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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

       한편.

       

       

       한스와 소피아는 아이작의 명령대로 고블린 대군을 단둘이서 상대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옆에 라스도 붙어있긴 했지만, 그렇게 큰 역할은 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라스의 몫까지 한스와 소피아가 모조리 다 작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라스는 자신의 한계를 실감했다. 고블린 정도아 어려운 상대는 아니지만.

       

       

       설마 둘에게 압도당해서 제대로 검 한 번을 휘두르지 못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과연, 이게 마스터가 말했던 망국의 기사들. 상상 이상의 힘이었다.

       

       

       고블린 대군은 그 이름에 걸맞게 최소 100마리 이상의 숫자를 자랑했지만. 지금은 기껏해야 10마리 정도 밖에 살아남지 못했다. 한스는 이상한 점을 눈치챘다.

       

       

       ‘도망을 가지 않는다고?’

       

       

       고블린은 오합지졸들에 지나지 않았다. 즉, 전세가 불리해지면 자기들이 알아서 도망치기에 바빴다. 그러나 전력의 9할을 넘게 잃었음에도, 도망치지 않는다?

       

       

       “한스! 놈들의 대장이 나타났어!”

       

       

       “과연, 믿는 구석이 있었군.”

       

       

       “보스? 고블린에게 대장이 있나요?”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지.”

       

       

       고블린은 최하급 마수. 당연히 변종은 존재하지 않는다. 평생을 남의 밑에서 소모품처럼 쓰이는 게 그들의 운명. 그리고 고블린 대군을 이끄는 것은 상위종 마수.

       

       

       이윽고, 그것이 모두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녹색 피부에 찐득거리는 점액이 묻어있으며, 사람의 4배는 되어보이는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고 있었다.

       

       

       “트롤에 고블린이라. 정석이군.”

       

       

       “전에도 많이 상대해봤잖아.”

       

       

       “트, 트롤이요? 중급 마수잖아요!!”

       

       

       설마 고블린을 토벌하러 찾아와서 트롤을 상대하게 될 줄 몰랐던 라스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라스와 달리 한스는 침착하게 검을 들면서 말했다.

       

       

       “오히려 트롤인 것을 다행으로 여겨라, 신입.”

       

       

       “네?”

       

       

       “내가 아는 어떤 파티는 리치가 튀어나와서 한 명 빼고 모두 전멸했다고 하더군.”

       

       

       “리, 리치까지……?!”

       

       

       “그래! 트롤이면 차라리 편한 축에 속한다고?”

       

       

       “이참에 실전 교육까지 겸하면 딱 좋겠군.”

       

       

       트롤은 결코 만만한 적이 아니었다. 어지간한 금속 무기는 튕겨내는 두꺼운 가죽에, 설령 상처를 입어도 금방 치유하는 점액까지. 괜히 중급 마수인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런 트롤의 앞에서 둘은 너무나 태연했다. 오히려 아예 트롤을 교본으로 삼아 교육할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뒤에서 날아온 참격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땅을 가르며 날아온 참격이 하나의 선이 되어서 트롤의 목을 정확히 꿰뚫었다. 일격에 급소를 당한 트롤은 재생 능력이 무색하게 바로 숨통이 끊어지고 말았다.

       

       

       “트, 트롤이 일격에 죽었어?”

       

       

       “다들 괜찮나?”

       

       

       당연히 참격의 주인은 바로 아이작이었다. 라스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트롤을 일격에 숨통을 끊을 수 있는 영웅은 라스가 생각하기에 그렇게 많지 않았다.

       

       

       “마스터! 뭐하는 짓이야!”

       

       

       “음?”

       

       

       “방금 그걸로 신입 교육을 하려고 했었다.”

       

       

       “미안하군.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근데 그런 업적을 눈앞에 두고, 오히려 왜 일격에 죽였냐면서 타박하고 있다니. 이것이 신생 길드의 전력이라고? 어지간한 중견 길드도 이 정도는 아닐 텐데?

