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50

    TV소리가 공허하게 울리는 격리실, 나는 심심함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늦네에… 예린이….’

    요즘 예린이가 자주 오질 못해서 심심했다.

    그래서 심심풀이로 연구소 내부를 구경하면서 돌아다니는 도중, 새로운 격리실을 발견했다.

    연구소에 새로운 오브젝트가 입고된 것이었다.

    연구소를 돌아다니며 발견한 신규 오브젝트는 총 3점.

    각각의 신규 오브젝트에는 간략한 출처가 쓰여 있었다.

    ‘귀여운 강아지’가 찾아낸 2점, 그리고 다른 연구소에서 양도받은 1점이었다.

    예전에는 오브젝트는 정말 가끔씩만 들여왔던 것 같은데, 요즘은 심심하면 격리중인 오브젝트 숫자를 늘리고 있었다.

    그 중에 하나가 저 모래로 가득한 격리실에서 돌아다니는 징그러운 오브젝트였다.

    이름은 정말 이게 맞나? 싶을 정도로 아리송하게 지어져 있었다.

    <해골 거미.>

    이걸 거미로 봐야하나?

    거미가 아니라 손뼈 같은데….

    해골 거미는 거미라기보다는 뼈만 남은 손을 거미줄로 대충 묶어둔 것처럼 생겼다.

    사실 사람 손뼈라고 보기도 힘든 게, 손가락이 20개 넘었다.

    손가락을 거미의 다리로 본다면 다리 숫자가 이미 거미의 그것을 훨씬 뛰어넘어 버렸다.

    시간을 두고 관찰해보니 하는 짓이 약간 벌레 같은 느낌이긴 했다.

    모래를 파고들어가서 숨어 있다가 만만한 먹잇감이 지나가면 모래에서 튀어나와 습격을 했다.

    살점 하나 없는 손뼈가 굳이 사냥한다는 게 이상해서 지켜봤더니, 딱히 뭔가를 먹지는 않았다.

    그저 사냥에 성공하면 거미줄로 묶어서 모래 속에 파묻어두기만 할 뿐이었다.

    그 밖에도 거미줄을 펼쳐서 활공하거나, 거미줄을 쏘아보내기도 했다.

    개미 관찰하듯이 계속 관찰을 해보니, 조금은 거미 같아 보였다.

    징그럽게 생겨서 손으로 만져보는 건 스킵하고, 다른 오브젝트가 보관된 격리실로 향했다.

    이번 격리실은 다른 격리실과는 현격히 달랐다.

    마치 레이싱 서킷처럼 넓은 외부에 설치된 시설이었다.

    넓은 안뜰에 도로와 교차로 등을 구현해둔 격리실이었다.

    이 격리실에 격리 중인 오브젝트의 이름은 <완벽한 내비게이션.>.

    고풍스럽게 나무의 물결무늬를 잘 살린 내비게이션이었다. 

    고급 가구 같은, 예술 작품 같은 느낌이 드는 오브젝트였다.

    문제는 그게 3발 자전거에 붙어있다는 점이지만 말이다.

    격리실에 몰래 들어가서 3발 자전거 위에 올라타자, 전원도 연결되어있지도 않은 내비게이션이 저절로 켜졌다.

    “목적지를 말씀해주세요.”

    내비게이션에서 깔끔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내비게이션 화면에는 연구소 주변 지도가 정밀하게 묘사되어있었는데, 주변을 돌아다니는 사람과 차량까지 묘사되는 것을 보면 실시간으로 도로 상황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였다.

    이름 그대로 진짜 ‘완벽한’ 내비게이션 같았다.

    보통 이렇게 유용한 오브젝트는 발견자가 발견한 뒤 계속 사용하기 때문에 연구소로 들어오는 경우가 별로 없었다.

    그래도 연구소로 온 걸 보면 높은 확률로 치명적인 문제점이 있겠지.

    그래도 왠지 재미있어 보였다.

    띠리링. 띠리링.

    3발 자전거의 페달을 천천히 밟자, 자전거 바퀴에 연결된 금속에서 맑은 소리가 났다.

    아마 넓은 격리실 내부에서 이동 중인 자전거의 위치를 쉽게 찾기 위한 장치겠지?

    자전거가 앞으로 나아가자, 내비게이션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자유 주행모드로 전환합니다.”

    3발 자전거는 내 패달 속도에 맞춰서 맑은 소리를 내면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이 격리실은 일종의 자전거 놀이공원처럼 구성되어 있었다.

    상당히 위험한 놀이공원인 점만 제외하면 재미있었다.

    바퀴를 굴리다보면 앞에서 쇠공이 굴러오거나, 횡단보도에서 쇠로 만든 인형이 튀어나오곤 했다.

    그때마다 이 내비게이션은 그런 위기를 일일이 다 감지해서 피해갈 수 있는 타이밍에 완벽하게 지시를 내려줬다.

    과장 좀 섞으면 눈을 감고도 도로 주행이 가능할 수 있을 정도!

    3발 자전거용 도로를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보니, 점점 안개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와 이런 악천후를 구현하는 장치까지 만들어 둔 건가?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 돌아다니기 어려울 법도 했지만 내비게이션 덕분에 별 문제가 없었다. 

    아예 내비게이션에서 빛을 쏴서 외부 환경을 모사해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신나는 마음에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점점 속도를 올렸다.

    하얗게 아무것도 안 보이는 도로에서 페달을 밟아서 빠르게 돌아다니는 건 생각보다 즐거웠다.

    뭔가 약간 불안한 느낌, 그리고 신기한 느낌이 겹쳐져서 상당한 스릴이 느껴졌다.

    자전거 바퀴까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은 안개 속,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즐거운 시간도 끝이 났다.

