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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0

     말을 듣지 않는 인간을 지배하기 위해서는 폭력이 필요하다.

     황제의 지론이다.

     

     그는 자신에게 반대하는 이들을 감옥에 가두고, 고문하고, 숙청했다.

     반대?

     

     누가 감히.

     아래에 팔신장이라고 하는 마스터 8명을 데리고 있는 이를 상대로.

     더군다나 황제는 숙청할 때마다 뒤탈이 나오지 않게 철저히 리스크를 관리했다.

     -내가 직접 제거한 건 모두가 욕하는 범죄자, 반역자뿐이었지.

     황제는 말했다.

     -심장마비. 자살. 교통사고. 약물중독. 치정살인. 그러게 평소에 건강 관리를 잘하든, 옆에서 누가 도와주든, 간병인이든 하인이든 잘 뒀어야지.

     리스크를 질 것 같은 이들에 대해서는 자신이 직접 피를 묻히지 않고, 그림자를 동원하여 사건을 조작했다.

     -지배자는 사람을 잘 다루어야 해. 압도적인 힘을 근간으로, 수하들을 공포로 다스려야 하지.

     황제의 말이었다.

     어느정도 공감은 하지만, 나는 폭력에 의한 지배가 100%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한 대를 때려서 지배하면, 그 뒤에는 세 대를 때려야 하는걸.’

     귀찮은 일이다.

     엇나갈 때마다 채찍을 드는 것도, 그걸 휘둘러 튄 피를 닦아내는 것도 귀찮은 일이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황제의 공포와 압제에 지배되고 있는 그림자를 빼내려고 한다면, 어떻게 그들을 역으로 지배할 수 있을까.

     정답은, 지브롤터의 혈통에 있었다.

     “다 마셨으면, 선물을 줘야겠지.”

     채찍을 들고 휘두르되, 채찍만 휘둘러서는 안 된다.

     “너희들의 배경에 대해 어느정도 알고 있다. 미인계를 위해 이곳에 온 것도.”

     “…….”

     그림자 셋은 바로 이해했고, 아이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지브롤터를 유혹할 기회를 주마.”

     “!!”

     “제국의 고아, 지브롤터 가문의 사람을 홀리다. 성공만 한다면 제국은 너희를 더 이상 고아로 보지 않겠지.”

     그래서 말을 덧붙이자, 이제는 9명 모두 확실하게 이해했다.

     “너희들이 유혹할 수 있는 지브롤터에는 네 명이 있다. 변경백. 백작 부인. 누아르. 레타르. 변경백이야 다들 오면서 봤을 테고.”

     소녀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둘 정도는 얼굴이 다시 떠오른 건지, 얼굴을 붉히기까지 한다.

     “어디, 너희들 마음껏 홀려봐라. 아버지의 후처를 노리든, 지브롤터의 메이드장 자리를 노리든, 누아르의 소꿉친구이자 미래의 부인을 노리든, 아니면 레타르의 놀이 상대이자 시녀가 되든.”

     홀린다는 게 꼭 이성적인 부분만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지브롤터 혈통을 홀릴 수 없다면, 지브롤터에 그대로 정착하는 방향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기사도 있고, 집사도 있고, 아니면 본인 스스로 메이드가 되는 방법도 있지. 사실 이쪽이 제일 추천하는 방법이긴 해.”

     제국인을 메이드로 삼는다.

     “나중에 제국에서 지브롤터에 사업장을 열어서 백화점이든 마켓이든 뭐든 만들면, 그곳을 관리할 수 있는 인원을 우리가 파견해야 하거든.”

     그래서, 제국에서 살았던 경험을 가진 이들이 필요하다.

     제국의 시장은 단순히 길가에 늘어진 가판대에서 물건 늘어놓고 팔아치우는 게 아니니까. 

     “평민 가정에서 간혹 버려진 강아지를 집에 데리고 오는 경우가 있지.”

     버려진 강아지, 라는 단어에 몇몇 이들이 흠칫 놀란다.

     “부모는 강아지를 버리라고 소리지르지만, 몇 달 지나있으면 강아지를 키우는 경우가 있더라고.”

     인간은 강아지가 아니지만, 비유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할 이들이 아니다.

     ‘황제의 핏줄이 어디 가겠느냐고.’

     9명 모두 은발, 혹은 백발이라는 게 증명하고 있다.

     ‘남자아이는 군청, 여자아이는 백발이었던가.’

