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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

       “여기 글레시아 학파 강의실 맞나요?”

        “네, 들어오세요. 오늘은 청강도 환영이니까요.”

        “와, 진짜 있네.”

        “아직 시작 안 한 거죠?”

       

        때때로 소문이란 무섭도록 빠르다.

        처음에 시간표에 추가된 사진을 눌러본 이들은 이내 비나의 성이 ‘니플헤이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글레시아 학파의 순혈 가문이자 칠현자 중 일인인 ‘밀로네 프레이야 데 니플헤이르’의 직계임을 의미했다.

        그런 이가 직접 시연하는 강의의 대상이 수습생 전체라는 것을 깨닫자 너도 나도 발걸음을 옮겼다.

       

        “이거 수습생도 들을 수 있어요?”

        “문제 없을 겁니다.”

        “메테오가 어떻게 얼음 마법이에요?”

        “그건 저도 잘…….”

       

        갤러리를 통해 빠르게 퍼진 소식에 입실론 관은 미어 터지기 시작했다.

        다른 학파에서 호기심에 찾아오는 사람들까지 합쳐져 몇몇 이들은 뒤에 서 있어야 했다.

        이 정도면 내가 줄 수 있는 도움은 전부 준 셈이었다.

       

        비나는 정각이 되자 더 기다리지 않고 곧장 강의를 시작했다.

        갤러리에서처럼 장황하게 메테오 이야기를 늘어놓을 거란 생각과 다르게, 작은 얼음 구체들을 띄웠다.

       

        “마탑에는 일곱 개의 학파와 그 주위를 도는 백여 가문이 존재해요.”

       

        소환, 연금, 원소, 점성, 정령, 신성, 그리고 해주.

       

        “이번 강의에서 제가 설명할 마법의 묘체는 학파나 가문의 절기와는 분리된 하나의 개념이에요. 원소학에서 파생된만큼 가장 간단한 방법을 사용할 테지만 통달한다면 어떤 분야에도 응용할 수 있어요.”

       

        극(極)마법.

        자신이 강의할 내용에 대해 그렇게 소개한 비나는 손 위의 얼음구체 하나를 강의실 천장으로 이동시켰다.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은 구체는 이내 치이이익-! 소리를 내더니 어마어마한 열과 증기를 내뿜기 시작했다.

        수식도 시동언도 생략하고 이루어진 마법의 발현은 그녀의 뛰어난 실력을 짐작캐 했다.

       

        “원소 하나에 극단에 위치한 상태를 주입시킴으로서 새로운 개념을 정립시는 거에요.”

        “이건…….”

        “끓어오르는 얼음, 저는 그렇게 부르고 있어요.”

       

        본래는 양립 불가능한 두 가지 성질을 고착화시키는 것이 극마법의 묘리였다.

        확실히 저걸 공중에서 떨어뜨리면 메테오나 다름없는 파괴력을 내긴 하겠군.

        동시에 상당히 어려운 마법인 것도 명백해 보였다.

       

        비나의 설명을 옆에서 듣고 있던 나는 어디선가 이 마법을 본 적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모험가로 활동할 무렵, 현상금을 달고 다니던 흑마법사 하나를 잡았던 적이 있다.

        ‘산 태우기’라고 불리던 녀석은 손짓 하나로 인근의 초목을 잿더미로 만들어버리는 기이한 능력을 썼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그것도 극마법이었군.’

       

        아무리 물을 부어도, 모래를 뿌려도 꺼지지 않던 산불.

        심지어 산맥 안에 숨어 버렸기에 잡는데도 꽤 고생했었지.

       

        “반대되는 속성이 하나의 현상으로 존재하는 만큼 술식의 조합에 빈틈이 있어선 안 돼요. 발상 자체도 난이도가 높고요. 무엇보다 불안정한 상태의 마법을 철저하게 통제할 수 있어야 하기에 편법은 통하지 않아요.”

        “편법이라면…….”

        “예를 들어 점성술의 ‘대가를 얹는 천칭’이나 신성술의 ‘기청(祈請)’. 또 정령사가 정령에게 연산의 일부를 맡기는 등의 수단을 뜻해요.”

