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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

       “와아, 정말 엄청나게 커요!”

       

       제국 특수임무 아카데미에 도착해 마차에서 내리며 올리시아가 감탄했다.

       

       올리시아 말대로 과연 아카데미는 어마어마하게 넓었다.

       

       행사와 주요훈련을 하는 대연병장은 현생의 축구장 몇 개를 합쳐 놓은 정도의 크기. 그 연병장을 중심으로 본청을 비롯한 메인 건물들이 둘러서 있는 구조.

       

       그 뒤로도 여러 자잘한 시설들이 보이는 것이 어지간한 소도시와 맞먹는 규모였다. 심지어 부지 내에는 수풀이 우거진 야산까지.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높이 오 미터 가량의 단단한 담벼락이 감싸고 있었다. 아마 저기에는 외부의 침입을 막는 마법이 걸려 있겠지.

       

       “안녕하십니까, 디안 님. 교장님께 모시겠습니다. 혹시 동행은 여동생분이십니까?”

       

       마중나온 행정실장이 나와 비슷한 갈색 머리칼을 가진 올리시아를 보며 물었다.

       

       “하녀입니다.”

       “그렇습니까. 그럼 하녀분께서는 숙소로 이동해서 짐을 풀도록 하겠습니다.”

       

       올리시아를 태운 마차는 그대로 우리를 지나쳐 갔고 나는 행정실장을 따라 본청 건물로 향했다.

       

       “교장님. 후임자가 왔습니다.”

       

       집무실에서 나를 기다리는 건… 엥? 뭐야?

       

       서류 더미가 산더미처럼 쌓인 책상 뒤에서 시커먼 무언가가 천천히 일어났다. 다크엘프였다.

       

       루비색의 새빨간 눈동자에 짙은 흑발. 그리고 초콜렛처럼 부드럽고 어두운 피부. 특유의 늘씬한 키와 기다란 귀를 제외하면 엘프와는 전혀 다르다.

       

       훈련소장의 종족을 확인한 순간 라이너스가 내게 하던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다. 현직 교장은 개인의 기량은 매우 뛰어나나 조직관리 측면에서는 미흡하다 평가를 받고 있다고 했지.

       

       다크엘프는 암살자가 되기 위해 태어났다 해도 무방한 종족. 특유의 기민한 몸놀림과 극도로 발달한 오감, 천부적인 암기 사용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다만 종족 자체가 극소수인 데다 어두운 숲속에서 살기에 문명사회에서 높은 자리에서 일하기에는 여러 모로 제한된 점이 많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다크엘프가 이런 자리에 앉아 있는 거지?

       

       그리고 저 다크엘프는 좀 특이하다.

       새카만 흑단 같은 피부가 아니라 초콜렛처럼 다소 밝은 톤에 얼굴은 또 왜저리 순둥순둥하지?

       

       지금 나름 눈을 매섭게 뜨려 하고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뱀처럼 보이는 다크엘프들에 비하면 귀여운 고양이처럼 보일 지경이다.

       

       “안녕하세요, 교장님. 디안입니다.”

       

       인사를 건넸지만 다크엘프 교장은 가만히 선 채로 나를 쳐다보기만 했다. 내가 뭔가 마음에 안 드는 건가?

       

       “안녕하세요?”

       

       역시 묵묵부답 눈만 말똥말똥. 왜 저래? 교장의 침묵이 길어지자 행정실장이 헛기침을 했다.

       

       “교장님. 후임 교장입니다. 황성에서 언질을 받은.”

       “알고 있어. 그냥… 어떻게 생긴 인간인지 자세히 본 것뿐이야.”

       

       그제서야 다크엘프 교장은 뭐라고 웅얼거리면서 나를 위아래로 살폈다.

       

       “안녕하세요, 교장님. 디안이라고 합니다.”

       “나는 키르린 네마라. 그런데, 과거에 무엇을 했지? 어떤 경력을 가졌기에 황성에서 너를 라이너스 경의 대리자로 보낸 거야?”

       “황성에서 알려주지 않았나요? 그렇다면 저도 말하지 않겠습니다.”

       

       라이너스에게 듣기로 내가 황성을 떠나면서 황성에서는 내 모든 기록을 기밀로 넘겼단다. 선전용으로 써먹으려고 했는데 도망쳤으니 대외적으로 이미지가 영 안 좋게 비춰질 것을 우려해서라고.

       

       그러니 황성에서 후임교장이라는 자의 이력서를 보내지 않았다면 나도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는 거다. 아마 나를 교수로 보내는 이상 내 경력 때문에 위계질서가 교란될 것을 우려한 조치겠지.

       

       “그래도 의외로 외모는 정상인데. 대륙의 영웅 라이너스 경을 대신해서 온다기에 최소 트롤이나 오크 정도의 덩치에 상의는 입지도 않고 수북한 가슴털을 잔뜩 드러낸 채 사슴 다리뼈를 질겅질겅 씹는 야만인인 줄 알았거든.”

