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5

       허리에 양손을 얹고 눈에 힘을 빡! 줬다.

       

       “정말이지…엘리. 어째서 어젯밤에 제 방에 숨어들지 않았던 거죠? 일부러 문까지 열어뒀는데!”

       

       “요나, 넌 대체 날 뭘로 보는 거냐…?”

       

       “줘도 못 먹는 쫄보 늑대 씨?”

       

       입술을 삐죽이며 그리 대답하자 한숨을 푸욱 내쉬는 엘리.

       

       “오늘 처음 미궁에 들어가는 날이면서 그런 농담이 나와? 괜히 컨디션 망쳤다가 위험해질 수 있잖아. 조금은 긴장하란 말이야.”

       

       “칫칫. 반대에요 엘리.”

       

       혀를 차며 쭉 편 검지를 좌우로 까딱였다. 그리고는 당당하게 검지를 엘리 쪽으로 겨누며 외쳤다.

       

       “미궁에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하루하루 후회 없는 삶을 살아야죠!”

       

       “…아직 몬스터 하나 잡아본 적 없는 주제에 마인드는 훌륭한 모험가구만?”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던 엘리가 낄낄 웃으며 내 머리를 통통 두드린다.

       

       그렇게 한참을 웃더니, 이내 조심스런 손놀림으로 내 옷매무시를 가다듬어 주었다.

       

       “리디아가 같이 가는 거니까 크게 다칠 일은 없겠지만…그래도 미궁은 미궁이야. 사지 멀쩡하게 돌아와야 한다?”

       

       이쪽을 바라보지 않고 내 옷에 집중하는 엘리. 손이 하나밖에 없어서 그런지 느리고 어색하다.

       

       애정과 걱정이 듬뿍 담긴 목소리. 아무리 수인족이 어린아이에게 약한 면모가 있다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엘리의 태도는 평범하지 않았다.

       

       굳이 이러는 이유야 모를 수가 없지.

       

       엘리의 비어있는 소맷자락을 잠시 바라보다 그녀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

       

       “엘리….”

       

       “응?”

       

       본래 굳은살로 가득했을 전사의 손은 그녀가 창을 놓은 시간만큼 부드러워져 있었다.

       

       괜시리 엘리의 손바닥을 만지작대며 말을 이었다.

       

       “옷 다듬어 주는 척하면서 자꾸 더듬을 거면 요금 받을 거예요?”

       

       “…아, 아니거든? 손이 하나밖에 없어서 어쩔 수 없는 거거든?!”

       

       “하아. 그냥 만지고 싶으면 만지고 싶다고 하면 되는걸.”

       

       엘리의 손을 잡아 배 쪽으로 이끌었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이 남녀역전 세계에서 남자의 배는 야한 부위더라고.

       

       살짝 보이는 건 괜찮지만 야한 차림이고, 완전히 보이는 거나 만지는 건 아웃이라는 느낌.

       

       그래. 굳이 말하자면 지구에서의 여자 가슴 같은 인식이려나?

       

       꿀꺽.

       

       이쪽도 알 수 있을 정도로 크게 침을 삼킨 엘리. 그녀의 손이 내 배에 가까워질수록 긴장감 또한 커져간다.

       

       그렇게 엘리의 손끝이 내 배에 닿기 직전. 느릿하게나마 인도하던 손을 멈춰 세우고는 살짝 까치발을 섰다.

       

       자연스레 서로의 호흡이 닿을 정도로 가까워진 얼굴. 잔뜩 긴장한 탓인지 빳빳하게 굳어있는 엘리를 향해 속삭였다. 꽤 간질거리는 목소리로.

       

       “옷 위로 만지면 1실버, 안쪽으로 만지면 10실버. 어떻게 하실래요?”

       

       “…….”

       

       엘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나는 그날 은화 10개를 받았다.

       

       ***

       

       리디아와 만나기로 한 곳은 다른 어디도 아닌 이곳 요정과 은화.

       

       하지만 아직 리디아가 오기까지는 약간의 여유가 있다. 그 틈을 타 방금 번 돈으로 가챠를 돌릴 생각이다.

       

       아직도 멍하니 자기 손을 바라보는 엘리의 말처럼 리디아가 있다고는 하나 던전에서 무슨 일이 생길지는 모르는 법이니까.

       

       “엘리. 저 잠깐 놓고 온 게 있어서 제 방에 다녀올게요.”

       

       “응….”

       

       “이번에는 엿보면 안 돼요?”

       

       “응….”

       

       고장 난 엘리를 지나쳐 구석의 위층으로 향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정말 놓고 온 게 있는 건 아니고, 아무도 모르게 가챠 돌릴 생각이지만.

       

       임시 보관함 같은 게 없는 탓에 가챠 결과물이 죄다 바닥에 떨어진단 말이지.

