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5

       

       솔직히 처음에는 느낌이 꽤 좋았다.

       긴장했던 것과 달리, 몸은 떨지 않고 제 역할을 해주었다.

       

       ‘심지어 이번에는 컨닝페이퍼도 있어.’

       

       전생에 보았던 광고가 놀랍도록 선명히 떠올랐다.

       그때 김정하가 했던 연기를, 그리고 당시 아역이던 이지연의 연기가 망막에 새겨지듯 떠올랐다.

       

       할 수 있다.

       이거면 문제없겠네.

       

       그렇게 낙관적으로 생각했지만.

       

       ‘……뭔가, 맛이 안 살아.’

       

       카메라에 찍힌 소녀는 나답지 않게 무척 발랄하며, 생기넘치는 모습이다.

       그런데, 여전히 ‘주서연’의 모습이 보였다.

       

       이것은 내가 RP를.

       즉, 연기를 제대로 못했다는 뜻이다.

       

       ‘문제가 뭐지?’

       

       사실 곰곰이 생각해도 내가 알 리가 없다.

       나는 연기를 배워본 적도 없고, 쭉쭉 체조나 하며 어린이 방송을 보며 따라한 게 전부니까.

       

       망상 속 캐릭터를 연기해본 적은 있지만, 이런 식으로 직접 찍어서 확인한 적은 없다.

       

       “흠…….”

       

       감독인 조민태도 근심 어린 얼굴이었다.

       

       “사실, 이대로 해도 되긴 합니다.”

       

       그는 다시 촬영하자고 한, 내 말을 듣고 그리 답했다.

       

       “솔직히 말해, 막 문제가 있지 않아요. 그쵸?”

       “아, 예.”

       “저는 솔직히 뭐가 문제인지 잘 모르겠네요.”

       “그냥, 조금 위화감……이 드는 느낌은 있는데.”

       

       스태프 중 누군가가 별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이었지만, 내 가슴을 때리는 말이 있었다.

       위화감.

       

       ‘그래, 맞아. 위화감이 있어.’

       

       왜 그렇지?

       내가 영상을 계속 뚫어져라 보고 있자, 누군가가 내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김정하 배우님?”

       “그…… 있잖아.”

       

       그녀는 말할지 말지 망설이는 모습이었다.

       마치 ‘나 따위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나’라는 태도였다.

       

       실제로 몇몇 스태프들은 김정하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이번 연기는 좋긴 했지만, 그동안 계속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겠지.

       

       딱 한 번 제대로 한 주제에 잘난 듯 충고하는 모습처럼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난 안다.

       

       김정하는 미래의 천만배우다.

       천만 명의 관객에게 인정 받은 재능을 가진 배우였다.

       

       “김정하 배우님.”

       “……으응?”

       “전, 여태 제대로 연기를 배운 적이 없어요.”

       

       그런 내 말에 김정하는 두 눈을 깜박였다.

       나를 향한 그 눈을 볼 때, 잘난 척처럼 받아들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당연히 부족한 부분이 많아요. 이상한 점이 있다면 꼭 말씀해주셨으면 해요.”

       

       내가 직장 생활을 하며 느꼈던 게 있다.

       모르면 물어보면 된다.

       그 말은 직장 생활에선 그다지 통용되지 않는 말이다.

       

       모르면 스스로 알아내는 노력을 해라.

       그게 내가 그 김부장놈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이었으니까.

       

       ‘하지만, 내 앞에 있는 김정하는 김부장이 아니야.’

       

       뭐, 같은 김 씨이긴 했지만, 적어도 김정하는 질문을 윽박으로 돌려주는 인물은 아니다.

       조금 소심하긴 해도 나를 향해 무언가를 말해주려 했으니까.

       

       그녀는 멍청하지 않다.

       여태 연기를 못했던 만큼, 자신이 무언가 먼저 말해줘봐야 비웃음만 산다는 걸 알거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내게 말해주려 했다.

       

       그러니, 나는 그 답을 듣고 싶었다.

       

       “……이건, 정말. 내 개인적인 생각이야.”

       

       그런 내 말이 통했는지, 김정하는 더듬거리며 말했다.

       

       “서연이는 감정연기가 엄청 좋아. 아직 어린대도 엄청 대단해. 솔직히 나는 흉내도 못 낼 정도야.”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재생되는 영상을 가리켰다.

       

       “하지만, 감정연기만으론 작은 TV 화면으로 모든 걸 전하지 못하거든.”

       

       그녀의 말에, 나는 눈을 크게 떳다.

       

       ‘아.’

       

       그렇구나.

       그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았다.

       

       조민태도 김정하의 말에, 작은 감탄사를 내었다.

       

       “아, 맞아요. 그래, 그런 느낌이네요. 서연 양, 연기를 배운 적이 없다고 했죠?”

       “……네.”

       “그러네. 배운 적이 없네. 이게 여기서 이렇게 티가 나는구나.”

       

       그 말에 조금 부끄러워졌다.

