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5

       “이 김치라는 거 너무 짜고 맵지 않나?”

       “갈(喝)!!!”

       

       “너, 너 그런 캐릭터 아니지 않아?!”

       

       한민족의 얼을 지켜내는 데에 캐릭터가 대수랴. 기회를 잡은 나는 목청껏 시원하게 갈!! 을 내질렀다.

       마탑주가 중세 판타지 입맛을 가졌다고는 하지만, 한식의 깊은 맛을 이해하지 못 하더라도 요리에 담긴 영혼은 존중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 그러면 자색 마탑의 100년 역사도 좀 존중하지⋯⋯?”

       

       한민족의 반만년 역사와 비교하면 종잇장과 통나무만큼의 격차가 있는 바.

       나는 나보다 약한 녀석의 명령은 대체로 듣지 않는 타입이었다.

       

       “평소보다 두 배는 이상하네⋯⋯ 아, 이거 맛있다.”

       

       “아아, 모르는 건가── 그건 『된장국』이라는 것이다.”

       

       “⋯⋯여기 뭐 이상한 거 들어간 건 아니지?”

       

       내 연속된 캐릭터 붕괴에 음식에 환각제가 들어간 건 아닌지 걱정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환상으로 구현한 가상현실 음식에 환각제가 들어갈 수 있을 리가 없지 않나.

       

       음.

       

       지구로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기분이 썩 좋았다.

       이 모든게 마법으로 구현한 환상이라고 해도 말이다.

       

       텐션이 들떠 있는 것은 그래서다.

       

       갑작스러운 이세계 전생 이후로 어언 20년 가까이 되는 세월이 흘렀다.

       20년간 중세의 소똥 냄새만 맡다가 제대로 구현된 대한민국을 거닐게 된 것이다.

       

       감개무량하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다.

       

       감정이 들뜨는 이유는 하나 더 있었다. 한국인의 DNA에는 애기가 음식을 복스럽게 먹으면 만족감을 느끼는 기능이 있다.

       애기에 더해서 외국인이기까지 하면 국뽕 보정을 받아 만족감이 세 배가 된다.

       

       자색 마탑주의 나이가 나보다 윗줄이라지만 얼굴만 보면 학생 아닌가.

       20년간 말라붙었던 영혼에 국뽕의 단비가 내리자 형언할 수 없는 충족감이 가슴에 차올랐다.

       

       

       “이것도 오묘하게 맛있네⋯⋯.”

       

       자색 마탑주는 등갈비를 포크와 나이프로 썰어먹으며 입을 오물거렸다.

       꼼꼼하게 맛을 보는 모습을 보니 과연 귀족이었구나 싶었다.

       

       귀족이란 대체로 미식가 아니겠는가.

       

       등갈비를 썰어먹는 언밸런스한 모습에서도 귀족적인 엘레강트함이 느껴졌다.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나이프에 힘을 주는 모습에는 부드러움이 배어 있다.

       

       연극 무대에서 배우의 열연을 보면 감탄이 나오는 것처럼, 귀족의 예법이라는 것에는 보는 사람을 홀리는 기품이라는 게 있다. 먹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래서 주변의 손님들(NPC)을 조종해 칭찬해봤다.

       

       

       “우오오옷, 저 외국인⋯⋯ 엄청 고급스럽게 먹고 있어!”

       

       “이게 바로 기품이라는 것인가, 크윽! 서민인 우리들은 따라갈 수 없는 영역⋯⋯!!”

       

       “햄스터 같아서 귀엽다. 혹시 연예인- 그러니까, 연예 생업에 종사하는 자로 국민들에게 많은 인기를 얻고 때때로 동경의 대상이 되는 존재 아니야?”

       

       주변에서 수근수근 찬사가 쏟아지자 마탑주의 귀가 적절한 온도로 예열되었다.

       세상에는 칭찬을 받으면 춤추는 타입이 있고 삐걱거리는 타입이 있는데, 마탑주는 후자였다. 

       

       괜히 신경쓰이는지 좀 더 귀족스러우려고 오버 액션을 하는데, 1분 전의 누가 봐도 귀족인 금발 외국인은 어디로 가고, 나이프 들고 뚝딱대는 소녀만 남아 있었다.

       

       “우오오옷, 저 외국인⋯⋯ 엄청 뚝딱대고 있어!”

       

       “관절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크윽! 서민인 우리들은 따라갈 수 없는 영역⋯⋯!!”

       

       “햄스터 같아서 귀엽다. 혹시 햄스터- 설치목 비단털쥐과 비단털쥐아과에 속한 포유류 아니야?”

       

       

       

       마탑주가 포크 쥔 손으로 테이블을 콩 찍었다.

       

       “⋯⋯하, 하지 마! 네가 한 거지?”

       

       “아닌데요.”

       

       “일부러가 아니면, 옆에서 식사하던 사람이 갑자기 연예인이라는 처음 들어보는 단어에 대해서 시시콜콜하게 설명할리가 없잖아!”

