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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

       그렇게 진성은 주술에 빠져들었다.

       첫 도박판에서 크게 당첨을 딴 도박꾼처럼.

       첫 농사가 풍년을 맞이해 그 맛을 잊지 못하게 된 농부처럼.

       어쩌면 운으로 거액의 돈을 쥐게 된 상인처럼.

        

       그렇게 진성은 주술사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그 맹세는 세계가 전쟁으로 터져나가고, 그가 시체나 다름없는 몸을 이끌고 제 몸을 스스로 불태울 때까지 이어졌으니.

        

       시간이 되돌아와도 주술사의 길을 걷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주술에 수많은 얼굴이 있지만 단 하나의 몸뚱이를 가졌으니. 그것은 집착이라 하노라.’

        

       진성은 웃으며 냉장고에서 페트병 하나를 꺼냈다.

        

       페트병 안에는 마치 루비를 연상케 하는 빠알간 물이 찰랑거리며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고, 걸쭉하지만 어디 묻는 데 없이 황홀하게 자신의 향기를 빛으로 뿜어내고 있었다. 색이란 보석을 녹여 만든 물감과 같고, 향기는 오롯이 생명 그 자체를 담아 감미롭기 그지없다.

        

       피(血).

        

       혈관을 타고 생명을 구성하는 물, 피.

        

       피는 수많은 주술에서 사용하는 촉매였다.

        

       상징이라는 것은 마법에서도, 소환술에서도, 주술에서도 중요한 것. 그렇기에 점성술에서는 별에 상징을 붙이고 이름을 붙여 그 이름을 사용하였고, 마법 역시 원소와 그림에 그 의미를 붙여 마법진이라는 이름으로 이적을 행하지 않은가. 주술 역시도 재료에서 뽑아내는 상징을 이용해 발동하는 것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 재료는 순수하면 순수할수록 가치가 좋고, 같은 양을 썼음에도 더 강한 위력을 낼 수 있었다.

        

       그가 손에 들고 있는 이 피 역시 상등품.

       촉매 협동조합에서 인증한 2+등급의 피였다. 그 이상의 피가 같은 무게의 금값에 비견된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지금 그가 구할 수 있는 피 중에서도 가장 상등품이라 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이건 못쓰겠군.”

        

       진성은 이물질 하나 없이 순수한 데다가 처녀의 피라는 상징성까지 가미된 피를 그대로 다시 냉장고에 집어넣었다.

        

       

       * * *

       

         

       “나에겐 쓰레기가 필요해.” 

       

       촉매는 순수할수록 좋다.

         

       보석은 티가 없어야 한다.

       피는 주인 되는 자가 순결할수록 좋다.

       시체는 갓 죽은 것이 좋다.

       보물은 사념이 없어야 하고, 유물은 그 용도에 맞게 사용된 역사가 있어야 한다.

         

       그렇기에 진성이 바라는 촉매는 극히 이질적이라 말할 수 있으리라.

         

       그가 원하는 것은 쓰레기.

       정상적으로는 거래할 수 없는, 아예 거래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것.

       음식물로 따지면 손질하고 버리는 채소의 자투리요, 목재로 따지자면 자르며 나오는 톱밥.

         

       “아직은 용병이 될 수 없으니 쓰레기 사냥이라도 해야겠구나.”

         

       진성은 합장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곤 방 곳곳을 돌아다니며 입을 옷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집어 든 것은 검은 바지.

         

       콰득.

         

       진성은 자신의 약지를 깨물어 피를 내었다. 그러자 기이하게도 그저 가벼이 깨문 것임에도 불구하고 피가 쉼 없이 흘렀다.

       그는 제 손가락에서 나온 많은 피를 이용해 검은 바지의 오금 부분에 문양을 그리기 시작하였는데, 한자도 아니고 그림도 아닌, 어린아이가 휘갈겨 적은 것만 같은 문양이었다.

       그것은 무당이 부적을 그릴 때 사용한다는 전서체와도 닮았고, 더 나아가선 고대 중국에서 사용했다던 갑골문의 형상과도 닮았다.

