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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

       한가지 다행인 점이 있다면, 이 세계의 지도는 내 머릿속에 있던 그 지도와 같았다는 것이다.

        

       물론 제도 지도 전체가 내 머릿속에 다 들어있지는 않았다. 제도의 지도라고 해봐야 실제 게임에서는 장식용이었을 뿐이고, 구현되어있는 곳은 이야기에서 중요한 부분뿐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중요한 부분’들은 당연히 제도에서도 중요한 지역이 대부분이었다. 바꿔말하자면 제도에서도 랜드마크가 될만한 곳이라는 뜻이다.

        

       제도 중심에는 거대한 성— 황궁이 있다. 제도 전체에서 우러러볼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수준은 아니지만, 그래도 제도 중심가라면 어디서나 보인다. 게임 내에서도 제도를 배경으로 한 지역에서는 거의 다 특정한 각도에서 그 성이 보였다.

        

       밀레니엄이라는 회사는 게임 그래픽으로 유명한 회사는 아니었고, 제도 전체를 오픈 월드로 구현할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기술력과 자본을 가진 회사는 아니었지만, 팬들을 위한 디테일에는 꽤 신경을 쓰는 회사라서, 해당 지역마다 황궁의 특정한 각도가 보이도록 디자인되어 있었다.

        

       실제로 게임 메뉴로 들어가면 볼 수 있는 지도의 제국 전도에서 각 구역이 차지하는 부분은 논리적으로 딱딱 맞아떨어지도록 만들었으니까. 실제로는 투명한 벽으로 막혀서 갈 수 없는 곳이더라도 적어도 눈에 보이는 부분은 ‘정말로 저곳을 통해 가면 그쪽으로 가는 길로 이어지겠구나’하고 생각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나는 그 지역들을 몇 번이고 돌아다녔다. 다회차를 해야만 볼 수 있는 인연 이벤트라던가, 아니면 제작진이 소소하게 숨겨둔 메모나 NPC를 찾아다니기 위해서였다. 게다가 나는 블로그에 시리즈의 공략과 게임 관련된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었으니 더 세세하게 볼 수밖에 없었다.

        

       빈민가가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다는 것만 제외하면 제도는 이런 시대라는 것을 감안하면 꽤 잘 관리되고 있었다. 큰길을 따라 걸으면 표지판을 보고 제대로 된 길을 찾을 수 있을 정도로.

        

       다만, 한가지 문제가 있었다면—

        

       “어이, 거기 너희들!”

        

       —제도는 길거리의 고아나 노숙자들에게는 딱히 친절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친절하지 못하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 사람들의 시선은 내가 살던 세계에서 지나가던 사람들이 노숙자를 보는 시선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연민의 눈으로 쳐다보기도 했고, 코를 쥐며 멀리 떨어지거나 인상을 쓰기도 했다.

        

       하지만 한 가지 다른 점이라면, 이 세계에서는 인권이라는 개념이 아직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제도는 외국인들도 많이 오는 곳이다. 그만큼 깔끔해 보이는 것이 중요했고, 따라서 거리에 보이는 ‘지저분한 것들’을 최대한 단속하려고 했다.

        

       그리고 그 ‘지저분한 것’이 바람에 날리는 쓰레기가 아니라 다리가 달려 걸어 다니는 것이라면, 그 담당은 경찰관이었다.

        

       “앗, 도망가지 마라! 거기 서!”

        

       그리고 나는 눈에 경찰이 보일 때마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미친 듯이 뛰었다.

        

       당연하다. 경찰한테 잡혀봐야 가는 곳은 고아원일 뿐이니까.

        

       몇 번 정도는 부모가 있다는 거짓말도 해봤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우리는 경찰에게 잡히면 그대로 목덜미를 질질 끌려서 경찰서로 향하고, 며칠 뒤에는 허름한 고아원으로 인계되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나는 시간을 돌렸다.

        

       남작가까지는 그렇게 멀지 않았지만, 거기까지 가는 것 자체가 문제였다.

        

       “누나, 나 졸려…….”

