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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0

        

         “후우… 어렵네……!”

         

         “힉?!”

         

         비록 체격이 유별나게 큰 건 아니여도, 잔뜩 구겨진 얼굴이나 치켜 올라간 눈썹이 보이진 않아도.

         빈틈없는 원칙주의와 용병으로 전업해도 이상하지 않을 실력으로 유명한 3번 게이트 주간 근무조장. 헬레나가 몸소 으르렁거리면서 복도를 헤집고 다니자 눈치 있는 직원들은 알아서 길을 텄고… 없는 놈들도 구태여 엮이려고 들진 않았다.

         

         자기들끼리 티격태격거려봐야… 도시 경찰이 결국 대부분의 분쟁을 해결하는 주체, 하소연할 곳도 없으니 내부에서 알아서 덮어야 하는데.

         

         …손날치기 한 방으로 바이저를 세로로 쪼개버렸다는 괴담의 진위여부를 직접 체험해보고 싶어하는 모험심 넘치는 사람은 보통 공무원 같은 직종엔 없었다.

         

         – 여기는 7번 게이트. 막사구역 수색 및 녹화영상 확인 끝났습니다. …별도의 무단 침입자는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

         

         – 5번 게이트도 동일하다! 그런데… 진짜로 누굴 찾기 전까지 주간조도 계속 연장 근무를 해야 하는 거냐? 지휘부 나으리들… 혹시 미치셨습니까?! –

         

         – ……이하 동문이다. 1번 게이트에서도 거수자의 인상 착의를 배포하던, 그것마저 힘들다면 수색범위라도 좁혀 주기를 요청하는 바이다. –

         

         – 3번 게이트는… 아직 수색 중. 출장나간 엔지니어 둘을 제외하고는 명령받은 대로 장벽 인근과 관문에 붙은 도로부터 살피고 있습니다. ……조장님, 그… 빨리 좀 돌아와 주십쇼.”

         

         “……쯧.”

         

         흘러 들어오는 보고를 듣던 그녀가 못마땅하게 혀를 찼다.

         

         하지만 당장 사고가 발생했다는 비상연락과 회신으로 통신채널이 시끄러운 상황에까지, 개인적인 의구심과 책임감을 우선시할 만큼 막 나가지 않았다.

         

         …사실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아무리 예사롭지 않더라도 의혹은 어디까지나 의혹.

         실제로 알아낸 게 없는 상태이기에 계속 고집을 부리지 않는 것일 뿐, 헬레나 발렌타인은 그냥 시원하게 들이 박고도 남을 인재였다.

         

         특히나 지휘부에 관한 의구심까지 피어난 지금이라면 더더욱.

         

         “…….”

         

         차분하게 발길을 돌려 담당구역으로 돌아가는 와중에도 한 번 품은 상념을 사라질 줄을 몰랐다.

         

         원래 헬레나에겐 전투경찰이나 메가 코프, 파라다이스 사에 편견이 없었다.

         

         당장 키워 주신 할아버지만 해도 크레딧만 낸다면 시민증을 만들어주는 브로커였으니, 관문경비대의 일 정도야 도시의 안전을 위협하는 심각한 범죄자들을 색출해내는 거라 여기고 종사했으며.

         

         기업의 압제도…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일개 정착지에서조차 사람들이 모여 살기 위해 만든 규율이 있었으니까 납득은 했다.

         

         그런데… 처음에는 중화기 무기고에서 우발적인 사고가 일어났다고 했으면서, 왜 지금은 무단 침입자가 있다고 전 병력을 동원한 걸까?

         

         “하아… 오늘은 이만 멈춰야 하나?”

         

         한숨을 푹 내쉰 그녀는 무의식 중에 아나스타샤에게 작성하던 메시지를 지워버리고 사이버웨어도 닫아버렸다.

         

         최근 여러모로 자신의 고집에 어울려주느라 거의 두 배로 바빠진 동생을 자꾸 혹사하기엔 내심 미안했다.

         차라리 이런 경우엔 평소에도 지하에 방문하는 업무가 잦은 앤에게 부탁해 상황을 파악하는 게 나으리라.

         

         – …앤? 거기는 좀 어때? 지금 뭣 때문에 난리가 난 건지 혹시 살짝이라도 공유해줄 수 있어? –

         

         – 아, 미안해…! 나도 아주 급한 용무가 생겨서 지휘부로 향하는 길이라…. –

         

         – …아쉽네. 역시 우리 같은 말단은 항상 무지한 채로 현장투입 당하는 신세라는 게. –

         

         저런. 하필이면 시기도 안 좋았다.

