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Please report if you find any blank chapters. If you want the novel you're following to be updated, please let us know in the comments section.

EP.50

       아주 잠깐의 기 싸움 끝에, 유하늘은 옷장 안에 걸려있던, 자신이 골라준 사라의 검은 티셔츠를 확보할 수 있었다. 빼앗기지 않으려고 그 티셔츠를 꽉 끌어안은 채 유하늘이 말했다.

        

       “……애초에 이런 게 목적이었어?”

        

       “‘이런 거’라니 뭘 말하는 건데?”

        

       신소희는 그런 유하늘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옷장 안에서 옷을 골랐다.

        

       “그, 그러니까……”

        

       막상 신소희의 질문에 유하늘은 대답이 궁해졌다.

        

       유하늘은 사라가 좋았다. 물론, 아직 완벽한 연애 감정이라거나, 연인이 되고 싶다는 단계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연애라는 것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유하늘 입장에서는 ‘연애는 사랑하는 사람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지금 자신이 사라에게 느끼고 있는 것이 사랑인가, 하는 것에는 아직 의문이 있었다. 몸이 닿아있으면 기분이 좋았고, 자기 행동에 당황하는 사라가 귀엽게 느껴졌다. 사라의 예쁜 얼굴도, 은근히 정 많은 성격도 좋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귀자고 말할 용기는 아직 없었다.

        

       그러니까……지금 유하늘이 사라에게 가지고 있는 감정을 굳이 정의해보자면, 독점욕이다. 이게 사랑하는 감정인지, 좋아하는 감정인지 확신은 못 하지만, 그래도 일단 사라와 제일 가까운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음습한 감정을, 비록 친해졌다고는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말로 표현하기에는, 아직 용기가 부족했다.

        

       신소희는 그런 유하늘을 한번 흘끗 쳐다본 뒤, 옷장 안에서 셔츠를 하나 꺼냈다. 사라의 교복 셔츠였다. 아무리 봐도 신소희가 입기에는 너무 작은 치수의 교복 셔츠.

        

       신소희는 그 교복 셔츠에 얼굴을 묻더니 바로 숨을 들이쉬었다. 

        

       “하아, 냄새 좋네. 섬유유연제는 뭘 쓰는 걸까.”

        

       유하늘의 입이 딱 벌어졌다.

        

       “아앗!”

        

       “기왕 꺼낸 거 이걸로 입어야겠다.”

        

       신소희는 그렇게 말하면서 다시 한 번 셔츠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거! 지금 너가 하는 그 행동! 그것 때문에 온 거잖아!”

        

       유하늘이 신소희에게 삿대질하면서 소리쳤다.

        

       그리고 혼자, ‘앗’하면서 입을 막았다.

        

       세 사람의 눈이 동시에 샤워실을 향했다. 다행히, 샤워실에선 여전히 물 쏟아지는 소리만 들리고 있을 뿐이다. 아무래도 저 안까지 소리가 들어간 건 아닌 모양이었다.

        

       “그래. 이것 때문에 왔는데? 뭐 문제 있어?”

        

       신소희는 키 차이를 이용해 유하늘을 살짝 내려다보며 대답했다.

        

       …….

        

       잠깐의 침묵.

        

       “……어?”

        

       순간 신소희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는지, 유하늘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런 소리를 냈다.

        

       “그러니까, 이런 것 때문에 왔다고. 쟤랑 이래저래 가까워지고 싶어서. 아까 내가 허락받은 다음에 팔 껴안은 거 보면 모르겠어? 너는 아까 학교에서부터 계속 매달려있었으면서.”

        

       “아, 그, 나는, 그냥, 친구니까.”

        

       “하.”

        

       신소희가 웃긴다는 듯 짧은 웃음소리를 냈다.

        

       “그냥 친구라서 팔을 끌어안고 다니고, 아무렇지도 않게 입에 음식을 넣어주고, 주말에 같이 나가서 원피스를 입은 채로 팔에 몸을 비빈다고?”

        

       “비, 비비지는…… 그, 그리고 그건 사라가 사준 거니까!”

        

       ‘사라가 사준 것’이라는 소리를 들은 신소희의 눈이 더욱 가늘어졌다. 그녀는 그렇게 가늘어진 눈으로 유하늘을 한껏 째려보며 말했다.

        

       “……니가 고른 옷은 아니고?”

        

       “…….”

        

       당연히 본인이 골랐다.

        

       솔직히, 같이 데이트한다는 마음으로 고른 것이니 할 말도 없다.

