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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

    루크를 향해 다가오는 사람은 하얀 로브에 안경을 쓴 젊은 남자다.

    검은 머리가 단정하게 정리되어 있고, 키도 길쭉하니 키가 작은 루크는 고개를 한참이나 꺾어야 그를 올려다볼 수 있었다.

    또, 키는 큰 반면 체형이 가늘어서 유약한 이미지였는데, 목소리는 서글서글한 게 꽤나 인상이 좋은 사람이었다.

    “반갑다, 네가 그 루크? 생각보다 더 어린데, 몇 살이니?”

    몇 살인가, 그것에 대한 루크의 대답은 곤란한 것이었다.

    사실 정확한 실제 나이 같은 건 기억도 안 나고, 이 몸도 대체 몇 살인지 당최 알 수가 없었으니까.

    그래서, 정확한 대답을 회피했다.

    “아이의 나이는 묻는 게 아니라네, 마법사여.”

    루크의 둘러대는 말에 그는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웃음을 터트리며 입을 열었다.

    “이, 이런! 푸하하! 이거, 내가 실례를 했는걸! 미안, 미안. 상당히 민감한 질문이었겠네.”

    뭐.

    사실은 그냥 대답하기 곤란하여 무어라고 둘러댔을 뿐, 딱히 민감한 질문도 아니었고 화가 난 것도 아니었기에 루크는 금세 고개를 끄덕이며 사과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대를 용서하겠노라.”

    그에 루크는 평소의 버릇과 말투대로 자연스럽게 귀족적인 제스쳐로 그의 사과를 받아들였지만, 그 모습을 바라보는 젊은 마법사에겐 그저 짧달막한 꼬맹이가 어른의 흉내를 내는 것처럼 보였기에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애가 어려보이는데, 상당히 똘똘하네. 말하는 것도 거침이 없고. 가정 교육을 잘 받은 건가?’

    “그나저나, 그대는 뭐라고 불러야 하는가?”

    “아차, 내 소개가 늦었네, 나는 이 세피로-02 마나발전소의 담당마법사, 제라드 콜슨이야.”

    제라드 콜슨이라 자기를 소개한 남자가, 루크의 귀족적인 제스쳐를 흉내내며 살짝 고개를 숙였다.

    루크는 예법이 엉망이라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이게 5000년 뒤의 예법일지도 모르는 일.

    그래서 별말은 하지 않기로 했다.

    “만나서 반갑네, 제라드 콜슨. 나는 루크 이루시라고 부르면 된다네.”

    이미 자신의 이름은 아까 그 경비병이 말해주었는지 알고 있는 듯했지만, 이름을 교환하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행동이므로 루크는 다시 제 이름을 소개했다.

    “좋아, 루크 이루시. 마법사가 되기 위해서 우리 마력발전소에 견학을 왔다고 했지? 어느 부분이 제일 가보고 싶었던 거야?”

    “여기서 가장 마나가 고밀도로 흐르는 곳을 가보고 싶구나.”

    “으음, 고압마나구역은 너 같은 꼬마한테는 위험한데…….”

    “나는 그대가 보는 것 같이 꼬마가 아니다. 그러니 어떻게 안 되겠는가……?”

    “그, 그렇게 바라봐도 안 돼. 그런 고압마나지역은 위험하니까 관계자 외엔 출입이 안 되지만, 그래도 다른 시설은 다 보여줄 수 있어.”

    루크는 아쉬웠지만, 납득하기로 했다.

    마나밀도가 가장 높은 곳이 아니어도 마나를 축적하는 데엔  집보다는 훨씬 좋았으니까.

    아마, 시설을 쭈욱 돌아보며 마나를 쌓는다면, 오늘 안에 1서클을 새길 수 있을지도 몰랐다.

    “흐음……. 그렇다면, 그대의 제안을 따르겠네, 안내해주겠는가?”

    “그래. 그럼 가장 먼저, 마나 정제시설을 보여주도록 할까?”

    앞서가기 시작한 제라드를 부지런히 발을 놀려 따라가는 루크는, 금방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는 걸 느꼈다.

    결국, 따라가다 못한 루크는 벽을 짚으며 멈춰서 숨을 고르며 제라드에게 말했다.