       “오히려 저처럼 희멀건한 놈들이 오래 살아남는 게 전장이지요. 그런데….”

       

       잠시 생각하다가 말을 이었다.

       

       “네마라라면 제가 아는 그 네마라 일족이 맞습니까? 황성에 침투했던 암살조.”

       “그래. 그 네마라다.”

       

       그렇군. 이제서야 왜 다크엘프가 아카데미 교장으로 앉아 있는 것인지 모든 퍼즐이 맞춰진다.

       

       본디 다크엘프는 전쟁 동안 마왕군의 편이었다. 암살자로 활동하면서 아군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혔던 아주아주 골치 아픈 놈들.

       

       그러다 막 나와 라이너스가 드래곤 힌드라스타를 막아내 나란히 대위로 진급했을 때 황성에 다크엘프들이 침투한 일이 있었다.

       

       목적은 당연히 황제 암살. 그런데 실패했다. 암살에 투입된 네마라 일족의 변절 때문이었다.

       

       정확히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마왕군 수뇌부와 사이가 썩 좋지 않던 네마라 다크엘프가 함께 침투한 다른 다크엘프들을 모조리 죽여 버리고 일족과 함께 투항한 것.

       

       이것을 계기로 황제는 네마라 일족을 크게 치하했고 그 보은의 일환으로 일족의 다크엘프를 여기 아카데미 교장으로 임명한 것이리라. 여튼 황제의 약속은 지엄한 것이니까.

       

       “이거 영광입니다. 네마라 일족을 실제로 만난 건 처음이네요.”

       “그래…. 그리고 이게 마지막이겠지….”

       “예…?”

       “나는 이제 쫓겨나 일족들이 사는 숲으로 돌아갈 테니까…. 그리고 다시는 인간들의 세상에 나오지 못할 거고.”

       

       그러더니 갑자기 교장의 루비색 눈에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아이고, 저런….”

       

       그 모습을 본 행정실장이 나에게 겨우 들릴 만큼 작은 목소리로 한탄했다.

       

       “그, 아직 황성에서 연락을 받지 못하셨을 텐데요. 일단 저는….”

       “아니, 그만.”

       

       교장은 눈을 질끈 감았다 뜨고는 차가운 태도로 내 말을 잘라버렸다.

       

       “듣고 싶지 않아. 어차피 내 해임통보겠지. 뻔하다.”

       “저기, 일단은 저는 교장이 아니라요. 교수로 온 겁니다.”

       “당연히 그렇겠지…. 에엑?! 뭐라고?!”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내 말에 행정실장과 키르린 교장이 동시에 소리쳤다.

       

       “교장 자리는 너무 부담스러워서요. 2황녀님도 그렇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제국 안보실장님이요. 당신의 상사가.”

       “나 안 쫓겨 나는 거야?!”

       

       교장이 신이 나서 양팔을 번쩍 들자 소매와 옷 안쪽에서 비수와 올가미를 비롯한 각종 암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래도 다크엘프는 다크엘프라 이건가.

       

       “아이고, 이런. 아니, 손 대지 마. 위험한 물건들이야.”

       

       쪼그려 앉은 교장은 도와주려는 나를 제지하며 자신이 직접 암기들을 주워 들었다.

       

       “미안. 추태를 보였어.”

       “하하…. 괜찮습니다. 그럼 이제 저는 뭘 하면 되겠습니까?”

       “안 그래도 마침 공석이 있는데 잘 됐어. 행정실장과 이야기해.”

       

       교장의 말에 행정실장이 내 팔을 잡아 끌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디안 님.”

       

       집무실을 나오자 행정실장에 내게 머리를 숙이며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디안 님. 교장님 때문에 많이 당황하셨을 텐데.”

       “아뇨, 괜찮습니다.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으니까요. 그런데 교장님 너무 대놓고 기뻐하는 거 아닙니까?”

       

       내 말에 행정실장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황성에서 대륙의 영웅 라이너스 경을 후임자로 고민중이라는 소문을 듣고는 몇날며칠간 식음을 전폐했을 정도니 말 다했지요.”

       “예? 그렇게나요?”

       “교장님께서는 다크엘프의 숲으로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으십니다.”

       “왜요? 자리욕심이 많으신가 보죠?”

       “그건 아니고, 좀 복잡한 사정이 있습니다.”

       

       행정실장은 내게 키르린 네마라의 이력을 간략하게 이야기해 주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네마라 일족의 수장. 황성 침투사건 때 다른 다크엘프 일족을 배신하고 몰살시킨 장본인이다.

       

       이에 황제는 네마라 일족의 투항을 받아들이며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보답을 하는데 네마라 수장은 자신의 딸인 키르린을 막 신설한 여기 아카데미의 교장으로 임명해 달라 요구한 것.