     눈동자 색은 어머니를 따라 달라지더라도, 머리카락 색만큼은 황제로부터 확실하게 물려받은 게 보인다.

     “시작은 고아지만, 끝은 너희들 하기 나름이다.”

     지성도 어느정도 물려받았겠지.

     “나는 너희들에게 많은 기회를 제공할 것이야.”

     인간이 무언가에 미치게 만들려면, 공포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다.

     “너희가 지금보다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있는 기회.”

     희망.

     “그 기회를 허투루 쓰거나 스스로 망친다면, 그 결과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겠지.”

     아니면 뭐, 도태되어 그저 제국의 고아 A로서 자라는 거고.

     “단, 나는 안 된다.”

     지브롤터의 다른 사람은 다 되지만, 나는 안 된다.

     “너희들을 이곳으로 보내준 에르윈 회장과 거래를 맺었다. 나는 대외적으로, ‘아스타시아에게 홀린 지브롤터의 장남’이 되어야 하거든?”

     “아….”

     

     제국에서는 그렇게 인식해야 한다.

     “나는 아스타시아 전하와 자주 마주치게 될 것이다. 너희들은 애초에 안중에도 없어야 하고, 실제로 그렇게 움직일 예정이다.”

     당장은 이름조차 기억할 필요가 없는 자들.

     

     황제의 사생아?

     이곳에 있는 마지막 번호가 지금 81번이다.

     7살이, 81번이다.

     ‘여자랑 달리, 남자는 하루에도 몇 명이든 임신시킬 수 있으니.’

     그 뒤로 몇 번까지 있는지는 자세하게 알 수 없지만, 일단 세 자릿수가 넘는 건 확실하다.

     “명심해라. 혹시나 누군가, 제국에서 사람이 오든 아니면 보고하든, 너희가 이곳에서 자리를 잡고 나중에 제국으로 돌아갔을 때 화려한 위치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하고 싶다면.”

     똑, 똑똑.

     “그레이 지브롤터는 아스타시아에게 홀려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탁자를 가볍게 손으로 두드려 이목을 집중시킨다.

     “제국의 이야기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제국의 것을 흠모하기 시작하고, 제국에 한번 가보고 싶다는 이야기도 하더라.”

     제국에 미친, 매국노의 싹 그레이 지브롤터.

     사랑에 미친 지브롤터.

     “나의 말을 들으면, 지브롤터는 너희를 보살펴 주고 키워줄 것이다.”

     나는 비어있는 나무 컵을 손으로 두드렸다.

     “내일 아침에는 보육 메이드들이 와서 안내를 해줄 것이다. 지브롤터에서의 첫 밤. 부디 편안한 꿈을 꾸도록.”

     탁.

     잔으로 가볍게 탁자를 치며, 몸을 일으킨다.

     “해산.”

     고아들, 어쩌면 이제는 다른 이름으로 불러야 할.

     “적어도 누군가의 공주님이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지.”

     예비 공주들은 쭈뼛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그 말을 하는 걸 잊었군.”

     황제는 말했다.

     “9번. 네가 가장 연장자지?”

     “아, 네! 그렇습니다!”

     “네가 방을 배정해라.”

     “예…?”

     어느 한 집단을 지배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그 안에서 계층을 만드는 법이라고.

     “앞으로 무슨 일이 있다면 네가 대표로 와서 보고해라. 방은 각자 1인실을 쓸 수 있으니, 알아서 정해.”

     “아, 예! 따, 따르겠습니다.”

     “전하께서 혹시나 방을 정하셨다면, 그 방은 빼고.”

     모든 예비 공주는 평등하지만.

     “한 번, 믿고 맡겨보도록 하지.”

     그중에서 어떤 공주는, 다른 이들보다 더 평등한 법.

     “너에게…그래. 그게 좋겠어.”

     미래.

     제국이 식민지를 통치할 때, 옛 왕국 출신 귀족들에게 내렸던 특별작위가 하나 있다.

     “네게 ‘완장’을 주마.”

     “완장…?”

     “지금은 따로 실물이 없지만, 네가 이들의 대표가 되는 거다.”

     “대표….”

     “싫으면-저기, 에난시였나?”

     “…아난시입니다.”

     “그래, 아난시에게 시키고.”

     당연히 눈치챘겠지.

     이름조차 묻지 않은 9번보다, 틀리긴 했어도 비슷하게라도 외웠다는 것.