        

       보이시한 복장의 사라는 그만큼 엄청나게 매력적이었다. 사실 어떤 옷을 입혀도 다 어울리는 아이가 아닐까? 유하늘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여기서 그런 생각을 내놓을 수는 없었다. 단번에 불리해질 테니까.

        

       “나는, 그러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내놓을 대답이 마땅히 있는 것도 아니었다.

        

       결국, 잠시 고민하던 유하늘은 될 대로 되라는 생각으로 외쳤다.

        

       “나는, 너한테서 사라를 지키려고 여기로 온 거야!”

        

       “그래, 덕분에 분위기가 깨져서 기분이 확 상하긴 했어.”

        

       신소희가 단박에 그렇게 말해서, 다시 한번 유하늘의 입이 떡 벌어졌다.

        

       “너, 너…….”

        

       “그래, 단둘이, 이 방에서, 저 침대에서, 이것저것 하려고 했거든.”

        

       거짓말이었다.

        

       신소희는 좋아하는 여자애와 처음으로 같은 방에 있다고 덮쳐버릴 수 있을 정도의 담력을 가지지는 못했다. 애초에 그 정도의 용기가 있었다면 진작에 근처 여자애 중 하나에게 고백해서 여자친구를 만들었을 테니까.

        

       무엇보다, 신소희는 드세 보인다는 주변의 평가와는 다소 상반되는 판타지를 가지고 있었다. 기왕이면 첫 연애는, 그러니까 좀 달달하고 풋풋했으면 좋겠다.

        

       어린 시절에 읽었던 연애 소설의 주인공들처럼 사귀게 된 뒤 첫 데이트에서 서로 거리를 두고 걷다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어깨를 스치고 움찔 떨고, 주춤거리며 서로에게 손을 뻗어 손가락 끝을 잡았다가, 마침내 손을 잡고, 팔짱을 끼고……

        

       첫 키스는 풋풋하게 입술과 입술만 닿게……

        

       ……아무튼, 나름대로 밟아 올라가고 싶은 단계가 있었다는 소리다. 만나고 일주일도 되지 않아 상여자처럼 고백을 박아버리고 바로 번쩍 들어 침대에 메다꽂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랬다. 가슴이 답답하다는 이유로 셔츠 단추를 풀고 다니면서도 주변 남자들의 시선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물론, 이건 신소희가 여자에게만 성욕을 느끼는 탓도 있었지만—마이페이스의 신소희였지만, 연애에 관해서는 어린 시절부터 꽤 까탈스러운, 일종의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는 소리다. 상대방이 신소희를 처음으로 상대하고 안하고는 별로 신경 쓰지 않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처음 느끼는 감정만큼은 첫사랑처럼 해나가고 싶었다.

        

       고작 주말 이틀을 보지 않았을 뿐인데 진도를 무슨 고속철도 타듯이 달려 나가는 두 사람만 아니었다면 오랜 시간 공을 들였을 것이다.

        

       ……꽉 끌어안고 자는 거라면 했을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사실 지금 이렇게 옷에 얼굴을 묻고 킁킁거리는 것도 쪽팔림을 무릅쓰고 온 용기를 짜내서 하는 행동이었다.

        

       다른 학교에 다니는 자신은 이 두 사람보다 사라에게 접근할 기회가 적었고, 적어도 학교 밖에서는 최대한 진도를 빼놔야 했으니까.

        

       그러니, 당연히 친구 집에서 잔다고 첫 경험을 할 생각은 없었다.

        

       물론 그런 말을 굳이 구구절절 유하늘에게 해줄 필요도 없었지만.

        

       “……너, 사라를 어떻게 생각하는 거야?”

        

       결국, 유하늘이 그렇게 물었다.

        

       “좋아하는데?”

        

       …….

        

       ………….

        

       침묵.

        

       너무나도 당당한 선언에 유하늘과 이수아는 넋을 잃었다.

        

       물론 신소희 입장에서는 완벽한 허세였다.

        

       사라 앞에서 당당하게 그런 선언을 할 용기는 없다. 혹시라도 거절당하거나, 정말로 사라가 여자한테는 관심 없는 이성애자일 수도 있으니까. 당장 유하늘과 이수아와 함께 팔짱을 끼고 다니는 것도 나름대로 현 상황을 타파하려는 계획이라고 이미 이야기를 들은 뒤였으니까.

        

       하지만 당사자가 아니라면—

        

       적어도, 잠재적인 경쟁자 앞이라면 당당하게 그렇게 말할 수 있었다.

        

       “그, 그러니까, 그건 이성적인 감정이야?”

