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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

       “난 진작에 그런 사이가 될 줄 알았는데. 오래도 걸린다.”

       

       “그러니까. 오죽하면 얘한테 고민 상담을 하겠어.”

       

       “진짜 그동안 답답해서 죽을 뻔.”

       

       “그래도 현이가 능력은 확실해. 우리는 친구도 황송한데 그런 아가씨랑 연애까지…와…”

       

       학교의 쉬는 시간. 진호가 나를 보며 조용히 감탄을 터트렸다.

       

       

       “진짜 다시 생각해도 믿기지가 않네. 역시 남자는 얼굴 빨인가?”

       

       “이상한 소리 좀 그만해. 사람은 얼굴이 아니라 마음이 중요한 거랬어.”

       

       “진짜 세게 때리고 싶네…”

       

       “잘 생겼으면 뭐 해? 감각이 그냥 갑각류 수준인데. 여자가 꼬시면 꼬시는 대로 다 따라가는 사람이 세상에 어딨어?”

       

       나와 진호의 대화를 듣고 있던 이나가 답답한 듯 연신 손부채질을 해댔다.

       

       

       “나였으면 벌써 몇 번은 뒤집었다.”

       

       “야. 비교할 걸 비교해. 다른 사람들이 다 너 같은 줄 알아? 기품있는 아가씨한테 무슨 그런 실례되는 말을…”

       

       “진짜 뒤졌어 니. 일로 와!”

       

       “악!! 야! 나 좀 도와줘!”

         

       진호가 뒷걸음질 치며 구원을 요청했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넌 더 맞아도 돼.”

       

       “들었지? 얌전히 있어.”

       

       “팔! 팔! 나 진짜 아파!”

         

       “시끄러워!”

       

       이나가 진호를 쥐잡듯이 패는 광경은 이제 너무나도 익숙했다. 별 감흥도 들지 않았다.

       

       하지만 정말로 사이가 나빠서 그런 게 아니라, 둘 나름의 애정 표현 방법이라는 것도 이제는 잘 알고 있다.

       

       진호와 이나는 말하자면 나를 챙겨주는 형과 누나 같은 존재였다.

       

       그렇기에 항상 투닥거리던 둘이 그런 사이가 된 걸 알았을 때는 정말 신기한 감정이 들었다.

       

       그리고 그때는 나 혼자 연이를 좋아하는 줄 알았기에, 나에게도 저런 날이 올 수 있을까 고민하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그런 사이가 된 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일단은 같은 나이에 같은 학교를 다니고 있지만, 그렇다고 태생이 시골뜨기인 나와 연이가 같다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연이는 명문가의 영애이기까지 했고.

       

       나 역시 그런 사실들을 잘 알고 있었기에, 이미 알대로 다 아는 진호와 이나를 제외하면 누구에게도 우리가 그런 사이가 되었다는 걸 밝히지 않았다.

       

       마을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만났다거나 연이가 건강했었다면, 나와 연이가 이런 관계가 되기는 아마 힘들지 않았을까.

         

       

       

       “현아. 그런데 서연이는 좀 괜찮아진 거야?”

       

       신나게 진호를 두들겨 팬 이나가 후련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응. 괜찮아졌다고 했어.”

       

       “정말? 다행이다. 확실히 귀한 태생이라 몸이 좀 약하기는 한 가봐.”

       

       “내가 생각해도 그런 거 같아. 그보다 우리…”

       

       나는 적당히 대답을 얼버무리고는, 다음번에는 넷이 같이 놀러 가자며 화제를 돌렸다.

       

       아무리 그래도 연이의 병까지 다 말해줄 수는 없었기에 그쪽은 늘 적당히 둘러대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내가 하는 대답, 혹은 희망 사항과는 반대로 연이의 병은 점점 악화하고 있었다.

       

       그나마 활동할 수 있던 낮의 시간도 점점 짧아지고 있었으며, 달의 주기가 반복될수록 고통은 곱절로 커져만 가고 있었다.

