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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

       지금으로부터 60년 전.

       

       

       ‘대륙전쟁’이라 불리는 거대한 전쟁이 있었다.

       

       

       자그마치 대륙의 절반을 황폐화 시키고,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그 전쟁의 시작은 마왕의 발호였다.

       

       

       마족과 마수들의 손톱에 왕국들이 명운을 다 했고, 그 터전을 잃은 인간들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다.

        

       

       전쟁은 10년 동안 이어졌다.

       

       

       귀족과 평민, 남자와 여자 구분 할 것 없이 모두가 마족의 침략에 대응했다.

       

       

       심지어는 10살이 채 되지 못한 아이들마저 무기를 들고 일어났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혹은 가족을 지키기 위해.

       

       

       대륙의 모든 인류와 이종족들을 공포에 빠트린 전쟁이었다.

       

       

       파라몬 역시 그 전쟁에 참전 했다.

       

       

       그는 명망 높은 기사였으며, 또한 제국의 귀족이었다.

       

       

       그의 나이가 40이 다가오기도 전 그는 검술의 극에 이르렀다 칭해지는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올랐다.

       

       

       제국의 역사를 뒤져 봐도 그 보다 일찍 경지에 이른 사람은 없었다.

       

       

       마수와 마족 따위 그의 검이면 얼마가 되었든 베어낼 수 있다 생각했다.

       

       

       그의 오만은 시리고 아픈 현실로 돌아왔다.

       

       

       그가 지키던 영지민들이 사지가 찢겨 죽어 나갔으며, 그를 따르던 기사, 병사, 하인까지 구분 없이 모두 비참하게 죽어 갔다.

       

       

       약자를 수호하며 제국의 방패가 되겠다 맹세했던 그의 검은 어느 것 하나 지켜내지 못했다. 

       

       

       전쟁이 지속될수록 곁에 있던 사람들이 사라져갔다.

       

       

       자랑스러웠던 소드 마스터의 경지가 원망스러웠다.

       

       

       강하기 때문에 동료들과 함께 전사하지도 못했다.

       

       

       그렇다고 모든 동료들을 구할 만한 힘도 존재하지 않았다.

       

       

       한 사람의 힘은 수많은 마족과 마수를 막기엔 턱없이 부족했으니까.

       

       

       빌어먹을 검술을 원망하며 베어내고 또 베어냈다.

       

       

       심지어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그의 동료들마저도.

       

       

       미숙한 지휘 아래 스러져갔던 수많은 부하들은 전쟁이 끝나고서도 그와 함께했다.

       

       

       한 명 한 명의 최후가 매일 밤 그의 꿈속에 나타났다.

       

       

       같이 말을 타고 달리던 동료들의 부서진 검들이 그의 꿈속으로 박혀 들었다.

       

       

       저주같이 느껴지던 검을 손에서 놓았다.

       

       

       아무것도 지켜내지 못한 검 따위.

        손에 쥐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방황하며 전 대륙을 돌아다녔다.

       

       

       그들이 죽은 곳으로 가 하염없이 조각상을 깎아내었다.

       

       

       그들의 얼굴이 완성되어 가며 깎여나간 돌 조각들은 더 없는 슬픔이 되어 온몸에 박혀 들었다.

       

       

       인간에게 주어진 축복 중에 망각이란 것이 있다 했던가.

       

       

       얼굴을 떠올리려 그 축복이란 것을 수도 없이 찢어 내었다.

       

       

       그럴수록 슬픔과 고통은 심해져 갔지만 그것들은 파라몬을 멈춰 세울 수 없었다.

       

       

       스러져간 그들을 기억해야 했기 때문이다.

       

       

       조각상이 그들처럼 쓰러지지 않기를 바랐다.

       

       

       동료였던 마법사들에게 부탁해 전 재산을 털어 결계를 만들었고, 몬스터의 눈에서 그들을 숨겼다.

       

       

       아마 경지에 오른 실력자가 아니고서야 조각상들을 찾기는 불가능하리라.

       

       

       그런데 오늘.

       

       

       흰머리를 한 청년이 찾아왔다.

       

       

       평범한 사람의 마나를 가진 그는 아무리 살펴보아도 기사나 마법사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결계를 찢고 들어온 것일까?

       

       

       어떻게 그의 감각을 속이고 접근한 것일까?

       

       

       그 청년은 이윽고 놀라운 말들을 풀어내었다.

       

       

       팔이 없이 태어났던 기사의 이야기를 하였고, 마족의 손에는 죽지 않을 것이라며 절벽에 몸을 던진 기사의 이야기를 하였다.

