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5

       20세기 인류 최고의 발명품을 단 하나 꼽으라면, 나는 트랜지스터를 선택하겠다.

         

       트랜지스터는 반도체의 대명사다. 현존하는 모든 전기제품에 이 소자가 들어가지 않는 것은 없었다. 딱 거기까지만 말해도 이것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는 충분히 설명된다.

         

       책도 그걸 아는 것일까. 품속에 넣고 다니는 양장본이 미세하게 떨려왔다. 마치 저것이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는 퍼즐이라고 선언하는 듯이.

         

       [◆ 달성률]

         

       [미분류 마도 : 0/148]

         

       아마 그것과 관련이 있겠지. 저게 어딜 봐서 원소 마법이겠어.

         

       생각은 길지 않았다. 심호흡을 한 뒤 곧바로 입을 열었다.

         

       “그럼 열 묶음 정도만 먼저 구매를…….”

       “있는 거 전부 주세요.”

         

       내 돌발행동에 하스펠트 교수의 표정이 멍청해졌다.

         

       “뭘 멋대로 결정하고 있어요?”

         

       노기가 오른 목소리가 귓전을 후벼팠다. 그럼에도 내가 멈추는 일은 없었다.

         

       “당장 사들이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하실 겁니다. 주인아저씨, 이거 개당 얼마에요?”

       “하, 한 묶음에 금화 한 장이란다. 재고는 백 묶음가량 있어.”

       

       전부 사들이면 금화 100장. 평범한 노예 둘은 사고도 남을 가격이다.

         

       “괜찮아요. 전부 매입할게요.”

         

       하스펠트 교수의 눈에 핏대가 세워졌다. 곧 있으면 급발진하겠다는 신호였다. 그녀가 입술을 달싹이기 시작할 때 선수를 쳐야 한다.

         

       “헛소리 그만하고 얌전히…….”

       “교수님,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절묘한 타이밍에 말을 끊었다. 본래의 내 신분을 생각하면 두들겨 맞은 뒤 야산에 버려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무례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회피하지 않는다. 제국 최고위 귀족의 눈총에 당당하게 맞섰다.

         

       나는 하스펠트의 이글거리는 눈동자에 초점을 맞췄다. 석산을 달여 넣은 듯한 붉은 홍채와, 안정적인 상태에 놓여있는 유황색 홍채가 허공에서 충돌했다.

         

       “세상을 바꿀 마석입니다. 겨우 금화 한 장에 망설일 시간 없습니다.”

         

       의도적으로 말투와 어조를 바꿨다. 주종관계가 아니라, 연구자 대 연구자로서 건네는 진심 어린 조언이라는 걸 알리기 위해서.

         

       하스펠트는 답답하기라도 한 듯 곰방대를 꺼내 물었다.

         

       후우우. 솜사탕처럼 새하얀 연기가 하늘로 올라간다. 좋은 신호였다. 그녀도 고민하기 시작했단 의미였으니까.

         

       늘 정중하던 사람이 무례를 무릅쓰고 이런 말을 한다는 것 자체에 하스펠트는 괴리감을 느끼고 있을 터였다. 만약 내가 평소에 그녀를 가벼이 대했더라면 이런 반응은 나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금안족은…. 이게 뭔지 안다고 했죠?”

         

       그 의문을 던져준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나는 끄덕임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하스펠트의 목울대가 미묘하게 움직였다. 그녀가 턱을 괸 채로 잠깐의 침음성을 흘린다.

         

       진정성을 인정받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이 세상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다. 정말 멍청했으면 아카데미 건물을 20세기 바우하우스 양식으로 지어놓지 못했겠지. 기계미학을 훌륭히 자아내고 있는 교정을 둘러보고 있으면 벨 에포크 시대로 타임슬립한 게 아닌가 착각하곤 한다.

         

       문명 수준의 발전은 지식의 축적에 비례한다. 이쪽 세계 사람들도 나름대로 강력한 학문을 구축해왔다. 수십 명의 천재가 있었고, 수만에서 수백만에 달하는 영재와 수재가 세상을 조금씩 바꿔왔다. 그 변화는 현재진행형이다.

         

       결국 내가 원래 세계의 지식을 안다고 해서 남들보다 더 우위에 있다거나 하는 기대는 할 수 없다. 사람은 노력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법이었으니.

         

       간단히 말해 나 말고도 곧 트랜지스터의 진가를 알아보는 사람이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단 소리였다. 그 전에 무슨 수를 쓰더라도 사재기를 해 놓아야 했다.

         

       시세차익을 노리려고? 설마. 얼마에 팔든 손해다.

         

       적어도 한 달 이내에 가격이 폭등할 것이다.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그렇게 만들 테니까.

         

       하스펠트 교수에게선 우선 다섯 봉지를 받아왔다. 5백 개가 조금 안 되는 최상급 마석이 수중에 들어왔다.

