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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

    <5 – 비밀암살교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수련에 몰두하던 어느 날.

    평소와 달리, 조금 특별한 하루가 시작됐다.

     

    “아가씨를 돌봐드리기 위해 파견된 메이드입니다.”

    “오오.”

     

    짝짝짝.

    박수가 저절로 나올 정도로 메이드다, 싶은 복장의 언니가 나타났다.

    짧은 단발의 녹색머리에 날카로운 눈매를 지닌 귀엽게 생긴 메이드언니가 롱스커트 자락을 양손으로 살짝 들어 올리며 인사했다.

     

    “금일부로 오크노디 아가씨를 모시게 된 리프라고 합니다.”

     

    멀쩡하다.

    그래서 더 수상했다.

     

    “아가씨. 메이드에게 무언가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이름이요. 풀네임이 어떻게 되나요?”

    “실례했습니다. 다시 소개드리겠습니다. 리프 라이프입니다.”

     

    리프 라이프Leaf life.

    잎사귀의 생명.

    메이드다운 퍽 귀여운 이름이다.

    그래서 더 질투가 났다.

    누구는 오크노디에 조나 와이히엠하이 같은 장난치나 싶은 이름인데 왜 메이드만 멀쩡한 이름인가.

    부럽기도 하고 쪽팔리기도 하고 화가 난다.

     

    “아가씨?”

    “아무것도 아니에요.”

     

    이름 때문에 메이드를 질투했다니.

    이런 얘기는 어디 가서 말도 못 한다.

     

     

    * *

     

     

    리프 라이프Reaped Life는 흥미를 느꼈다.

    거둬진 생명. 수확된 생명.

    한때, 보스 덕분에 미천한 목숨을 연명하게 된 소녀는 자신의 목숨을 보스에게 바치기로 결심했다.

    옛 이름을 버리고 얻게 된 새로운 이름.

    리프 라이프.

    그것은 암살자의 긍지를 담은 이름이었다.

    보스에게 거두어진 자신.

    자신의 손으로 거둘 보스의 적들.

    이를 동시에 의미하는 이름이기 때문이다.

     

    “제 정체를 말하셨습니까?”

    “전혀. 네게는 비밀호위의 역할도 겸할 작정이다. 네 신분을 아가씨에게 알릴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럼 순수한 직감이라는 말이군요.”

     

    리프는 흥미를 느꼈다.

     

    “감독관님이 요구하신 검증사항은 암살자의 소양. 감 하나로 끝날 시험은 아닙니다.”

    “알고 있다. 평가는 네 판단에 맡기도록 하지.”

    “꽤 자신이 있으신가보군요.”

    “보면 알 거다.”

     

    리프는 아가씨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그리고 확신했다.

     

    ‘암살자가 되기 위해 태어나신 분이다!’

     

    틈만 나면 집사와 자신의 눈을 피해 어딘가에 숨으려고 하는 암살자의 은신본능.

    밤마다 기척을 감지하며 창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지 가늠하려 드는 암살자의 색적본능.

    막대한 중량의 무기를 품 안에 숨기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생활을 할 수 있도록 식사시간마저 거르지 않고 이어나가는 중량훈련까지.

     

    “감독관님께는 제가 보고 드리겠습니다.”

    “훈련은 언제부터 시작할 계획이지?”

    “오늘부터 바로 시작하죠.”

    “기존 훈련에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된다.”

    “걱정 마십시오. 약물과 독 내성훈련은 최소한으로만 하고 암기술은 후일로 미룰 겁니다. 당분간은 은신 및 색적훈련을 집중적으로 파고들겠습니다.”

    “나쁘지 않군.”

    “그런데 당신 정도 되는 분이 어째서 아직까지 이런 일을 하시는지 모르겠군요. 역시 지난 번 ‘아가씨’의 처분 관련으로 문제를 일으켰다는 소문이……”

    “거기까지.”

     

    턱 끝까지 파고든 집사의 손날에 리프는 입을 다물었다.

     

    “분수를 파악해라. 네가 감시할 대상은 내가 아닌 아가씨다.”

    “……실례했습니다.”

     

    살수를 거둔 조나는 아가씨를 위한 내일의 훈련준비를 위해 자리를 비웠다.

    리프는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아무리 대단한 재능을 지닌 아가씨라도 너무 탐을 내면 곤란할 겁니다. 조직은 몇 번이고 실수를 반복해도 봐줄 정도로 너그럽지 못하니까요.’

     

     

    * *

     

     

    신입 메이드 리프.