       

       

       “마스터, 고블린들이 도망가는데. 어떻게 할까?”

       

       

       “남김없이 모두 죽여라. 그게 의뢰였다.”

       

       

       “기꺼이.”

       

       

       그제야 상황을 파악하고 고블린들이 도망치기 시작했지만. 그리 멀리 가지 못하고 전부 소피아에게 잡혀버렸다. 고블린 대군은 그렇게 모두 전멸하고 말았다.

       

       

       “아직 의뢰는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작은 끝까지 방심하지 않았다. 비록 마을에 쳐들어온 고블린들은 모두 소탕했지만. 소굴에 아직 고블린들이 남아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일단 마을로 돌아간다.”

       

       

       “옳은 결정이군.”

       

       

       “으아~ 이제 좀 쉴 수 있는 거야?”

       

       

       ‘……말도 안 되는 괴물들이잖아.’

       

       

       라스는 새삼스레 철의 방패의 전력을 실감했다. 우습게도 그는 기드온에서 5년이나 신입이었는데. 이는 그만큼 길드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대부분 신입에게 과도한 군기를 강요하거나. 혹은 이상한 규칙 때문에 버티지 못하거나. 기껏 어떻게 적응해도 마수 토벌에서 잘못되어 길드가 전멸하기도 했다.

       

       

       그 모든 것을 겪어왔던 라스가 보기에, 철의 방패는 이제 막 창설된 신생 길드였음에도. 오히려 미래가 환하게 보일 정도로 길드원들의 전력이 매우 막강했다.

       

       

       ‘처음에는 조금 걱정했는데. 다행이네.’

       

       

       반대로 소피아는 내심 안도하고 있었다. 아이작이 길드 마스터가 된 후에 사람이 변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확인했기 때문이다.

       

       

       ‘혹시나 주인공 마을이 쓸려버리면 안 되니까.’

       

       

       정작 아이작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 * *

       

       

       다음날.

       

       

       이른 새벽에 디그의 칭얼거림을 들으며 출발한 그들은 소피아의 지독한 추적 끝에 어렵지 않게 고블린들의 소굴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뒤는 불 보듯 뻔했다.

       

       

       얼마 남지 않은 고블린들은 철의 방패의 전력을 막을 도리가 없었고. 결국 1시간도 안 되어 소굴은 토벌되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전부 다 뛸 듯이 기뻐하였다.

       

       

       그만큼 고블린에게 지독히 시달린 탓이리라. 그제야 마을 밖에서 썩어가고 있던 시체를 겨우 수습할 수 있었다. 기뻐하던 마을에는 곧 장례식이 시작되었다.

       

       

       놀랍게도 아이작 일행 또한 그곳에 있었다. 가족을, 이웃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 그들에게 애도를 표하고자, 아이작을 필두로 모든 길드원들이 참가한 것이다.

       

       

       “시체 수습도 도와주시고, 장례식까지 참석해 주시다니. 이 보답을 뭘로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신경 쓰지 말도록. 이게 영웅의 일이니.”

       

       

       “영웅…… 모든 영웅들이 당신 같으면 좋을 텐데요…….”

       

       

       경험에서 우러나온 씁쓸한 미소가 촌장의 입가에 맴돌았다. 기드온의 영웅들은 철저한 실리주의였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황금과 길이 남길 자신의 신화였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자신에게 이득이 되지 않거나. 신화로 남길 것 같지 않다면. 영웅들은 주저 없이 타인을 돕지 않았다. 그것이 바로 영웅이라는 족속들이었다.

       

       

       당장 지금 의뢰도 아이작이 받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이 의뢰를 받으려고 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너무 명백했다. 돈이 안 되니까. 그래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물론 목숨을 걸고 일하는 그들을 욕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영웅이라 불리고 싶다면,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게 아닌가. 그게 촌장을 비롯한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이것밖에 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시골 마을에서 돈을 최대한 모아봤자 얼마나 모울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최대한 탈탈 돈을 모아서 마련한 보수를 받으며, 아이작은 입을 열었다.

