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5

       “오해는 풀린 건가?”

        “응, 미안해……. 그리고 나, 소원이 있어. 들어줄래?”

        “나는 산타가 아니야. 소원을 이뤄줄 능력도 의무도 없다고.”

        “대단한 건 아니야. 간단해! 부탁이야, 네가 아니면 들어줄 사람이 없어!”

        “하아.”

       

        감정을 추스린 송수아가 한 말은 제법 담백했다.

       

        소원을 들어달라.

       

        그 해괴한 요청에 ‘제가요?’, ‘이걸요?’, ‘왜요?’라는 콤보가 나올뻔 했으나, 가까스로 참아냈다.

       

       

        그 뒤로.

       

        송수아는 자신의 소원을 내게 말했다.

       

        “헤헤.”

       

        송수아의 소원은 소박하다 못해, 절로 마음을 서글프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정말 그거면 돼?”

        “응응. 어려운 부탁은 네가 거절할 게 뻔하니까.”

        “……잘 아네.”

       

        소원은 간단했다.

       

        [ 며칠간, 자신의 친구가 되어 삶의 마지막을 장식해달라. ]

       

        참 염치없고 불쾌할 수도 있는 부탁이었다.

       

        자신은 곧 죽으니, 진짜 친구인 한유리에게 마음의 짐을 주기 싫어 나한테 부탁한 거겠지.

       

        기분 나쁜 녀석…… 라고는 했지만, 내가한 대답은 ‘오케이’다.

       

        뭐, 내게 그녀의 소원을 들어줄 의무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냥…… 뭐라고 할까.

       

        괜스레 잠자던 박애정신이 솟았다고 할까?

       

        그녀는 ‘등장인물’ 중 하나이며, 나는 <히사있>의 독자다. 자연히 한 캐릭터의 최후를 독자로서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리고 소원을 수리한 다음 날. 

       

        나와 송수아는 그녀의 바램대로 함께 놀이동산에 갔다.

       

        “꺄아아악! 나 놀이기구 타는 거 처음이야아아!”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았던 걸까?

       

        기구에 탑승한 송수아가 뾰족한 비명을 지른다.

       

        다만.

       

        “저 누나 뭐야?”

        “몰라, 무서워.”

        “…….”

       

        그녀가 탄 놀이기구는 뭐 대단한 롤러코스터가 아니라, 평범한 회전목마라는 것이다.

       

        저 멀리서 송수아가 열심히 손을 파닥이는 모습이 눈에 밟혔다.

       

        ……나는 애써 꼬맹이들을 외면하며, 그녀에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잠시 뒤.

       

        기구… 말 위에 올라타 신나게 달리던 송수아는 이번엔 배가 고프다고 칭얼거렸다.

       

        “그럼 밥이나 먹으러 가자.”

        “어어? 아니? 나 저거 먹을래!”

       

        후다닥 좌판으로 달려간 송수아가 고른 음식은 솜사탕이었다. 

       

        설마하니 이것도 처음 먹느냐고 물어보니, 역시 처음 먹어본단다.

       

        그 뒤엔 놀이공원을 떠나, 카페에 갔다.

       

        한겨울의 날씨에 그녀가 주문한 것은 팥빙수. 그에 점원이 이상한 눈빛으로 우릴 쳐다보았고, 나 역시 신기하게 송수아를 바라보았으나…….

       

        훅!

       

        카페 안에 따듯한 훈풍이 불기 시작했다.

       

        원인은 불 보듯 뻔했다. 송수아, 그녀가 자신의 능력을 사용해 실내 온도를 극적으로 올린 것이다.

       

        “어때? 이제 괜찮지?”

        “참 팔자 좋은 녀석이구나, 너.”

        “헤헤, 팥빙수를 먹는 건 처음이야!”

        “도대체 처음이 아닌 건 뭐야?”

        “없어! 다 신기해!”

       

        뇸뇸, 하는 소리를 내며 팥빙수를 흡입하는 송수아.

       

        그 모습이 제법 귀여워 나도 모르게 그만 너털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카페에서 나오니 이미 해가 저물어 날이 어두워졌다.

       

        이제 이별을 고할 시간이다.

       

        “오늘 즐거웠어!”

        “너도 대단하다. 어제만 해도 능력을 사용해 겁주던 사람이 맞는지 의심이 든다니까?”

        “그, 그건……! 유리는 내게 정말 소중한 친구란 말이야. 어쩔수 없었어!”