    이 여자는 은근히 귀찮으면서도 도움이 됐다.

     

    “빨래바구니 안에서 뭐하십니까?”

    “……잠깐 들어가 있기 좋아보여서요.”

     

    [숨기에 실패했습니다.]

     

    가끔은 수련에 방해가 되지만.

     

    “아가씨? 아닌가……. 정원의 나무의 그림자가 커튼 뒤에 비춘 거였군.”

     

    [1분 이상 나뭇가지 위에 숨었습니다.]

    [숨기 경험치 +1]

    [누군가 당신을 보고도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숨기 경험치 +3]

    [은신 경험치 +1]

     

    가끔은 반대로 도움이 됐다.

    숨기를 해도 아무 곳에나 대충 숨어도 됐던 집사 조나와 달리, 메이드는 세탁과 청소 등등 하는 일이 무척 많았다.

    하루일과표를 관찰하거나 식사시간의 대화를 통해 동선을 예측하고 단단히 준비하지 않으면 금방 숨기가 들켜버린다.

    대신 단단히 준비하고 메이드의 눈을 속인다면 숨기 경험치는 무럭무럭 상승했다.

    덕분에 숨기의 상위기능인 은신까지 자연스레 덩달아 오르니 전화위복, 일석이조다.

     

    “으으. 요리에 이상한 맛이 나요.”

    “죄송합니다, 아가씨. 다음엔 좀 더 주의를 기울여서 만들겠습니다.”

     

    대신에 요즘은 집사가 말썽이다.

    지금까지는 잘만 요리를 했던 분이 자꾸만 간 조절에 실패하거나 이상한 맛이 나는 요리를 내놓는다.

     

    “아가씨?”

    “가져가지 마요. 그래도 열심히 요리했잖아요.”

     

    [상한 요리를 감별했습니다.]

    [독감별 경험치+1]

    [상한 요리를 먹었습니다.]

    [독내성 경험치+1]

     

    식중독에 걸릴 위험이 있는 수준이었나?

    그래도 이렇게 다 먹어치우는 모습을 보여주면 다음부터는 더 조심해서 요리해주시겠지.

    평소부터 느꼈던 집사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담아 식사를 마치자, 집사뿐만 아니라 메이드까지 묘한 시선으로 이쪽을 바라본다.

     

    헤헹. 감동이라도 받았나?

     

    멀리서 집사와 메이드가 속닥속닥 하더니 다음 날부터 메이드가 묘하게 상냥해졌다.

     

    “딸기맛 알사탕 하나 드시겠습니까?”

    “좋아요!”

    “포도맛 알사탕입니다.”

    “좋아요!”

    “오늘은 특별히 쿠키를 구워봤습니다.”

    “정말 좋아요!”

     

    뭘 줘도 다 좋다는 반응에 간식을 줄 보람이 나는지 틈만 나면 뭘 먹이려고 자꾸만 갖다 준다.

    크크. 성실한 리액션으로 간식을 주는 보람이 있도록 조교한 보람이 있어.

    가끔은 이상한 맛이 나는 간식이 있어도 아무렇지 않게 먹은 덕분인지 조각케이크부터 알파벳초콜릿까지 온갖 간식을 전부 갖다 바친다.

    바보 같은 메이드.

    자신의 급료가 식품도감의 수집율을 올리기 위한 제물로 쓰이는 줄도 모르고 성실하게도 월급을 털어 간식을 바치는군!

     

     

    * *

     

     

    밤늦은 시각.

    비밀훈련장의 사용인실에서 집사와 메이드는 아닌 조직의 간부와 암살자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독 적응 훈련은 어떻지?”

    “생각보다 감별과 적응이 빠릅니다. 본의 아니게 제법 진도를 올리게 되었습니다.”

    “식사시간의 그것과 같은가?”

    “눈치 채는 비율은 대략 30%이지만 그것도 꽤 높은 편입니다.”

    “정상적인 상황인가?”

    “당연히 비정상적인 상황입니다.”

     

    리프는 단언했다.

     

    “일반인은 독이 든 음식을 먹어도 가벼운 위화감을 느낄 뿐, 아가씨처럼 강한 의혹 내지 확신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깨닫는다면 먹지도 않을 테고요.”

    “그런데도 아가씨는 모든 음식을 다 드셨지.”

    “가정할 수 있는 경우는 두 가지입니다. 거리에서 독이 든 음식을 먹고 죽을 위기를 수차례 넘긴 경우. 오염된 음식이라도 생존을 위해 먹어야했던 경우.”

     

    독을 다루는 암살자의 단언이다.

