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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

       6. 검은 송곳니(1)

       

       

       “……그러니까, 뭐라고?”

       

       나는 내 귀가 진짜로 맛이 간 건 아닌지 진심으로 걱정되기 시작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리라.

       

       눈앞의 소녀는, 아주 당당하게 도저히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내뱉고 있었으니까.

       

       “영혼의 절반을 바쳤어.”

       

       머리가 어질어질해진다.

       

       그래, 사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갑자기 일어나 보니까 주변이 아주 개판이 되어 있는 데다가 이상한 검은 일렁임까지 보였으니까.

       

       날 구하기 위해 급하게 악마나 마족이랑 계약했을 거라는 건 예측하고 있었단 말이다.

       

       그런데, 이놈이 영혼의 반을 바쳤댄다.

       

       “대체 뭐랑 계약한 건데?”

       

       “몰라.”

       

       심지어 계약서 읽어보지도 않고 도장부터 찍었다는 모양이다.

       

       친구가 3금융권에서 대출했다는 걸 들으면 이런 기분일까.

       

       아니, 이건 3 금융권을 넘어서 불법 사채를 쓴 꼴이다.

       

       영혼의 절반이라는 대가는 그만큼 악질적이다. 

       

       여기서 조금이라도 더 영혼을 바쳤다간 사후에 영혼이 악마 소유로 넘어가는, 그야말로 바칠 수 있는 최대한의 비용.

       

       이건 무슨 짓을 해도 손해다.

       

       상대가 무슨 마왕급이라도 되지 않는 이상 무조건 호구 잡힌 계약이란 말이다.

       

       “대체 뭔 생각으로…….”

       

       잔소리를 쏟아내려던 내 말문이 저절로 막힌다. 생각해 보니 내가 이 놈한테 화낼 수 있는 처지는 아니었다.

       

       생각해 보라.

       

       친구가 불법 사채에 손을 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제정신이냐, 미쳤냐부터 시작해서 온갖 말이 다 나오겠지. 제발 정신 좀 차리라고 그 생각 없는 놈에게 잔소리를 마구 퍼부으리라.

       

       근데, 그게 내 암 치료비를 위한 거라면?

       

       심지어 내가 그 덕분에 겨우겨우 살아났다면?

       

       사람새끼라면 도저히 뭐라고 할 수가 없다.

       

       나는 결국 받은 힘을 남용하면 안 된다는 등의 경고만 남기고 감사인사를 전하는 것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

       

       “어찌 됐든 고맙다.”

       

       내 말에 시엘이 고개를 끄덕인다.

       

       워낙 변화가 없는 얼굴이지만 좀 지내온 세월이 쌓여서 그런가. 시엘이 웃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

       

       언제나처럼 멍하니 무언가를 생각하던 시엘이 갑자기 그런 요상한 소리를 낸다.

       

       “무슨 일인데?”

       

       “이름.”

       

       시엘식 화법에 어느 정도 통달해서일까. 나는 시엘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보니… 내 이름도 모르고 있지 얘.

       

       보면 볼수록 도저히 혼자 둘 수 없는 놈이다.

       아니, 세상 어떤 놈이 이름도 모르는 사람 구하겠다고 영혼을 절반이나 팔아먹어?

       

       “이안, 성은 없어.”

       

       나는 적당히 이름을 지어내 그녀에게 말해주었다.

       이건 전작에서 내가 썼던 닉네임이다.

       

       “이안.”

       

       “……왜?”

       

       “그냥.”

       

       “실없기는.”

       

       그런 별 거 없는, 그러면서도 생각보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대화를 나누며 우리는 통로를 찾아 돌아다녔다.

       

       그리고 그러던 와중에 기억난 중요한 사실 한 가지.

       

       그러고 보니 내 진짜 이름은 뭐지?

       저번에 내 이름이나 능력 같은 정보를 보려 했을 때, 상태창은 분명 튜토리얼이 클리어되지 않아서 기능이 해금되지 않았다고 했다.

       

       허나, 지금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이 채굴장이 내 첫 튜토리얼이였다면, 이미 클리어는 끝난 셈이니까.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상태창을 열었다.

       

       그리고,

       

       [튜토리얼 클리어 이후 사용 가능한 기능입니다.]

       

       저번에도 보았던 익숙한 멘트.

       그런데 그 위에 무언가 이상한 안내창이 하나 떠올라 있었다.

       

       [재■의 마■를 처치하■시오.(■/1)]

       

       이상하게 깨져 있는 문구

       뭔 놈의 상태창에도 버그가 있나, 내가 당황하고 있는 사이 그 이상한 안내창은 얼마 안 가 사라진다.

       

       그 대신이라도 되는 건지 갑자기 크게 떠오른 빨간색 문구 하나.

       

       [변곡점을 확인했습니다. 운명 경로를 재설정합니다.]

       

       그게 뭔데 씹덕아.

       

       당장이라도 고객센터에 5700자 문의를 넣고 싶은 마음이 넘처흐른다. 이놈들은 꼬우면 배 째라는 듯 똑같은 메시지만 출력하고 있었다. 