       

        그리 말한 송수아는 도도도, 인도를 달려가더니 번쩍 팔을 들어 내게 손을 흔들었다.

       

        참, 속 편한 녀석이다.

       

        [ 남은 시간, 3일 ]

       

        * * *

       

        “송수아. 당신, 어디를 그렇게 돌아다니는 거예요?”

        “앗! 야생의 유리몬!”

       

        꿀 같은 휴일, 잠시 학생회에 들렀던 송수아는 간단한 인사를 건넨 후 건물을 나서려 했다.

       

        다만 예상치 못한 적수와 마주치게 되었으니 바로 그녀의 오랜 친구인 한유리다.

       

        “약속이 있어서!”

        “약속? 당신에게 저를 제외한 친구가 있던가요?”

        “흥! 나도 친구 있거든?”

       

        말투와 달리 행복한 미소가 피어난 얼굴이다. 친구의 성장에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은 한유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누구인가요? 당신의 친구라면 제게도 친구. 괜찮다면 소개, 가능하겠죠?”

        “아, 아, 안돼!”

        “……?”

       

        한유리의 돌직구를 맞은 송수아가 기함했다.

       

        송수아는 알고 있다.

       

        그녀에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가족 같은 친구 한유리가, 자신과 계약 아닌 계약을 맺은 남자에게 제법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그렇기에 막상 지금의 일상을 생각해보면…… 여간 마음이 심란한 것이 아니었다.

       

        물론, 송수아가 흑심을 품고 임혜성을 만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무언가… 친구의 남자를 빼앗는 아찔한 기분이 들지 않나.

       

        “누구인지 말하지 않을 거에요?”

        “사, 사흘 뒤에 알려줄게.”

        “음…? 뭐 그래요. 딱히 상관 없어요.”

        “그, 그래! 안녀엉!”

       

        벌컥!

       

        문을 젖히고 나가려던 송수아의 걸음이 멈췄다.

       

        고개를 돌리니, 또각또각. 구두소리를 내며 멀어지는 친구의 가녀린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유리!”

        “네? 아직 할 말이 남았나요?”

        “내, 내 새로운 친구는 ‘예언’ 능력자야! ……남자고!”

       

        두근! 두근!

       

        심장이 미친듯이 쿵쾅거리는 감각을 느끼며, 송수아는 문을 젖히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가 말하기를, 자신이 ‘예언’ 능력자이며 그 때문에 한유리가 큰 관심을 두는 것이라고 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참으로 망측한 장난이었다. 한유리는 과연 자신의 말 뜻을 이해할까?

       

        새빨갛게 물든 얼굴이 된 송수아는 약속장소로 달려갔다.

       

        그리고.

       

        “……예언 능력자?”

       

        홀로 남은 한유리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듯,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 * *

       

        약속장소에 도착한 송수아는 저 멀리, 자신이 찾던 사람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를 본 순간 알 수 있었다.

       

        나름대로 큰 편에 속하는 키, 세상만사 귀찮다는 표정, 창백한 느낌이 물씬 풍기는 하얀 피부.

       

        “혜성!”

        “왔냐.”

       

        건성인 대답이긴 하나, 며칠 사이 급속도로 가까워진 둘이다. 송수아는 열심히 고개를 파닥거렸다.

       

        “시간 맞춰서 오느라 힘들었어!”

        “아직 입장 시간 전이야. 느긋하게 들어가도 안 늦어.”

        “휴, 다행이다.”

       

        송수아는 만족스러운 미소와 함께 영화관 내부로 입장했다.

       

        물론, 팝콘과 음료수를 구매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거, 다 먹을 수 있겠어?”

        “응? 같이 먹으면 돼. 충분해!”

       

        트리플 엑스 라지 사이즈 팝콘에 임혜성이 질린듯 묻자, 송수아는 결연한 의지를 내비쳤다.

       

        지나치는 사람들이 어마어마한 팝콘의 용량에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송수아는 그저 행복한 표정으로 와삭와삭 팝콘을 씹을 뿐이었다.

       

        “아, 시작한다.”

       

        열심히 팝콘을 씹던 중, 영화의 상영이 시작되었다.

       

        오늘 송수아가 고른 영화는 ‘로맨스’ 장르의 영화다. 평소 이성에게 아예 관심이 없었기에, 로맨스 영화가 어떤 감성일지 궁금하던 송수아의 픽이다.

       

        영화는 참 망측하기 그지없었다.

