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5

    ***

    검은 거대한 구의 형태를 한 캡슐 안으로 몸을 앉히자 곧이어 부드럽게 나를 감싸왔다.

    첫 인상은 마치 앉는 것과 동시에 어나더 월드에 접속하게 만드려는 것처럼 편의적인 요소가 눈에 띄었다.

    ㅡㅡㅡㅡㅡㅡㅡㅡ

    일순간 시야가 암전되는 것과 동시에 묘한 감각이 나를 감쌌다.

    동시에 새하얀 바탕에 금빛으로 수놓아진 화려한 폰트가 시야를 가렸다.

    [더 넓은 모험의 세계로]

    게임의 일반적인 오프닝을 장식하는 것 같은 화면, 연이어 처음 보는 세상의 배경이 이리저리 화려하게 시야를 잡아먹는 것도 잠시.

    따뜻한 햇살이 느껴진다 싶은 순간엔, 이미 영문 모를 공간에 있었다.

    “…”

    그 모든 게 생각보다도 더 자연스러웠다.

    묘한 이질감과 같은 것이 느껴질지언정, 이게 가상현실이라니 직접 경험하고도 믿기 힘들 정도의 현실감이었다.

    “이게, 가상 현실?”

    멍하니 소리내어 중얼거려보았다. 그러자 분명 현실 속 내 목소리와 흡사하지만, 분명히 다르다고 느껴질 만한 여성의 미성이 들렸다.

    손을 팔랑거려보거나, 걸음을 옮겨도 봤다.

    나 같지 않은 낯선 기묘한 감각이 전신에 흐르고 있었다.

    자세한 구동 원리나 시스템 같은 것은 알지 못했지만 단순 게임이라기엔 현실감이 넘치는 그 감각이 흥미를 끌었다.

    도시의 번화가로 보이는 공간에는 나를 제외하고도 꽤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하나같이 개성이 넘치는 모습으로 RPG 게임이라는 장르에 속한 ‘어나더 월드’답게 각자 개성이 넘쳤다. 자신의 몸을 가릴 정도로 거대한 대검을 시작해서 한손 검, 활, ,석궁, 창, 도끼, 일본도, 철퇴, 마법봉 그 외에도 수많은 가지각색의 무장을 착용한 모습이 보였다.

    그렇게 사람들을 살펴보듯 바라보다 순간 나의 무기는 뭘까 궁금했다. 

    생각과 동시에 어느새 제 손에 들려있는 익숙한 감각.

    ㅡ!

    순간 저도 모르게 숨이 멈췄다.

    천천히 손을 들어올리자, 너무나 익숙한 형태의 무기가 제 팔에 매달려 흔들리고 있었다.

    ‘…이게 말이 되는건가.’

    반월추였다.

    이게 정말 우연의 일치일까.

    이 게임을 즐겼을 ‘한세린’이라는 본래의 나는… 사실 평행세계의 나지 않았을까, 멍하니 그런 생각조차 들 정도로 말도 안 되는 우연의 일치였다.

    당장 지금 거리를 걸어 다니는 많은 사람들이 들고 있는 무기 중 반월추라는 무기를 든 사람은 보이지도 않을 정도였다.

    그건 분명 여기서도 비주류에 해당하는 무기라는 것이겠지.

    그런데도 이 세계의 ‘한세린’이었던 존재는 ‘나’와 같은 무기를 골랐다.

    심지어 추에 연결되어 내 오른팔을 감싸고 있는 끈의 색조차 금색.

    “……”

    멍하니 헛웃음을 흘리다 고개를 돌려 도시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 외에도 꽤 많은 사람들이 아예 무장을 착용하지 않은 평범한 모습도 간혹 보였다.

    그중 평범한 얼굴의 모습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하나같이 찍어낸듯한 미형의 얼굴이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실제로 마주한다면 시선을 끌 만한 그 얼굴들은 어째선지 다 비슷비슷하게도 보였다.

    유명한 하나의 커스터마이징을 다 따라 한 건가하는 의문이 들정도로 하나같이 비슷한 외관. 