       

       결국 저번이랑 똑같이 무용지물이었다는 이야기.

       

       ‘……그래, 사실 기대도 안 했다.’

       

       나는 도움도 안 되는 상태창을 얼른 시야에서 치워버렸다.

       

       상태창을 치우자마자 볼에서 묘한 감촉이 느껴진다. 고개를 돌리니 시엘이 내 볼을 쿡 찌르고 있었다.

       

       “할 말이 있으면 그냥 하라니까.”

       

       “이러고 싶었어.”

       

       “……그래.”

       

       이 소녀의 정신상태를 이해하는 건 포기했다.

       

       내가 맞추는 수밖에 없지 뭐.

       영혼 반까지 떼어 줬는데. 이거 하나 못 맞춰주겠어.

       

       “저기 봐.”

       

       그런 말과 함께 시엘이 쭉 하고 손가락을 뻗는다.

       그곳에는 커다란 문이 있었다.

       

       허나 이상한 건.

       

       “저게 왜 잠겨 있지?”

       

       저기가 출구라면 분명 열려 있어야 한다. 내가 슬립 마법의 후유증 탓에 좀 누워 있는 동안, 다른 애들은 먼저 다 빠져나갔으니까.

       

       무슨 도어락도 아니고, 저절로 열쇠가 돌아가 잠겼을 리가 없…….

       

       ‘잠깐 설마…….’

       

       이 새끼들. 우리 일부러 여기 가둔 거야?

       

       뭐 이런 새끼들이 있지?

       아니, 굳이 시간 투자해서 문까지 잠그고 간다고?

       

       ‘아.’

       

       하긴, 나라도 누가 악마 같은 거 소환하면 무섭긴 하겠다.

       

       나야 뭐 이놈이 어딘가 좀 맹한 꼬맹이라는 걸 알지만, 다른 애들은 미친 흑마법사로 보일 거 아니야.

       

       쫓아올까 겁나서 가둔 거구만.

       

       거 더럽게 쪼잔하네.

       

       “뭐…… 이렇게 되면 자물쇠라도 따야 하나?”

       

       “안 돼.”

       

       그런 말과 함께 시엘은 멍한 얼굴로 바닥에서 돌을 주워 풀스윙을 날린다.

       

       -콰아앙!

       

       그리고 돌은 순식간에 결계 같은 거랑 부딪혀 산산조각이 났다.

       

       열쇠 없이 가까이 다가갔다간 저렇게 되는 모양이다.

       

       “미치겠네 진짜.”

       

       설마 이런 병신같은 일로 여기서 굶어죽는 건가? 여분 열쇠야 있긴 하겠지만. 전부 다 누군가가 챙겨간 모양인데.

       

       아까 창고를 뒤졌을 때도 없었단 말이다.

       

       내가 그렇게 고민하고 있던 순간이었다.

       

       “가져가.”

       

       뒤에서 갑자기 들려온 남자아이의 목소리.

       나는 다급히 고개를 돌려 놈의 얼굴을 확인했다.

       

       “그때 그 빵 값이니까.”

       

       그때 바닥에서 굶어가고 있던 놈이다.

       허나, 달라진 게 있다면. 이번엔 내가 받는 입장이란 것이었다.

       

       놈은 내 손에 열쇠를 쥐여준다.

       

       이상한 기분이다.

       분명 놈들에게 배신당해 죽을 뻔 했을 때는 내가 멍청한 짓을 했노라며 자책했다.

       

       친절은 괜히 베풀었다고, 판타지 세계에 왔으면 그 세계에 맞춰 냉정하게 살아가야 한다고.

       

       허나, 나는 지금 그것 덕분에 살아 있다.

       내 도움을 잊지 않고 마지막까지 여기서 나를 기다려 빚을 갚은 꼬마와 이곳에서 사귄 친구 덕에 살아 있다.

       

       -끼이익.

       

       천천히 문이 열린다.

       

       이 앞에 펼쳐지는 건 나도 아직 모르는 세상이다.

       

       전작에서 몇 년 후, 아니면 몇 년 전의 과거일까.

       무엇이 어떻게 변해있을까.

       

       뭐 하나 알 수 있는 게 없다.

       

       허나, 언제는 안 그런 적이 있던가.

       결국 결론은 이번에도 똑같다.

       

       일단 한 번 부딪혀 수밖에 없지 뭐.

       

       나는 낯선 세상을 향해 첫 걸음을 내딛었다.

       

       *****

       

       텅 비어있는 버려진 채굴장.

       한 방문객이 그곳에 찾아왔다.

       

       “……참혹하군.”

       

       특이한 점이라곤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현장. 

       허나, 남자의 눈에는 보였다.

       

       시간이 지남에도 아직 이곳에 남아있는 끔찍한 기운이. 역겨움까지 느껴지게 하는 마기가.

       

       “어르신을 죽인 놈과 같은 기운이야.”

       

       남자, 제국의 기사단장은 그렇게 이야기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허나, 그것이 아이들을 소모품으로 이용하는 이 채굴장의 실태를 깨달아서는 아니다.

       

       이건, 제국이 묵인한 사업이다.