       

       찰칵.

       

       “후우.”

       

       문을 잠그고 가볍게 심호흡했다.

       

       가챠에 필요한 금액은 1회 단챠에 1실버. 10회를 한 번에 돌리는 연속 가챠…연챠의 경우에는 1번을 추가로 더 돌릴 수 있다.

       

       당연히 단챠보다 한 번 더 보너스로 돌릴 수 있는 연챠로 돌리는 게 이득이긴 하지만…솔직히 좀 불만이다.

       

       횟수를 늘려주는 것보다 최소 n성 이상이 뜬다는 식의 보너스가 좋단 말이지.

       

       이 가챠 시스템은 대체 확률이 어떻게 되먹은 건지, 무료 연챠 이후로 3번은 유료 연챠를 돌렸는데 전부 1성만 나오더라고.

       

       1성따리는 11개 전부 되팔아도 3실버 회수할까 말까 하는 최하급품이다.

       

       마일리지라고 생각하면 개꿀 교환비지만, 천장도 없고 마일리지로 확정 구매도 못 하는 데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다시 가챠 돌리는 데 보태는 것뿐.

       

       다만 첫 무료 연챠로 얻은 소매치기 스킬의 유용함을 생각해 봤을 때, 2성이면 본전 이상, 3성부터는 확실한 이득이 아닐까 싶다.

       

       그리 생각하면 이 절망적인 확률도 이해는 가더라.

       

       애초에 가챠에서 이득을 보려고 하면 안 되잖아? 그저 가챠로밖에 얻을 수 없는 무언가가 있으니까 돌릴 뿐….

       

       예를 들어 3성이 이 정도인데 그 위에 있을 4성과 5성은 어떻겠는가.

       

       적색 마탑의 상징이라는 메테오? 검왕가의 숨겨진 비기? 어쩌면 국보급 아티팩트일 수도 있고, 죽은 이마저 되살린다는 엘릭서가 나올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건 내가 얼마나 큰 돈을 모으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 되건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얻을 수 없는 것들.

       

       “으흐흐….”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도파민이 줄줄 흘러나오며 전신이 흥분으로 떨리기 시작했다.

       

       방금 받은 10실버를 강하게 움켜쥔 채, 가챠 시스템을 켰다.

       

       띠링!

       

       

       

       [통상 뽑기]

       

       -현금 혹은 그에 상응하는 마석을 소모해 1~5성 사이의 아이템과 스킬을 랜덤하게 얻습니다.

       

       [1회 뽑기] [10+1회 뽑기]

       

       

       

       무척이나 심플한 화면. 어떤 물건이 나오는지도, 어느 정도의 확률인지도 알 수 없는 불친절함이 팍팍 느껴지는 시스템이다.

       

       내게는 황금빛 미래로 보이지만…!

       

       “5성 가즈아!!”

       

       망설임 없이 연챠 버튼을 눌렀다. 동시에 손에서 사라지는 은화의 무게.

       

       별다른 뽑기 연출은 없다. 게임도 아니니 당연한 일이지. 다만 그게 아무런 전조도 없다는 뜻은 아니다.

       

       데구르르….

       

       내 귀에만 들리는 주사위 굴러가는 소리. 한참을 어지럽게 구르던 주사위가 하나둘 멈추더니, 이내 완전히 조용해진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허공에 작은 구멍이 뚫린다.

       

       우웅-

       

       정체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공간의 균열. 그 너머에서 무언가 우르르 쏟아졌다.

       

       “읏차차.”

       

       반사적으로 떨어진 물건들을 품에 안는 것과 동시에 눈앞에 기다린 리스트가 떠오른다.

       

       띠링!

       

       [1성: 잘 말린 마력초]

       [1성: 가공된 회복초]

       [1성: 두꺼운 양말]

       [1성: 잘 말린 마력초]

       [1성: 잘 말린 마력초]

       [1성: 가공된 회복초]

       [1성: 잘 말린 마력초]

       [2성: 손목 석궁]

       [1성: 최하급 회복 포션]

       [1성: 나무 화살]

       [1성: 잘 말린 마력초]

       

       “아니! 내 5성이!!!”

       

       이번에도 어김없이 이어진 1성 파티에 전신을 휘감던 흥분이 싹 빠져나간다.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은 분노.

       

       대체 누가 나한테 이런 능력을 줬는지 모르겠지만, 만약 만날 수 있다면 진지하게 모친은 안녕하신지 묻고 싶어질 정도의 빡침이 뇌를 물들인다.

       

       여기에 얼마를 들였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 탓에 발견하는 게 늦었다.

       

       “끄르르륽……어?”

       

       방금. 중간에 2성 하나가 끼어있지 않나?

       

       품을 가득 채운 풀떼기를 대충 책상 위에 던져두자, 그제야 모습을 드러내는 작은 석궁.

