 갈 수 있는 견습 사제는 지부당 한 명밖에 없다. 하지만 그 제한도 일 년에 한 번이지 않으냐? 자하드보다 한 살 더 많은 네가 일 년 더 일찍 간다고 해서 문제 될 건 없겠지. 더욱이, 지원 시기도 멀지 않았더냐?”

       “저의 1년과 자하드의 1년은 같지 않을 거라 생각해요.”

       “내가 보기엔 네 잠재력도 아주 훌륭하다. 너라면 멋진 사제…태양신교를 대표하는 성기사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단다.”

         

       미어칸트는 물을 한 모금 들이켰다.

         

       “정진하고, 기도하거라. 믿음을 가진다면 빛이 네 앞길을 밝혀줄 테니.”

       “…네. 사제님.”

       “이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꾸나. 미뤄도 늦지 않은 일이니.”

         

       아이린이 일어섰다. 방문을 열고 나가려다가 미어칸트를 한 번 더 쳐다보았다.

         

       “…혹시.”

       “할 이야기가 남았느냐?”

       “…베버릭 견습 사제는…언제쯤…”

       “…아.”

         

       그녀의 표정에 잠깐이지만 혐오감이 스쳐 지나갔다. 미어칸트가 작게 신음했다.

         

       베버릭. 그를 잊고 있었군.

         

       그 또한 순례를 마치고 돌아오고 있을 게 분명했다. 파견이라는 명목하에 교단 본부에서 나온 견습 사제.

         

       그가 돌아올 때까지 남은 시간은 한 달에서 한 달 반쯤인가.

         

       ….아이린과 베버릭이라니.

         

       둘이 한 공간에서 생활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교단 본부와 연줄이 맺어진 탓에, 자신이 어떻게 할 수도 없고 섣불리 손을 대지도 못한다.

         

       그나마 쥐꼬리같이 나오는 지원금이 그에게서 비롯된 것이니.

         

       “걱정 말거라.”

         

       미어칸트는 힘없이 웃었다.

         

       “내가 어떻게든 해보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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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aladin Monopolizes the Sacred Relics

The Paladin Monopolizes the Sacred Relics

성기사가 성물을 독차지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 world where magic reigns supreme and the influence of gods wanes, a young boy finds himself unexpectedly thrust into the role of an acolyte in the declining Sun God’s Temple. Blessed with the divine stigma of the Sun God, he must navigate the temple’s internal politics, the hostility of his fellow acolytes, and the challenges that come with his newfound powers.

As he delves deeper into the mysteries of the temple, he discovers hidden secrets and powerful artifacts that could change the course of his destiny. With the guidance of an enigmatic senior acolyte and the unwavering faith in his own abilities, he sets out to prove his worth and carve his own path in a world that has all but forgotten the true power of the div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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