         

       금화 다섯 장에 달하는 시세를 지닌 마석이다. 견물생심이라고, 다른 노예였다면 당장 이걸 팔아넘겨도 이상하지 않을 만한 값어치였다. 이렇게 보면 하스펠트가 일개 노예에게 엄청난 돈을 꾸어 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시장에서 돌아왔을 땐 밤이 깊은 뒤였다. 하스펠트를 포함한 교수들은 퇴근하고, 학생들도 기숙사나 여관에 들어가 잠을 청할 시간. 나 홀로 화계마도 연구동에 남았다.

         

       나는 교수에게서 받은 열쇠를 들고 제3실험실로 향했다.

         

       [제3실험실 ─ 마력증폭소자 연구실]

         

       원래 세계의 대학으로 치면 반도체공정을 연구하는 곳. 동시에 그 최대출력을 실험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어쨌건 여긴 하스펠트 교수의 관할이라 내 마음대로 쓸 수 있었다.

         

       덜컥.

         

       “좋아.”

         

       이제는 없으면 섭섭한 양장본을 펼쳐들었다.

         

       [미분류 마도 : 개요]

         

       [미분류 마도는 정령의 축복이나 스크롤 없이도 사용 가능한 특수 마도를 뜻한다. 주류 학계에서는 ‘고유마도’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고유마도의 정확한 숫자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최신 서적에서는 148종이 등재되어 있다.]

         

       책장을 한 장씩 넘겨보았다. 트랜지스터와 관련된 마법이 무엇인지 확인하려면 모든 장을 훑어보아야 했다.

         

       그러다가 거의 끝에 가서야 겨우 하나를 발견했다.

         

       [고유마도(미분류 등급) ─ 커런트 스위칭(Current Switching)]

         

       “이거다.”

         

       이름에서부터 느낌이 딱 왔다.

         

       트랜지스터의 기능은 크게 두 가지.

         

       첫째는 적은 양의 전류로 보다 많은 전류를 조작하는 것. 이른바 증폭 기능이다.

         

       둘째는 전류를 아예 끊거나 켜 버리는 것. 전공자들이 흔히 스위칭이라고 부르는 그것이다.

         

       두 기능의 핵심은 ‘컨트롤’에 있다. 트랜지스터의 등장으로 인류는 전기를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게 되었다.

         

       고작 전기 하나 통제한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것이냐 물어볼 수도 있겠지만, 글쎄. 그런 말 하는 사람이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즐겨 쓴다면 모순 아닐까.

         

       컴퓨터라. 이 시대에도 스크롤로 돌아가는 계산기가 있긴 하다. 마공학자들의 도움을 받으면 어떻게든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당장은 거기까진 힘들 것 같고, 지금 할 수 있는 건 간단한 조작이나 실험 정도가 전부이리라.

         

       여태까지의 경험을 떠올리면 이쪽 세상의 마도소자는 저쪽 세계의 전기소자에 대응하는 경향이 있다. 아마 이 마석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좋다. 합리적인 생각이다.

         

       최상급마도를 마력초 한 모금만으로 다룰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약간의 마소만으로 수백만 개에 달하는 스크롤을 작동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북방 전선의 마도사들도 수고를 덜게 될 것었고.

         

       그뿐만이 아니다. 원래 세계에서의 우라늄 1g이 서민 가정의 전기난로 2천 3백만 개를 켜 주었듯이, 이 마석이 겨울 추위에 떨고 있는 보육원 아이들을 싼값에 구원해줄 수 있으리라. 전투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도 도움을 주기 충분할 거란 소리였다.

         

       무엇보다도 내 귀환에도 도움을 줄 테고.

         

       “일석삼조군.”

         

       일단 습득에 필요한 사전지식부터 알아보자.

         

       [고유마도(미분류 등급) ─ 커런트 스위칭(Current Switching)]

         

       [회로나 서클에 흐르는 마력의 양을 부풀리거나 꺼뜨리는 모든 마법을 총칭한다. 한때 아렌스 대륙을 위험에 빠뜨렸던 마왕이 사용하였다고 전해진다.]

         

       [시전 시 사용자의 역량에 따라 자신 혹은 주변의 마도를 완전히 조작할 수 있다. 조작 시 필요한 연산은 시술자의 수학적 사고력에 큰 영향을 받는다.]

         

       [▷ 이 마도를 아직 익히지 않았습니다. 학습 시 ‘미분류 마도’의 습득 개수에 최초 변화가 생깁니다.]

         

       [▶ 이 마법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지식]

         

       [■ 필수]

       [마소 보존의 법칙(방랑자 특전 : 참작 가능)]

       [마력파동 이론(방랑자 특전 : 참작 가능)]

       [키르히호프 등가회로 법칙(조건 충족)]

       [반도체 기초 이론(조건 충족)]

       [수정된 맥스웰 전자기 방정식(조건 충족)]

         

       [□ 선택]

       [페르미-디락 분포(조건 충족)] — 불의 원소, 물의 원소를 다룰 때 필요

       [보스-아인슈타인 분포(조건 충족)] — 땅의 원소, 바람의 원소를 다룰 때 필요

       [쇼클리-리드-홀 재결합 이론(조건 충족)] — 트랩 조작 시 필요

       [부울 대수(조건 충족)] — 논리회로 작성 시 필요 <<관련 이론 : 컴퓨터 하드웨어 처리>>

         

       배우는 데는 무리가 없다. 관련 지식 정도야 학부생 때 끝낸 지 오래였다.