       

       

       “괜찮겠나?”

       

       

       “비록 힘들겠지만. 그래도 저희는 이겨낼 것입니다.”

       

       

       “강인하군.”

       

       

       “과찬이십니다.”

       

       

       많은 이웃을, 가족을 잃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눈에 있는 것은 절망이 아닌 당장 살아갈 희망이었다. 비록 지금은 잿더미가 되어버렸지만. 아이작은 그들을 믿는다.

       

       

       언젠가 기필코 다시 일어날 것이라고.

       

       

       아쉽지만 이제 그만 떠날 때가 되었다. 모든 고블린은 소탕되었고, 의뢰도 완수했으니. 더 이상 이 마을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돌아가려고 했던 그때.

       

       

       “잠시만요!!”

       

       

       돌아가려는 그들을 배웅하기 위해서, 마을 사람들 전부가 이곳에 모였다. 그러나 그 누구도 갑자기 아이가 앞으로 튀어나올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검은색 머리카락에 반짝거리는 황금색 눈동자를 가진 특이한 아이였다. 갑자기 그들의 아이가 앞으로 튀어나오자, 사람들은 당황하면서 아이를 끌어내려고 했다.

       

       

       “잠깐, 이야기나 들어보지.”

       

       

       “네? 하지만…….”

       

       

       “저도 영웅이 되고 싶어요. 저를 데려가 주세요!!”

       

       

       오직 아이의 목소리만이 마을에 널리 울려퍼졌다. 사람들의 반응은 각양각색이었다. 아이를 보면서 욕하는 자들도 있었고, 한숨을 내뱉는 사람들 역시 존재했다.

       

       

       아마도 아이가 마을에서 묘하게 천대받는 고아라는 점이 한몫 했을 것이다. 그러나 단 한 명, 아이를 확실히 마주보고 있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아이작이었다.

       

       

       “영웅은 허울 좋은 일이 아니다. 수많은 절망과 눈물을 삼킨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이름이지.”

       

       

       “…….”

       

       

       “그럼에도, 영웅이 되고 싶으냐?”

       

       

       “네!”

       

       

       아이의 대답에 망설임 따위는 전혀 들어있지 않았다. 아이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갑작스럽게 진행되는 상황을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있던 소피아가 고함을 쳤다.

       

       

       “잠깐만, 진짜로 이 아이를 데려가겠다고?”

       

       

       “그건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니다.”

       

       

       한스와 소피아가 반대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냥 불쌍하다면서 전부 받아준다면. 그럼 대체 길드를 어떻게 운영하겠는가? 물론 아이에게도 사정은 있겠지.

       

       

       마을 사람들의 천덕꾸러기 취급하는 반응을 보면 알기 싫어도 알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순간의 동정으로 결정한다면, 나중에 반드시 후회하게 된다.

       

       

       한스와 소피아는 누구보다도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반대를 표했다. 아이작의 눈빛을 보기 전까지는. 처음으로 그의 눈동자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나를 믿어라. 한 순간의 동정으로 결정한 것이 아니니.”

       

       

       “그렇다면 대체 뭘 보고 데려가겠다는 건데?”

       

       

       “죽음을 각오하고 자신의 가족을 감싸는 그 모습.”

       

       

       아이작은 불만을 단 한 마디로 정리했다.

       

       

       “나는 거기서 영웅을 보았다.”

       

       

       사실, 그냥 주인공이라서 받아주는 건데.

       

       

       그걸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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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Guild Master in Exile

I Became the Guild Master in Exile

Status: Ongoing
I possessed the body of a guild master who ruined the guild. "We are all family." Since I was already possessed, I decided to stick to the concept hard. The guild members' obsession is no joke. Help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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