       

        술식 간의 연계에 대해 더 구체적인 설명이 이어졌다.

        어느덧 강의실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비나의 손짓과 입에서 나온 문장 하나하나에 주목하고 있었다.

        처음엔 얼음 정수기에 열등감 느끼는 분탕인 줄로만 알았는데, 역시 갤러리와 현실의 삶은 다른 법인가.

        다른 건 몰라도 절대로 내 정체는 들키지 말아야겠군.

       

        한 걸음 물러서 다른 생각을 하던 찰나, 갑자기 그녀가 나를 호출했다.

       

        “구조와 이론은 우선 이 정도로 정리 할게요. 본격적인 실습에 들어가기 전에 조교가 먼저 시범을 보여줄 거에요.”

        “네?”

       

        이런 건 예상에 없어 당황스러웠다.

        연단에 오르자 비나는 붙잡으라는 듯이 손 하나를 내밀었다.

       

        “저는 극마법을 못 쓰는데요.”

        “제가 옆에서 연산을 보조할 테니 괜찮아요. 술식을 조합하는 건 신경쓰지 말고 감각만 익혀 보세요.”

       

        순진무구한 마법사께서는 사람은 누구나 원리만 익히면 그 이론을 곧장 접목시킬 수 있는 줄 아는 모양이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서늘한 손을 붙잡았다. 다행히도 이번에 한해선 그녀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 듯했다.

        ‘산 태우기’를 잡았을 때, 내 동료가 비슷한 원리로 그 마법을 파훼했었으니까.

       

        ‘재미있는 마법을 쓰는 친구네. 근데 저런 건 자기애가 없으면 금세 깨져버린단 말이지.’

        ‘자기애?’

        ‘마법은 곧 믿음이니까. 메테오가 얼음 마법이라는 정신나간 주장을 당당히 할 정도는 되어야 인지부조화를 이겨내고 현상을 견지할 수 있는 거야.’

       

        불을 이루는 요소는 다양하다. 연기, 온도, 빛.

        거기에 초목과 산으로 범위를 넓히면 더욱 많은 변수가 발생한다. 

        나무가 타들어가는 소리, 사람들의 비명, 뛰어다니는 동물들의 그림자, 바람이 바뀌는 순간.

       

        ‘그 중 하나라도 비상식으로 덮어 씌워지면 산이 불타고 있다고 믿는 게 가능할까?’

        ‘그렇구만.’

        ‘너 하나도 안 듣고 있지, 클락.’

        ‘강의는 됐어. 하고 싶은 말이 뭔데?’

        ‘불을 끄겠다는 거야. 지금 저 산맥의 극단에 위치한 상태를 똑같이 정립해서.’

       

        그녀는 내가 알고 있는 가장 뛰어난 마법사였다.

        마탑에 들어오기 전에도, 들어온 뒤에도 그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어려운 말은 몰랐지만 그 뒤에 이어진 미소의 의미는 잘 알았다.

       

        ‘안 보여도 맞출 수 있지? 네 창은 백발백중이잖아.’

       

        그때의 감각을 떠올린 나는 가볍게 숨을 들이마신 뒤 입으로 내뱉었다. 마치 촛불을 끄듯이.

       

        “뭐, 뭐야!?”

        “꺅!”

       

        그러자 강의실의 모든 조명이 꺼지며 칠흑같은 어둠이 찾아왔다.

       

        동시에, 위치 노트에 처음 보는 메시지가 도착했다.

       

        ====

        [System : 다크 모드가 활성화 되었습니다.]

        ====

       

       

       

        *

       

        ====

        [업뎃 떴냐!!!!!]

       

        방금 다크모드 생겼다 지금 설정 탭에서 고를 수 있음

       

        — ㄹㅇ이네? 개꿀

        — 난 우리 주딱 믿고 있었어!! 난 우리 주딱 믿고 있었어!!

        — 믿고 있었다구!! 믿고 있었다구!! 믿고 있었다구!! 

        — 이제 밤에도 갤질을 할 수 있어…… 편히 잘 수 있어……

         ㄴ 밤에 못 자는 건 갤질을 해서 그런 게 아닐까?

