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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

       *

         

         

         이고르비치 역은 작고 조용한 시골 정차역이다. 크라실로프-드로안 국경 검문소 역할 이상도 이하도 하지 않는 소박한 마을에 위치해 있다.

         

         따라서, 이 역사에서 하차하는 승객은 한정적이다. 마을 주민, 또는 물류 유통업자. 딱 그 정도가 전부다.

         

         그러니까.

         

         

         ‘어설픈데.’

         

         

         역사 한 구석에 있는 세 사내는 명백히 의심스럽다는 뜻이다.

         

         먼저 대합실 구석, 시계를 힐끔거리며 신문을 바라보는 사내.

         

         저 남자는 마치 열차 시간을 확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니다. 놈은 벌써 세 번의 열차를 보냈다.

         

         

         다음, 팔짱을 끼고 꾸벅꾸벅 졸고 있는 사내.

         

         저 남자 또한 평범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놈은 이반이 일어나서 화장실로 향하거나 신문매대로 향할 때 마다 슬그머니 눈을 떠 그를 살폈다.

         

         

         마지막으로, 대합실 구석에서 말린 채소를 팔고 있는 사내.

         

         이쯤 되면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저 놈은 대합실 안 누구에게도 채소를 팔지 않았을 뿐더러, 애초에 이런 왕래 없는 시골 역사 대합실에서 채소를 팔아봐야 누가 사겠는가.

         

         결정적으로, 소작농 출신인 이반은 저 채소들의 상태를 알 수 있었다. 저건 장기보존하기 위해 말린 게 아니라 너무 오랫동안 방치해서 말라 비틀어진 것이다.

         

         이반은 신문 아래에서 손을 움직여 권총을 쥐었다. 시계를 보니 9시. 이제 곧 에시디스 공주가 탄 열차가 도착할 시간이 임박해 있다.

         

         

         뭐, 확인해 볼 필요는 있겠지.

         

         

         그는 천천히 일어서서 신문을 접고 쓰레기통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졸고 있는 사내의 목덜미 아래에 정확히 총구를 밀어 넣었다.

         

         

         “!!”

         “조용.”

         

         

         사내는 경악하며 품 속에 오른손을 넣으려다가 싸늘한 총구의 감촉에 몸을 굳혔다.

         

         좋아. 왼쪽 품에 권총 한 자루.

         거의 즉각적으로 반응한 것으로 봐선 훈련 받은 흔적이 있고.

         

         

         “거, 거기 뭐 하는 거요!”

         “멈춰!”

         

         

         대합실 내의 다른 두 놈이 동시에 외치며 벌떡 일어섰다.

         

         웃기는 노릇이다. 이반이 겨눈 권총은 신문에 가려 보이지 않았으므로, 밖에선 그저 사내의 뒷목에 손을 얹은 것처럼 보였을 테니까.

         

         즉, 이 셋은 한 패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혹시 모르니 확인해봐야 한다.

         

         지원은 필요 없다고 했지만 엘리자베타가 요원을 보내온 것일 수도 있으니까.

         

         

         “귀하의 충성은 어디에 향하나.”

         “뭐, 뭐?”

         

         

         만일 이 자의 정체가 엘리자베타의 요원이고, 크라실로프 왕가에 충성하고 있다면 이 문장에 반문 따윌 할 리가 없다.

         

         이건 절멸부대 뿐만 아니라, 국가 소속 정보요원들이 하는 첫 질문 중 하나였으니까.

         

         전방 부대 병사들이 ‘멈춰! 움직이면 발포하겠다!’ 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의미다. 거짓말을 해서라도 반드시 대답해야 하는 첫, 그리고 어쩌면 최후의 질문이다.

         

         그러니까 이 녀석은 돈을 받고 움직인 용병 정도란 의미.

         

         

        -타앙!

         

         

         총구에서 탄환이 날아들어 그대로 사내의 경추를 끊어버렸다.

         

         이반의 손에 잡힌 남자는 반응조차 하지 못하고 그대로 허물어졌다.

         

         

         “이런!!”

         “쏴! 저 새끼 쏴!!”

         

         

         야채장수와 신문 읽던 남자가 황급히 일어나며 품 속에서 권총을 뽑아 들었다.

         

         이는 여러가지를 의미한다.

         

         하나, 녀석들은 한 패이며.

         하나, 녀석들은 어설프고.

         하나, 녀석들은 크라실로프 왕정 소속이 아니며.

         

         마지막으로 하나, 녀석들은 진짜 강자로 분류 되는 자를 상대해 본 적이 없다.