         

       마전지를 하나 꺼냈다. 라이트 애로우가 축성된 스크롤이다.

         

       내가 제3연구실에 죽치고 앉아있는 건 이곳에 마력의 강도를 측정하는 마도구가 있기 때문이었다. 라이트 애로우를 이 마도구에 가져가자 상대적인 마소 수치가 나타났다.

         

       [측정 대상 : 라이트 애로우(Light Arrow)]

       [분류 : 화계마도 / 스크롤 작성됨]

       [최대출력 : 45 마이크로시버트]

       [평균출력 : 23 마이크로시버트]

         

       일반적으론 이 정도다. 20 마이크로시버트면 아이언 드레이크와 같은 중급 마수의 숨통을 끊어버리기엔 충분한 파괴력이었다.

         

       나는 마전지를 빼다가 트랜지스터 몇 개를 적당한 위치에 꽂은 뒤 똑같은 측정을 반복했다.

         

       [최대출력 : 275 시버트]

       [평균출력 : 241 시버트]

         

       “오.”

         

       마이크로는 백만 분의 1을 나타내는 접두어다. 수십 마이크로시버트가 수백 시버트로 바뀌었다는 건 출력이 1억 배 뻥튀기되었다는 뜻이었다.

         

       이렇게만 보면 괄목할 만한 성과다. 주식시장에 백 원을 넣어놓고 잤는데, 다음 날 일어나보니 백억이 된…. 그게 말이 되겠냐마는.

       

       이런 부자연스러운 현상은 마소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정령이 마소를 뿜어주기 때문에 얼핏 보면 전하량 보존이 성립하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물리적으로 말이 되는 이야기가 된다.

       

       반복적인 실험를 바탕으로 유의미한 데이터를 뽑아냈다. 흥미로웠고, 재밌었다. 이때만큼은 몰입하는 맛이 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덧 새벽이었다.

       

       누군가는 이쯤 되면 적당하다고 생각해 그만둘지도 모르지.

       

       난 여기서 만족하지 않겠다. 그런 생각으로 마력초를 입에 물었다.

         

       “작성, 사냑 간섭계.”

         

       [물리 아이템 : 간섭계(Interferometer)]

         

       [파동의 간섭 성질을 이용하여 진폭을 증폭하거나 상쇄할 수 있는 장치. 외부 환경에 민감하게 반응하므로 일반 스크롤에 적용할 수 없다.]

         

       파동, 즉 에너지를 전달하는 흐름. 그런 파동에는 위상이라는 물리량이 존재한다.

         

       위상이 일치하는 두 파동이 만나면 그 세기가 뻥튀기된다. 위상이 정반대인 파동이 만나면 서로 상쇄되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잠잠해지고.

         

       그렇다면 생각해보자. 위상이 똑같은 파동 수십 개가 무리 지어서 동시에 이동한다면?

         

       [최대출력 : 66.1 킬로시버트]

       [평균출력 : 34.9 킬로시버트]

         

       그 개수만큼 출력이 증폭된다.

         

       킬로. 1천을 나타내는 단위. 이젠 비율 변화를 따지는 것도 질렸다.

         

       한 100억 배쯤 뻥튀기려나. 여기서 더 나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조금만 더 건드려볼까?”

         

       **

         

       [◆ 진행도 변화 공지]

         

       [커런트 스위칭(Current Switching)의 습득을 완료했습니다.]

         

       [독자적인 연구로 인해 ‘커런트 스위칭’이 ‘마소 조작’으로 파생되었습니다.]

         

       [이것을 식별자 ‘에테르’의 고유마도로 등록합니다.]

         

       [최상급 고유마도 ─ 마소 조작(Element Operation)]

         

       [진행도 변경 : 고유마도 0개(전체 148개 中) → 2개 (전체 149개 中)]

         

       “아.”

         

       또 날밤을 깠다.

         

       “괜찮아. 잠은 죽어서 자면 돼.”

         

       자기암시를 걸며 바깥으로 나왔다. 대학원생이라면 한 번쯤은 해 봤을 법한 합리화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하스펠트 교수가 어제부터 청소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 것. 이대로 연구실에 짱박혀 있더라도 잔소리할 주인이 없단 소리였다.

       

       근데 연구실에만 있으면 내 인생이 처참해지잖아. 하루에 한 번은 바깥 공기를 마셔줘야지.

         

       햐, 공기 맛있는 거 봐라.

       

       잠시 산책을 하니까 그야말로 천국이었다.

         

       그렇게 교정을 따라 천천히 걷고 있을 무렵이었다.

       

       “저기요! 선배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2022/07/31 : 트랜지스터 가격을 하향 조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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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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