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5

       

       [으음, 뭔가 아쉬운데···.]

       

       “또 무슨 짓을 하시려고?”

       

       [그냥 무기만 고르고 하교하는 건 아쉽지 않아요?]

       

       

       아쉽기는 무슨.

       

       

       “어차피 시간은 많은데요. 아카데미는 3년이나 남아있고···.”

       

       [아뇨! 3년은 허상일 뿐! 사실상 1년짜리 아카데미에요···!]

       

       “그건 그렇지만···. 그렇게까지 급할 필요는 없다고 보는데요. 매일같이 소재가 나올 것도 아니고.”

       

       

       작가님의 말이 맞긴 하다.

       

       아카데미 소설의 숙명.

       

       소설 중후반부가 되면, 아카데미를 벗어난다···!

       

       그리고 보통 그건 아카데미물 클리셰를 모두 소진한 2학년 초반.

       

       그걸 내가 모를 리가 없지.

       

       그래도 하루 만에 에피소드 두 개를 소진하는 건 조금 페이스가 빠른데?

       

       ···냄새가 난다, 냄새가.

       

       뭔가 살짝 목소리가 떨린 것 같기도 하고.

       

       

       “어제 몇 화 썼어요?”

       

       [어? ···가, 갑자기 그건 왜요?]

       

       “비축분, 쌓아둔 거 맞죠?”

       

       [···.]

       

       

       역시.

       

       아무래도 생각 없이 연참을 갈긴 모양이다.

       

       그런데 연참을 하고 보니 당장 내일 쓸 소재도 동났겠지.

       

       지금 당장 소재가 필요하니 급하게 땜빵할 소재를 찾아다니는 게 분명하다.

       

       

       “괘씸한데요. ···흐음, 어떻게 할까?”

       

       [제, 제발. 독자님. 저 큰일 났어요. 소재가 필요해요!]

       

       “그러면 다른 사람들을 보면 되지 않을까요?”

       

       [아악, 독자님 보는 거 말고는 조금 힘들다고요! 알면서! 제발 부탁이에요!]

       

       

       우리 작가님은 항상 뇌를 거치지 않고 행동하는 게 문제라니까.

       

       마음 같아서는 괘씸해서 도와주고 싶지 않지만, 실제로 그렇게 행동할 수는 없다.

       

       작가님이 내 시야를 벗어나 다른 사람들을 직접 확인하는 건 생각보다 기력을 소모한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고.

       

       결국 작가님이 절필해버리면 내가 훨씬 손해라고.

       

       소설 속 세상을 제 마음대로 주물럭거리는 작가님이 갑자기 손을 놓는다면 어떻게 될까.

       

       세계가 멈춘다던가? ···으, 생각하기도 싫네.

       

       결국 살짝 한숨을 내쉬고는 작가님의 말을 수락했다.

       

       

       “어쩔 수 없네요. 이번 한 번뿐입니다.”

       

       [와아! 역시 독자님! 사랑해요!]

       

       “대신 다음번에도 생각 없이 연참하면 혼나요.”

       

       [네!]

       

       

       그러고보니 연참이라고 하니 드는 의문점 하나.

       

       소재가 발굴되지 않았을 때, 작가님은 어떻게 할까?

       

       큼직한 사건이 터지면 그걸로 며칠 우려먹는다고 해도, 공백이 생기지 않을 수는 없다.

       

       아무리 아카데미라도 1년 내내 사건이 터지지는 않을 텐데?

       

       그렇게 넌지시 물어봤더니, 시원스러운 대답이 돌아왔다.

       

       

       [휴재하는데요?]

       

       “···네?”

       

       [어차피 비정기 연재니까 괜찮아요!]

       

       

       괜찮긴 뭐가 괜찮아.

       

       갑자기 불안감이 밀려 들어왔다.

       

       비정기 연재로 한두 편씩 나오다 죽어버린 나작소들의 기억이 아른거렸다.

       

       아, 안 돼!

       

       

       “좋아, 해보죠. 아카데미의 초반 전개라, 뭐가 있었지···?”

       

       [대련도 있고, 던전 공략도 있죠?]

       

       “대련으로 갈까요?”

       

       

       던전 공략 같은 경우는 나중에 충분히 써먹을 수 있다.

       

       하지만 여러 번 우려먹으면 맛이 없어지는 소재.

       

       그에 반해 대련은 여기저기 들어갈 장소가 많아.

       

       소재에 매일같이 허덕이는 작가님을 위해서라면 대련이 제격이다.

       

       

       [좋아요! 그럼 바로 시간표를···.]