         말꼬리를 흐리며 연신 사과하는, 옛날부터 어딘가 소심한 구석이 있던 여린 친우를 괜찮다고 달래 주었다.

         

         세상만사, 모든 일이 언제나 딱딱 잘 맞아떨어지는 건 아니니. 현재의 실망감도 찝찝함도 양분으로 삼아 내일 노력하는 게 낫지 않을까… 고민하던 찰나, 분한 헬레나의 기색을 느꼈는지 앤이 기운을 북돋아 주었다.

         

         

         – 그래도 레나가 노력하면 분명 작은 실마리라도 잡을 수 있을거야. ……너는 늘 그래왔으니까. –

         

         

         “어… 응, 고마워…?”

         

         상당히 신기한 응원이라고 생각하며, 그새 끊어진 통신에다 대고라도 늦은 감사를 표했다.

         

         또 한편, 자신은 그저 들이닥친 침입자에 대해 물어보려고 한 건데… 묘하게 요 근래 아나스타샤와 골몰하던 문제의 맥락을 짚어주는 것처럼 들리기도 했다.

         

         단순한 우연이라 여기기엔 꽤나 구체적인 조언의 출처가 궁금해지는 그런….

         

         “큽! 크흡…! 흑…!!”

         

         “…?”

         

         예민한 그녀의 청각이 미묘한 소음을 감지했다.

         익명성 뒤에 숨어서 서로 강한 척, 담대한 척하는 게 일상인 경찰 주둔지에서 듣기 흔치 않은… 흐느끼는 소리?

         

         출처는… 울림으로 보건대 바로 옆의 화장실.

         그것도 주로 3번 게이트 근무인원들이 쓰는 가까운 곳.

         

         …누구나 약해지는 순간이 있다는 건 알지만, 하필 동원령이 떨어진 이때 구석에 짱박혀서 울고 있어봐야 나아지는 건 없었다.

         

         퇴근을 못해서 몰래 울고 싶을 정도로 슬퍼진 휘하 주간조인지, 이제 막 출근해서 남은 시간이 막막한 야간조인지는 몰라도.

         이래저래 타일러서 근무평가엔 영향이 가지 않도록 해줘야겠다고 여기고 안으로 들어서자.

         

         “……이건?”

         

         “……!”

         

         비릿한 철의 냄새, 피비린내가 코를 깊숙이 찔렀다.

         

         반면에 내방자인 그녀가 흘린 혼잣말을 들었는지, 고통에 찬 신음은 숨을 들이켜는 잡음과 함께 뚝 끊어졌다.

         

         모습을 숨긴 인물은 명백히 부상 상태, 그리고 아마 그 정체는 관문 전병력이 뭐 빠지게 찾느라 바쁜 침입자로 추정된다.

         

         까드득….

         

         제압용 둔기로 활용할 수 있도록 검집을 통째로 그러쥔 헬레나가 닫힌 칸을 일일이 밀쳐보기 시작했다.

         

         목적한 인물이 움츠린 위치는 미처 감추지 못한 인기척을 토대로 짐작하고 있었으나… 그녀가 보고자 하는 건 상대방의 태도.

         그렇기에 기본적인 지원을 요청하기는커녕 적을 발견했다는 무전조차 치지 않았다.

         

         쿵… 쿵….

         

         대놓고 접근하는 발소리를 들려준다.

         

         맞서 싸울 적을 대비한다기보다는 상처입은 짐승이 놀라지 않도록 하는 배려에 가까운 행동. 어째서 번거로운 짓을 하느냐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결코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할 행위였다.

         

         “…….”

         

         “흐으… 흐으읍…!!”

         

         끼기긱—!

         

         돌발상황을 상정해 거칠어진 남자의 호흡에 신경을 집중한 채, 조심스럽게 잠긴 칸막이 문을 비틀어 열자. 안쪽으로 들어선 헬레나의 손과 교대하듯 선혈이 덕지덕지 들러붙은 유리조각이 그녀를 향해 겨눠졌다.

         

         …관문에 단신으로 침입했다는 것 치고는 참 초라한 무기다.

         더군다나 맨손으로 어찌나 강하게 붙들었는지 찢어진 살로부터 새어 나오는 붉은 생명수가 손목을 타고 화장실 바닥을 적셨다.