    주변을 가득 메우던 안개가 갑자기 사라진 것이다.

    ‘어?’

    그리고 나는 높은 언덕에서 굴러 떨어졌다.

    데굴데굴.

    굴러 떨어져서 일어난 곳은 3발 자전거의 무덤이었다.

    많은 자전거들이 잔뜩 떨어져 있는 무덤.

    나야 물리 면역이니 괜찮지만, 보통 사람이라면 죽을 수도 있는 높이였다.

    유령화로 격리실 밖으로 나가서, 오브젝트의 설명을 읽었다.

    <완벽한 내비게이션.>

    <전기도, 센서도, 데이터 연결도 필요 없는 내비게이션입니다.>

    <새로이 만들어진 길도 그 즉시 내비게이션에는 기록되어서 안내합니다.>

    <사고로 부서진 길도, 충돌 사고 현장도 즉각 기록되어서 안내합니다.>

    <도로 정체도 즉각 기록되어서 가장 빠른 경로를 안내합니다.>

    <주의- 내비게이션을 의지하기 시작하면 랜덤한 시기에 안개를 만들어냅니다. 그 때도 내비게이션을 신뢰하면 사망 사고를 유도합니다.>

    <주로 절벽 같은 곳으로 유도해서 떨어트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좋은 녀석인 줄 알았는데, 사악한 내비게이션이었네….

    ***

    바닥에 떨어진 피를 잔뜩 머금고 있는 사진 한 장을 집어 들었다.

    “귀여운 강아지 사진?”

    토막 난 시체와 갈가리 찢겨진 노트, 그리고 귀여운 강아지 사진.

    뭔가 기억이 날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질 않네. 

    분명히 꼭 기억하고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메이커’가 ‘이름 없음’을 시험했군. 범죄자 주제에 전 지구적인 오브젝트를 해결하려고 했어. 그래서 큐브를 훔쳐 간 건가?”

    “이름 없음?”

    끔찍한 지하실 환경으로부터 아가씨의 눈을 가리고 있는 검은 녀석이 뭔가 아리송한 이야기를 했다.

    ‘이름 없음’ 왠지 들어봤던 이름 같다.

    뭐였지?

    “괜히 떠올리려고 하지마라. 머리만 아프다.”

    “뭐, 쓸데없이 고민하는 건 별로 취향이 아니니까. 이런 아리송한 건 또 오브젝트 관련이겠지.”

    답답한 마음에 머리를 뒤로 쓸어 올렸다.

    “그래서 이 참상으로 뭔가 알아낸 점이라도 있어?”

    “별로 유익한 정보는 없다. 쓸데없는 짓을 시도했던 흔적 정도만 남은 셈이지.”

    “그럼, 메이커는 놓친 거군.”

    지하실로 파란 정복의 직원들이 잔뜩 내려오기 시작했다.

    이들은 전문적인 장비를 가지고 작은 단서 하나라도 찾으려고 들쑤시고 다니겠지.

    메이커를 쫓는 건 꽤 흥미가 가는 일이지만, 의뢰도 없으니 슬슬 사무소로 돌아가서 다음 의뢰를 기다려야겠어.

    “후배. 돌아가자!”

    “아니, 선배! 혜진이 두고 어디가요?”

    ***

    해골 거미와 내비게이션을 떠나서 도착한 곳은 좀 더 튼튼한 격리실에 보관된 오브젝트였다.

    이 오브젝트는 보는 순간 느낌이 왔다.

    이건 재미있을 것 같다!

    그 오브젝트는 걸어 다니는 인형이었다.

    공처럼 둥근 얼굴. 

    눈과 입은 열 수 없도록 거칠게 꿰매져 있고 옷은 광대처럼 화려하게 입고 있었다.

    얼굴만 빼면 굉장히 괜찮은 인형이었다.

    문제는 얼굴이 묘하게 현실적이라서 기분이 나빴다.

    인형은 격리실 안을 돌아다니면서 꾸벅 인사를 하고 편지 봉투를 내밀었다.

    봉투위에는 <스마일 테마파크로 초대합니다!> 라고 쓰여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오브젝트의 이름은 이렇게 적혀있었다.

    <테마파크 초대장 인형.>

    인형은 애처롭게 혼자서 돌아다니면서 초대장을 내밀었는데, 연구소 직원 중 그 누구도 그 초대장을 받아주지 않았다.

    사실 오브젝트가 주는 초대장을 받는 건 죽음의 위험을 감수하겠다는 의사 표명이었다.

    마침 아장아장 걸어온 인형이 나에게 초대장을 내밀었다.

    흐음, 왠지 저 초대장을 받으면 재미있는 일이 일어날 것 같은데?

    ***

    쓸쓸함이 감도는 공동묘지.

    나무에 기대선 채, 하염없이 누군가를 기다렸다.

    공동묘지 곳곳에는 나를 경호하기 위한 비밀 중앙 연구소 측의 직원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비밀 중앙 연구소 측에서는 나를 다시 감옥으로 돌려보내지 않았다.

    대신 비밀 중앙 연구소의 부소장을 맡겼다.

    소장 오브젝트를 불러오는 것이 불가능해진 상황에서도 굳이 소장 자리를 비워두고, 나를 부소장 자리에 앉힌 것이다.

    그리고 비밀 중앙 연구소 부소장으로서 수행한 최초의 직무는 어떤 무덤에서 어떤 사람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그 남자가 자유로워진 이상, 분명히 이곳에 올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니의 무덤이었으니까.

    뚜벅뚜벅.

    익숙한 구두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자, 30년 전과 같은 얼굴을 한 그 남자가 있었다.

    그 남자는 30년 전처럼 감정 없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음화 보기


           


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