    “헥, 헥……. 천천히 좀, 가거라……. 나는 그대의 보폭에 맞출 수가 없다.”

    “아, 아차. 미안, 매일 바쁘다 보니, 빠른걸음이 몸에 배어버려서. 조절하려는데 쉽지 않네…….”

    제라드는 미안하다는 듯이 뒷머리를 긁으며 루크의 앞에 앉았다.

    “그런데, 복도가 참 넓구나. 이 시설은 얼마나 큰 건가?”

    “엄청 넓지, 그냥 돌아다니기만 해도 몇 시간은 훌쩍 지나가 버릴 만큼. 음……. 그래, 크기는 비교하면 딱 놀이동산 정도?”

    그건 제라드가 나름대로 아이가 이해하기 쉽게 비유를 한 말이었지만, 루크는 놀이동산을 몰라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놀이동산? 그건 뭔가?”

    “뭐야, 놀이동산을 모르니? 부모님이 한번도 안 데려다준 거야?”

    제라드는 놀이동산을 가본 적 없다는 루크의 말에, 살짝 의아함이 들었다.

    요즘 세상에, 놀이동산을 모르는 애가 있나?

    그리고 제라드는 곧 이어지는 루크의 담담한 말에 실수했다는 생각이 들고 말았다.

    “흐음, 그 말은, 놀이동산이란 보통은 부모가 데려가는 장소인 건가? 그렇다면 아쉽지만 나는 갈 수 없겠구나. 나는 부모가 없으니까.”

    “……그, 그랬어? 으음…….”

    “무얼 그렇게 보는가……? 아, 머리 헝클어지니 그만두거라.”

    “미안하다. 내가 실수를 했네.”

    ‘그럼 여기에 혼자 온 것도…….’

    부모도 없는 작은 여자아이가 마법사가 되고 싶다며 무작정 마력발전소에 도달한 것이란 말인가?

    그것은 상당히 놀라운 일이었다.

    이토록 작은 아이가 그 정도로 강한 열정을 지니고 있다니.

    미래의 마법사를 바라보는 제라드의 가슴은 굉장한 감정으로 들이찼다.

    연민? 걱정? 감동? 그것을 대체 무엇이라 정의할 수 있을까.

    “그나저나, 넓이에 대한 비유가 잘 가늠이 안 되는구나. 밤이 되기 전에는 돌아가야 하는 곳이 있다. 그 안에 전부 돌아볼 수 있겠는가?”

    제라드는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오늘 안에 모든 시설을 돌아본다라, 최단루트로 맞춘다고해도 시설 하나를 돌아보는데 반드시 10분 이상은 든다.

    마력발전소에는 주요시설만 해도 마력정제시설, 마력가공, 마나배열, 인챈트, 마법설계시설 등이 있었고, 자잘한 곳까지 모두 돌아본다고 하면 시간이 꽤 촉박하다.

    그리고 자신도 연구실에서 금방 빠져나온 거라, 오래 자리를 비울 수도 없고 말이다.

    “아무래도, 시설 몇 개는 건너뛰는 편이 좋겠어. 주요시설만…….”

    “그건 안 된다! 꼭 오늘 전부 돌아봐야만……!”

    루크는 저도 모르게 소릴 빼액 질렀다가, 합 하고 입을 다물었다.

    아무리 서클이 급하다지만 자신이 오늘 하루만 살아가는 사람도 아니고, 굳이 모든 장소를 돌아보지 않고, 발 닿는 곳만 적당히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큰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게 마력을 흡수한다면 당초 한 달로 예상한 서클의 제작을 확실히 앞당길 수 있으니.

    따라서 분명히 억지를 부릴 이유도, 필요도 없다.

    그건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니까.

    호의로 자신을 도와주러 온 사람을 곤란하게 하는 건 이치상으로 그릇된 일이다.

    향후 그와의 긍정적인 관계를 위해서라도, 이런 억지는 부리지 않는 것이 더 나은 선택지였다.

    “아니다, 꼭 오늘 전부 돌아볼 필요는 없지. 오늘 이렇게 견학을 시켜주는 것으로도 충분히 도움이 된다. 언성을 높여 미안하구나.”