     “아, 아닙니다! 제가, 제가 잘하겠습니다! 믿고 맡겨주세요…!”

     싸구려 권력인 법이라도, 권력은 힘이다.

     “좋아.”

     나는 9번에게 힘을 실어줄, 마법의 주문을 읊으며 그녀의 어깨를 두드렸다.

     “알아서. 잘하자?”

     * * *

     지브롤터 백작 저택.

     “오셨어요?”

     “자고 있지, 뭐 하러 일어나있었소.”

     “잠이 안 와서….”

     샤를로트 백작 부인은 만삭인 채로 흔들의자에 앉은 채, 백작을 맞이했다.

     “그레이는요?”

     “보육원에서 아이들을 보살피고 있소. 그대의 말대로, 우선 임시처소에서 지낼 것이오.”

     “그렇군요. …아이들, 어땠어요?”

     “다들, 머리가 희더군.”

     백작은 부인의 옆으로 의자를 잡아당겨, 그녀의 옆에 앉아 손을 잡았다.

     “제국의 황태자가 그렇게 아이를 많이 낳았다고 소문이 자자하던데, 역시 소문대로인 모양이오.”

     “그 아이들, 혹시 전부…?”

     “아마도. 정식으로 인정받은 아이들은 아니지만, 전부 사생아일 가능성이 크지.”

     “제국신문에 있었던 이야기들, 허튼 이야기가 아니었군요.”

     매국을 결정하고, 그레이가 제국어를 공부하기 시작한 이후.

     백작 부부는 제국에 대해 알기 위해, 그레이가 번역해주는 제국신문을 왕국어로 읽어왔다.

     모든 내용은 아니고 중요한 부분이라고 그레이가 스크랩한 내용뿐이었지만, 그 내용 중에는 황태자에 대한 것도 있었다.

     “참…안타깝네요. 이쪽이나, 저쪽이나.”

     “비밀로 합시다. 결코 대외적으로 알려져선 안 될 문제요.”

     “네. 입 꾹 다물게요. 누가 오더라도.”

     기본적으로, 백작과 부인은 백작령에 관한 대부분을 공유한다.

     서로 숨기는 게 하나둘 정도는 있겠지만.

     “그보다 부인. 나중에 그레이와 따로 한 번 이야기를 해보시오.”

     “네, 네? 그, 그레이랑요?”

     “…그렇게 겁을 먹을 필요는 없소.”

     “아, 아하하….”

     샤를로트는 만삭의 배를 어루만지며 겸연쩍게 웃었다.

     “그레이랑, 둘이서….”

     누가 봐도 그레이를 꺼리는 기색이 역력했고, 예전의 백작이라면 그런 부인의 행동에 무조건 아내의 편을 들었겠으나-

     

     “그레이가 아무래도 첫눈에 반한 여자가 생긴 모양이오.”

     “…어, 진짜요?”

     이건, 샤를로트도 참지 못했다.

     “누구요? 혹시, 왕녀님?”

     “…그건 아직 반신반의하고 있소.”

     지난 3년.

     -그레이 지브롤터는 나리아 지오 노스트럼을 좋아하는 건가?

     

     백작과 부인은 숱하게 이 문제를 주제로 토론했었다.

     하지만 그동안 아들에게 직접적으로 물어보지는 못했다.

     설령 아들이 최근에 ‘왕위로 올리고 싶을 뿐’이라고 말했을 때도, 좀처럼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아무리 그레이가 어른스럽다고 해도.

     아무리 천재인 부류라고 해도.

     인간의 감정, 특히 ‘사랑’이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서투를 수 있으니.

     그런데.

     “누구예요?!”

     “제국의 황손녀, 아스타시아 .”

     그런 그레이가 좋아하는 여자가 생겼다?

     “…백작님. 반역, 어디까지 할 건가요?”

     “글쎄.”

     “세인트 지오를 죽이고 나면, 노스트럼은 그대로 존재하는 건가요?”

     “그건, 이제 순전히 그레이에게 달렸지.”

     백작은 순순히 속내를 드러냈다.

     “그레이가 그런 말을 했었지. 나리아 공주를 왕으로 만드는 것이 자신의 목표라고. 그 뒤에는 어떻게 되든 알 바 아니라고.”

     “네. 세인트 지오를 왕위에서 끌어내리는 것이 제일 큰 목적이라고 했죠.”