    뭐 게임이니까, 분신과 같은 캐릭터의 외형을 꾸미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몰랐다. 

    “…”

    몇 가지 정보는 알고 이 어나더 월드에 접속했지만. 그래도 캐릭터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도시를 거닐며 거울과 같은 것을 찾아 헤매었다. 우선 내 캐릭터에 대해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전체가 유리로 되어있는 상점가의 거울을 바라보자 저도 모르게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거울 속에는 하얀 색으로 얼룩진 여성의 모습이 보였다.

    정말 하얗다 못해 창백한 피부를 가진 여성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은발을 길게 늘어트린 모습의 미녀.

    선이 고운 미형의 얼굴 위로 자리한 표정은 너무나 무감정해 보였다.

    어떻게 바라보면 초연한 모습으로 보이는 그 모습은 바라보기에 따라 가지각색의 여러 모습으로 비춰 보였다.

    그리고 그 모습들이 나는 너무나 익숙했다.

    ‘한세린’이었던 본래의 나는 외모에 자신이 있던 건지. 가상 현실의 제 캐릭터조차 나를 표방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현실의 나와 별다른 특이점이 보이지 않는 모습 그대로였다.

    ‘린’

    내 최애캐이자. 이제는 캐릭터가 아닌 나 자체가 되어버린 모습.

    분명 실존하는 인간이었지만 인간 같지 않은 비현실적인 외모.

    동양의 미를 컨셉으로 만들어진 캐릭터였지만. 그 캐릭터에 나는 꽤 공들여 커스터마이징 했었다.

    거기에 서구적인 미를 넣기 위해 본래 흑단같이 어두운 색의 머리를 순은과 같은 은발로 바꾸었으며, 이목구비 또 한 혼혈로 보일 정도로 이곳저곳 손을 대었다.

    가상현실인 이곳에는 그 이질적임이 그렇게까지 시선을 끄지 않을 수 있겠다 싶었지만. 이 게임기 밖의 내 모습은 누가 봐도 이질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며칠 동안 나는 쉽사리 밖에 나갈 생각조차 하지 못한 것 아닌가.

    게임 속 세상에서 여러 사람들의 무수한 시선에도 무감각하게 받아들일 수 있던 것은 전신에 가득한 전능감에 기반되어 있었다.

    힘이 있었으니까.

    나를 바라보는 시선 따위 신경쓰지 않았다.

    그 세상 속에서 가히 만인을 내려다볼 수준의 힘을 가진 존재였으니까.

    하지만…

    지금 이처럼 가녀린 몸에 그 무엇도 느껴지지 않는 무력한 내가, 지금 타인의 시선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낼 수 있을까.

    그것이 지금 나는 두려웠다.

    그 현실을 받아들이기엔 지금의 나에겐 아직 시간이 더 필요했다.

    거울에 비친 자기 뺨을 조심스레 쓰다듬다 순간.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러자 거울에 비친 은발의 여성 또 한 조소어린 미소를 짓고 있었다.

    바라보는 나조차 가슴이 서늘해지는 느낌이 들 정도로 차가운 미소를 띤 여성.

    그렇지만 그 모습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ㅡ 블랙 아크.

    내가 수년도 넘는 시간을 보냈던 세상의 이름. 즉 원래 게임의 이름이었다.

    블랙 아크의 세상 속 내 모습은 늘 이러했으니까.

    차가운 미소를 띤 채 다가오는 사람들을 거부하며, 그저 홀로 세상을 떠돌아다녔다.

    ‘굳이… 다시 만들 필요는 없나.’

    어나더 월드를 구동할 때만 해도 캐릭터가 있다면 삭제하고 다시 만들려 했던 제 생각은 어느새 사라졌다.

    사실상 지금 이 캐릭터가 진정한 나와 다를 바 없었다.

    블랙 아크 세상 속의 나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모습.

    오른 팔에 느껴지는 익숙한 무게감.

    반월추를 빙글빙글 돌리며 걸음을 옮겼다.

    분명 RPG게임인 만큼 여러 종류의 사냥터가 있을 터.