    요즘 들어 자꾸만 체통을 잊고 언성이 높아진다는 생각을 하며 쑥스럽다는 듯이 버릇처럼 턱을 쓸었다.

    원래라면 길다란 수염이 있어야 할 자리였지만, 이제 말랑한 피부의 감촉만이 느껴지니 씁쓸한 느낌도 든다.

    허나 제라드는 그녀의 씁쓸한 표정을 보고, ‘체념’이라는 반응을 읽어낸다.

    ‘부모가 없는데도 이토록이나 열정을 가지고 있다니……. 뭐라도 해주고 싶기는 한데…….’

    제라드는 그녀와 같은 아이를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일까, 더욱 기특해보였다.

    요즘 세상의 철없는 아이들과는 그 뿌리부터가 다르다.

    부모가 없는데도 저토록이나 가정교육을 잘 받은 아이라는 건 그만큼이나 희귀하고, 또 기특한 것이니까.

    그는 자신의 조카들을 떠올렸다.

    천방지축에,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철부지들.

    태생이 마법사인 그에겐 성향상 절대 맞지 않는 것들인 반면, 루크는 어쩐지 동질감마저 느껴질 정도로 마음에 든다.

    분명 훌륭한 마법사가 되겠지.

    미래엔 8클래스까지 허용되는 마법사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제라드는 미래의 대마법사를 위해, 제 한몸을 희생하기로 했다.

    “좋아, 그럼 내가 업어줄게. 그럼 금방 돌아볼 수 있겠지?”

    “그……. 괜찮겠는가? 꽤 무거울 텐데…….”

    루크가 아무리 지금은 꼬마아이라지만, 제라드의 체형은 10kg짜리 곡식 자루도 제대로 나를 수 없을 것 같이 생긴 것이다.

    루크는 걱정을 금할 길이 없었다.

    “괜찮아, 이 아저씨는 마법사잖아? 근력강화마법을 사용하면 돼.”

    “정말인가? 내가 마법을 볼 수 있는 겐가?”

    뜻밖의 횡재에 루크는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마법이라니? 눈앞에서 ‘클래스 마법’을 볼 수 있다는 말인가?

    루크의 흥분으로 상기된 목소리에, 제라드는 씨익 웃어보이며 말했다.

    “3클래스 보조계열 마법이라면, 마법사나 의사는 따로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되거든.”

    “그것 참 대단하구나!”

    박수까지 치면서 기뻐하는 루크의 모습을 흐뭇하게 내려다보던 제라드는, 품에서 가느다란 지팡이를 꺼내 눈을 감고 술식을 읊었다.

    “라베트, 아하눔, 지레그트, 할롄.”

    루크는 제라드의 입과 지팡이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의 마력시에 드러나는 것은, 충격적이었다.

    제라드가 내뱉는 단어 하나하나에 마나가 깃든다.

    마나는 형상이되어 배열되고 마법을 이룬다.

    ‘서클보다 의지력은 약하나, 언령이 강하다. 축적시킨 마나가 적더라도 말 그 자체만으로 마법을 구성하다니, 확실히 새로운 방식이구나. 신체에 대한 제약을 최소화하니, 재능에 의한 장벽도 낮다. 그야말로, 도구를 갖고 말을 할 수만 있다면 누구라도 마법을 쓸 수가 있어.’

    그것을 가능케 하는 건, 저 ‘지팡이’.

    물론 5000년 전의 서클이 유행할 때도 지팡이는 쓰였다.

    다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보조하는 역할.

    결국 마법의 주체는 사람의 의지였고, 따라서 지팡이가 없더라도 마법 자체는 가능했다.

    허나, 저 방식은 달랐다.

    마나의 관리를 전적으로 지팡이에 의지한다.

    그로써 몸 안에 서클이 전혀 없더라도, 지팡이 자체가 하나의 서클로서 작용한다.

    휴대폰을 보았을 때도 놀랐지만, 저 지팡이는 가히 신기라고 칭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를테면, 심장을 몸 밖으로 빼낸 것과 같다.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거늘, 눈앞에서 버젓이 일어나는 현상에 불가능을 외쳐봐야 소용없는 일이다.

    현상을 목도했으니, 납득과 해석만이 남는다.

