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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

       *

        사실상 살아있는 것이 더 신기할 만큼 망가졌던 내 몸은 하루가 다르게 회복되어갔다.

        ​

        기적이라고 불러도 전혀 손색이 없을 이 경이로운 회복은 당연코 밀우드 씨의 정성스러운 보살핌 덕분이었다.

        ​

        그뿐만이 아니었다.

        ​

        도시도 아닌 조용한 숲속에서 하루 중 대부분을 침대에서 보내는 생활은 지루한 것이 정상일 텐데 나는 생각보다 충실한 나날을 보냈다.

        ​

        밀우드 라는 이름의 정체불명의 여성은 의외로 무척이나 즐거운 대화상대였기 때문이었다.

        ​

        숲속 폐허에 사는 지금과는 달리 과거에 세계여행이라도 다녀본 경험이 있는지 영지 안에 박혀있던 촌놈인 나에겐 놀라울 만한 세계 각지의 여러 소식들을 전해주었다.

        ​

        거기에 대화를 매끄럽게 만들어주는 배려나, 이야기 사이사이 첨가하는 유머 감각도 나쁘지 않았다.

        ​

        나는 보기보다 재담꾼이었던 그녀와의 대화를 꽤나 즐겼다.

        ​

        ​

        마음속에 품은 그녀에 대한 의심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

        그녀가 말해주는 경험담에는 항상 친구나 동료가 있었는데, 정작 그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려 하면 즐겁게 이야기하다가도 문득 말을 멈추고는 침묵해버리곤 했다.

        ​

        본인에 대한 이야기가 깊어질 때도 마찬가지였다.

        ​

        과거에 대해 말을 하면 즐겁게 말을 하다가도 갑작스럽게 입을 다물고, 이내 완전 다른 이야기 주제로 부자연스럽게 전환하곤 했다.

        ​

        내가 눈치 없이 조금이라도 더 캐물으려는 기색을 보이기라도 할 때면 그녀는 여지없이 살벌하고도 날카로운 살기를 쏘아냈기에,

        ​

        나는 그녀가 말을 멈추면 이야기를 다시 시작할 떄 까지 가만히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

        그러나, 그런 제한적인 상황 속에서도 지금까지 나누었던 대화를 통해 나는 그녀에 대해 몇 가지 사실을 파악할 수 있었다.

        ​

        ​

        ​

        “항상 바쁜 여행이었지만 가끔 여유로운 날이 생기면 하루 종일 검을 손질하곤 했었어. 아, 물론 평소에 손질을 미뤘다는 건 아니야. 한 번이라도 뭔가 베었다면 반드시 그날 닦아야 하고, 아무리 시간이 없다고 해도 반드시 닷새에 한 번은 꼭 짬을 내서 기름칠 해 줘야 하거든.”

        ​

        ​

        ​

        그녀는 장검을 다루는 모험가 출신인 모양이었다.

        ​

        이름이 알려질 만큼 유명한 사람이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녀 본인만큼은 자신의 실력에 어느 정도 자신이 있는 모양이었다.

        ​

        자신의 검을 끓인 아마 씨 기름으로 정성스레 닦아내는 과정을 즐겁게 설명하는 모습에선 병기를 소중히 다루는 꼼꼼한 성격이 돋보이기도 했다.

        ​

        ​

        ​

        “너도 언젠가 동료들과 모험을 다니게 된다면 반드시 파티에 음유시인… 최소한 악기를 다룰 줄 아는 사람 한명쯤은 있는 게 좋을 거야. 아니면 네가 배우는 것도 좋겠지. 흥겨운 음악 소리는 끔찍한 상황에서도 든든한 위로가 되어 주기도 했고, 편안한 휴식 시간에 음악이 더 해지면 더 바랄 게 없을 만큼 만족스러웠거든… 나도… 내 동료에게 류트를 배우기로 했었는데…”

        ​

        ​

        ​

        그녀에겐 동료들이 있었던 것 같다.

        ​

        함께 시간을 나누고, 위기를 넘으며 서로의 등을 맡길 수 있었던 믿음직한 동료들.

        ​

        지금의 그녀가 이런 오지나 다름없는 숲속의 폐허에서 혼자 살게 되기까지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가늠조차 되지 않지만, 그녀의 목소리에서 분명하게 느껴지는 상실의 아픔은 그녀의 과거에 수많은 사연이 잠들어 있음을 짐작하게 했다.