         

       가장 윗부분과 가장 아랫부분에 새겨지는 가로줄. 그리고 그 사이로 가로지르는 한 줄기의 세로줄.

       그리고 세로줄 사이에 세워지는 시옷(ᄉ) 형태의 그림.

         

       그 한자를 일컬어, 무당 무(巫)라 한다.

         

       “땅에 닿기 위해선 다리가 굳건해야 하고, 그 다리를 움직이는 것은 단단한 뼈가 아닌 굽혀지는 오금이니, 그 걸음걸이 한 걸음 한걸음에 역사가 깃들 것이다.”

         

       고대 중국에서는 걸음걸이를 중요시했다. 그 때문에 몸을 다스리고 초월하기 위한 학문인 무공(武功)은 무기를 휘두르는 법보다도 더 먼저 걸음걸이를 가르쳤고, 도술을 배우는 이들은 천기를 읽고 부적을 쓰는 법보다도 먼저 땅을 밟는 방법을 가르쳤다.

       걸음걸이에 대한 집착은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가장 오래된 기록에 따르면 중국 최초의 세습 왕조인 하나라의 초대 국왕인 우왕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이 우왕은 곤의 아들이며 삼황오제에게 군주의 자리를 제수받았다고 하는데, 술법에 능통하고 도를 깨달아 걸음걸이로 온갖 신통력을 발휘했다고 하니 그 위용이 마치 초월자와 같았다고 한다.

         

       반대로 한반도에서는 걸음걸이보다는 그것을 이루는 요소에 더 집착했다. 한반도에서 몸으로 초월하고자 하는 이는 호흡과 다리의 박자에 집착하였고, 주술로서 초월하고자 하는 이들은 이동을 위한 수단이라는 것에 집착하였다. 소환술을 사용하는 이들은 땅과 하늘을 잇는 기둥의 기능을 중요시했으니, 이것이 바로 현대 대한민국 소환술의 근간이자 목적이 되었다.

         

       진성이 바지에 새긴 것은 바로 하늘과 땅을 잇는 중계기의 기능.

       무(巫)라는 한자는 하늘과 땅을 잇는 사람이라는 뜻을 품고 있으니, 중계기로 사용하는 상징으로서는 이만한 것이 없었다.

         

       “ॐ-”

         

       문양을 새긴 후 진성이 정신을 집중하자 문양은 서서히 공명하며 검은색으로 변해 바지 곳곳에 핏줄처럼 퍼져나가기 시작했고, 이윽고 오금 부분에 아주 작은 구멍만을 남긴 채 문양은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나머지는 가면서 준비하면 되겠구나.”

         

       진성은 바지가 완성되자 그것으로 갈아입고 창문을 열었다.

         

       그리고 창틀에 그대로 선 채 허공을 향해 한 걸음을 디뎠다.

         

       허공으로 향해 나아가는 다리는 이윽고 공기의 바다로 빠져들었고,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몸을 추락시키려 하였으나….

         

       끼익.

         

       그 순간 공간이 접혔다.

         

       그리고 진성이 나타난 곳은 저택의 뒤쪽에 있는 작은 동산.

       저택과의 거리는, 10리(4km).

         

       “ॐ-”

         

       한 걸음으로 10리를 넘게 이동하는 것.

       한반도의 주술사가 다리를 이동수단으로만 보고, 그 ‘이동수단으로서의 의미’를 극대화 시키기 위해 연구해 만들어진 상급 주술의 이적.

         

       많은 이들은 이 주술을 일컬어 축지법(縮地法)이라고 불렀다.

         

         

         

         

         

        * * *

         

         

         

         

       축지법을 이용해 뒷산에 도착한 진성은 눈을 감고 영감을 퍼뜨렸다.

       합장하고 서 있는 진성의 체내에는 바지에 새겨놓은 상징 덕분에 다리를 통해 땅의 기운이 흘러들어오고, 하늘을 통해서는 밝은 태양빛에 가려졌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별들이 그와 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서 있기를 약간.

         

       별이 별빛으로, 땅이 잡초의 흔들림으로 그에게 속삭였다.

         

        – 이곳에 있다.