       

       

       잠깐의 시간이 지난 후.

       

       잠시 기다리라며 교무실로 사라졌던 클레어가 다시 교실로 돌아왔다.

       

       

       “미안하다. 오늘은 일찍 끝내 줄 예정이었지만, 계획이 변경되었어. 잠깐만 시간을 내줬으면 좋겠군.”

       

       “네에? 여기서 끝이라고 하셨잖아요?!”

       

       “그럴 예정이었는데, 무슨 일인지 학생들의 수준을 비교해 보라는 이야기가 나와서 말이다. 친목 도모를 겸해서 대련을 하라더군.”

       

       

       학생들이 앓는 소리를 내었다.

       

       그야 그렇지.

       

       첫 수업이라고 오늘은 일찍 하교시켜주겠다고 했는데 추가로 수업 시간이 생겼으니까.

       

       불평하지 않는 게 무리지.

       

       그 사실을 클레어도 알고 있기에 쓰게 웃고 있을 뿐이었다.

       

       

       “체육복을 입고 연병장으로 나와라. 금방 끝나도록 할 테니, 조금만 도와줬으면 좋겠군.”

       

       “네에···.”

       

       

       학생들도 어쩔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포기한 모양이다.

       

       다들 탈의실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음, 역시 가슴은 이래야···.]

       

       “···뭘 그렇게 봐요?”

       

       [제가 만든 가슴이요.]

       

       

       너무 당당한 거 아냐?

       

       주변에 여학생들이 옷을 갈아입고 있어서 그쪽에 최대한 시선을 두지 않고 옷을 갈아입으려고 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공격이 들어왔다.

       

       설마 내가 보여지고 있을 줄은···.

       

       다른 사람들을 신경 쓸 여유도 느끼지 못하고, 다급하게 체육복으로 갈아입었다.

       

       

       [아아. 아쉽다. 더 보고 싶었는데.]

       

       “···.”

       

       

       도대체 뭐라고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네.

       

       여학생들의 옷을 보지 않기 위해 한참을 뭉그적거리고 있던 탓일까.

       

       어느새 학생들이 모두 사라진 탈의실을 빠져나왔다.

       

       

       “좋아, 모두 모였군. 어디, 총원이 20명이니···. 좋아. 두 명씩 짝을 짓도록.”

       

       

       어?

       

       당황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들 어색하지만 서로 짝을 만들고 있었다.

       

       친목 도모를 겸해···그런 뜻이었구나.

       

       그런데 나는 친해진 사람이 없었는데?

       

       

       [헤헤, 아카데미 소설에선 짝을 짓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아서요! 저도 해보려고요.]

       

       

       작가님이 내 눈앞에 있었다면 머리통을 움켜잡고 이리저리 흔들었겠지.

       

       목소리만 들리는 게 정말 애석할 따름이다.

       

       다급하게 시우가 있던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자, 창을 든 금발의 여학생이 그를 향해 다가가는 것이 보였다.

       

       아, 안 돼···!

       

       체육복 안쪽에 혹시 몰라 입어둔 토시의 실을 살짝 풀어냈다.

       

       무언가 말을 꺼내기 위해 입을 열고, 걸음을 한 발짝 내딛는 순간에···쓰러트린다!

       

       지금!

       

       

       “꺄악?!”

       

       

       콰당탕, 하고.

       

       실에 발이 걸려 넘어진 그녀에게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사이 재빨리 그의 근처로 걸어갔다.

       

       

       “저기, 실례가 안 된다면 같이 짝을 지어도 될까요?”

       

       “···나?”

       

       “네. 후후, 부끄럽습니다만 아직 친해진 사람이 없어서요.”

       

       

       제발, 제발, 제발···!

       

       모르는 사람이랑 짝을 짓는 것만큼 어색한 건 없다고.

       

       그, 그러고 보니 남자들은 여자가 올려보는 애교에 뻑 간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여자랑 엮여본 적이 없으니 그게 진짜인지도 모르겠다.

       

       정말, 정말로 본의가 아니지만.

       

       실눈이라 수상해 보이는 거 말고는 나도 예쁜 미소녀다.

       

       가슴까지 내려오는, 약간 웨이브 진 짙은 검은색의 머리카락.

       

       거유와 평유 사이에서 거유쪽으로 기울어진 크기의 가슴.

       

       매혹적인 붉은 눈동자에 웃음이 매력적인 여자.

       

       이 녀석도 남자라면, 이 정도의 미소녀가 두 눈 꾹 감고 애교를 부리면 넘어오지 않을까?