        ​

        ​

        ​

        “…나도 많은 사선을 넘어왔고, 많은 걸 잃어봤어. 후후… 아무리 그래도 애쉬 너만큼은 아니겠지만 나 역시 소중한 사람을 잃었을 때. 그리고 그게 내 잘못인 것만 같을 때 느끼는 고통과 죄책감을 잘 알고 있거든…”

        ​

        “밀우드 씨…” 

        ​

        “후… 어쩌면 죽어가던 너를 그냥 보지 못한 건 그 탓일지도 모르겠네… 위험한 걸 알면서도..,”

        ​

        ​

        ​

        그녀는 그 동료들을 잃은 모양이었다.

        ​

        아마도 다시 볼 수 없는 방식으로, 내가 라일라를 잃은 것처럼.

        ​

        그녀가 이런 숲속에서 혼자 사는 이유는 어쩌면 속죄, 혹은 아픈 기억이 주는 상처로부터 도피 때문인 걸까…

        ​

        어쩌면 그녀는 유명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

        얼굴만 보면 누구나 알 만큼 유명한 모험가.

        ​

        그렇기에 그녀는 자신의 얼굴을 보이는 것을 끔찍하게도 경계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

        자신의 모험의 끝이 그리 아름답지 않았기에…

        ​

        ​

        ​

        “밀우드 씨가 무슨 일을 겪은 걸지 모르곘지만, 모든 게 당신의 잘못인 건 아닐 거예요.”

        ​

        “그렇지 않아. 너는 모르겠지만…”

        ​

        “네, 저는 모르죠. 하지만 적어도 밀우드씨가 죽어가는 사람을 못 본 척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건 알아요.”

        ​

        “…”

        ​

        “제가 살아있는 게 그 증거잖아요?”

        ​

        “애쉬…”

        ​

        “네.”

        ​

        “… 고마워,”

        ​

        ​

        ​

        밀우드 씨의 목소리에 물기가 서려 있었다.

        ​

        아쉽게도 그녀의 정체에 대한 것은 이 이상 알아낼 수 없었다.

        ​

        하지만 나는 구태여 묻지 않았다.

        ​

        그녀가 무서웠기 때문이 아니라, 나를 살려준 은인을 불쾌하게 만드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었다.

        ​

        게다가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무래도 마물은 아닌 것 같아, 어느 정도 마음을 놓은 것도 있었다.

        ​

        ​

        ​

        “솔직히 밀우드 씨가 마족이 아닐까 의심했어요. 너무 얼굴을 숨기셔서.”

        ​

        “풋, 마족이라니… 그럼 이 오두막엔 마기가 가득했겠지. 바보야.”

        ​

        “아… 그렇겠네요.”

        ​

        “후후…”

        ​

        ​

        ​

        얕게 웃는 그녀의 목소리엔 여전히 슬픔이 배어있었다.

        ​

        모든 동료를 다 잃고 어딘가에 잠적한 모험가.

        ​

        솔직히 그렇게 드문 이야기도 아니었다.

        ​

        이 세계에서 모험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의 삶은 기본적으로 목숨이 가볍게 사라지는 위험들이 가득했다.

        ​

        함정이 가득한 지하 미로, 사람을 손쉽게 찢는 발톱을 가진 마물, 영악한 꾀로 사람들을 속이고 죽이는 마물들.

        ​

        인간들의 도시와 마을을 한발짝만 벗어나면 온갖 두려운 것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니까.

        ​

        하물며 그 명망높은 용사파티조차 마왕을 토벌하는 모험의 끝에 죽었다.

        ​

        내 누이와 함께 말이다.

        ​

        ​

        ​

        “제 누나도 모험을 했었어요.”

        ​

        “아, 그러니? 그럼 너를 기다리는 게…”

        ​

        “…”

        ​

        “… 가족이 없다고 했지… 그럼… 그렇구나… 미안.”

        ​

        “… 아니에요.”

        ​

        ​

        ​

        만약 용사만 죽고 내 누나가 살아남았다면 그녀도 분명 밀우드 씨처럼 망가졌을지도 모른다.

        ​

        아카데미에서의 4년, 그리고 2년간의 모험.

        ​

        그 6년간 만나지 못했던 가족들 보다, 6년을 함께한 동료가 더 가까운 가족이라 할 수도 있을 테니까.

        ​

        하지만 불행하게도, 혹은 다행히도 내 누이는 죽음을 맞이했다.