       

        대강의 내용은 친구인 두 남녀가, 모종의 사건들을 겪으며 점차 서로에게 호감을 쌓아 연인으로 발전한다는 이야기.

       

        하지만…….

       

        “끄흐윽.”

       

        영화가 극의 절정으로 치닫자, 송수아는 팝콘을 씹던 것도 잊고 연신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너무해…….”

       

        이 시나리오의 아찔한 이야기가 너무 서글펐다.

       

        아카데미에서 만난 두 남녀, 괴수와 빌런을 토벌하며 언뜻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그들.

       

        이변은 갑작스레 찾아왔다. 

       

        언제나 당당한 미소를 잃지 않던 여주인공에게 급성 마나 중독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찾아온 것이다.

       

        여주인공은 자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녀의 연인인 남주인공에게 그 사실을 속이며, 죽음이 드리우는 섬뜩한 감각에 처연히 맞설 뿐이었다.

       

        외줄타기를 하는 것 같던 영화는 허망하게 끝났다.

       

        병마와 싸우던 여주인공이 결국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관객들이 하나둘 빠져나가기 시작하던 때.

       

        송수아는 멍하니 대형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품 안에 고이 안긴 팝콘은 채 반도 먹지 못한 상태였다.

       

        “송수아.”

        “으, 으응.”

        “슬슬 가자. 이제 우리밖에 안 남았어.”

       

        퍼뜩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살피니, 남은 관객은 송수아와 임혜성 뿐이었다. 언제 들어왔는지 모를 직원들이 상영관을 청소하는 것이 보였다.

       

        “…….”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난 송수아는 상영관 바깥으로 향했다. 그리고 영화관을 나서기 위해 출입구로 가니.

       

        “비가 오네.”

       

        아무런 감흥 없이 중얼거린 임혜성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다.

       

        하고싶은 말이 무엇인지 빤히 보이는 상황. 그 시선을 애써 외면한 송수아는 투정부리듯 중얼거렸다.

       

        “이, 이건 내 잘못이 아니야.”

        “……누가 뭐라고 했나?”

        “윽.”

        “너 눈 퉁퉁 부었어. 자.”

       

        스윽.

       

        그리 말한 임혜성이 손수건을 내밀었다.

       

        그걸 받아든 송수아는 슥슥, 자신의 눈을 문지르더니.

       

        패앵!

       

        “…….”

       

        코까지 시원하게 풀었다.

       

        “어차피 세탁해서 돌려주면 되니까. 응응.”

        “아니, 그걸 네가 정하는 거냐?”

       

        만담 같은 대화를 나눈 두 남녀는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마… 내 감정에 영향을 받았을 거야.”

        “…….”

       

        바깥에 비가 내린다.

       

        <비를 내리는> 송수아라는 이명에 걸맞게, 그녀가 슬픔의 감정을 느끼니 하늘이 슬퍼하는 듯 굵은 장대비가 내리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요즘 비가 참 많이 내리더라.”

        “…….”

       

        임혜성의 나지막한 목소리. 그에 송수아는 할 말이 없어졌다.

       

        그녀는 기후를 조종할 수 있다. 하지만, 이따금씩 그녀의 감정이 통제를 벗어나면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 이제 곧 그칠 거야.”

       

        송수아는 괜스레 시선을 돌리며 중얼거렸다.

       

        과연 그녀의 말대로, 얼마간 시간이 지나자 다시 화창한 하늘이 두 사람을 반겼다.

       

        “나, 하고싶은게 또 생겼어.”

        “……뭔데?”

        “편지. 나도 편지를 쓰고 싶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영감을 받은 행동이었다.

       

        죽음을 맞이한 여주인공이 연인에게 쓴 편지. 영화는 남주인공이 그 편지를 독백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그러던가.”

       

        무심하게, 툴툴거리는 듯한 목소리로. 

       

        임혜성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 모습에 송수아는 배시시 미소 지을 뿐이었다.

       

        [ 남은 시간, 2일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연재 주기는 하루 1화입니다,,,

    시간은 아직 미정인데, 정오 or 저녁 8시~12시 사이가 될 것 같습니다. 제대로 정해지면 따로 공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Not Hiding My Power at Hero Academy

Not Hiding My Power at Hero Academy

Status: Ongoing Author:
Hero. Everyone admires them as they wield supernatural powers that defy the laws of physics. The ability I possess is to 'reject' those powers.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