    내가 그간 느꼈던 생생한 느낌과는 분명 다르겠지만.

    그래도 속에 쌓여가던 짙은 갈증과 같은 이 감정을 조금은 해소해줄 것 같았다.

    ……

    “…포탈이 없다고?”

    포탈과 같은 것을 찾았지만, 이 게임에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자 헛웃음만 새어나왔다.

    월드맵을 열어 지형이나 각 곳에 자리한 도시들을 바라보면 그 크기가 하나같이 방대하기 그지없었다.

    ‘어떻게 이동하라는 거야 대체?’

    대체 이 게임의 제작자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렇게 가상현실 속 설정창과 같은 홀로그램과 같은 것을 조작하며. 이동 수단을 찾자 금세 찾을 수 있었다.

    ㅡ히이이잉!

    가만히 있음에도 내 손에 제 고개를 비비적거리며 애정을 표하는 동물.

    저도 모르게 그 동물의 새하얀 갈기를 쓰다듬어 주다 멍하니 눈을 끔뻑거렸다.

    탈 것. 그러니 이동 수단의 모습은 너무나 익숙했다.

    마치 ‘블랙 아크’의 세계를 떠올리게 하는 이동 수단이었다.

    그것도 심지어 유니콘의 외형을 한 말.

    일반적인 백마의 외형에 날개가 접혀져 있는 듯한 모습.

    ‘아리아나트?’

    하늘을 나는 말.

    일반적인 말들에 비해 그 속도가 빠른 것도 빠른 것이었지만, 무엇보다도 여러 지형을 무시하고 날아다닐 수 있다는 것. 동선을 단축할 수 있다는 것이 아리아나트의 장점이었다.

    ‘블랙 아크’의 세계관에서도 가진 자가 몇 없기로 알려진 말이었지만. 어째선지 가상현실 속의 난 그것과 비슷한 것을 가지고 있었다.

    멍하니 제 손에 계속해서 얼굴을 비비적거리는 말을 바라보다 불현듯.

    이 가상 현실 게임 ‘블랙 아크’의 세상과 너무 비슷하지 않나. 저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말에 자연스레 올라탐과 동시에 월드맵을 열어 근처의 사냥터.

    ‘어둡게 물든 엘프의 숲’을 지정했다.

    ㅡ히이이잉!!

    그러자 말이 한차례 울음을 토해내더니, 엄청난 속도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좌표를 지정하면 탈 것이 알아서 그곳까지 이동하는 시스템.

    모든 것이 ‘블랙 아크’와 비슷했다.

    그러다 순간 속도를 끌어올리듯 연달아 지면을 박차던 말에 본능처럼 매여진 안장을 잡아 제 몸을 바로잡았다.

    ㅡㅡ!!

    속도를 끌어올린 마지막 순간, 아름다운 하얀 날개를 활짝 펼치며 하늘을 날기 시작했다.

    넓은 세상을 향해. 빠르게 하늘을 비행하며 시원하게 지나쳐가는 바람을 느끼다, 순간 웃음이 새어 나왔다.

    “…재밌을 것 같아.”

    본심이 흘러나오듯, 저도 모르게 감탄을 내뱉었다.

    그리고 그런 감상은 순간 갑작스레 사라졌다.

    쐐애애액!!

    바람을 가르며 날카롭게 날아오는 무언가, 멍하니 그것을 의식하며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그 순간, 본능과 같이 제 고개를 비트는 것과 동시에 무언가가 자기 뺨을 스쳐 간다.

    “…”

    멍하니 제 뺨을 쓰다듬자. 별다른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새빨간 혈흔이 제 손에 선명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띠링!

    띠링!

    뒤늦게 경보와 같은 것이 울려오며 위험을 알려왔다.

    [무법자. ‘아시발죽든가’ 가 당신에게 접근합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더워어어어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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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eamer Crazy About Slaughter

Streamer Crazy About Slaughter

살육에 미친 스트리머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fter being trapped in the game world for several years, I was transported back to real world. However, my appearance was exactly like that of the character in the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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