       배운 적도 없는데 무작정 일을 저지르고 본 무지렁이가 된 느낌이다.

       

       ‘연기라는 건, 감정 연기만 있는 게 아니야.’

       

       그리고, 솔직히 나는 다들 감탄하는 내 감정연기가 그렇게 와닿지 않는다.

       본인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스스로 문제가 있는 건지.

       

       하지만 문제점은 알 수 있었다.

       

       ‘제스처.’

       

       연기는 감정만으로 해결되는 게 아니다.

       대사의 어투, 어조.

       그와 연계되는 행동, 움직임.

       

       그것이 종합적으로 연기로 표현된다.

       

       나는 거기서 오직 감정과 기억 속에 남은 동작을 통해 연기를 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 동작은, 어디까지나 전생의 아역, 이지연의 것.

       

       당연히 나랑은 맞지 않은 게 당연했다.

       따로 놓고 보면 능숙한 연기처럼 보일 테지만 완벽한 내 연기는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몸을 쓰는 건 그다지 해본 적이 없었다.

       

       “……혹시 괜찮으면, 조금 알려줄까? 내가 그래도, 이건 조금…… 자신있어서.”

       

       우물쭈물하며 김정하가 말했다.

       천만배우 김정하의 말이다.

       

       나로선 당연히 받아들여 마땅한 제안이었다.

       

       “물론이죠. 오히려 꼭 알려주셨으면 해요.”

       

       감정 연기가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는 건 스크린이다.

       시야에 가득차는 화면과, 음성, 음악이 가장 크게 사람의 감정을 움직이니까.

       

       하지만 TV나, 작은 컴퓨터 화면으로 본다면 스크린보다 그 감동이 확연히 적다.

       그러니, 그것을 보완하는 게 ‘시각적 연기’다.

       

       “그러니까, 여기선 이렇게…….”

       

       다시 촬영을 하게 됐음에도 스태프들은 불만을 내뱉지 않았다.

       그저 이런저런 동작을 알려주는 김정하와, 나를 가만히 지켜볼 뿐이었다.

       

       그렇게, 한 시간.

       두 시간.

       

       “자, 그러면 다시 촬영 들어갈게요!”

       

       저녁이 되었을 무렵에야, 겨우 촬영이 재시작 되었다.

       다시 김정하와 함께 촬영장에 서자, 어쩐지 몸이 떨렸다.

       

       긴장. 그리고 초조함.

       오디션 때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 나를 덮쳤다.

       

       ‘내가 할 수 있나?’

       

       모르겠다.

       솔직히 방금 배운 건 기초조차 되지 않는다.

       이번 CF를 위한 땜빵, 딱 정도일 뿐이니까.

       

       ‘그래도.’

       

       카메라를 본다.

       조민태가 큐 사인을 내리기 위해, 입을 움직이는 게 보였다.

       

       그리고.

       

       “……조 감독님.”

       “예?”

       “이거, 광고주만 너무 이득이 된 것 같은데요? 말도 안 됩니다, 진짜.”

       

       나의 첫 촬영은 그렇게 끝이 났다.

       

       ***

       

       “히이잉, 엄마는 나 붙을 거라고 했잖아.”

       “지, 지연아. 너무 신경 쓸 필요 없어. 오디션이 그것만 있는 것도 아니잖아.”

       “그래도~~!”

       

       홍진희는 오디션에서 떨어진 이후, 자신감이 팍 죽은 딸의 모습에 한숨이 나왔다.

       벌써 몇 달 전의 일이다.

       

       ‘어휴, 대체 누가 그 오디션에 붙은 거람.’

       

       홍진희는 그렇게 툴툴 거렸지만, 내심 짐작 가는 아이가 있었다.

       그때, 혼자 시큰둥하게 앉아있던 아이.

       

       다른 아이들은 다 긴장하고 있었음에도 홀로 조용히 있었던 아이가 떠올랐다.

       

       ‘분명 걔야. 아마 내정되어 있었던 게 분명해.’

       

       그러니까 긴장도 하지 않았던 거겠지.

       

       ‘간혹 그런 경우가 있다고는 들었지만……, 어휴, 분해.’

       

       미리 내정해두고 오디션을 보는 경우도 있었다.

       홍진희는 자신의 딸이 분명 그 이유 때문에 떨어졌다고 생각했다.

       

       얼굴은 좀.

       아니…… 많이 귀여운 아이였으니 얼굴 빨로 붙은 게 분명하다!

       

       홍진희는 그렇게 생각하며 딸을 달랬다.

       

       “우리 이쁜 딸. 조금 있으면 유치원도 가는데 그만 뚝!”

       “히이잉.”

       “자, 우리 지연이가 좋아하는 삐니핑 할 시간이야.”

       

       삑, 하고 아이를 달래기 위해 TV를 켰다.

       몇 달 전의 일을 생각날 때마다 칭얼거리는 딸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하면서.

       

       “응?”

       

       삐니핑이 방영되는 것을 기다리던 그때.

       광고 하나가 나왔다.