    ‘그렇군, 마법에 제한을 두는 방식은 쉽사리 이해할 수 없는 개념이었거늘……. 저 지팡이의 존재가 ‘클래스’라는 개념을 가능하게 하는 것인가.’

    지팡이가 하나의 서클이다.

    그러니 몸 안에 서클을 새길 필요가 없다.

    사람은 그저 마법을 이용하면 된다.

    마법의 보편화!

    얼마나 많은 현자들이 그것을 원했고, 또 그것을 위해 노력했던가.

    그에 대한 답이 여기에 있었다.

    모두가 마법을 쓸 수 있는 세상.

    서클에 대한 차별도 없고, 재능에 따른 격차도 없이, 모든 사람들이 동일한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세계.

    지금 루크가 보고 있는 것은, 단순한 근력강화마법이 아닌, 하나의 시대였다.

    “정말 대단해! 굉장한 마법이다!”

    “이거 참, 쑥스럽네. 별것도 아닌데.”

    “그렇지 않다, 정말 훌륭한 마법이었다!”

    허나 루크의 머릿속에서 일어난 고차원적인 사고를 알 길이 없는 제라드는 그저 마법사가 꿈인 어린아이가 처음으로 본 마법에 신기해하며 흥분하는 반응만이 비춰졌다.

    별것 아닌 3클래스 보조계열 마법일 뿐인데, 저토록이나 호들갑을 떨어대다니, 만약 연구소 내부에서만 사용이 허용되는 지팡이로 펼치는 6클래스의 마법을 보면 또 루크가 얼마나 흥분할지 모르겠다.

    ‘아차, 내가 무슨 생각을.’

    6클래스의 마법은 극도로 위험하다.

    아직 그 자신도 5클래스 마법까지밖에 허용되지 않는데다가, 그 5클래스 마법조차 사용허가를 받는 데엔 3일이라는 심사기간을 거쳐서야 단 한 번 사용이 허가되는 극도로 위험한 마법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겨우 반응 좀 보자고 어린애한테 보여줄 만한 것은 아닌 것이다.

    ‘애가 반응이 너무 재밌어서 그만. 철없는 생각을 하고 말았는걸.’

    그런 생각에 제라드는 살짝 부끄러워져서 얼른 목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이제 업혀도 괜찮아.”

    “정말 고맙다, 제라드.”

    루크가 제라드의 등에 업히자, 빠르게 걷기 시작한 제라드는, 곧 비명을 질렀다.

    “아야! 루크, 고개 좀 가만히 둘래? 뿔에 자꾸 찔리잖아!”

    “앗, 정말 미안하다! 내가 그만 뿔이 있다는 걸 잊고…….”

    시설 이곳저곳을 마력시로 살피며 마나를 한창 축적하다가, 실수로 옆에 난 뿔로 제라드의 등을 찔러버린 것이다.

    루크를 내려놓은 제라드는 찔린 등을 문지르며 피가 나는 건 아닌지 확인했으나, 다행히 출혈은 없는 것 같았다.

    “정말 면목이 없다…….”

    “하아, 괜찮아.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순간 아파서 소리를 지르긴 했지만, 루크의 태도에 화는 이미 눈 녹듯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그야, 저토록이나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귀까지 축 늘어트린 채로 자신이 찌른 등을 문질러주고 있는데, 어떤 악마 자식이 거기에 대고 화를 낼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렇다고 계속 등을 찔리고 싶다는 건 아니었다.

    그에겐 아픈 걸 좋아하는 취향은 없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호기심 많은 아이에게 고개를 돌리는 것을 하지 말도록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

    ‘아무리 그래도 업는 건 조금 그런데, 어쩌냐…….’

    “아, 그럼 이렇게 하자.”

    제라드가 제안했다.

    “……목마를 태워줄게.”

    “그…….”

    아무리 지금은 아이 같아졌다고 해도, 루크는 어른이었다.

    대체 목마를 마지막으로 타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까마득할 정도로 오래 살았는데, 목마는…….

    “그래도 괜찮겠는가?”

    이라고 거절하기엔, 루크에겐 마력시로 시설 곳곳을 살피는 것이 너무나도 중요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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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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