         

         

        -타앙! 탕!

         

         

         반사적으로 쏘아진 탄환이 이반의 어깨 위와 머리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조준선은 잘 잡는 걸 봐선 용병.

         

         하지만 ‘사선(射線) 감지’를 모르는 걸 봐선 정말 값싼 용병.

         

         녀석들이 다시 발포하기 위해 자세를 가다듬을 때, 이미 이반은 야채 장수를 향해 도끼를 휘두르며,

         

         동시에 신문 읽던 사내를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었다.

         

         

        -스걱, 타앙!

         

         

         “끄으으아악!!”

         

         

         한 번에 양 손목이 모두 절단된 사내가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허물어지고, 탄환이 정확히 미간에 박힌 다른 사내는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했다.

         

         이반은 도끼날에 묻은 피를 쓰러진 야채장수의 코트에 닦아내며 다가갔다.

         

         

         “너희 뿐이냐?”

         “크흐윽… 끄윽…. 어디서 이런 괴물 같은….”

         “괴물…?”

         

         

         이반은 순간 잘못 들었나 싶어서 머리를 갸웃거렸다.

         괴물이라고? 고작 이 정도에?

         

         광전사 에이나르를 적대하려고 하던 녀석들이 내뱉기엔 너무 터무니 없는 말 아닌가.

         

         에이나르가 직접 왔다면 교전이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 미치광이는 대합실을 한 번에 썰어 버렸을 테니까.

         

         

         “이런, 이런 말은 없었는… 없었는데…!”

         

         

         출혈이 심하다. 손목에 흐르는 척골, 요골 동맥이 잘렸을 때 제대로 된 지혈 없이는 5분 안에 확실한 죽음이 보장되니까. 거기에 양손이 모두 잘려나갔으니 더 심할 터.

         

         야채장수는 벌써 파랗게 질린 얼굴로 턱을 덜덜 떨었다.

         

         이반은 한숨을 내쉬며 녀석의 품을 뒤졌다. 손이 없으니 직접 하는 수 밖에.

         

         휴지조각, 낡은 주머니에 동편 몇 닢, 신분증은 당연히 없고, 이상한 단추가 달린 작은 계기판이 하나. 느껴지는 마력은 희미할 수준의. 아마도, 신호기.

         

         

         “지혈하지 않으면 3분 안에 죽는다. 다른 녀석들은 어디에 있나?”

         “서, 선로 쪽에….”

         “몇 명이지?”

         “열다섯… 너, 너 혼잔 아무것도 못, 못해…! 내가, 내가 도와줄게! 사, 살려줘! 다들 무장하고 있다고, 그, 그리고 우리 대장도 거기 있어, 대장은 진짜 괴물이야!! 살려주면 내, 내가 시선을 끌게!!”

         

         

         야채장수는 덜덜 떨며 힘겹게 외쳤다. 살고 싶겠지. 당연한 일이다. 피가 철철 흘러내리는 것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자면 누구든 정신이 나가지 않곤 배길 수 없다.

         

         이반은 고개를 끄덕였다. 야채장수의 안색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다른 변수가 생겼을 때 ‘대장’에게 신호를 보내기 위해 남겨졌어. 너흰 척후조로군.”

         “마, 맞아! 난 쓸모, 쓸모가 많다구!”

         

         

         이 녀석은 ‘사선 감지’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 녀석들의 대장 또한 그 정도 수준일 터.

         

         

         “열차에 누가 타고 있는 지는 들었나?”

         “그, 금괴 수송 열차라고…! 드로안이 크라실로프로 보내는 무역 상품 열차라고 했는, 했는데…!”

         “잘 알았다.”

         “사, 살려주는 거지? 묻는 말에 다 대답했잖아! 거짓말 안 했다구!!”

         “아니, 거짓이 섞여 있었다.”

         “아냐! 진짜 아냐!!!”

         

         

         이반은 싸늘하게 사내를 내려봤다.

         

         

         “쓸모 있다는 말.”

         “뭐…?”

         

         

         이 녀석들은 그냥 푼돈에 움직인 도적에 불과했다. 녀석들을 고문해 봐야 얻을 수 있는 정보 따윈 없다.

         

         한다면 대장이다. 적어도 커넥션을 알아챌 수 있을 테니까.

         

         

        -콰직!

         

         

         이반은 몸을 일으키며 도끼를 휘둘러 사내의 머리를 찍었다.

         콰득, 하는 소리와 함께 사내의 몸이 축 늘어졌다.

         

         그는 수신기를 딸깍 눌러 마력선이 튀는 방향을 가늠했다.