       

       칭찬 들을 때에는 가만히 있다가, 슬쩍 꼽을 주니까 이제서야 태클을 거는 부분이 마탑주다운 점이었다. 자색 마탑주 유나는 아직도 칭찬이 고픈 나이다.

       

       TRPG의 마스터란 자고로 자신이 하고 싶은 것과 플레이어의 요구 사이에서 적절한 밸런스를 잡아야 한다. 원래 내 계획은 마탑주에게 대한민국의 랜드마크들을 구경시켜주는 것이었는데.

       

       칭찬이 고프다면 앞으로의 전개에 칭찬 비율을 올리는 편이 좋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김치 한 점 먹고 물을 꼴깍꼴깍 마시던 중인 마탑주에게 물어봤다.

       (먹다 보니까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원하신다면 다음 장면은 ‘우연히 이세계에 떨어진 내게 부여된 페로몬 능력으로 잘생긴 훈남들에게 이유 없이 고백받는다?!’ 로 할까요?”

       

       마탑주는 코로 물을 뿜었다.

       마탑주의 명예를 위해서 더 이상의 자세한 묘사는 하지 않겠다.

       

       “푸흨큭, 으아아악⋯⋯!”

       

       김치같은 고춧가루 들어간 식품을 복용하던 중에 걸린 사레는 코 점막에 심대한 피해를 준다.

       마탑주는 코가 매웠는지 콧잔등을 쥐고 끄아앙 에 가까운 비명을 질렀다.

       

       사전 설명 없이 내뱉은 말이라 놀랐나 싶어서 설명을 덧붙였다.

       

       “원래는 이번 체험의 테마를⋯⋯ 낮선 세계에 떨어진 유나의 설렘과 불안으로 잡았는데요. 완전히 별개의 낮선 문명을 돌아보면서 자신의 세계와 많은 부분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인간 본연의 가치를 다시금 되새기면서 본래 세계로 귀환하는 거죠.”

       

       “콜록, 콜록⋯⋯.”

       

       “그런데 그냥 잘생긴 남자들이랑 일방적인 우위 관계에서 연애하는 게 만족도가 높으실 것 같아서.”

       

       “나, 나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런 건 나중에 해도 되니까, 일단은⋯⋯ 하고 싶은 걸 해. 나한테 보여주고 싶은 게 있는 거잖아?”

       

       이 사람, ‘훈남들에게 이유 없이 고백 어쩌구’ 부분은 싫다고 부정 안 한 데다가, 그런 건 나중에 해 달라고 했다.

       세련된 에프터 신청이 아닌가. 아주 기꺼운 일이었다.

       

       이 세계에는 미진한 부분이 많다. 많은 테스트가 필요할 테고, 마탑주가 어울려준다면 더 할 나위 없었다.

       실용성을 제외하더라도, 마탑주와 함께 노는 건 재미있는 일이었다.

       

       나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보여주고 싶은 건 이미 보여드리고 있어요. 불야성, 온갖 조미료들로 가득한 식탁, 매연과 함께하는 하루요. 그 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나는 다만, 같은 감상을 공유할 수 있는 친구가 필요했을 따름이다.

       

       게임도 그렇지 않던가.

       게임을 추천할 때, 친구가 어떻게 즐기느냐는 중요한 포인트가 아니다.

       로망 넘치는 플레이를 하건, 극한의 효율충 플레이를 하건 상관 없다.

       

       중요한 건 같은 게임을 한다는 사실 자체니까.

       나는 오히려 마탑주가 좀 더 재미를 챙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반대로 궁금한 거 없어요? 이 세계에서 더 보고 싶은 거라든가.”

       

       “⋯⋯의류점을 한 번 가 보고 싶은데.”

       

       “의외네요. 평소에 마탑 후드만 쓰고 다니시잖아요. 그래서 같은 옷이 과연 몇 벌이나 될까 선배들이랑 내기 하고 그랬는데.”

       

       

       참고로 나는 다섯 벌에 걸었다. 월화수목금 입고 주말에 한꺼번에 세탁할 것 같은 인상이라서.

       이 말이 자신의 여성성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졌는지, 마탑주는 분개했다.

       

       “다른 옷도 평범하게 있거든?!”

       

       “그러면 왜 안 입고 다니셨어요?”

       

       “부끄러우니까⋯⋯!”

       

       부끄러울 것도 많다 싶었다. 

       

       “좋아요, 같이 가 보죠.”

       

       ===============================================================

       

       “저기⋯⋯ 너희 세상은 이, 이렇게 문란한 것들도 입고 다녀⋯⋯?”

       

       “음⋯⋯.”

       

       환상 마법으로 구현한 대한민국의 리소스는 내 머릿속으로부터 나온다.

       말인즉, 내가 모르거나 본 적 없는 것들은 구현할 수 없다.