    거리의 쓰레기들에 대해서는 알 만큼 알았다고 생각했지만 조나는 자신의 생각이 물렀음을 깨달았다.

     

    “이 도시에는 유독 쓰레기들이 많군.”

    “청소하실 생각입니까?”

    “조직의 아가씨에게 손을 댄 녀석들이다. 뻔뻔하게 살려둘 수는 없지.”

     

    조나의 두 눈에 살의가 더해졌다.

     

    “가만……. 길거리마법사의 개짓거리도, 거리의 인간들에게 독을 탄 음식을 뿌린 것도 어쩌면 다른 조직이 도시에 개입한 정황일지도 모르겠어.”

    “나설 작정이시군요.”

    “조사해볼 가치는 있다. 리프. 오늘밤의 아가씨 감시임무는 변경한다. 미확인 적대조직의 암약여부를 확인해라.”

    “발견된다면. 그때는 어떡하시겠습니까?”

     

    말할 것도 없지.

     

    “몰살이다.”

     

    조나의 명령에 리프의 눈이 서늘한 웃음을 지었다.

     

     

    * *

     

     

    오늘은 운 좋게 감시가 없었다.

    메이드가 온 뒤로 집사 조나의 감시도 줄어들더니, 간식을 갖다 바친 걸로 밤에는 얌전하게 잠들 거라 착각한 메이드 리프도 경계를 소홀히 했다.

    크크. 곤란하다고?

    나 같은 고인물한테 경계심을 풀어버리면.

    밤중에 슬쩍 나가서 남 몰래 거리의 범죄조직 습격 같은 이벤트를 해버릴지도 모르는걸.

    어차피 내버려둔다고 해도 서민들을 갈취한 돈으로 시험에 도전하는 놈들이니, 정의로운 플레이어에게 토벌당해 자금사정을 보태는 편이 낫지 않을까?

     

    그런 고로 슬쩍 저택을 나왔다.

    기억에 있는 조직이 있을 법한 표식을 찾아 지하수로 근처의 버려진 창고로 향하니 짜잔, 아지트와 시체 수십 구가 나왔어요.

     

    “……?”

     

    조직항쟁인가?

    얘들 왜 다 죽어있지?

     

    금고를 보니 턴 흔적도 없다.

    돈을 노린 살인이 아니다.

    뭔가 찝찝해서 다른 조직이 있을법한 슬럼가의 조직사무소를 습격했다.

     

    “……??”

     

    또 시체가 잔뜩 있다.

    20% 확률로 플레이어를 노예로 포획하려 드는 부패한 상단의 아지트도.

    인육을 먹는 곡마단의 천막도.

    발이 닿는 족족 범죄조직의 거처에는 시체만이 즐비했다.

    이게 뭐야.

    뭔가 무서워.

    잔뜩 쫄아서 저택으로 돌아와 창문을 닫는데 불이 탁 켜졌다.

     

    “히에엑!!”

    “밤늦은 시간에 어딜 다녀오셨습니까, 아가씨.”

    “사, 산책을 조금.”

    “피 냄새가 나시는군요.”

    “아, 아니야! 내가 죽인 게 아니야. 간 곳에는 전부 다 죽어있었는걸!”

     

    살짝 놀란 눈을 하던 리프가 미소를 지었다.

    잘 익은 과일처럼 탐스러운 미소를 홀린 듯이 바라보고 있자니, 리프가 외출복을 벗기고 나를 침대에 눕혔다.

    멀뚱멀뚱 눈을 깜빡이고 있으니 이불을 목까지 덮어준 리프가 손으로 내 눈을 덮었다.

     

    “나쁜 꿈을 꾸셨군요.”

    “응?”

    “걱정 마십시오. 오늘밤은 제가 곁을 지켜드리겠습니다. 더는 악몽을 꾸지 않을 테니 오늘만큼은 마음 편히 주무셔도 됩니다.”

     

    나긋나긋한 목소리에 졸음이 솔솔 밀려왔다.

    토닥토닥 하는 손 너머로 양초에 불붙이는 소리가 들리더니, 뭔가 최면가스도 마신 것처럼 정신이 점점 몽롱해진다.

    그런가….

    악몽이었나…….

    눈가를 덮은 시원한 손길에 안도감을 느끼며 잠에 들었다.

     

    “이 제가…… 미행을 허용…… 전문교육을…….”

     

    꿈에서 리프가 무어라 말한 소리를 들은 것 같았지만, 뭐 기분 탓이겠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집사만큼 무서운 메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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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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