       

       원래 마왕군의 편이었다가 변절한 이력이 있기에 당연히 엄청난 반대가 있었지만 황제는 체면상 이미 약속한 것을 무를 수 없어 일단 키르린을 데려오게 된다.

       

       황제도 설마 이런 얼토당토하지 않은 요구가 튀어나올 줄은 생각도 못했겠지. 뭐 땅이나 돈이나 그런 거나 예상했을 텐데.

       

       “교장님의 부친께서는 교장님이 여기 오셨을 때 아주 기뻐하셨답니다. 주류에서 소외되었던 다크엘프가 비로소 문명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게 된 것이라고요.”

       

       쉽게 말해서 시골 촌구석에서 검판사 자식 나온 격이라 이거잖아.

       

       “그러니 이제 이해가 가십니까? 교장님께서 왜 교장 자리를 내려놓고 숲으로 돌아가지 않으시려는 것인지? 그건 일족 전체를 실망시키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행정실장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대충 황성의 사정도 짐작이 가능해졌다.

       

       제국 특수임무 아카데미라는 중요기관인 만큼 안보실장인 2황녀는 황제의 약속으로 앉힌 저 다크엘프를 어떻게 쫓아낼지 고민을 하다 결국 라이너스라는 사기카드를 꺼내들게 된 것이다.

       

       마왕을 사살한 대륙의 구원자 라이너스라면 황제의 낙하산도 어쩔 수 없으리라는 게 계산이었겠지.

       

       그러나 하필 라이너스는 셀린느와 결혼해 애가 나올 마당이라 퇴직을 원하고 있었고 그러자 2황녀는 적당한 후임자를 구해오면 퇴직시켜 주겠다는 말도 안 되는 제안을 한 것. 이 세상에 라이너스를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이 대체 어디 있다고.

       

       그리고 또 때마침 내가 페렌치노 놈들과 한판 붙은 사실이 첩보부에 들어가면서 그게 나라는 것을 눈치챈 라이너스가 도움을 청하러 온 것이다.

       

       쉽게 말해서 회장님한테 큰 도움 주신 지인분의 따님이 낙하산으로 들어왔는데 회장님 자식인 전무가 그거 쫓아내려고 판을 꾸민 거 아냐? 이거 일이 아주아주아주 복잡하게 꼬여 있었구나. 이렇게나 꼬여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어쨌든, 디안 님께서 교장이 아니라 교수로 오셨다니 여러 모로 다행입니다. 교장님은 자리 보존할 수 있고 우리 아카데미에서는 훌륭한 교수님을 모시게 되었으니까요.”

       “그럼 저는 뭘 하면 됩니까?”

       “전투수석교수를 맡아 주십시오. 황성에서 교장 후보로 거론되셨던 만큼 능력은 이미 검증되었을 테니까요.”

       “그런 거 말고 그냥 말단 과목교수는 없습니까? 어려운 거는 하기 싫은데요.”

       “죄송합니다만 과목교수는 공석이 없습니다. 마침 전임 전투수석께서 막 사퇴하셨으니 그쪽으로 가시죠.”

       

       전투수석교수라…. 좀 애매하긴 한데 그래도 뭐 교장보다야 낫지. 라이너스와 셀린느를 생각해서라도 이 정도에서 타협하는 거다.

       

       “그런데 왜 전임자는 사퇴한 겁니까?”

       

       그러나 행정실장은 내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의미심장한 미소만 지었다.

       

       “살았다!!”

       

       막 걸음을 옮기는데 닫힌 문 안쪽에서 키르린 교장의 비명 같은 환호성이 들려 왔다. 우리가 아직 복도에 서있다는 것을 모르는 모양이다.

       다크엘프치고는 엄청 허당이네, 저 여자.

       

       그나저나 아까 쌓여 있는 서류를 보니 확실히 높은 자리라고 편한 건 아니다. 

       현생에서도 다들 노는 것처럼 보이는 기관의 장이나 CEO들도 사실은 엄청나게 바쁘지. 무조건 현장에서 땀흘려 뛰거나 하루 종일 사무실에 앉아 있는 게 일의 전부는 아니니까.

       이건 그 자리에 가보지 않으면 절대로 알 수 없는 사실이다.

       

       게다가 여기 아카데미의 규모로 봤을 때는 한가한 게 오히려 이상할 노릇.

       정말로 교장을 안 하길 잘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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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A Quiet Life

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A Quiet Life

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Quietly 은퇴한 조력캐는 조용히 살고 싶다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stead of causing chaos with my knowledge of the original work, I assisted the protagonist.

I successfully completed the story and now planned to retire and live peacefully.

However, it seems the protagonist still needs my help.

An academy professor? That’s nothing much.

But why is the state of the academy so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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