         

         

         멀지 않군.

         

         이반은 도끼날을 사내의 코트자락에 문질러 닦고 허리에 찼다.

         시간은 아홉시 삼분. 열차가 정상적으로 운행할 경우 이 역에 도착하는 시간은 10시.

         

         오십 분 안에, 열차 테러가 일어난다.

         그러니까.

         

         

         “여유롭군.”

         

         

         이반은 피식 웃으며 시체를 정리했다. 혈흔과 전투 흔적이 지워지는 데엔 오 분이면 충분했다.

         

         절멸 부대의 훈련에 가장 중요한 것들 중 하나가 흔적 제거였으므로.

         

         

        *

        

        

        이반이 여유를 부린 것엔 이유가 있었다.

        

        아카데미 공식에 의거한다면, 열차 테러는 결코 ‘주인공과 주연 인물’을 해치지 못한다.

        

        열차가 습격 당했을 때, 주인공은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빠져나가 아카데미에 정상적으로 도착하게 된다.

        

        이반은 애초부터 열차테러를 저지하려는 생각 자체가 없었다.

        

        

        ‘이건 튜토리얼이다.’

        

        

        이반은 숲 속을 달리고 있었다. 이따금씩 수신기의 마력선이 희미해지면 다시 단추를 눌러 수신 방향을 확인해가며.

        

        

        ‘튜토리얼은 플레이어가 게임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단계.’

        

        

        그러니까 무려 ‘용사 파티의 자녀’를 급습하는 계획에 이 따위 허술한 도적들을 고용한 것이겠지. 저레벨 구간에서부터 전투에 익숙해지기 위한 설계다.

        

        처음 이반은 용사 파티 중 과연 누가 ‘주인공’일지 고민했었다.

        

        그는 곧 정답을 유추해냈다.

        

        모두.

        

        모두가 주인공이다. 이 용사 파티 자녀들의 모든 인원이 주인공이다.

        

        게임을 할 때 플레이어가 처음 캐릭터를 생성한다고 치자.

        

        그렇다면 반드시 ‘아키타입’ 캐릭터들이 주어진다. 세계관에 고유 스토리라인을 가지고 있는 종류의. 그리고 결정적으로 ‘모두 다른 특성, 또는 직업을 가진 캐릭터’가.

        

        

       -용사의 딸, 이자벨. 마법사와 전사 이중 직업.

       -기사의 아들, 오스칼. 기사.

       -마법사의 딸, 엘피헤라. 마법사.

       -광전사의 딸, 에시디스. 예상컨대 음유시인과 광전사 이중 직업.

       -도적의 제자, 루시아. 도적 또는 암살자.

        

        

        이 게임의 플레이어가 캐릭터를 고를 때 이 중 하나를 선택하면, 그 튜토리얼로 ‘열차 테러’를 해결해야 할 것이다.

        

        그렇기에 이반은 다른 방향으로 생각을 돌렸다.

        

        

        ‘모든 캐릭터들의 튜토리얼이 열차 테러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면, 테러 집단을 미리 파악할 수 있다.’

        

        

        한두 번이면 모를까 여섯 번이나 같은 짓을 저지르면 반드시 꼬리가 잡힌다.

        

        이반은 수풀 속을 질주하며 다시 한 번 수신기를 딸깍 눌렀다.

        

        이번엔 아주 가까운 곳에서 마력선이 튀는 것이 느껴졌다.

        

        

        ‘튜토리얼은 주인공에게 맡기고, 나는 변수를 제거한다.’

        

        

        열차 테러를 저지하지 않는다. 어차피 열차 테러가 일어나는 것은 ‘상수’니까. 사전에 막는다면 오히려 다른 방식으로 일이 터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차라리 열차 테러를 일으킨 모종의 집단을 파악한다.

        

        그리고, 이후 아카데미에서 그 집단의 흔적을 찾아 제거한다.

        

        전면전을 지양하고 후방에서 첩보 활동을 진행하며 위협 요인을 절멸하는 것. 그것이 절멸 부대의 방식이다.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어제 축구랑 야구 따블 슈퍼 골든 메달 기념으루다가 올려봅니다..

    주말엔 쉬려고 했는데 참을 수 없어써요..

    다음화 보기


           


30 Years Have Passed Since the Prologue

30 Years Have Passed Since the Prologue

프롤로그에서 30년이 흘렀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got transmigrated into a game I’ve never seen before. I thought it was a top-notch RPG and spent 30 years on it. I retired as a war hero and planned to spend my remaining time leisurely. But it turns out, it was an academy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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