       

       

       짐이 되기 싫다며 홀로 눈 밭에 남았던 어린 병사의 이야기를 하였다. 

       

       

       심지어는 가문의 문장에 푸릇한 잎사귀를 달고 싶다며 남몰래 이야기 하던 수하의 이야기 역시 알고 있었다.

       

       

       얼굴과 최후만을 기억하며 자신조차 잊고 살았던 이야기였다.

       

       

       그것은 사기꾼이나 미친놈이 풀어내는 헛소리가 아니었다.

       

       

       수많은 사람을 기억해야 했던 그의 눈은 고작 그런 것에 속아 넘어갈 정도로 약하지 않았다.

       

       

       저것들이 사실이라는 걸 알았기에 망치가 바닥에 있는 것이겠지.

       

       

       평생을 손에 쥐었던 망치가 스스로 놓은 것이 아닌 떨어져 나간 것은 처음이었다.

       

       

       ***

       

       

       “쯧쯧쯧….영감 이런 쓸데없는 짓일랑 집어치워.”

       

       

       “….”

       

       

       “거 이미 돌아가신 망자들 붙잡아 놓고 뭐 하는 짓이냔 말이야.”

       

       

       “내가 그들을 붙잡았다는 말인가?”

       

       

       “영감 때문에 망자들이 못 가고 있어.”

       

       

       내 입에서는 연신 안타까움에 혀를 차는 소리가 나왔다.

       

       

       이미 바라던 것들을 이루어낸 영혼들이었다.

       

       

       이미 성불해야 할 영혼들이란 말이다.

       

       

       “그대가 망자들이 이곳에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안단 말인가?”

       

       

       “참나….아직도 못 믿어? 어디 보자.”

       

       

       딸랑 –

       

       

       “음….그쪽 이름은 틸버그?”

       

       

       노인의 표정이 더없이 딱딱해졌다.

       

       

       그리운 감정을 숨기듯 딱딱해진 얼굴엔 어느 감정 하나 침투하지 못했다.

       

       

       “자기 때문에 영감몸에 생긴 상처가 미안하다는 구만.”

       

       

       “…..”

       

       

       “이쪽에 있는 양반은 또 왜 이렇게 어린 나이에 망자가 되었누….”

       

       

       노인의 눈이 내가 바라보고 있는 허공으로 향했다.

       

       

       “영감이 건네준 단검으로 기어이 한놈을 죽였다는군.”

       

       

       “….”

       

       

       “영감, 이래도 못 믿겠어? 하나하나 잡고 다 말해 줘?”

       

       

       굳었던 노인의 입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이 진정 이곳에 있는 것인가?”

       

       

       멍하니 허공을 보는 노인의 눈은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떨리고 있었다.

       

       

       “내가 만든 조각상 때문에 떠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인가?”

       

       

       노인의 목소리에서 슬픔과 아픔이 느껴졌다.

       

       

       그에 동조하는 영혼들의 울음이 들려왔다.

       

       

       감정들이 내 것이라도 된 듯 머리를 어지럽게 만들었다.

       

       

       노인의 음성이 다시 한번 허공을 맴돌았다.

       

       

       “그대들은 떠나라. 내가 그대들을 기억할 것이다.”

       

       

       쉼 없이 떨리는 목소리가 또 다른 허공을 향해 나아갔다.

       

       

       “빌레노프야! 떠나거라! 후손들에게 월계수에 대해 전해 주겠다.”

       

       

       노인의 목소리는 그칠 줄을 몰랐다.

       

       

       그가 기억하는 모든 사람의 이름이 나오고 있었다.

       

       

       소중하게 간직했던 기억들과 함께.

       

       

       “그대들이 못 이룬것은 내가 모두 이루겠다. 모두 떠나거라! 다시는 조각상을 만들지 않겠다.”

       

       

       노인이 하는 말들을 방해할 수 없었다.

       

       

       무당이 하는 일이란 게 이런 것이다.

       

       

       망자와 산자의 한을 풀어 주고, 바른길을 찾아주는 일.

       

       

       저 노인이 한평생을 쌓아온 업과 염이 풀리려면 모든 걸 내려놓는 수밖에 없었다.

       

       

       저렇게라도 모두 풀어내고 바른길을 찾는다면 그것이야말로 다행인 일.

       

       

       하지만 애석하게도 노인이 쏟아 내는 말 중에 맞는 말은 단 하나도 없었다.

       

       

       “쯧쯧….이따위 조각들이 뭐라고….그리고 여기 있는 영혼들은 이미 해야 할 일을 다 했어.”