        ​

        그 외의 동료들도, 그리고 용사 본인 역시 마왕과 동귀어진했다.

        ​

        ​

        ​

        “제 누나는 멋진 모험을 했고, 그 결과를 남겼다고 생각해요.”

        ​

        “…”

        ​

        “정말, 정말로 아주 슬펐지만, 누나의 죽음은 헛된 것이 아니었어요.”

        ​

        “…그래.”

        ​

        “… 밀우드 씨의 동료들도 그럴 거예요.”

        ​

        “…”

        ​

        “그러니까 너무 죄책감 갖지,”

        ​

        “그만,”

        ​

        ​

        ​

        밀우드 씨는 내 말을 끊었다.

        ​

        다행히 아직은 그 위압적인 분위기를 뿜어내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녀가 불편해한다는 것을 깨닫자마자 입을 꾹 다물었다.

        ​

        그녀는 내 쪽을 빤히 바라보더니 이윽고 얼굴을 돌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

        그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

        ​

        ​

        “… 라일라의 비석은 어떻게 할 생각이니?”

        ​

        ​

        ​

        노골적인 화제전환.

        ​

        나는 그녀의 장단에 맞춰주었다.

        ​

        ​

        ​

        “돌을 쓰면 너무 오래 걸릴 테니까 나무를 사용할 생각이에요. 내용은 칼로 깎아서 새길 거고요,”

        ​

        “… 저기, 애쉬”

        ​

        ​

        ​

        그녀는 조심스럽게 내 이름을 불렀다.

        ​

        어딘가 망설임이 가득 실린 목소리였다.

        ​

        ​

        ​

        “있잖아… 아무래도 나무로는 너무 부실하지 않을까.”

        ​

        “음… 역시 돌만큼은 못하겠지만, 그래도 나무를 잘 고르고, 수액도 잘 발라서 말리면 뒤틀림 없는 묘표가 되겠죠. 게다가 제가 없어도 밀우드 씨가 분명 잘 관리해 주실 거라 믿어요.”

        ​

        “…”

        ​

        “믿어도 되죠?”

        ​

        “그래. 바보야,”

        ​

        “네…?”

        ​

        “…아무것도 아니야.”

        ​

        ​

        ​

        ​

        ​

        ​

        ​

        ​

        ​

        ​

        *

        어느새 시간은 여동생의 무덤을 찾아갔던 날로부터 3일이 더 지나갔다.

        ​

        비록 그녀의 부축을 받아야 했지만 그래도 차츰차츰 걸어 다닐 수가 있었다.

        ​

        무리해서 여동생의 무덤까지 겅중겅중 걸어가지 않았다면 어제쯤 이미 혼자서도 걸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조금 아쉬웠다.

        ​

        하지만 과거의 나에게 이 사실을 알려준다 해도 그날의 나는 결국 라일라의 무덤으로 향했을 것이다.

        ​

        내 다리와 여동생의 목숨을 교환할 수 있다면 나는 웃으며 바꿨을 테니까 말이다.

        ​

        ​

        나를 부축해주려 다가온 밀우드 씨는 로브 위에 커다란 이불까지 뒤집어쓴 모습으로 나타났다.

        ​

        혹시 내가 넘어지면서 얼굴을 가린 천을 당기기라도 할까 봐 그런 모양이었다.

        ​

        저 꼴로 앞이 보이기는 하는 걸까.

        ​

        접촉 하는 도중 무슨 사고가 일어날지 모르니 조심하는 게 이해는 됐지만 그래도 며칠간 지내며 꽤 친숙해졌다 생각했는데 이렇게까지 경계를 받으니 조금 섭섭하기도 했다.

        ​

        하지만, 얼굴을 가리는 원인이 개인적인 트라우마 같은 것 때문이라면 그건 내가 재촉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

        오히려 곧 떠날 사람인 내가 왈가왈부하는 게 더 무례한 행동이겠지.

        ​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밀우드 씨가 건넨 손을 잡고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났다.

        ​

        ​

        ​

        “다리에 통증은 있어?”

        ​

        ​

        ​

        그녀는 내 팔을 자기 어깨에 두르며 물어보았다.

        ​

        나는 천천히 그녀가 당기는 대로 따라 걸으며 말했다.

        ​

        ​

        ​

        “아니요, 어제보다 훨씬 좋아요.”

        ​

        “다행이네, 그럼 천천히 손을 풀어볼게, 혼자서 걸을 수 있는지 보자.”