         

         벌써부터 지휘부가 경찰들에게 고의적으로 누락한 정보의 편린이 보이는 것 같았다.

         

         “…일단 좀 진정하시겠습니까? 저는 어디까지나 체포명령을 받았지, 생명에 위해를 가할 의도는 없습니다.”

         

         “크흡… 씨발…! 악마 새끼가 하는 말을 누가 믿는다고!!”

         

         지면을 향해 흘러내리는 건 자상에서 나온 피만이 아니었다.

         

         가장 먼저 그녀의 시선을 잡아 끈 특이점은 남자의 복장. 얇디얇은 수술가운은 어디에도 녹아들지 못할 정도로 눈에 띄었다.

         

         또 복부는 절개되던 도중에 빠져나왔는지 균열이 벌어지지 않게 한쪽 팔이 휘감은 상태로 고정.

         흔들리는 눈가에선 눈물이, 공포에 먹혀 딱딱 맞부딪히는 입가에선 침이.

         

         백이면 백, 영락없이 막무가내로 탈출한 환자다.

         

         “…나흘 전쯤 트레일러 비밀공간에 탑승해서 들어오려고 하셨던 적 있지 않으십니까…?”

         

         “흐으… 흐윽…! 그래!! 니놈들이 잡아 가둔 가축이시다…! 왜?! 발이 달린 상품이 저 깊은 지하로부터 탈출할 줄은 몰랐나보지?!”

         

         …그래, 만약 그가 며칠간 최선을 다해 찾아다니던 밀입국자 중 한 명이 아니었다면 의료 구역에 연락해서 모셔가라고 했으면 끝나는 일이다.

         

         남자를 포함한 실종자들이 의료 구역에 입원했던 기록이 전무한 건 아나스타샤가 얻어준 자료를 통해 몇 번이고 재확인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대관절 이 중환자는 어디 있다가 나타난 걸까?

         

         악에 받친 고함이 이어질 때마다 후두둑! 하고 그의 남은 목숨이 사방에 흩뿌려진다.

         

         우선 그를 진정시키지 못하면 겨우 찾아온 기회와 증인을 남김없이 잃어버릴 게 보였기에, 헬레나는 손바닥을 내보인 후 천천히 검집을 바닥 타일위에 내려놓았다.

         

         적대 의사를 완전히 버린, 순수하게 대화를 원하는 몸짓에, 다 넘어가던 숨이 조금이나마 고르게 변했다.

         

         “…깊은 지하라면 중화기 무기고? 여태 거기에 숨어 계셨던 겁니까? 대체 어떻게…?”

         

         “웬 무기고냐…? 너희 기업 새끼들이 자랑스럽게 HA층이라고 이니셜까지 처박은 수확 구역(Harvesting Area)을 말하는 거다.”

         

         “…….”

         

         오랜 기간 믿었던 상식과 어긋나는 대답을 듣자마자 헬레나는 직감했다.

         …아, 여기서 임무의 이면을 알아버리면. 말을 섞어버리면 더는 돌이킬 수 없게 된다.

         

         그러나 꺼림칙한 외면보다는 명확한 형태의 결말을 그녀는 절대적으로 선호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었다.

         

         하지만… 제멋대로인 자신의 독선에, 가까운 사람들이 휘말려 드는 불상사가 일어나서는 안 된다.

         

         “여기, 일단 지혈제부터 받으시죠.”

         “?!”

         

         쨍그랑…!

         

         예고도 없이 던져진 의약품에 거진 손에 틀어박혀 있던 유리 조각이 추락해서 쪼개졌다.

         그가 뜻밖의 호의에 눈치를 보거나 말거나, 그녀는 사이버웨어를 조작하느라 급급했다.

         

         언니가 근무를 끝마치고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을 동생에게는 잠시 피신해 있으라는 전언을.

         공연히 남은 통신기록으로 인해 피해를 입을 지도 모르는 친구에게는 일이 잘못되면 관련성을 부인하라는 충고를.

         

         “그럼… 대체 어떻게 탈출하셨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상세히 말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강은 건넜고, 주사위도 방금 막 던져졌다.

         

         평생 지켜왔다고 믿은 본인의 신념에 문질러진 진흙을 마주한 헬레나 발렌타인은 고요하게 분노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저는바보멍청이지각쟁이입니다 흑흑.

    휴재는… 더 이상의 휴재는 안 되는데! 손가락이 자꾸 저주파 기계라도 붙인 것처럼 구부러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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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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