       

       

       고작 돌로 만든 조각상일 뿐이다.

       

       

       정성과 감정이 가득 얽혀 있었지만 이따위 것으로 망자들을 강제로 잡아 둘 수는 없었다.

       

       

       “그럼 무엇 때문에 저들이 여기에 묶여 있단 말인가?”

       

       

       산자의 한은 산자가 풀어 줄 수 있다.

       

       

       하지만 망자의 한과 얽혀 있다면 그것이 바로 내가 있는 이유였다.

       

       

       “영감 때문이야.”

       

       

       딸랑 –

       

       

       방울이 다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어느 누구도 영감을 원망하지 않아.”

       

       

       딸랑 –

       

       

       “그딴 조각을 깎는 게 아니라 행복하기를 바라지.”

       

       

       딸랑 –

       

       

       방울 소리를 따라 영혼 하나가 나에게 다가왔다.

       

       

       잠시 몸을 기대듯 나에게로 스며드는 영혼.

       

       

       나의 말투가 다시 한번 변하며 망자가 생전에 지녔던 버릇들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말을 하는동안 취하는 모양새며 특유의 억양과 표정까지 망자의 것과 똑같았다.

       

       

       “참나…고지식한 단장 아니랄까 봐 궁상떨기는… 팔 하나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이 그렇게 마음에 걸렸소?”

       

       

       “프…플라츠? 자네인가?”

       

       

       딸랑 –

       

       

       또 다른 영혼에 나에게 몸을 기대었다.

       

       

       “단장님! 고기랑 술 좋아하시잖습니까? 그런 것 좀 먹고 사십쇼.”

       

       

       “알라드….!!”

       

       

       딸랑 –

       

       

       “거, 단장이랑 말타고 달릴 때 재밌었는데 말이오. 껄껄….”

       

       

       “타일라! 내 친우여…! 자네가 맞는가?”

       

       

       딸랑 –

       

       

       많은 영혼들이 나에게 몸을 맡기며 하고 싶은 말들을 쏟아 내었다.

       

       

       어느 하나 따듯하지 않은 감정이 없었다.

       

       

       어느 한 사람도 노인을 안타까워 하지 않는 영혼이 없었다.

       

       

       그리고 그들이 이승에 남아 바라던 것은 하나였다.

       

       

       “좀 행복하게 사십쇼.”

       

       

       “아아….아….”

       

       

       노인의 얼굴이 부서질듯 일그러졌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그들을 기억해주는 것도.

       

       

       복수를 해주는 것도 아니었다.

       

       

       자기가 행복하기를 바랐다는걸 깨달았기에 저런 표정이 나오는 것일 테지.

       

       

       산자와 망자가 서로가 가진 감정들을 공유했다.

       

       

       서로 빗겨 간 바램들이 드디어 제자리를 찾았다.

       

       

       그리고 딱 거기서 내 힘이 모두 소진되었다.

       

       

       그래도 할 건 다했으니 다행이려나.

       

       

       딸랑 –

       

       

       방울 소리가 잦아들며 내가 푸들거리는 입을 간신히 열었다.

       

       

       푸닥거리를 하고 나니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바…밥 좀 주시오….”

       

       

       “자네는 누구인가….!!”

       

       

       파라몬의 얼굴이 안타까움으로 물들었다.

       

       

       전쟁통에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죽어서까지 음식을 찾는단 말인가.

       

       

       미처 기억하지 못한 동료가 있었단 사실이 못내 미안한듯했다.

       

       

       “당장 준비하겠네. 누구인가…!! 부디 이름을 말해주시게…!!”

       

       

       입이 푸들푸들 떨리며 간신히 말을 내뱉어냈다.

       

       

       “접니다….”

       

       

       “그래…그래…! 어서….!”

       

       

       “저라구요….”

       

       

       “미안하네…이것만으론 알아볼 수가 없네…!”

       

       

       “저라구요….크리스….”

       

       

       “크리스…..?”

       

       

       그 딱딱하던 얼굴에서 이런 표정이 나올 줄이야.

       

       

       결국 이름을 기억해내지 못했단 사실이 너무나 미안한 모양이었다.

       

       

       눈에 고이는 눈물이 그 감정을 대변해주는 듯했다.

       

       

       “아니….영혼이 아니고 나라고….”

       

       

       “…..”

       

       

       “어제부터 굶었….”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에….뭐 대충 이런거 하는 소설입니다.

    웃다가 무거웠다가….

    선작과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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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haman in a Fantasy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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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세계의 무당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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