        

       우리는 한밤중에 거리로 빠져나왔다. 자기 집에 불이 옮겨붙는 것이 두려워 미친 듯이 뛰어다니던 시민들 사이로 걸어 나왔기에 모두 우리를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밤에 자지도 않고 몇 시간을 걸을 정도로 애들은 인내력이 좋지는 못했다.

        

       게다가 그건 다섯 살 짜리 육체를 가진 나도 마찬가지라서, 한 시간 정도만 걸어도 다리가 뻣뻣해지고 피곤함이 몰려왔다. 조금 전에 집을 불살라버린 것에 대한 정신적인 피로도 상당했다.

        

       안 그래도 보폭이 좁은데, 쉬는 시간도 자주 잡아야 했기 때문에 더 시간이 걸렸다.

        

       처음에는 그나마 얌전하던 애들도 쉬지 않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칭얼거리는 빈도가 심해졌고, 나도 지쳐갔다.

        

       “……좋아, 여기서 쉬자.”

        

       결국, 우리는 한 시간에 한두 번씩은 멈춰서 쉬었다. 보통은 누구 눈에 띄지 않을 수 있을 정도로 어두침침한 골목이었다.

        

       냄새나고 축축한 곳이었지만, 그래도 누구에게 들키지만 않는다면—

        

       “어이, 너희들. 여기에는 누구 허락을 받고 있는 거냐.”

        

       —그래, ‘들키지만’ 않는다면, 그래도 한 시간 정도는 쉴 수 있었다.

        

       깜빡 잠들었던 나의 다리를 발끝으로 툭툭 치는, 얼굴에 흉터가 길쭉하게 난 험상궂은 사내를 올려다보며, 나는 지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다시.”

        

       *

        

       그래도 아직 능력에 제한이 있지는 않은 것 같았다. 나는 얼마든지 시간을 돌려 가장 유리한 순간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걷다가 뒤를 돌아봤더니 애들 숫자가 부족했을 때.

        

       골목에서 쉬다가 깡패를 만났을 때.

        

       경찰한테 잡혔을 때.

        

       주민에게 신고당했을 때.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나는 시간을 돌린 뒤에 가장 이상적인 결과를 찾았다.

        

       아마 우리가 걸었던 실질적인 시간은 반나절 정도였으리라. 해가 떠서 거리로 시민들이 나오기 시작했을 때 쯤 남작가 앞에 도착했으니까.

        

       하지만 나에게는 적어도 몇 주는 지난 것처럼 느껴졌다.

        

       시간을 돌리면 몸의 피로도 사라진다. 잠을 자지 않아도 머리가 맑아진다. 다리의 힘도 돌아오고, 발바닥도 아프지 않게 된다.

        

       하지만 정신은 쉬지 못한다. 아무리 몸이 편해도 그냥 쓰러져 쉬고 싶어지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어진다. 한두 명 정도는 포기해도 되지 않을까? 경찰에게 잡히더라도 좀 정상적인 고아원으로 갈 수 있는 거 아닐까? 인상이 조금 험상궂은 사람이라도 사실은 좋은 사람인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다시 시간을 돌렸다.

        

       차라리 몸이라도 편해진 상태에서 다시 곰곰이 생각을 정리하면 조금 나아졌으니까.

        

       마치 엄청나게 어려운 액션 게임을 노 미스 클리어하겠답시고 게임을 다시 저장하는 것 같은 기분이다. 아니, 어떤 의미에서는 실시간으로 TAS를 시도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어느 쪽이건 더럽게 피곤한 일이었다.

        

       하지만……

        

       “……해냈다.”

        

       그래, 나는 해냈다.

        

       눈앞에 있는 저택 정문에 걸린 이름을 보며 나는 중얼거렸다.

        

       그레이스 남작가.

        

       이 세계관의 아제르나 제국에서 남작은 영지를 가지고 있기는 했지만, 그렇게 크지 않았다. 게다가 남작의 영지는 그 남작 자신의 영토라기보다는 자신의 위쪽에 존재하는 대귀족의 영지의 일부이기도 했다. 그리고 제국의 모든 땅은 기본적으로 황제의 것이며, 따라서 귀족의 영지 또한 명목상으로는 황제에게 받아 관리하는 땅이었다.