       

       “엄마.”

       “응?”

       “나, 쟤 본 것 같아.”

       

       홍진희는 그런 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그녀도 그렇게 생각하던 참이었다.

       

       광고는 두유 광고였다.

       이름도 들어보지 않은, 신생 브랜드의 두유 광고.

       

       「언니! 이거 우유야?」

       

       처음은 긴 흑발의 소녀가 칭얼거리며 시작한 광고였다.

       그때, 발랄한 인상의 여성이 나오며 손가락을 까딱까딱 흔들었다.

       

       「설마~. 언니가 동생을 위해 사온 두유야.」

       「두유?」

       

       소녀는 두유를 손에 쥐고, 눈을 질끈 감고 빨대를 쪽 빨았다.

       힐끔 거리며 언니를 보는 게 여간 귀여운 게 아니었다.

       

       「와! 달아!」

       

       그리고, 색감이 변하며 소녀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진다.

       몸을 발랄하게 통통 튕기며, 걷는 모습은 아이의 귀여움에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들었다.

       

       밝아진 색감 속에서, 밝고 경쾌하게 방방 뛰었다.

       그 사이, 사이 자연스럽게 두유의 효능이 나오며 그것을 맛있게 먹는 소녀의 얼굴이 클로즈업 된다.

       

       펑!

       

       굉장히 색감이 강하고, 자칫 산만해 보일 수 있는 광고.

       하지만, 주연이 되는 여성과, 작은 소녀는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경쾌하게 움직이는 팔.

       언니와 함께 팔짱을 끼고 빙빙 도는 소녀의 발걸음.

       

        ‘맑은 콩, 순수두유’, 그런 글자가 마지막에 쾅 박힌다.

       

       “엄마.”

       

       정신을 차렸을 때는 딸인 지연이가 그녀의 옷깃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뾰루퉁한 아이의 얼굴을 보아 아마 한참 전부터 부르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래서구나.’

       

       홍진희는 생각했다.

       만약, 저 자리에 자신의 딸이 있었다면.

       

       ‘이래서, 떨어졌구나.’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딸이지만, 도저히 저 아이처럼은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

       

       나는 무척 피곤했다.

       아침 일찍부터 엄마가 질질 끌고 나온 탓이었다.

       

       “엄마, 나 저혈압…….”

       “어머, 무슨 말이니. 서연이는 그런 거 없어.”

       

       그야, 그렇긴 한데.

       전생에는 끔찍한 저혈압이었기에 아침에 움직이는 건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그리고 서연아, 곧 유치원 갈 건데 일찍 일어나는 버릇을 들여야해.”

       “유치원…….”

       

       이름만 들어도 그다지 가고 싶지 않은 장소다.

       이 얼마나 쓸데없고 귀찮은 곳인가.

       

       주서연, 여섯 살.

       슬슬 시간이 빨리 흐르길 바라는 시기다.

       차라리 중고교 생활이라도 다시 하면 재밌기라도 하지.

       

       유치원은 좀.

       

       “엄마, 그렇게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아요.”

       

       아무튼 눈을 비비며, 엄마에게 그렇게 말했다.

       엄마, 수아는 그런 내 말에 대체 무슨 말이냐는 듯 눈을 찡그렸다.

       

       “원래 더 일찍 나오려 했거든요. 우리 예쁜 따님이 해가 하늘 높이 뜰 때까지 쿨쿨 자지 않았다면 말이야.”

       “…….”

       

       음, 뭐. 엄마가 이렇게 닦달하는 것도 이해는 갔다.

       어제부터 줄곧 저런 상태였으니까.

       

       ‘정확히는 어제, CF를 보고 나서부터.’

       

       어제가 몇 달 전에 찍은 CF의 첫 광고 날이었다.

       미리부터 대기하던 엄마는 녹화까지 하며 정성들여 그 기록을 남겼다.

       

       심지어 우리 딸은 천재라며 꽉 껴안은 탓에, 커다란 가슴에 질식할 뻔했다.

       

       ‘어차피 왕창 남아있을 텐데.’

       

       가람드림에서 나온 두유, ‘맑은 콩, 순수두유’는 그냥 무난무난하게 팔린 상품이다.

       원래는 떨이로 나오던 게, 김정하가 찍은 광고로 그래도 평범하게 팔리던 정도였다.

       

       ‘애초에 두유를 사면 얼마나 산다고.’

       

       심지어 동네 마트가 꽤 큰 터라, 수량은 넉넉히 있을 터.

       그렇게 생각했는데.

       

       “……다 팔렸어요?”

       “그냥 다 팔린 것도 아니라, 아침에 다 나갔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많이 좀 들여놓을걸.”

       

       아쉽다는 듯 말하는 마트 아줌마의 말에 엄마의 눈이 내게로 향했다.

       짙은 원망이 담긴 시선에, 나는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설마 다 팔렸을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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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ant to Be a VTu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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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efinitely just wanted to be a VTuber... But when I came to my senses, I had become an ac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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