       

       전 여자친구의 세 시간이 넘어가는 지옥의 쇼핑 대기 수련법으로 안목을 단련했으므로 기본적인 것은 안다. 무난한 여성복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개념은 잡혀 있다.

       

       하지만 커다란 백화점을 옷으로 한가득 채울 정도로 빠삭하지는 않았다. 그러니 나는 선택해야만 했다. 

       

       같은 옷을 복붙하더라도 공간을 채우느냐. 

       아니면 빈 공간을⋯⋯ ‘다른 지식’으로 채우느냐.

       

       나는 후자를 골랐다. 나중에 가서 사용하지 않게 되더라도, 언제나 없는 것 보다는 있는 게 나았다.

       

       나름 냉철한 계산도 있었다. 백화점이라는 공간은 여자력이 낮은 대상에게 어지럼증과 혼란을 부여하는 법이다. 심신이 어지러워진 대상은 ‘옷 그만 보고 이제 다른 거 보고 가자’며 백화점에서 탈출하게 된다.

       

       평소에 자기가 신던 양말을 아무렇게나 휙휙 던져 두는 마탑주의 여자력으로 계산해 볼 때, 매점 두 개 선에서 제압당하리라 생각했다. 

       

       ‘다, 다른 세계의 옷은 이렇구나, 음⋯⋯.’

       

       하고 치킨이나 마저 먹으러 가자고 할 줄 알았는데.

       

       마탑주는 무려 여섯 개의 매장을 돌파했고, 그 지점까지가 내가 기억하는 ‘무난한 여성복’의 전부였다. 일곱 번째 매장부터는 ‘무난하지 않은 여성복’으로 채워뒀다.

       

       남자의 마음을 울리는 의복들.

       역바니, 반창고, 슬링샷, 비키니, 깃털뭉치 같은 것들 말이다.

       

       “대중적인 옷은 아니고요. 침대에서⋯⋯.”

       

       “잠옷? 이라도⋯⋯ 입으면 불편해 보이는 게 몇 개 있는데?”

       

       “침대에서 2인 1조로 움직일 때⋯⋯.”

       

       “⋯⋯⋯⋯.”

       

       마탑주는 들고 있던 산타 코스튬을 도로 행거에 걸어두었다.

       속옷에 어째서 칼집이 나 있는지, 그 의도를 드디어 이해한 듯 싶었다.

       

       “가게 앞에서 기다릴게요.”

       

       나는 삐끗하면 어떤 행동이라도 성희롱이 될 수 있는 이 상황에서 긴급 탈출했다.

       내가 나오고, 3분쯤 있다가 마탑주도 가게 밖으로 나왔다.

       

       ‘내’가 밖으로 나왔다지만, 이 세계는 내가 구현한 환상마법이다. 이 세계가 통째로 내 손바닥 안이라는 뜻이고, 이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면 들여보듯이 알 수 있다는 의미이다.

       

       마탑주가 장난 아니게 야한 속옷을 집어들고 흥미진진하게 구경하고 있었던 건 못 본 걸로 해 줬다.

       

       ===============================================================

       

       그 뒤로도 이것저것 해 봤다. 한민족의 얼이 담긴 민속놀이 스타크래프트를 시켜보기도 하고.

       (가문에서 쫒겨나기 전에 군략을 배웠다는데, 그래서인지 실력이 예사롭지 않았다.)

       

       해물파전과 막걸리도 한 잔 때렸다.

       (아직 취기는 구현이 안 되어서 취할 수는 없었다.)

       

       그러다 마법도 없는 세상에서 어떻게 이렇게 높은 건물을 지을 수 있느냐는 이야기가 나와서, 가볍게나마 과학 특강을 진행했는데.

       

       

       “그러니까, 물질이라는 건 아주 작은 입자로 조립된 거고⋯⋯ 이 지구라는 세상은 터무니없이 거대한 우주라는 공허의 티끌만한 한 점이라는 거야?”

       

       “네.”

       

       마탑주는 현대 과학에 직격당해 그로기 상태에 빠졌다.

       

    다음화 보기


           


Otherworld TRPG Game Master

Otherworld TRPG Game Master

Another World TRPG Game Master, 이세계 TRPG 게임마스터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wizard of the Illusion Magic School and decided to create a virtual reality with illusion magic to play a tabletop role-playing game (TRPG). It was great to create a virtual reality, but I was in trouble because there were no suitable players. During that time, I received an offer to be the professor from the Royal Academy. The offer was to use illusion magic to fill the students’ lack of practical experience safely. And so, I became a professor at the academy. “Send me back, send me back to that world right now-!” “Outer god, someday an outer god will be our doom, we’ll all die!!” “I am not the bastard of the Redburn Ducal Family. I am the foremost disciple of the Great Namgung Clan, Namgung Qinghui!” But it seems there is a bit of a misunderstanding. This isn’t a spell for dimensional travel, kids. It’s fiction…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