        

       만약 공작의 영지라면 그 땅은 황제의 땅이자 공작의 영지였고, 변경백이나 백작의 영지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작위는 상속되므로 개인이 여러 작위를 가지고 있어 훨씬 더 복잡해지는 경우도 있지만.

        

       그리고 그 아래에 남작이 있다. 만약 남작 지위를 황제가 직접 하사한 거라면 그 남작의 땅은 황제의 땅이자 남작의 영지, 공작이나 백작이 하사한 거라면 황제의 땅이자 공작, 혹은 백작의 영지이자 남작의 영토였다.

        

       따라서 중앙 권력 그 자체인 황제가 직접 임명한 남작이라면 경우에 따라 막대한 권력을 휘두를 수 있기도 했다. 물론 그렇다고 그들이 언제나 공작이나 백작과 완전히 맞먹는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레이스 집안의 경우는 그 ‘황제에게 직접 하사받은’ 남작 작위였다.

        

       당연히 귀족파-황제파의 대결에서는 철저한 황제파이기도 했고.

        

       이건 게임의 스토리가 진행됨에 따라서 조금씩 바뀌다가 후반에는 완전히 뒤집히긴 하지만, 본편 시작 한참 전인 지금은 굳이 생각할 필요 없는 내용이었다.

        

       참고로 이 그레이스 남작가의 영지는 이 울타리 너머의 땅이 전부다. 개인의 저택이라기에는 어마어마하게 크지만, 영지라고 생각한다면 또 엄청 작다. 황제의 땅, 그것도 제도 안의 일부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기는 하지만.

        

       “…….”

        

       그런데, 여기를 어떻게 들어간다?

        

       굳이 영지 앞을 지키는 병사는 없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아무리 따로 경비를 세우지 않는다고 해도, 명목상으로는 귀족가 영지인 곳에 누가 함부로 들어가게 둘 수는 없는 일이니까.

        

       그래도 방법 자체가 없는 건 아니었다.

        

       그레이스 남작 부부는 불쌍한 사람이라면 절대로 그냥은 못 지나치는, 작품 외적으로 플레이어들에게 호구라고 놀림당하던 존재들.

        

       그러니 남작 부부가 밖으로 나왔을 때 눈에 띄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그 뒤에는…… 자기네 고아원에서 돌봐주거나, 그게 아니더라도 신원이 확실한 자가 운영하는 고아원에 우리를 맡기게 될 테니까.

        

       문제는, 남작가는 제도 한가운데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서 있는다면 분명 지나가는 경찰에게 잡히겠지.

        

       “…….”

        

       또 능력을 쓰는 수밖에 없나.

        

       내가 한숨을 푹 쉬자 내 주변에서 나를 올려다보던 아이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이제는 정말로 거의 끝났으니까.

        

       *

        

       그래도 지금까지 거리 여기저기를 숨어서 여기까지 온 경험 자체는 기억하고 있어서, 숨어있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가장 중요한 건 경관의 시선에 들어가지 않는 것. 그리고 사람들에게 신고당하지 않는 것이다.

        

       굳이 골목 사이로 기어들어 가지 않아도 상관없다. 어떻게든 잡히지 않아야 할 상대에게 잡히지만 않으면 된다.

        

       “아, 나온다.”

        

       남작 부부가 나오는 것을 보고, 나는 중얼거렸다.

        

       나는 일행의 제일 뒤에 서 있었다. 아이들 하나라도 놓치면 안 되었기 때문에, 앞에서 인솔하는 것보다는 뒤에서 아이들을 몰고 다니는 쪽이 효율적이었으니까.

        

       “자, 가자. 저 사람들 앞까지 가면 되는 거야. 그러면 정말로 끝이니까.”

        

       “정말로? 정말로 그래도 돼?”

        

       아무리 봐도 엄청나게 잘 사는 부잣집 부부처럼 보이는 두 사람을 보고 클레어가 되물었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 부부의 얼굴은 기억에 있다. 비록 2D 기반의 일러스트와 그 일러스트를 기반으로 한 모델링이긴 했지만, 인상 자체는 내가 알고 있는 모습과 완벽하게 닮았다.