       

       “오?”

       

       조심스레 석궁을 침대에 올려두고, 우선 나머지 물건부터 정리했다.

       

       첫 번째 서랍에는 이상할 정도로 많이 나온 마력초를, 두 번째 서랍에는 회복초를 집어넣었다.

       

       일전에 납치당하면서 깨달은 바가 있는 만큼, 팔지 않고 내가 먹을 예정이지만…그냥 먹어서는 효과가 없다. 제대로 정제해야지.

       

       그러니 일단 마력초와 회복초는 보류하고 나머지 물건을 살펴보았다.

       

       최하급 포션인가. 이건 미궁에 챙겨가야 하니 주머니에. 나무 화살은 대충 책상 위에 올려두었으며, 두꺼운 양말은…내가 신었다. 따뜻하네.

       

       그렇게 잡다한 물건을 정리하고서야 조심스레 석궁을 들어 올렸다.

       

       단단한 나무를 군데군데 철로 보강한 튼튼한 모양새. 크기만 작을 뿐, 내가 아는 석궁의 형태 그 자체였다.

       

       다만 한 가지 특이한 게 있었으니, 석궁의 아랫부분과 일체화된 가죽 토시가 그러했다.

       

       손목 석궁이라는 이름처럼 이걸 팔에 착용하는 거겠지.

       

       토시를 왼쪽 팔에 단단히 고정시켰다. 의외로 상당한 무게감이 안심되네. 어린아이인 내 몸으로도 문제없이 사용할 수 있는 크기고.

       

       “음….”

       

       일단 착용한 채로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멋있긴 하네. …근데 이거 어케 씀?

       

       책상 위에 올려진 나무 화살을 바라보았다. 내 석궁에 비하면 너무 긴 길이.

       

       “부러뜨리면 되겠지 뭐.”

       

       석궁의 길이에 맞춰 적당히 화살을 부러뜨린 뒤 시위에 걸어보았다. 일단 들어는 가네.

       

       비슷한 길이로 넉넉히 부러뜨려 주머니에 넣고는 1층으로 내려왔다. 그곳에는 무표정한 여기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야 내려왔네.”

       

       “리디아 님? 언제 오셨어요?”

       

       “조금 전. …팔의 그건?”

       

       “멋있죠? 손목 석궁이라는 거래요!”

       

       “나도 알아. 요나에겐 꽤 비싼 것도 알아. 어디서 구했어? 분명 어제는 없었는데. 혹시…?”

       

       “그런 거 아니거든요?! 이건 단순히….”

       

       방금 막 가챠에서 뽑았다고는 할 수 없다. 애초에 이 능력이 남에게 알려져서 좋을 건 없으니까.

       

       결국 둘러댈 방법은 하나뿐인가.

       

       “미리 봐뒀던 거라 쌍단검 클랜을 빠져나오며 슬쩍 했을 뿐이에요!”

       

       “…내 전리품이어야 했을 물건?”

       

       “네?”

       

       “20실버쯤이려나. 자세한 건 길드 소속 대장간에서 물어보자.”

       

       “저기요? 리디아 님?”

       

       “가자. 보급형이라도 요나의 몸에 맞추려면 시간 꽤 걸려.”

       

       “정말 받으시게요?! 진짜?!”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방에 놔두고 오는 건데! 2성 떴다고 좋아하자마자 그 금액만큼 빚이 추가될 줄은 몰랐다….

       

       억울함에 몸부림치는 내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제정신이 아닌 엘리를 향해 고개를 꾸벅이는 리디아.

       

       “안심해 엘리 선배. 밤 되기 전에 돌아올게.”

       

       “…응.”

       

       허공을 만지작대듯 손을 꿈틀거리며 헤실거리는 엘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엘리…!”

       

       하지만 리디아에게 붙잡혔다.

       

       텁!

       

       “가자.”

       

       “…….”

       

       안 간다고 해도 힘으로 끌려갈 분위기라 눈물을 머금고 끄덕였다.

       

       “다녀올게요 엘리….”

       

       “…응.”

       

       마지막까지 넋이 나가 있는 엘리. 대체 얼마나 좋아하는 거냐구.

       

       저 정도면 다음부터는 2배로 받아도 되겠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엘리는 오늘 손 안 씻을듯
    다음화 보기


           


Gacha Addict in a Matriarchal World

Gacha Addict in a Matriarchal World

남녀역전 세계의 가챠 중독자
Score 8.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Gacha – Civilization’s Ultimate Game. Spin now for a shot at fortune. Spending that doesn’t disrupt your lifestyle? That’s virtually free-to-play. Keep spinning until you strike gold – success is guaranteed. … … Today, yet again, I’m at the gacha wheel. “Did I get a 5-star?!”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