        

       “이성적이라는 말이 왜 나와? 사라나 나나 같은 여자인데. 여자가 여자를 좋아하는데 어떻게 이성애적인 관점일 수 있어? 그냥 내가 동성애자인 거지.”

        

       연속으로 나오는 폭탄선언에 유하늘은 다시 한번 말을 잊었다.

        

       아니, 여기서 한 마디라도 잘못하면 그대로 나락이다.

        

       아무리 동성애가 공공연하고, 간혹 아이돌 그룹 내에서도 스캔들이 터지는 세상이긴 했지만, 동성애를 이상하다는 눈으로 보는 사람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보통 사상의 스탠스가 심각하게 한쪽으로 치우친 사람인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보통 그런 사람들은 사회에서 별로 환영받지 못한다. 그게 아무리 작은 그룹이라도.

        

       무엇보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세 명은 어쨌거나 사라에게 일반적인 호의 이상의 감정이 있는 아이들이었다. 자신의 마음을 확신하는 이는 한 명뿐이긴 했지만, 만약 나머지 두 명도 그 선을 넘게 된다면 신소희와 별로 다를 것도 없었으니까.

        

       “……그, 그렇구나.”

        

       결국 말문이 막힌 유하늘은 그렇게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나는 이 옷으로—”

        

       “……아, 그러고 보니까 나는 속옷 없어서 빌려야 하는데.”

        

       신소희가 당당하게 선언하듯 말하려다가, 유하늘이 갑자기 그렇게 말하더니, 무릎을 꿇고 앉아 옷장 아래의 서랍을 열었다. 서랍에는 아마도 사라가 입을 법한 속옷들이 색색이 늘어서 있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서랍을 향해 손을 뻗는 유하늘을 보고 기겁한 신소희가 입을 열었다.

        

       “아니, 그래도 속옷을 빌려 입는 건—”

        

       “동성 친구니까 괜찮아.”

        

       “아니, 동성 친구라도—”

        

       “‘동성 친구’니까 괜찮아.”

        

       똑같은 말을 두 번이나 반복하는 것을 듣고, 신소희는 말을 잃었다.

        

       얘도 정상은 아니구만.

        

       바로 얼마 전까지의 자신과 비슷했다. 그래도 시간을 두고 자신의 성적인 정체성을 고민하던 신소희와는 다르게 아직 완벽하게 받아들이지는 못한 모양이었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저돌적인 면도 있는 것 같고.

        

       그런 모습을 보는 신소희의 마음이 조금 조급해졌다.

        

       아무리 그래도 속옷까지 입겠다고 주장할 용기는 없다. 무엇보다 사이즈가 안 맞을 것이 분명하다. 유하늘과 사라는 몸집이 비슷하니 어떻게 맞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신소희는 아마 허벅지 즈음에서 더 이상 올라가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고민하던 찰나에—

        

       찰칵, 하고 문의 잠금장치가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샤워실 문이 열리고, 사라가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왔다. 샤워실에 들어갈 때 이미 옷을 들고 들어갔기에, 샤워실에서 나오는 사라는 이미 파자마로 갈아입은 뒤였다. 혹시라도 샤워 가운 같은 것을 걸치고 나오진 않을까 은근히 기대하고 있던 신소희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긴, 부자라고 전부 영화나 드라마 속 부자처럼 행동할 리는 없겠지.

        

       긴 머리를 수건으로 꾹꾹 짜내면서 나오던 사라는, 자신의 옷장을 멋대로 열고 있는 두 사람을 보고 발걸음을 멈췄다.

        

       “어……”

        

       손에 당당하게 셔츠를 들고 있는 신소희와, 속옷 서랍을 당당하게 열고 있는 유하늘을 본 사라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아, 사라야!”

        

       그때까지 두 사람의 말싸움에 끼어들지 않고 있던 이수아가,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사라를 불렀다.

        

       그녀의 오른손에는 헤어드라이어가, 왼손에는 빗이 들려있었다.

        

       “내가 머리 말려줄게!”

        

       !!!

        

       신소희와 유하늘의 머리 위에 보이지 않는 느낌표가 떠올랐다.

        

       “어, 그, 그래…….”

        

       두 사람을 보고 말을 잊고 있던 사라는, 얼른 이수아 쪽으로 걸어갔다.

        

       이수아는 신소희와 유하늘을 보고 빙긋 웃어 보였다.

        

       “…….”

        

       ……얌전해 보인다고 진짜로 얌전한 것은 아니다.

        

       두 사람은 이수아를 보고, 두 사람은 그 생각을 머리에 새겼다.

       

    다음화 보기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