        

       현실에 존재할 수 없는 푸른 머리카락. 잘 정돈된 턱수염과 구레나룻. 게임에서처럼 중년이라고 하기보다는 청년의 끄트머리에 걸쳐있는 것 같은 인상. 그 옆에 서 있는 부인도 마찬가지로 푸르고 웨이브 진 머리카락에 무지 깨끗한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팔짱을 낀 채 밖으로 나온 그들이 걷는 것을 보고, 나는 얼른 아이들의 뒤를 따르며 말했다.

        

       “자, 자, 얼른 가자.”

        

       두 사람은 호위가 없다.

        

       사실 호위가 필요한 이들도 아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검을 휘둘러서 마차를 반으로 갈라버리는 실력자니까. 우리가 다가간다고 하더라도 깜짝 놀라거나 겁먹을 일은 없다.

        

       영지에 굳이 기사를 두지 않는 이유였다.

        

       나는 열심히 아이들을 채근했다. 처음에는 조금 불안해하던 아이들도 내가 그렇게 말하자 결국 그 부부 쪽으로 가기 시작했다. 여기까지 오면서 온갖 위험을 내 덕분에 헤쳐 나갔던 아이들이다. 반나절 동안 그럭저럭 신뢰가 쌓여있었다.

        

       꼬르륵. 아침을 굶어서 그런지 배에서 그런 소리가 났다. 아마 아이들도 마찬가지로 배가 고프겠지—

        

       —라고, 마음을 놓고 있던 때였다.

        

       순간 입이 콱 틀어막혔다. 순간 놀라서 소리도 내지 못했을 정도로.

        

       내 말을 들은 아이들은 여전히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어느새 내 다리가 공중으로 떠올라 있었으니까.

        

       누가 나를 뒤에서 끌어안고 있었다.

        

       뭐지? 뒷골목에서 변태가 튀어나왔나?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지금 이 몸의 외모는 꽤 예쁜 편이다. 소아성애자의 표적이 되었다고 해도 이상하지는 않았다.

        

       다시—

        

       “아, 아, 잠깐만. 진정해봐. 나쁜 짓은 안 할 테니까.”

        

       —시간을 돌리려다가, 그 목소리에 문득 움직임을 멈췄다.

        

       꽤 어린 목소리였다. 이제 막 변성기가 지나 목소리가 안정되어가고 있는 것 같은. 십 대 중반정도 될까?

        

       ……나는 이 목소리를 알고 있었다.

        

       내가 버둥거리는 다리를 멈추자, 입을 막고 있는 손에서 힘이 조금 빠져나갔다. 여전히 손을 완전히 내리지는 않았지만.

        

       “똑똑하네. 저 남작가는 분명 저 애들을 받아 줄 거야. 안 그래도 요즘 고아원 크기를 늘리겠다고 말하던 중이었거든.”

        

       저 멀리 아이들이 남작 부부 거의 근처까지 가고, 아이들이 다가가는 소리를 들은 부부가 뒤를 돌아보았다.

        

       “어이쿠, 여기 있으면 들키겠네.”

        

       내 시야가 휙 돌아갔다. 남자가 나를 번쩍 든 채로 몸을 돌린 것이다.

        

       그리고 빠르게 뛰어서 그 장소에서 멀어졌다.

        

       ……아.

        

       아무래도 나는 고아원은 못 갈 것 같다. 만약 이 남자가 처음부터 우리 뒤를 따르고 있었다면, 나는 아무리 시간을 돌려도 도망갈 수 없을 테니까.

        

       뭐…… 그래도.

        

       애들은 제대로 도착했으니까. 적어도 저 애들은 제대로 된 곳에서 제대로 보호받으며 자라날 거다.

        

       그리고 클레어도 마찬가지다. 그 끔찍한 과거를 겪을 필요가 없어졌으니까.

        

       그리고 나도, 아마 이 남자를 따라간다면 안전하게 지낼 수 있으리라. 적어도 길거리의 고아를 일부러 죽이려고 납치하는 미친 살인마는 아니었으니까.

        

       ……클레어가 어떻게 자라는지 보지 못하게 된 것은, 애석하긴 했지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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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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