     “나도 마찬가지요. 그대를 희롱한 그자를 내 손을 직접 처단하는 것이 내 지상과제요.”

     “……그.”

     “쉿.”

     샤를로트가 무언가 말을 하려고 입을 열었으나, 백작은 검지를 뻗어 샤를로트의 입을 막았다.

     “아이가 듣겠소.”

     그러고는 샤를로트를 향해 고개를 숙여, 입술을 맞췄다.

     한참을.

     창가를 지나가는 구름이 달의 아래로 스쳐 지나간다.

     바람이 살포시 불며 나뭇가지를 휘게 만들고, 투명한 거미줄이 길게 늘어진다.

     “…치사하시네요, 정말.”

     “그대의 입을 더럽힐 수도 없고, 아이에게 안 좋은 이야기를 들려줄 수도 없으니.”

     백작은 담담히 다시 자리에 앉았다.

     “하여튼, 나는 노스트럼에 대해서는 굳이 생각해 본 적이 없소. 모르가니아와 손을 잡았고, 이제는 제국에도 연줄이 생겼지.”

     “세 가지, 정도 선택지가 있겠네요.”

     하나. 왕을 바꾼다.

     둘. 나라를 바꾼다.

     셋. 왕이 된다.

     “만일 황손녀가 훗날 황녀가 되고, 그레이가 제국의 국서가 된다고 한다면 저희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 또한, 그레이의 생각에 달려있는바.”

     나리아가 왕이 되든.

     노스트럼이 멸망하고 제국이 대륙을 통일하든.

     지브롤터가 노스트럼을 잡아먹고, 나아가 왕국의 시작을 알리든.

     

     “모든 건 그레이의 의중에 달려있소. 우리는 그레이가 바라는 대로 해주기만 하면 되오.”

     “그레이가 바라는 것….”

     “제국에서 온 여인에게 홀려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되고, 알고 보니 그 소녀가 제국의 황손녀였다.”

     변경백은 아카데미의 교과서를 읽듯, 나지막하게 읊었다.

     “그레이가 제국과의 접점이 될 것이오. 우리는…그걸 한 발짝 멀리서 지켜보면 될 일이지.”

     “백작님.”

     “물론, 겉으로만.”

     백작은 부인의 손을 다시금 강하게 움켜쥐었다.

     “그레이라면, 결코 틀린 선택을 하지 않을 것이오. 그 아이는…정에 흔들릴 아이가 아니니까.”

     지브롤터.

     단 한 번도 뚫리지 않은, 철혈의 관문.

     

      

     * * *

     이야기는 끝났다.

     잠시 휴식을 위해, 내 방으로 돌아온 순간.

     “아.”

     나는 보았다.

     “이런.”

     새근, 새근.

     내 침대 위.

     “여기, 내 방이라고 내가 말을 안 했지.”

     아스타시아가 옆으로 누운 채,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

     조용히, 깨지 않게.

     침대 옆으로 다가가, 자고 있는 아스타시아를 내려다본다.

     어렸을 때라 젖살이 조금 있기는 하지만, 이대로 자라면 분명 내 기억 속에 있는 그 모습과 똑같이 자라겠지.

     “…….”

     그리고 미래와 같이 이어진다면, 그 결말은 결국 파멸.

     

     아스타시아의 죽음이다.

     설령 나와 이어진다고 해도, 성인이 되는 순간.

     황제는 아스타시아를 죽이려고 할 것이다.

     내가, 황제의 제안을 거절할 것이기에.

     “……하.”

     그러니.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한다.

     미래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편히 주무십시오. 공주님.”

     또 이 여자가 눈물을 흘리며, 자신을 대가로 나를 살리려고 황제의 앞에 무릎을 꿇게 하는 일이 없도록.

     이번에는.

     ‘황제를 죽이기 전까지.’

     결코.

     ‘사사로운 감정에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다시는.

     

     “…우웅.”

     “…….”

     “으헤헤, 히힛….”

     “…….”

     잘 때 이불을 내팽개치는 건 여전했다.

     아니, 어려서부터 그랬다고 하는 게 맞을까.

     “…….”

     그저.

     

     ‘지브롤터에 온 첫날에 또 감기에 걸리게 할 수는 없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뿐.

     나는 조용히, 이불을 아스타시아의 목까지 당겼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와! 50화!
    일러스트는 샤를로트 백작부인입니다

    어머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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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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