       

       어차피 시우랑 친해져야 하는 건 기정사실.

       

       친해져야 하는 시우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붙잡기 vs 모르는 사람이랑 짝짓고 어색한 시간 보내기?

       

       무조건 전자지!

       

       좋아, 창피함을 무릅쓰고 한번 시도해 보는 거야.

       

       

       “저와 같이, 짝을 짓지 않으시겠어요?”

       

       [우와, 꼬리친다···.]

       

       

       닥쳐요, 작가님.

       

       살짝 허리를 숙이고, 여기서 눈웃음을 짓는다!

       

       어떠냐···!

       

       화룡점정으로 살짝 고개 갸웃거리기까지!

       

       반할 것 같지! 같이 대련 하고 싶지! 응?!

       

       ···뭐야, 왜 반응이 없어?

       

       

       “이상하다···.”

       

       “하, 할 게요! 하겠습니다!”

       

       

       으음···?

       

       여성에게 관심 없는 타입의 주인공이었나, 싶어 실패했나 생각했는데.

       

       갑자기 다급하게 수락의 의사를 밝혔다.

       

       뭐지.

       

       나야 어색하지 않으니 좋지만.

       

       

       “그럼, 잘 부탁드려요.”

       

       

       마지막으로 서비스해줄까.

       

       그를 향해 싱긋 웃어주었다.

       

       어때, 예쁘지.

       

       

       

       ***

       

       

       

       “꺄악?!”

       

       

       내게 다가오던 학생 한 명이 갑자기 바닥에 나뒹굴었다.

       

       커다란 소리가 나서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내 눈앞에 서 있는 여성.

       

       그래, 아르테 이시스. 그녀다.

       

       

       “저기, 실례가 안 된다면 같이 짝을 지어도 될까요?”

       

       “···나?”

       

       

       그럴 리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무심코 뒤를 돌아보았다.

       

       제발 내가 아니었으면 해서.

       

       

       “네. 후후, 부끄럽습니다만 아직 친해진 사람이 없어서요.”

       

       

       친해진 사람이 없으면 친해지러 가라고!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시우에게 그럴만한 담력은 없었다.

       

       손에 들고 있는 단검이 너무 신경 쓰였으니까.

       

       따분한 건지 허공에 던졌다 잡아채는 행동을 반복할 뿐이었지만···.

       

       그녀를 수상하다고 여기고 있는 시우에게는 섬뜩한 행동이었다.

       

       

       “저와 같이, 짝을 짓지 않으시겠어요?”

       

       

       이걸 받아들여야 하나?

       

       시우의 머리가 인생에서 이렇게 활발하게 활동한 적이 있었을까.

       

       수많은 시뮬레이션이 시우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 순간, 아르테가 얼굴을 내게 가까이 가져왔다.

       

       살짝 올려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녀.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예쁜 여자의 귀여운 애교라고 받아들일 법한 행동이다.

       

       하지만 나는 속지 않아.

       

       분명 내게 무슨 목적이 있어서 다가오는 게 분명하다.

       

       그 증거로, 봐라.

       

       눈웃음을 짓고 있는 것 같은 실눈 사이로 언뜻 보이는 저 눈동자.

       

       나를 꿰뚫어보는듯한 저 눈을.

       

       좋아, 여기선 거절을···.

       

       

       “이상하다···.”

       

       

       거절하려고 마음먹은 그 순간.

       

       그녀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지고, 오른손에 들고 있는 단검이 햇볓에 반짝였다.

       

       그 얼굴을 본 순간 시우의 머릿속에 있던 시뮬레이션 결과가 모두 지워져 버렸다.

       

       

       “하, 할 게요! 하겠습니다!”

       

       

       어느샌가, 시우는 다급하게 외치고 있었다.

       

       거절한다면 한숨 자는 순간 더 이상 일어날 수 없을 것만 같아서.

       

       

       “그럼, 잘 부탁드려요.”

       

       

       싱긋 웃는 그녀의 얼굴이, 마치 악마의 웃음 같았다.

       

       너는 벗어날 수 없다는 듯한 표정.

       

       시우는 생각했다.

       

       한동안 잠자긴 글렀다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외모는 자기객관화가 힘들대요

    그래도 걱정하지 마세요

    아르테는 예쁩니다

    정말루요

    그 증거로 아직 완성되지 못한 표지를 내세우겠습니다

    보지는 못했지만 예쁠 예정이에요

    다음화 보기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실눈이라고 흑막은 아니에요!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Why are you treating only me like this!

I’m not suspicious, believe me.

I’m a harmless person.

“A villain? Not at all.”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