       그는 이미 진작에 이것을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일 이유 따윈 없었다.

       

       당연한 이야기다.

       제국의 주인은 제국민이 아니니까.

       

       진정한 제국의 주인은 소수의 고위 귀족들과 황족이다. 이곳을 운영하던 어르신 같은 사람 말이다.

       

       그러므로 지켜야 할 것도, 제국의 검이라 불리는 그가 충성해야 할 것도 국민 같은 게 아니다.

       

       빈민가의 버러지들이 죽든 말든, 그 버러지가 낳은 새끼들이 어떤 식으로 죽어나가든 그의 알 바는 아니었다.

       

       애초에, 그런 천한 신분으로 천한 일을 하다 천하게 죽어버릴 인생을 이렇게 제국의 발전에 기여하는 방식으로 써먹을 수 있다면…. 

       

       ‘그건 오히려 자랑스러워해야 할 일 일이겠지.’

       

       분에 넘치는 은혜다.

       남자는 진심으로 그리 생각했다.

       

       “……보면 볼수록 경악스럽군.”

       

       기사단장은 그리 이야기하며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처음부터 예사롭지 않은 일이 될 것이라 예상은 했다.

       

       저택에서 휴식을 취하고 계시던 어르신이 갑작스럽게 검은 그림자에 집어삼켜졌다.

       

       온갖 아티팩트와 저택의 경비마법 따윈 전부 아무런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상당한 실력자다.

       어쩌면 고위 악마가 소환된 걸지도 모른다. 그 기운을 추적해 여기까지 도달한 남자는 침을 삼키며 바닥을 짚었다.

       

       “……여기인가.”

       

       그나마 마기의 침식이 약한 곳.

       아이들이 식사를 하던 장소처럼 보이는 의자 근처. 

       

       여기라면 토지에 새겨진 기억을 읽을 수 있다.

       

       잘만 풀리면 범인의 정체부터 목표까지 모든 걸 밝혀낼 수 있으리라.

       

       기사단장이 땅에 쏟은 마력이, 토지와 공명한다. 이내 그것은 형태를 이루어 그곳에서 있었던 일을 재현했다.

       

       -이상하네.

       

       -뭐가 이상한데.

       

       형태가 불안정하지만, 어느 정도는 알아볼 수 있었다. 남자아이 하나와 여자아이 하나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다.

       

       -네가 말하는 거.

       

       -……그러니까. 제발 말할 때 좀 앞뒤를 붙이라고 몇 번을 말하냐. 알아먹기 힘들다고. 

       

       -뭔가 다른 세상에서 살다 온 것처럼 보여.

       

       -응?

       

       -사람은 모두 평등해야 하고. 부모는 아이를 사랑해야 하고. 그런 걸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잖아. 

       

       -하긴 뭐. 너한테는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겠네. 

       

       -넌 세상을 그렇게 바꾸고 싶은 거야?

       

       -왜? 도와주려고?

       

       -……모르겠어.

       

       순간, 그 말을 듣자마자 기사단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지금 비치는 이 과거와 범인의 연관성은 찾아볼 수 없었다. 허나, 더러운 반역자는 하나 잡은 듯 했다.

       

       이런 건, 싹이 트기 전에 잘라주어야 한다.

       그렇기에 기사단장은 마나의 흐름을 빠르게 안정시켰다.

       

       좀 더… 좀 더…. 조금만 더 하면 얼굴이 보일 거다.

       

       저 더러운 쥐새끼를.

       감히 주제도 모르고, 푸른 피가 흐르는 이들에게 반기를 들려는 꼬마를 찾아내 죽일 수….

       

       [네가 뭔데. 멋대로 내 사랑을 엿보는 거야.]

       

       갑자기 귓가에 울려퍼지는 이상한 목소리.

       

       머리가 어지럽다.

       

       순식간에 세상이 암전한다.

       

       비명이 입 밖으로 튀어나온다. 그럼에도 어째서인지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몰이해, 몰상식, 식별불능.

       남자는 그저 멍하니, 눈앞의 늑대를 바라보았다.

       

       [뭐, 나도 받은 만큼 일은 해야겠지.]

       

       순간, ‘그것’은 늑대의 탈을 벗는다.

       

       남자는 그것을 보곤 웃었다.

       

       웃으며 피를 토하고, 

       웃으며 자신의 배를 가르고, 

       웃으며 자기 안에 있던 것을 꺼내고, 

       웃으며 스스로의 머리에 칼을 꽂아넣고,

       

       비틀었다.

       세상 누구보다 행복한 미소를 지으면서.

       

       그렇게 제국의 기사단장은 죽었다.

       

       엉망진창이 된 시체에 그림자처럼 드리운 늑대의 이빨자국만이 남은 채로.

       

       검은 송곳니라는, 제국의 모든 것을 뒤바꿀 조직의 이름이 처음으로 역사에 새겨진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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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ccidentally Created a Villainous Organization

I Accidentally Created a Villainous Organization

How did you create a dark organization? 어쩌다 흑막 조직 만들어버림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game spoilers turned out to be fake. The characters I gathered thinking they were heroes are actually all villains. In other words, I accidentally created a villainous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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