       

       연이는 뛰어난 마법사의 자질을 가지고 있었기에 역으로 입자과민증 역시 빠른 속도로 악화하는 중이라고 했다.

         

       지금과 같은 속도라면, 17살은 둘째치고 새해의 일출을 보지 못할 수도 있을 거라고.

       

       나는 그런 사실들을 애써 외면했다. 그저 최대한 연이에게 추억을 만들어주기 위해 애썼다.

       

       그리고 나와 함께 한다는 이유만으로, 연이는 그 모든 시간을 즐겁게 보냈다.

         

         

       “현아…하암.”

         

       그러던 어느 일요일이었다. 비가 추적거리는 아침부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잠결에 문을 여니 잠옷 차림으로 우산을 들고 서 있는 연이가 보였다.

         

         

       “…졸려어…”

         

       연이가 자연스럽게 내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꼬물거리는 작은 움직임에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섬뜩하게 차가운 피부의 촉감 역시도 아주 잘 느껴졌다.

         

       이 정도면 거의 시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연이는 바깥에 나설 때마다 늘 멀쩡해 보이려 애를 썼고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연이의 얼굴에는, 이미 옅은 화장으로는 가릴 수 없는 병세가 만연해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웃으며 인사를 건네주는 것뿐이었다.

         

         

       “잘 잤어? 그런데 그 바구니는 뭐야?”

         

       나는 연이가 들고 온 바구니로 애써 신경을 돌렸다.

         

         

       “…아, 이거…”

         

       연이가 바구니를 덮은 천의 끝자락을 살짝 들어 올렸다.

       

       두껍게 천이 깔린 바구니 속에 들어있는 건, 뜻밖에도 야생 고양이의 새끼였다.

       

       새끼고양이는 척 보기에도 무척 상태가 안 좋아 보였다.

       

       사지를 미약하게 떨며 작게 숨을 내쉬는 것 외에는 그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보니까 문 바깥에 쓰러져있었어. 그래서…”

       

       자신과 겹쳐보기라도 하는 건지, 연이는 죽어가는 생물들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 못했다.

       

       시들어가는 풀에 물을 줘 꽃을 피워내기도 하고, 물가로 잘못 뛰쳐나온 물고기를 다시 돌려 보내주기도 했다.

       

       이번에도 그런 마음이 아닌가 싶었지만, 상태가 너무 심각해 보이는 게 문제였다.

       

       우리의 지식으로는 당연히 방법이 없었고, 수도에 있다는 동물을 진료해주는 병원도 이 근방에서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 불쌍해…”

       

       연이가 예쁜 얼굴에 가득 울상을 지었다.

       

       그런 연이의 우울은 나에게도 썩 달갑지 않았다.

       

       보고만 있을 수 없어 이런저런 방법을 생각하던 중, 나는 언젠가 봤던 책의 내용을 문득 떠올렸다.

       

       분명 위급한 상황에 처하면 피를 마셔서 영양소를 보충하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책에서 본 건 동물의 피였지만, 사람 역시 동물이니 크게 차이는 없을 것이다.

       

       언뜻 무모하기는 해도 지금으로선 별다른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나는 연이에게 잠시 기다리라 말한 후, 주방으로 가서 부엌칼을 가지고 왔다.

       

       그리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보는 연이를 두고, 손바닥에 칼을 휙-그어버렸다.

       

       잠시 후 욱씬거리는 통증과 동시에 미지근한 액체가 흐르는 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현…현아!”

         

       “으…아파…잠깐만 있어 봐…”

       

       내 돌발 행동을 본 연이가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러댔다.

         

       생각보다 고통이 심했기에 얼굴이 반사적으로 찡그려졌다.