        ​

        “네.”

        ​

        ​

        ​

        그녀는 부드럽게 내 팔을 놓아주었다.

        ​

        그녀에게 실린 무게중심이 고스란히 내 팔을 타고 두 다리로 전해졌다.

        ​

        통증은 없지만, 이질적인 묵직함이 다리에 전달되는 느낌이 어딘가 낯설었다.

        ​

        딱 잘라 말해, 두 다리가 무거웠다. 

        ​

        마치 물에 젖은 바지 여러 겹을 껴입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

        ​

        ​

        “읏,”

        ​

        ​

        ​

        나는 힘겹게 오른발을 들어 앞으로 내디뎠다.

        ​

        쿵,

        ​

        지면과 닿는 오른발이 마치 납덩이처럼, 바닥에 툭 떨어졌다.

        ​

        ​

        ​

        “조금 어색해 보이지만 그래도 큰 문제는 없네.”

        ​

        “으아, 다리가 무거워요.”

        ​

        “그건 사고 때문만이 아닐 거야. 너무 오랫동안 다리를 안 써서 근육이 줄어든 탓이겠지.”

        ​

        “그래서 매일 사슴을 사냥해 오신 거군요.”

        ​

        “근육을 보충하는 데엔 고기가 제일 좋으니까. 자, 이제 왼발도 한 발 앞으로.”

        ​

        “네,”

        ​

        ​

        ​

        나는 천천히 왼발을 들어 올려보았다.

        ​

        오른 다리는 왼 다리보다 더 안정적으로 지면을 딛으며 한발로 중심을 잡고 있었다.

        ​

        그 덕분인지 내 왼발은 조금 전보다 조금 더 앞으로 나갈 수 있었다.

        ​

        나는 나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

        ​

        ​

        “오,”

        ​

        “좋아, 순조롭네, 자 이제 조금 더 빠르게 걸어보자. 그렇게 한발 걷고 멈추고 반복했다간 평생이 걸려도 이 숲 밖으로 못 나갈 거야.”

        ​

        ​

        ​

        그녀의 말대로다. 

        ​

        나는 다시 한번 오른발을 앞으로 내디뎠다.

        ​

        묵직한 다리를 앞으로 차올리듯 힘차게 내밀고, 오른발이 떨어지자마자 곧장 왼발을 뻗었다.

        ​

        그리고 다시 오른 다리.

        ​

        나는 두 다리를 교차하며 오두막 안을 천천히 걸어 다녔다.

        ​

        타박, 타박

        ​

        아직 어딘가 조금 어색하지만 분명 보통 사람이 느린 보폭으로 걷는 발걸음의 박자가 귀에 들렸다.

        ​

        나는 그녀를 보며 소리를 질렀다.

        ​

        ​

        ​

        “와, 와아 밀우드 씨!”

        ​

        “괜찮네. 이제 다리에 힘만 붙으면 되겠어.”

        ​

        “…평생 다시 못 걸을 줄 알았는데,”

        ​

        ​

        ​

        나는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밀우드 씨를 바라보았다.

        ​

        그녀도 고개를 끄덕거리는지 머리에 뒤집어쓴 천이 위아래로 움직였다.

        ​

        ​

        ​

        “다 나아서 다행이야.”

        ​

        “밀우드 씨 덕분이에요!”

        ​

        “… 겸양을 떨려 했는데, 안 되네, 맞아 내 덕분이야.”

        ​

        “하하,”

        ​

        ​

        ​

        밀우드 씨는 짓궂은 농담하며 코웃음을 쳤다.

        ​

        나 역시 웃으며 그런 그녀를 향해 힘차게 앞으로 내디뎠다.

        ​

        그때였다.

        ​

        ​

        ​

        “억,”

        ​

        “애쉬?!”

        ​

        “우악!”

        ​

        ​

        ​

        순간적으로 왼발이 몸을 지탱하지 못해 나는 균형을 잃었다.

        ​

        밀우드 씨가 나를 잡아주려 다가왔지만, 나는 이미 그녀를 향해 넘어지고 있었다.

        ​

        ​

        ​

        “…안돼!”

        ​

        ​

        ​

        그 순간 밀우드 씨는 깜짝 놀랐는지 나를 힘껏 밀쳐냈다.

        ​

        그 움직임이 너무나 빨라서, 마치 나를 손으로 후려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

        ​

        ​

        “크악!”