        ====

        ====

        [주딱을 의심해서 미안합니다…….]

       

        하루 20시간은 갤러리에 상주하는 진성 갤창에

        허구한 날 다중분신술로 유입 고로시나 즐기는 개 악질 인성파탄자인 줄 알았는데 이런 선물을 준비하고 있었다니 

       

        숭배합니다 Goat

       

        — 문득 하루 20시간씩 갤질하고 새벽에 키배 뜨면서도 갤러리에 신기능까지 추가한 주딱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지네……

        — 근데 위에 거 다 맞는 말 아님? ㅋㅋ

        ====

        ====

        [다크모드 쓰면 시력 더 나빠진다 하네요]

       

        최근 학회에서 올라온 논문에 따르면 오히려 광량이 적을 때 눈이 글씨를 더 잘 식별하기 위해 동공을 확장하기 때문에 피로감이 더 올라간다는데요?

        다크모드 쓰시는 분들은 생각이 있으신 건가?

       

        — 응 닥쳐 낮에도 쓸 거야

        — 시력이고 나발이고 내가 쓰고 싶다고 ㅋㅋㅋㅋ

        — 내 눈은 좋아하던데? 니가 눈이랑 사이가 나쁜가보지 ㅋㅋㅋ

        ====

        ====

        [좀 전에 1층 전체가 잠깐 정전됐었는데 나만 그럼?]

       

        마족이라도 들어온 건 아니겠지?

        ====

       

        중간에 강의실 불이 나가 예상보다 늦게 끝나긴 했지만, 비나의 첫 강의는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다.

        오히려 극마법을 모른다던 내가 한 번에 마법을 성공하자 그녀가 굉장히 훌륭한 지도자로 비춰진 듯했다.

        중간에 자신도 손을 잡아달라 부탁하는 대담한 녀석들도 있었다.

        시연과 다르게 이건 직접 해야 하는 거라며 비나가 거절했지만.

       

        박수 갈채를 보내랴, 시간표를 수정하랴 바쁜 수습생들을 보며 나 역시 새로 추가된 기능을 확인했다.

        다크 모드라. 이런 식의 활용법을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나름 의미있는 수확이었다.

       

        “흥미롭네요.”

        “그렇죠? 특히 이 시안성을 극대화 시키는 채도값이 사용자의 시력에 따라 조절된다는 점이…….”

        “사감의 마법을 말하는 거에요.”

        “아.”

       

        강의실을 나와 회랑을 걸으며 비나는 내가 보여준 극마법에 대해 이야기했다.

        호수처럼 잔잔한 눈동자에 얕은 파문처럼 호기심이 번져 있었다.

       

        “‘보이지 않는 빛’이라. 직관적이면서 활용도가 높아요. 짧은 시간이었는데 잘도 생각해냈네요.”

        “혼자서는 쓰지도 못할 텐데요. 비나 님이 도와주셔서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중요한 건 발상이에요. 숙련도는 연습을 통해 쌓을 수 있지만 이런 종류의 활용법은 책에 적혀 있는 게 아니니까요. 사감은 신기하네요.”

        “그런가요?”

        “네. 제가 모르는 지식을 많이 알고 있는 것도, 무슨 문제든 곧잘 해결하는 점이나 발상이 특이한 것까지 굉장히 보기 드문 군상의 표본이에요.”

       

        조금 전 잡았던 장갑 낀 손이 마력 승강기가 도착하는 내내 입가를 톡톡 두드렸다.

        일반인은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두뇌 회전이 빠른 그녀가 무슨 고민을 그리 오래 했는지는 곧 알게 되었다.

       

        “그럼 저는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사감.”

        “네?”

        “비원의 층에 있는 제 저택에서 일할 사용인이 필요해요.”

       

        마법의 극의에 통달한 이들은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고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있는 경우가 잦다.

        그런 이들의 개떡같은 소리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게 내 몇 안 되는 장점.

       

        “그거라면 생활부에 요청해 적절한 인력을 지원받을 수 있을 겁니다. 혹은 외부 업체와의 계약도 주선받거나요.”