       

       그래도 여기까지 온 이상 할 일은 마쳐야 했다. 나는 천 위에 누워있는 고양이의 입가에 내 손바닥을 들이밀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새끼 고양이는 혓바닥을 내밀며 열심히 피를 받아먹기 시작했다.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언뜻 고양이의 몸에 활력이 돌아오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연이는 내 뒤늦은 설명을 들은 뒤 분통을 터트렸다.

       

       

       “…바보. 그렇다고 막 상처를 내면 어떡해? 흉지면 어떡하려고. 나 속상해…”

       

       “…미안해. 앞으로는 안 그럴게. 근데 얘 진짜 잘 받아먹는다. 거의 내 몸에 피를 다 빨아먹을 기세인데.”

         

       “뭐? 그건 절대 안 되는데…잠깐 있어 봐.”

       

       생존을 위한 마지막 몸부림인지, 이제 고양이는 정말로 맹렬하게 내 손바닥을 핥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연이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는 말릴 틈도 없이, 내가 방금 했던 것처럼 손가락 끝을 과도로 찔러 살짝 피를 내고는 고양이의 입에 가져다 댔다.

       

       

       “너 뭐 하는 거야!”

       

       “내 피도 먹여주려고. 진짜 네 피 다 빨아먹으면 어떡해.”

         

       “너는 환자잖아! 그러다 큰일 나면 어쩌려고…”

       

       “난 살짝만 상처 낸 거라 괜찮아. 그리고 너만 상처 나는 거 싫어. 나도 먹일 거야.”

       

       이번에는 내가 화를 냈지만, 연이는 맹렬하게 고개를 좌우로 저어댔다.

       

       연이는 드물게 고집을 부리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때가 아마 지금인 듯했다.

       

       나는 그 격렬한 거부를 이기지 못했고 결국 새끼고양이는 연이의 피까지 한참을 핥아먹었다.

       

       우리는 그 뒤 엄마한테 한참 꾸지람을 들으며 상처를 수습했다. 연이는 우리 집에서 내내 시간을 보내다 고양이를 다시 바구니에 담은 뒤 돌아갔다.

       

       나는 연이가 받을 충격을 걱정했다. 차분히 다시 생각해보니, 그렇게 연약했던 새끼고양이가 고작 피 좀 받아마셨다고 살아날 거 같지는 않았다.

         

       엄마 역시 새끼고양이는 먹을 수 있는 게 한정되어 있어서 오히려 상태가 안 좋아질 수도 있다고 했다.

       

       되려 우리가 야생동물한테 병이 옮을 수도 있다며 다시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그러나 다음 날. 그런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 버렸다.

       

       어제처럼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나가보니 기쁨에 찬 얼굴을 한 연이와 그 품에 안겨있는 고양이가 보였다.

       

       놀라운 건 고양이의 상태였다. 전날의 그 새끼고양이와는 같은 놈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건강하고 활기차 보였다.

       

       고양이는 야옹거리며 거실 바닥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그리고 생명의 은인을 알아보기라도 하는 건지 우리를 아주 잘 따랐다.

       

       결국 나와 연이는 고양이를 계속 돌봐주기로 마음먹었다. 고심 끝에 땅콩이라는 이름까지 붙여주었다.

         

       다만 엄마가 고양이 털 알레르기가 있었기에 땅콩이는 연이의 저택에서 키워지게 되었다.

       

       그리고 비를 맞은 탓인지 그 뒤에 나는 감기에 걸려 버렸다. 이틀 내내 고열을 앓다가 겨우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아니면 엄마 말대로 고양이한테 무슨 병이라도 옳았던 것일지도. 어쨌든 그렇게 우리의 일상에는 땅콩이가 추가되었다.

         

       이후로도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갔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나, 원래대로라면 연이의 병이 더는 버틸 수 없게 심해져 슬슬 끝을 준비하고 있어야 할 때였다.

         

       하지만 연이는 여전히 살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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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recting the Villainess of the Academy

Correcting the Villainess of the Academy

아카데미 악당영애 교정하기
Score 3.8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reunited with the girl who left me when I lost ever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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