        ​

        “아… 애쉬, 괜찮니?”

        ​

        ​

        ​

        보이는 것뿐 아니라, 느껴지는 것 역시 그랬다.

        ​

        단순하게 손바닥으로 밀쳐낸 건데도, 나는 그녀의 손이 닿는 순간, 마치 용수철이 튀어 나가는 것처럼 뒤로 밀려나 그대로 벽에 부딫혔다.

        ​

        살짝 날아간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

        ​

        ​

        “윽!”

        ​

        “미, 미안해!”

        ​

        ​

        ​

        그녀는 내게 사과하며 헐레벌떡 다가왔다.

        ​

        커다란 손바닥으로 등을 얻어맞은 것 같은 얼얼함이 느껴졌지만, 나는 곧바로 내 다리부터 확인했다.

        ​

        또 망가지면 여기서 보내는 날이 얼마나 늘어날지 모르는 일이다.

        ​

        ​

        ​

        “애쉬, 괜찮아?”

        ​

        “아, 아앗, 잠깐…”

        ​

        “설마…”

        ​

        ​

        ​

        그녀는 순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굳어버렸다.

        ​

        나는 천천히 다리 이곳저곳을 만져보고 발목을 까딱까딱 움직여보기도 했다.

        ​

        10초쯤 지났을까.

        ​

        밀우드 씨가 침을 꼴깍 넘기는 소리가 들려올 때쯤, 나는 힘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

        ​

        ​

        “…휴,”

        ​

        “애… 애쉬, 혹시… ?”

        ​

        “아뇨, 다행이에요, 밀우드 씨. 다리는 괜찮은 것 같아요.”

        ​

        ​

        ​

        나는 밀우드 씨를 올려다보며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

        그녀가 얼마나 놀랐을지는 표정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

        밀우드 씨는 떨리는 손을 내게 내밀었으나, 나는 고개를 저으며 그녀의 손을 거절헀다.

        ​

        그리고는 천천히, 혼자서 일어서기 시작했다.

        ​

        ​

        윽, 

        ​

        의외로 자리에서 일어나는 일은 다리로 무게를 많이 버텨야 하는 행동이었구나.

        ​

        그런 걸 깨달으며 나는 힘겹게, 그러나 스스로만의 힘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후… 이거 보세요, 저 괜찮아요. 정말.”

        ​

        ​

        ​

        나는 양 팔을 벌리며 최대한 멀쩡하다는 어필을 내보였다.

        ​

        밀우드 씨는 그런 내 모습을 빤히 보더니 손으로 자기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

        ​

        ​

        “…하, 미안해, 깜짝 놀라서,”

        ​

        “하하, 그럴 수도 있죠. 저도 놀라게 해드려서 죄송해요.”

        ​

        “… 정말 미안, 그 대신 내일은 돼지고기를 먹게 해줄게.”

        ​

        “오?”

        ​

        “멧돼지 무리의 흔적을 발견했거든. 내일은 기대해도 좋아.”

        ​

        ​

        ​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

        ​

        ​

        “내일이라…”

        ​

        “…기대되나 보네, 혹시 사슴고기가 맛이 없었니?”

        ​

        “아, 아뇨! 그런 게 아니고,”

        ​

        ​

        ​

        나는 완전히 지면을 딛고 일어서있는 내 두 다리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

        ​

        ​

        “슬슬 라일라의 묘표 만들기를 시작할 때가 된 것 같아서요.”

        ​

        ​

        ​

        그 말은 이제 곧 내가 떠날 수 있다는 뜻이었다.

        ​

        아무리 밀우드 씨가 좋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계속 얼굴을 가리는 것이나, 모르는 사람을 언제까지고 자신의 거처에서 재우는 등, 불편한 점도 많았을 것이다.

        ​

        나는 밀우드 씨가 기뻐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녀는 내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

        무언가 생각이라도 하는 듯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

        1분 정도 지났을까.

        ​

        그녀는 짧게 대답했다.

        ​

        ​

        ​

        “… 그렇네.”

        ​

        ​

        ​

        ​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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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Can’t Run Away from the Woman Who Saved Me.

I Can’t Run Away from the Woman Who Saved Me.

나를 살려준 그녀에게서 도망칠 수 없다.
Score 4.2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Having lost all my family, I fled. As I was running away, she saved me when I was on the brink of death due to an accident. The moment our eyes met, I knew I couldn’t leave 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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