         

       그 속삭임을 들은 진성은 번개같이 손을 뻗어 허공을 쥐었다.

         

       샤아아악!

         

       그가 허공을 쥐자 나온 것은 뱀 한 마리.

       검은색 바탕에 노란 띠를 두른 뱀은 보이지 않는 손에 붙잡힌 것처럼 허공에서 이리저리 몸을 비틀면서 비명을 질러대었다.

         

       “흑칠황장. 독사가 아닌 것이 조금 아쉽구나.”

         

       샤아악! 샤악!

         

       어느새 진성의 손아귀에 목덜미가 붙잡혀버린 뱀은 표독스럽게 울었다. 살고자 하는 의지가 강한 것인지 몸을 움직여 진성의 팔을 휘감아 조이려고 했지만, 주술을 익히면서 몸을 같이 단련한 미성년 시절의 진성의 몸은 뱀이 아니라 구렁이가 와도 압박감을 느끼지 않을 수준의 굳센 팔뚝을 가지고 있었기에 무용지물이었다.

         

       그는 물끄러미 뱀을 쳐다보더니 그대로 목을 비틀어 뽑아버렸다.

         

       뿌드득.

         

       머리를 잃어버린 뱀의 몸체는 머리를 잃었음에도 꿈틀대며 계속해서 진성의 팔을 조였고, 진성은 그것을 힘으로 풀어버린 후 껍질조차 벗기지 않은 채 그대로 입으로 가져갔다.

         

       까드득. 빠드득.

         

       맛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굳이 말하자면 훌륭했다.

       닭고기와 생선을 잘 섞어놓은 것을 시원한 회로 먹는 느낌이었다.

         

       뱀을 혐오하는 사람이 많아서 한국에서는 잘 소비하지 않지만, 세계 곳곳에서는 뱀을 식용으로 쓰는 나라도 얼마든지 있으며 개중에는 맛이 훌륭하다면서 생으로 먹는 사람도 심심찮게 있었다.

       당장 70~80년대 한국에서는 뱀을 생으로 먹으면 정력이 좋아진다는 속설 때문에 산에서 뱀을 잡자마자 그대로 회를 떠서 먹는 일도 많았고, 그러다가 뱀 기생충에 감염이 되어서 개고생을 하는 사례도 잦았다.

         

       그리고 그게 바로 진성이 지금 뱀을 생으로 뜯어먹는 이유였다.

          

       

       “이건 아니구나.”

         

       뱀을 다 뜯어먹은 진성은 바닥에 떨어져 아가리를 쩍 벌리고 있는 뱀 머리를 주워 주머니에 집어넣고는 다시 눈을 감았다.

         

       샤아아악!

         

       다음에 잡힌 것은 매콤한 향을 풍기고 있는 갈색의 뱀. 뱀은 아카시아를 연상케하는 코를 약하게 찌르는  독뱀 특유의 냄새를 품고 있었고, 검은 갈색의 바탕에 옅은 갈색의 줄무늬를 품고 있는 뱀에는 커다란 몸만큼이나 거대한 사나움이 묻어나왔다.

         

       “칠점사.”

         

       한 번 물리면 일곱 발자국을 걷기 전에 죽는다는 독사.

       칠보사라고도 불리는 이 끔찍한 뱀은 과거 산 깊숙한 곳에서 수련을 쌓던 초보 무인들에게는 끔찍한 악명을 가지고 있는 뱀이었고, 현대에 이르러 해독 마법 아티팩트가 널리 보급된 지금에도 주의를 표해야 하는 녀석이었다.

         

       뿌드득!

         

       진성은 뱀의 목을 그대로 돌려버린 뒤 아까처럼 생으로 씹어먹기 시작했다.

         

       아까의 뱀과는 다르게 매콤한 향이 양념처럼 그의 코에 맴돌았고, 마치 고추냉이에 회를 찍어 먹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한 근은 족히 넘어 보이는 뱀을 그대로 앉은 자리에서 해치웠다.

         

       그리곤 바닥에 떨어진 뱀의 머리를 줍곤 중얼거렸다.

         

       “당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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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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