        “마법에 능통하고 연구에도 참여하며 무엇보다 제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해요.”

        “그렇다면 지하 1층에 대학원생들이 사는 미궁이 있으니 거기서 데려와도 괜찮겠네요.”

        “이미 찾았어요.”

       

        그러나 이런 제안까진 예상하지 못했다.

       

        “사감, 저와 함께 가지 않겠어요?”

        “…….”

        “사감은 아직 시작의 층에 머물러 있죠. 이건 단언컨대 인생에 절대로 두 번은 오지 않을 기회에요.”

       

        비나는 승강기 안에서 나의 대답을 기다렸다.

        순혈 마법사가 누군가를 위해 버튼을 누르고 있는다는 행위 자체가 상상도 하지 못할 배려였다.

        그래서인지 살짝 치켜올린 턱과 상기된 볼은 약간의 자신을 품고 있는 듯했다.

        내가 이 시끄럽고, 낡고, 허구한 날 불편 사항을 처리하러 돌아다녀야 하는 기숙사에 남아있지 않을 것을 확신하는 눈치였다.

       

        “음…….”

       

        오래 고민할 이유는 없었다.

       

        나는 그녀와 같이 있는 내내 보고 있던 위치노트를 처음으로 접었다.

        그리고 바보가 아니라면 절대 거절하지 않을 제안에 대한 답을 건네었다.

       

       

       

        *

       

        다도해(多圖海). 비원의 층이라 불리우는 50층의 여덟 번째 계단.

        수많은 고서들이 폭포처럼 쏟아지는 도서관의 계단 위에 서 있던 크리스티나는 사서장의 부름을 받았다.

        친구가 이곳에 존재하는 두 가지 규칙 중 하나를 어겼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밀로네 님의 후계라도 도서관에서 잠을 자는 건 허락 못합니다. 이건 등반과는 관계 없는 문제이기에.”

        “하하, 죄, 죄송합니다……! 얘가 상심이 좀 큰 모양이라……!”

       

        책상에 엎드린 채 스무 시간 째 고개를 들 생각을 안 하는 비나를 보며 크리스티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깐깐한 사서장에게 양해를 구하기 위해 조미료를 팍팍 친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다.

       

        “남자에게 차였나봐요. 처음으로 용기를 낸 건데 거절당했거든요.”

        “그게 뭐 어쨌다는 건가요? 모든 만남엔 헤어짐이 있는 겁니다. 이 책의 내용처럼요.”

        “아니아니! 들어 보세요! 집도 일자리도 줄 테니 옆에 있어 달라고 했더니 그 남자가 뭐라고 하며 거절했는지 알아요!?”

        “뭔가요?”

        “글쎄, 얼마 전에 장만한 얼음 정수기가 아까워서 못 간다고 했대요!”

       

        장서에 가려져 있던 앞머리 너머로 회백색 동공이 슬쩍 모습을 드러냈다.

        ‘서표를 거두는 자’가 자신들을 58층에서 쫓아내지 않은 것에 크리스티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얼음 정수기에 우선순위가 밀린 건가요?”

        “밀린 거죠!”

        “안타깝군요.”

        “그죠? 그러니까 이번만 양해해주세요, 제발!”

       

        친구의 눈물나는 실드 덕에 비나는 생각이 정리될 때까지 다도해에 머무를 수 있었다.

        사서장이 엄선한 로맨스 소설 5권을 추천받은 것은 덤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살짝 전개가 빠른가 싶은 감이 있나 싶네요. 챕터 길이나 글자수로 따지면 괜찮나 싶기도 하고요. 다음부턴 캐빨도 추가하면서 좀 더 완만하게 조절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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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이세계 마탑의 갤주가 되었다
Score 3.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10 years since transfer to another world

What I do inside the Ivory Tower of Truth isn’t much different from what I did on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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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you missed today’s attendance for the ‘Principles and Understanding of Dimensional Glass’ course, you’ll get a penalty] If you want to kill the professor who suddenly changed the classroom with a phase transition 2 minutes before the start of class, go ahead. Haha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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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why does everyone think I’m the Tower 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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